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사우나
해수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정리해보면, 박영철 경위를 살해한 사람과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은 동일인이라는 것.
칠성회는 대기업 또는 힘 있는 무언가가 소속된 집단이라는 것, 이름대로 그 수가 일곱 개일 가능성이 크다.
몸에 북두칠성 모양의 문신이 발견된 것을 보아 다른 회원들도 문신을 새겼을 가능성이 있다.
칠성회로 의심되는 곳은 현재까지 네 군데.
일성, 하진, KD, 대성…
하나같이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대기업들이다.
이 정도 규모면 칠성회는 나라를 한 손에 쥐고 뒤흔드는 이들이다.
해수는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고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의 시선이 창문 너머 밤하늘에 닿았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처럼, 너무 멀리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찾아서 어떻게 상대해야지… 정말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맞나?’
뜬구름에서 구체화가 된 정보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를 보고 용기는커녕 확연히 느껴지는 체급 차에, 해수는 무력감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후….”
그때,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거실에 있는 하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어쩔, 어쩔, 어쩔티비! 각대장 어딜 튀어, 거기로 가면 안 잡을 줄 알고? 나는 한 놈만 패, 한 놈만, 한 놈만, 흐흐흐….”
하루의 음흉한 목소리에 해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동자가 다시 반짝인다.
‘한 놈만 패…!’
해수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일단 한 놈만 끝까지 팬다. 대성은… 안서은을 지켜봐야 하니, 악연으로 엮여있고 의심도 되는 일성부터 팬다.
일성에 있는 칠성회 회원을 찾아내야겠다.
안 그래도 일성의 재벌 2세 관련 사건이 이상하리만치 깔끔하게 끊겨서 의심하고 있었다.
재벌들은 원래 그런 족속이 아니다. 같은 인종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 목이 부러질지언정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피치 못하여 숙일지라도 그런 모욕을 당하면 나중에 상대의 목을 부러트릴 것이다.
그게 그들일진대,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이 들던 차였다.
해수는 일성 관련 자료를 확인했다.
박 경위가 일성이 칠성회라고 의심하게 된 계기는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첫 번째.
[신정석(해수의 아버지) 형님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레드문을 일성전자 본부장과 비서가 주기적으로 다님. 현재 비서는 회장의 비서실장, 본부장은 일성전자 사장.]
일성전자 사장은 바로 해수가 감빵에 보낸 배인성의 아빠 배신주였다.
두 번째.
[여론의 흐름, KD그룹의 비자금 사건 터졌을 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친 일성 관련 출판사에서 기사를 쓰지 않거나 우회적으로 옹호하는 기사를 씀.]
박 경위는 일성 외에도 비슷한 행동을 한 기업들을 추려놓았다. 그중에는 하진과 대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 번째.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소름이 돋아나는 꺼림칙한 자들을 일성에서도 마주침, 일성전자 사장과 함께하는 자, 그리고 회장 뒤를 따라가던 자…]
여기까지가 박 경위의 메모였다.
이 정도면 타깃으로 잡을 근거는 충분하다.
수사 전략으로는, 해수는 자신이 제일 선호하는 조사법을 선택했다.
‘선 확인 후 조사.’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 * *
젊었을 때부터.
배신주 사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사우나에 들러 땀을 쫙 빼는 버릇이 있다.
“흐음….”
그가 사우나에 앉아 긴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의 왼쪽에는 비서 이실장, 오른쪽에는 양씨 대신 새로 파견된 해결사 석씨가 앉았다.
“이실장….”
“예, 사장님.”
“교도소에도 사우나가 있던가?”
그래도 아들이라고 가끔 배인성이 떠오르는 배신주였다.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없으면 그… 아들 있는 곳에 하나 만들어줘.”
“예 알겠습니다.”
“이게 말이야, 사람은 잡식이잖아, 술도 쳐먹고, 채소도 쳐먹고, 고기도 쳐먹고, 그러면 냄새가 아주 더럽거든? 돼지마냥,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맞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땀을 내서 노폐물을 빼줘야 하는 거야.”
노폐물을 배출해야 하는데 운동은 싫어하니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이지만, 비서는 한 손을 가슴에 대고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깊이 새기겠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래, 가리고 싶어도 온갖 더러운 일들을 하기 마련이잖아? 그러면…”
끼이익-
그때, 사우나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소리에 배사장은 물론 석씨와 비서도 얼음이 되어 문을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목욕탕 전체를 빌렸기 때문에 절대 타인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스윽
커다란 덩치, 강철같은 근육, 경험을 보여주는 짙은 흉터들.
해수의 등장에 석씨가 바로 벌떡 일어나 한 손으로 그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자 해수는 발을 멈추고 석씨와 눈을 마주하고는 씨익 웃음 지었다. 석씨는 그 소름 돋는 미소에 흠칫했다.
비서가 마주 일어나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물었다.
“뭡니까?”
말하면서 살짝 열린 문으로 힐끔 보니 목욕탕 입구에 경호원 한 명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눈치조차 못 챌 만큼 순식간에 제압한 것이다.
그때.
상대를 알아본 배사장이 비서를 물렸다. 그러자 해수가 자연스럽게 입구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드님 감빵 보낸 형사도 못 알아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배사장은 미간을 살짝 좁힐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별 건 아니고, 땀 좀 빼려고 왔는데 막길래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있나 해서 들어와 봤습니다. 기대보단 실망이 크군요.”
“이 사람이 지금…!”
“됐어, 놔둬.”
“예, 사장님….”
해수는 조용히 배사장과 비서, 석씨의 몸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당장은 보이는 문신이 없다.
석씨의 몸에는 해수만큼이나 많은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꽤 시간이 흐르자 비서가 더운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배사장이 그를 밀었다.
“먼저 나가, 나는 좀 더 있을 테니.”
“그,그래도 되겠습니까?!”
비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그곳을 뛰쳐나왔다.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다들 몸이 새빨개졌고, 배사장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갑세.”
“예.”
이 순간을 기다렸다. 해수는 눈을 빛내며 배사장과 석씨의 등을 확인했다.
‘아니었나….’
없다.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는다.
칠성회 문신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추측일 뿐이다. 지금까지 박 경위님이 직접 확인한 것도 전 법무부 장관 한 명뿐이었다.
그에게 칠성회 문신이 없다면 수사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해수는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
대충 찬물로 샤워하고 욕탕 밖으로 나갔다.
위이이잉-
배사장이 거울 앞에서 허리에 두른 수건을 빼고 사타구니를 드라이기로 말리고 있다. 그의 뒷모습을 본 해수의 눈이 커졌다.
그의 엉덩이에 북두칠성이 선명히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아까는 수건으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다른 자들은 없다. 회사 출신으로 보이는 저 마른 남자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미션 클리어.’
목적을 달성했으니 자연스럽게 나간다. 그러나 경호원까지 제압하면서 들어왔으니 그냥 나간다면 의심을 더할 것이다. 그들에게 온 목적을 하나 던져줘야 의심이 줄어든다.
해수는 팬티만 입고 배사장 옆으로 다가와 면봉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높으신 분들이 개미한테 물렸는데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해수가 뜸을 들였지만 배실장은 니깟 놈이 어떤 말을 해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시선도 주지 않았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한돈은행 인수로 차익 남긴 건? 임원들 월급 대란? 아니면….”
해수가 쉽게 알아낸 일성의 구린 면을 정확히 짚어내자 그제야 배사장의 입이 열렸다.
“짓밟아줄까?”
“밟는다고 밟히겠습니까?”
한 치도 물러섬이 없고 오히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더 위협적이다. 그 기세에 눌려 배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해수, 회에서 관심을 갖는 요주인물이라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한낱 경찰나부랭이다.
당장에 서장급도 무릎 꿇릴 수 있는 자신 앞에서 까부는 경사 따위에게 무시당하고 겁을 먹은 사실 때문에 분노가 급격히 올라갔지만, 어금니를 깨물며 삭혔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수가 말을 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우리 평화로운 방법을 생각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궁금증을 풀어주시던지, 궁금증을 다른 방법으로 해소해주시던지.”
해수의 마지막 말에 배사장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결국 구린 부분에 대해 앞으로의 조사를 막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돈이었다.
“하여튼 피라미 새끼들 본성은 변하질 않아…”
인생에 돈에 가장 가치를 둔 사람만큼 쉬운 사람은 없다. 회의 요주인물이니 뭐니 해도 결국 신해수도 돈만 쥐여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배사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경멸의 눈빛으로 해수를 내려다보다가 돌아섰다.
그러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시계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이실장, 보내.”
“예.”
이실장은 해수에게 자신의 명함을 주고 밖으로 나가기를 권유했다.
해수는 그의 명함을 한 번 보고는 배사장을 보며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기다리겠습니다. 사장님.”
덜컹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배사장의 눈빛이 확 변했다. 그는 손에 쥔 셔츠를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건방진 피래미 새끼가… 회만 아니었으면 회를 떠주는 건데…”
“처리할까요?”
석씨의 말에 사장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너 뭐야, 신입이야?”
갑작스런 정색에 석씨가 눈치를 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배사장은 석씨의 눈빛을 보고 신해수가 회에서 요주인물이라는 사실을 이 사람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을 보내는 회사라는 곳은 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 자는 아는 정보가 무식하리만치 적었다. 회사에서도 간부급만 아는 것일까?
양씨가 특별했던 것을 다시금 깨닫는 배사장이었다.
“쯧… 양씨만한 사람이 없네, 없어.”
배사장은 자신의 아들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것을 다시 한 번 후회했다. 그것으로 유능한 해결사 양씨를 잃었으니.
* * *
부르르릉-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해수는 신호에서 대기하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수상해.’
일성전자 배사장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미라고 표현했지만 그들은 일반인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런데 제대로 참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저렇게 참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빛도 이상했어….’
그의 눈빛은 마치 사자가 철조망 건너편에서 자신을 놀리는 사람을 보는 눈빛과도 같았다. 한 방에 찢어 죽이고 싶지만, 철조망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왜지, 왜?’
무언가 있다. 그는 칠성회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일성전자의 사장이라는 위치만으로도 무서울 것이 없을 텐데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하다못해 그 옆에 회사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한 대 줘패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고민하던 중, 파란불이 되어 해수가 액셀을 당겼다.
부르릉-
앞으로 막 튀어나가는 그때.
부아아아앙!
옆에서 덤프트럭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해수의 오토바이를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