143. 불사신
거대한 덤프트럭이 그의 오토바이를 덮치려고 하던 순간.
해수는 어금니를 깨물며 몸을 숙이고 액셀을 더욱 확 당겼다.
부아아앙!
오토바이가 총알처럼 쏘아져나가며 덤프트럭과의 충돌위험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아니, 그 뒤꽁무니 20센티 정도가 살짝 걸렸다.
쿵- 끼이이익-!
거의 부딪치지도 않은 듯 스치는 정도였지만, 덤프트럭의 속도로 인해 해수의 오토바이도 빙글 돌았다. 해수는 다급히 한 발을 바닥에 찍어 축으로 삼아 중심을 잡았다.
턱-
그렇게 제자리에서 두 바퀴를 돌고서야 오토바이가 멈추었다.
안정을 찾은 해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는 덤프트럭의 뒷모습을 보고는 다시금 액셀을 세게 잡아당겼다.
부아앙!!
해수가 따라간 지 100미터쯤 되었을 때.
끼이이익
덤프트럭 운전자가 해수를 발견했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그제야 급브레이크를 잡고 멈추었다.
해수가 오토바이를 멈춰세우고 운전석에 다가갔다.
“문 열어, 부수기 전에.”
-으어, 우어, 어? 뭐?
안에서 횡설수설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수는 바로 발판을 밟고 올라가 서슴없이 창문에 주먹을 꽂았다.
쾅! 콰직, 콰장창!!
“우어억!!”
해수는 창문너머로 손을 집어넣어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어 운전자의 멱살을 잡고 끌어냈다.
“흐어어어”
지독한 술 냄새가 확 풍긴다. 운전자의 얼굴도 뻘겋고 눈도 반쯤 풀려있다.
해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너 뭐야.”
“아이 띠, 너는 뭐언데, 이거 안 놔?!”
해수는 그의 멱살을 단단히 붙잡고 가만히 노려보았다. 해수의 위압적인 기운에 짓눌려 그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전형적인 음주운전자의 모습이지만.
하필 오토바이를 치려고 할 때의 그 타이밍, 이 도로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속도, 그냥 지나가려다가 오토바이를 보고 멈춘 행동.
의심스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박 경위의 죽음이 떠오른다.
‘벌써 시작인가.’
해수는 그를 바라보다가 전화를 들었다.
“예, 여기 사고가 났습니다. 여기가…”
교통경찰이 출동했고, 해수는 그를 데리고 강진경찰서로 향했다.
“…잘못, 잘못해씀니다아, 내가! 내가 슬퍼서, 슬퍼서 술 좀 펐습니다.”
수갑을 차고 앉아서도, 운전자는 계속해서 술에 취하여 헛소리를 해댔다.
“이 사람, 나랑 얘기 좀 하겠습니다.”
“네? 형사님이 직접… 네 알겠습니다.”
해수는 교통계 경찰에게 허락을 받고, 그의 멱살을 잡아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쾅!
그를 대변칸에 집어넣고 문을 강하게 닫고는 얼굴을 가까이 댔다.
“너, 회사 놈이야?”
“에? 회에사? 나 회사 안 다녀요. 프리랜서야 프리랜서.”
해수는 그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회사 놈이 아니다.’
살인청부를 받은 것은 분명해보이는데, 격투를 배웠다기엔 귀도 멀쩡하고, 손에 굳은살도 없다. 결정적으로 회사 출신 특유의 그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 민간인이 맞다.
해수는 그의 귀를 잡고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마지막 기회야. 누구한테 어떻게 청부 받았는지 말해, 너 지금 이대로 나가면 죽어.”
아주 짧은 찰나에 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풀린 눈을 하며 헤벌레 혀를 내밀었다.
“어어? 지금 경찰이 무고한 시민한테 죽인다고 협박하는 거야? 동네 사람들!! 여기 경찰이 시민 협박한다!!”
그의 외침에 혹시나 하고 따라왔던 다른 경찰 두 명이 바로 달려들어왔다. 해수는 그들에게 밀려날 때까지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네가 선택한 거야, 가라.”
해수는 그의 명의 휴대폰 번호, 사는 곳, 회사 등을 알아내고 실거주까지 확인했다.
발목만 조금 욱신거릴 뿐, 다치지도 않고 오토바이만 살짝 생채기가 났으니, 오토바이 수리비만 나중에 받기로 했다.
물론 해수와 원만한 합의를 했다해도 면허취소급으로 술을 처먹고 운전을 한 행위는 엄연한 범법이기에 그는 면허 취소를 당하고 벌금을 물기로 했다.
저벅 저벅 저벅.
사내는 경찰서에서 200미터쯤 걸어 나가다가 오는 택시를 하나 잡아 탔다.
택시 안에 들어서자마자 반쯤 풀려있던 눈이 금세 또랑또랑해졌다.
그는 2G 휴대폰을 꺼내어 연락처에 하나밖에 없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그 새끼 운동신경이 어찌나 좋은지… 아무튼 실패했어요. 선금만 받는 걸로-”
-알겠습니다. 잘 가세요.
뚝
사내는 전화가 바로 끊기자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새끼는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하여튼 말투가 재수가 없어… 어?”
그가 투덜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주변 풍경이 낯설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여기 어디야? 우리 집 가는 길 아닌데? 시발 지금 토박이한테 사기치는 거야? 차 세워, 세워!”
“…….”
사내가 등받이를 발로 거칠게 차대자, 택시기사는 대답없이 핸들을 틀어 갓길에 정차를 했다.
그가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으려고 가운데로 몸을 들이밀던 중, 택시기사도 옆으로 몸을 틀었다.
“시팔, 지금…”
픽-
목이 주사를 맞은 것처럼 따끔하더니, 이내 뜨거워졌다.
핏, 치이익-
물총이 쏘아지는 소리가 들리며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사내는 한 손으로 목을 틀어막고 입을 벙긋거렸다.
“너….”
시야가 흐릿해져 택시기사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만은 확실히 보았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다는 걸.
스윽-
택시기사의 두 손이 사내의 머리를 부드럽게 잡는다.
우득-
소름돋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의식이 끊어졌다.
* * *
경찰서에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신해수는 입주민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힙니다. 올라갑니다.
스으으으응- 쿵
한참 올라가다가 거의 다 도착할 때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탁 탁
“저기요. 엘리베이터 멈췄습니다. 저기요.”
경비 호출을 눌렀지만 묵묵부답이다.
해수는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를 하여 접수를 하고, 꺾이는 부분 구석에서 팔걸이를 잡고 평행봉 운동 딥스를 했다.
“후우, 후우.”
서른 개를 넘기며 삼두근에 슬슬 감각이 올 때쯤이었다.
쿵!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렸다. 해수의 머릿속에 오늘 겪었던 덤프트럭 사건이 스쳐갔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엘리베이터 천장을 열고 올라갔다.
쿠궁!
그 와중에 벨트 또 하나가 끊기며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살짝 움직였다.
위를 보니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인다. 그는 해수와 눈이 마주치자 하던 일을 멈추고 쏙 사라졌다.
해수는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고 그곳에서 탈출했다. 위치는 8층, 계단을 빠르게 뛰어올라가니 10층에 여러 가지의 장비가 그대로 있는 게 보였다.
열린 엘리베이터 문 안쪽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해수는 바로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 옥상 문을 거칠게 열었다.
쾅!
* * *
반팀장.
팀장, 회사에서 팀장을 달기까지 몇 명의 목을 땄는지 모른다.
주임, 대리, 사원까지는 거기서 거기다. 어차피 말벌이라는 별칭에 맞게 언제 쓰고 버림받을지 모르는 일회용이다.
그러나 팀장급 이상이 되면 다르다. 그동안 실체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회에 정식으로 가입되고, 실질적인 회사 운영과 미래를 알게 되고 투입된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갈망이 커진다.
대한민국을 발 아래에 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 무소불위의 권력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팍팍 체감이 된다.
하지만 저 수문장과도 같은 갑갑한 마실장이 출세의 길을 항상 쳐막고 있다.
‘그놈의 규율, 규율, 지만 천선생 옆에 딱 붙어있을 수 있게 만든 좃같은 규율! 내가 이번에 천선생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너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물론, 반팀장은 신해수가 요주인물이니만큼 회사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극도로 조심하면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플랜 2로도 모자라 3차까지, 만에 하나 변수마저도 없애기 위해 2차부터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플랜 1.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골로 보낼 수 있는 덤프트럭으로 쥐포 만들기가 실패했다.
‘제법이야, 요주인물이라 이건가.’
두 번째는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벨트를 모두 끊어버려서 추락사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미친, 눈치가 왜 이렇게 빨라? 방금 눈 마주친 건가? 안 되겠어.’
사고사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발걸음을 재촉하던 반팀장은 묘한 얼굴을 했다. 바로 도망가서 신고를 할 줄 알았는데 소리를 들어보니 올라오고 있다.
‘멍청한 자식, 죽을 자리에 지 발로 오는구나.’
말벌 몇 마리 잡았다고 자신감이 넘치는 듯하다. 예상과는 다르지만, 계획대로 되고 있다. 마지막 플랜은 실패할 수가 없다.
슥-
반팀장은 옥상에 가서 비를 막는 처마에 올라가 와이어를 꺼내었다.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신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흥분하고 무방비한 상태.
‘몸도 좋고 꽤 실력자인 말벌들 몇 명 이겼으니 자신만만하겠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강자들이 많다 꼬맹아.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한 번 느껴봐라.’
해수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위치가 딱 들어맞자 반팀장은 와이어를 해수의 목에 걸면서 뛰어내려 뒤를 잡았다.
꾸드득-
‘어?’
수십 번 목을 조여봤기에 미세한 느낌만으로도 감이 왔다. 목이 제대로 조여지지 않았다.
살펴보니 어느새 해수의 엄지 손가락 두 개가 와이어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래봤자…!’
반팀장은 그의 등에 무릎을 대고 더욱 강하게 와이어를 잡아당겼다. 지금 이 상황도 더할나위 없이 좋다.
뒤에서 장갑을 낀 채 두 손에 몇 번이나 감고 무릎까지 등에 지지대로 대고 잡아당기는 힘을, 고작 두 엄지 손가락을 넣고 팔꿈치도 완전히 접은 채 당기는 힘으로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분명, 그래야하는데.
주르륵-
“어헉-”
반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무슨 배에서 그물 거두는 기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불가항력적인 힘이 느껴졌다.
반팀장은 그대로 쭉 빨려들어가, 두 팔로 해수의 목을 끌어안은 민망한 자세가 되었다.
‘어, 이게 아닌-’
콰앙!!
“커헉!”
그대로 해수가 뒷걸음질을 치는 바람에 옥상 문 옆에 벽에 등이 부딪혔다. 그 충격이 마치 1.5톤 트럭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듯했다.
반팀장은 숨도 쉬지 못하면서 와이어 줄을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다. 이제는 이 줄이 자신의 목숨줄처럼 느껴졌다.
그는 사선을 수십 번 넘어본 경험으로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을 놓치면, 죽는다.
쾅!
“컥!!”
다시 한 번 내장이 뒤틀리는 충격에 배가 뜨거워졌을 때.
후웅-
세상이 빙글 돌았다.
콰앙!!
해수가 와이어를 잡고 그대로 돌려서 내리꽂은 것이다.
“쿨럭!”
반팀장은 시멘트 바닥에 메다 꽂힌 상태로 피를 토했다. 목숨줄처럼 쥐고 있던 와이어는 이미 손에 힘이 풀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오는 맹수와 같은 해수를 보며 확신했다.
‘놔둔 게 아니라… 못 건드리는 거였어.’
스으윽-
그는 한 손으로 반팀장의 멱살을 잡아 이리저리 흔들며 벽에 꽂아댔다.
반팀장은 문득 억울함이 치솟아올랐다.
쾅!
‘아니 시발-’
쾅!
‘어떻게 된 게 덤프트럭으로 밀려고 해도 피해.’
쾅!
‘엘리베이터도 기어 올라와서 무슨 비닐문 열듯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쾅!
‘이건 또 무슨 괴력에 반사신경이야, 뭐야, 뭐 불사신이야? 이런 괴물이 마실장 말고 세상에 또 존재할 수가 있는-’
콰앙!!
“컥, 커헉, 그,그만.”
신해수는 반팀장과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너 뭐야.”
반팀장은 반쯤 풀린 눈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쩍 벌리고 혀를 쭉 내밀었다. 그러고는 혀를 깨물기 직전.
쾅!!
솥뚜껑만 한 주먹이 날아왔다.
“오늘은 옥수수 풍년이네.”
쾅 쾅 쾅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