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휴가
한적한 시골 파출소 앞.
마당 구석에 작은 정자에 신해수와 순경이 앉아있다.
“…박경위님은 소탈하시고, 자기 일에 항상 열심이시고, 정직하시지만… 항상 ‘내가 죽으면~’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심상치 않은 시작에 해수의 눈이 번뜩였다.
“설마….”
“네, 자택에서… 숨진 것을 가족분이 발견하셨습니다. 유서는 따로 없었고요.”
“혹시 안방 베란다에서 목을 매셨습니까?”
해수의 말에 이번에는 순경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건 기록 열람하셨습니까?”
물론 박경위가 사망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사건 기록을 확인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청년 순경도 안다. 그저 당황하여 말이 막 나온 것이다.
해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떠나신 지 얼마나…되었습니까?”
“새 생명이 막 돋아나는… 4월이었습니다. 엊그제같은데 벌써 네 달이 되었네요.”
경찰의 자살 사건이니만큼, 수사를 했지만 금세 사건은 종결되었다고 한다.
해수는 순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까는 왜 중간에 잡아서 알려주셨습니까?”
“아, 그게… 박경위님이 작년부터 올 때가 됐는데, 올 때가 됐는데… 그런 말씀을 하셔서, 누굴 그렇게 기다리냐고 물어봤더니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경찰이라고.”
순경을 말을 하면서 해수의 눈치를 살폈다.
해수는 그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비록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지만, 유일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의심해주었던 타인의 존재는 큰 위로가 되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기다리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거대한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수는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에 한 손으로 가슴을 압박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절… 기다리셨습니까, 박경위님이….”
“아무래도,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순경은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같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잘 따르는 후임 경찰과 모범이 되는 선임 경찰, 그 정도였다.
해수는 그 길로 바로 관할 경찰서로 가서 사건 기록을 열람했다.
‘매듭…!’
사건 파일에 나와있는 매듭을 본 순간 해수는 확신했다. 18년 전에 떠난 아버지, 이전에 맡았던 아이돌 강민, 이번에 박영철 경위까지, 목을 맨 줄의 매듭이 동일하다.
물론 누구나 맬 수 있는 평범한 매듭법이지만, 세 개의 사건이 모두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매듭을 짓는 것은 우연일 수 없다.
그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료만으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다. 해수는 혹시라도 이 사건이 외압에 의해 빨리 종결되었는지 알기 위해 담당 형사를 만났다.
“…안타깝죠, 정말 좋은 경찰 분이셨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타살 행적은 안 보이니까, 단서도 없고 맨날 죽는다 죽는다 입에 달고 살던 분이기도 했고. 작은 의문도 없는 사건을 장시간 끌 수는 없어요. 아시잖아요.”
해수는 형사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표정에서, 말투에서 진심으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비록 시골이지만 박영철 경위는 다른 경찰들에게 존경받는 청렴하고 올곧은 경찰이었다.
이들은 그들과 연관이 없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사건을 빠르게 종결시키도록 경찰들에게 외압이 들어왔다면 더 추적이 쉬우니, 아예 의문이 들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를 하는 것을 선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박영철 경위도,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함구한 듯 하고.
“…예, cctv 파일 좀 확인해보겠습니다.”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 뭐 아무튼 확인해보십시오.”
“감사합니다.”
해수는 보관되어 있는는 cctv 파일을 모두 가져다 달라 부탁하며 열람실로 향했다.
cctv는 박경위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각 층마다 복도에 하나, 1층 현관에 하나가 전부였다.
수 개월이 지난 사건이기에 이미 보관 중인 cctv 말고 다른 것은 이미 밀려나서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 아쉬웠다.
‘분명 있을 거야, 그들은 놓쳤지만, 나는 알 수 있는 것….’
해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완벽범죄란 없다. 세상의 모든 범죄는 증거를 남긴다. 그 증거를 찾느냐, 찾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탁
cctv 파일을 본 지 7시간 만에 화면을 멈추었다.
사건일로부터 이틀 뒤, 복도 끄트머리 집에서 누군가가 나온다. 그는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내려갔다.
옆모습과 뒷모습만 찍혔고, 얼굴도 매우 멀리서 잡혔기에 식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수는 알 수 있었다. 190이 넘어보이는 커다란 키, 복도를 가득 채우는 넓은 어깨, 그는 분명 아버지 사건 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그 사람이다.
‘18년…만에?’
회사에서 계속해서 실장급 실력자들을 길러내고 있을 텐데, 18년 전 사람이 아직도 현역으로? 다른 의미가 있나?
당장은 알 길이 없다.
해수는 조용히 파일을 따로 저장했다.
일단 이것만으로는 타살의 증거도, 저 사람을 찾을 힌트도 되지 않는다. 담당 형사들은 저 사람을 용의선상에 넣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 집을 가봐야겠어.’
해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딩-동, 딩-동
바로 해당 아파트의 끝에 집을 찾아갔지만, 사람이 없었다. 오랫동안 비어있는 집인지 전단지가 다른 집에 비해 많이 붙어 있다.
해수는 일단 안쪽에 있는 박경위의 집을 찾아갔다.
딩-동
안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곧이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해수가 수사를 위해 일반인을 찾아가면 보통 이런 반응이다. 그는 재빨리 경찰공무원증을 꺼내어 인터폰에 보여주었다.
“박경위님 후배입니다.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끼이익-
곧이어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잠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해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다시 물었다.
“정말 경찰 맞아요?”
“예, 충남 강력수사대 경사 신해수라고 합니다.”
“강력수사대… 형사님… 네.”
처음에는 의심하는 듯하더니, 형사임을 알게 되자 수긍하며 고리를 풀고 문을 완전히 열어주었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박인하, 박영철 경위의 하나뿐인 딸이다. 박 경위의 아내는 일을 하러 나갔고, 박인하는 웹소설을 쓰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집 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기 끝 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싶고, 이런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집은… 자주 비어있는 것 같아요. 근데 확실한 건, 이 사람은 살지 않아요.”
인하는 해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식탁의자를 하나 들고 화장실로 가서는 환풍구를 뜯고 그곳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빼와서 해수 앞에 내밀었다.
‘USB?’
“아빠가 맨날 내가 죽으면…이라는 말만 했던 게 아니에요. 죽고, 사건이 종결되었는데도 혼자서 아빠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수사를 하는 경찰이 있다면… 이걸 드리라고 했어요.”
“아….”
박 경위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 심정이 어떠할까? 언제 어떻게 죽을 지 모르는 그 심정이, 그럼에도 수사를 놓지 않은 그를 보고 해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여기, 요.”
USB를 두 손으로 받아든 해수는 머리를 깊이 숙였다.
“저희 아빠, 타살이 확실한 건가요?”
해수는 떨리는 박인하의 목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러고는 붉어진 눈시울로 인하를 바라보았다.
“예, 확실합니다.”
해수의 단호한 대답에 인하가 울컥하여 어깨를 떨었다.
“그럼… 범인을 잡을 수 있나요?”
해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아랫입술을 한 번 강하게 깨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인하는 그제야 덤덤하던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럼, 그럼, 잡아주세요. 꼭 잡아주세요. 우리 아빠 죽인 새끼, 꼭… 잡아서 벌 받게 해주세요.”
“네, 꼭, 그러겠습니다.”
* * *
해수는 아파트 관리실에 협조를 요청해, 복도 끝에 있는 집 주인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부부 두 분이서 해외 출장이 잦으시고, 그날에는 해외에 계셨다는 말씀이시죠?”
-네네 맞아요.
“혹시 키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건 왜… 170 조금 넘습니다.
-170은 무슨, 167이잖아 자기!
-아이 좀 조용히 해, 통화 중이잖아.
“예, 통화 감사합니다.”
해수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한 조사로 그곳이 비는 날을 알아보고 날짜에 맞춰서 실행에 옮겼다.
‘치밀한 놈….’
박 경위를 살해하고 아파트 베란다로 이동하여 그곳으로 침투한 후, 의심을 없애기 위해 이틀 후에야 나온 것이다.
물론 정황상으로만 용의자이고,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 * *
해수는 집으로 가서 박 경위의 딸 박인하가 넘긴 USB를 확인해보았다.
‘이건….’
그곳에는 박 경위가 생전에 조사했던 수많은 사진과 보고서들이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칠성회…?’
손으로 직접 쓴 어떠한 조직의 구조도.
칠성회라는 이름 아래, 일곱 개의 단체가 모인 것으로 추측된다.
유대감 및 식별을 위해 칠성회 소속은 북두칠성과 동일한 위치의 점과 같은 문신을 새긴다는 설명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전 법무부장관의 휴가 사진. 어깨에 희미하게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
‘박 경위가 의심하고 있는 곳은 일성그룹, 하진그룹, KD그룹, 그리고… 대성?!’
박 경위도 일곱 곳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해수의 예상으로는, 분명 의심스러운 증거를 찾았기에 목록에 올려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대성이 끼어있었다. 해수로써는 충격이었다.
‘대성, 안서은 이사….’
-그냥, 대한민국이 너무 더러워서?
무엇을 바라냐 물었던 날.
그녀가 해수와 손을 잡을 때 말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오너일가를 정리하기 위해?
돌아가서 그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왔지만, 그녀도 어떤 편인지 알 수 없다.
해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지켜본다. 회사라는 단체 관련 일도, 칠성회 일도 알려주지 않고 지켜보아야 한다.
‘음….’
하지만 그동안 파트너로써 큰 역할을 했던 안서은이니만큼, 아니, 파트너가 아니라 인간 안서은이라도 그들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이제 목표가 확실해졌다.
칠성회로 추측되고 있는 단체, 그 단체들을 조사한다. 철저히 조사하여, 칠성회라는 그 썩은 뿌리를 뽑아낼 것이다.
그런데, 해수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세 개의 사건을 연결지으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의 의심이 짙어질 텐데, 왜 동일한 위치와 매듭을 고집할까?
‘나처럼 이 사건의 연결고리를 쫓는 사람이 생길 텐데….’
고민하던 해수는 문득 눈을 번뜩 떴다. 힌트를 쫓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고, 그 다음이 박경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더러운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그들은, 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튀어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아예 뽑아버리려는 것이다.
해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다음은 나인가, 와라, 언제든지.’
* * *
어두컴컴한 체력단련실.
한 남자가 커다란 바벨 두 개를 벨트에 메달고 턱걸이를 하고 있다.
“흐읍, 후….”
그의 성난 등근육 안쪽 견갑골에 새겨진, 흐릿한 북두칠성이 쉴 새 없이 울렁인다.
스윽-
어느새 검은 옷 일색인 사내가 소리없이 들어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동상처럼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쿠궁-
턱걸이를 하는 남자, 마실장은 한참 후에야 내려왔다. 그가 벨트를 풀고, 시선을 거울에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말해.”
“예, 신해수 형사가 꼬리를 밟은 것 같습니다.”
신해수라는 말에 마실장은 장갑을 벗다가 멈칫했다.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행보는 의심스럽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마실장은 마저 장갑을 벗어서 내려놓고 걸음을 옮기면서 물을 마셨다. 사내가 마실장에게 바짝 따라붙으며 말을 이었다.
“철저한 자입니다. 위험한 자이니 제가 제거하겠습니다.”
“아니, 지켜봐.”
“…예.”
마실장, 아니 회의 입장에서 신해수는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다. 대성의 안서은이라는 폭탄과 함께하고 있고, 유일무이하게 2대에 걸쳐 회를 조사하여 상당히 가까워졌기 때문.
그를 제거, 또는 제거 시도를 했다가 어떤 폭탄이 터질 지 모른다. 그래서 천선생도 섣불리 제거하지 못하고 주시하라고 한 것인데.
하지만 마실장과 함께 있는 사내는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늙은 호랑이가 언제까지 천선생의 옆자리에 붙어있으려고… 이번이 기회다. 천선생의 눈에 띌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