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39화 (139/255)

139. 구출

입원실.

“저 아니라니까요. 그냥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냥 겁만 줄 생각으로….”

박지원이 반쯤 감긴 눈에서 진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팀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오갱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오갱이 가방에서 비닐팩 하나를 꺼내었다.

그곳에는 모텔 앞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로 보았던 여장남자 박지원이 쓰고 있던 가발이 담겨 있었다.

팀장은 그것을 박지원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가발 좋은 거 쓰던데? 인모라니. 덕분에 현장에서 떨어진 머리카락하고 이 가발 머리칼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걸 알았지, 이게 뭔 뜻이냐면, 니가 아무리 발뺌을 해도 명확한 증거가 있어서 살인죄가 인정이 된다는 거지.”

팀장은 비닐팩을 오갱에게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내려다보며 씹어먹을 듯이 말을 내뱉었다.

“눈깔을 보니 못 알아쳐먹었네, 지금 니 발언은 사람을 접착제로 숨구멍을 틀어막아서 죽이는 잔인무도한 씹새끼가 반성은커녕 발뺌을 하는 가중처벌감 발언이라는 거야 이 새끼야!”

박지원은 멍한 눈으로 가발을 보다가 고개를 내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하.”

팀장은 살짝 허리를 숙이며 그와 다시 눈을 맞췄다.

“너, 이번이 처음 아니지? 어차피 니 행적 찾으면 다 나와, 미리 불어서 너도 감형 받고 우리도 수고 좀 덜하자.”

“아… 말씀드릴 게 있기는 한데.”

팀장이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며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잡아놓고 아직 안 죽인 사람 한 명 있어요.”

“…뭐?”

팀장이 경멸의 눈으로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 삼일 안 먹으면 죽는다면서요? 그거 궁금해서 실험해보려고 살려뒀거든요. 지금… 이제 이틀 지났네요?”

“형님 이 새끼 구라에요 구라, 우리 조뺑이 까게 하려고…”

“97년생 한서영, 회사는 가수동 브레인컬러.”

구체적인 피해자의 신원에 오갱과 팀장의 얼굴이 굳었다. 팀장이 오갱을 보자 그가 뒤돌아서며 정보과에 전화를 했다.

“예 신원조회 좀 부탁합니다. 97년생 한서영, 회사 가수동에 있는 브레인컬러, 예 그 사람하고 가족 번호 좀 보내주세요.”

박지원이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 능력자분들이라서 내 말이 사실인지 금방 아시겠네요. 자, 저 풀어주면 그 여자는 사는 거고, 아니면….”

그는 검지로 팀장과 오갱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형사님들이, 그 여자 죽이는 거예요.”

팀장의 눈동자가 잠시나마 흔들렸다.

오갱이 피해자로 추측되는 한서영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다.

회사에서는 며칠 전부터 나오지 않았고, 가족들도 연락이 되지 않아 어젯밤에 실종 신고를 한 상태였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곽팀장은 서로 돌아가서 다른 강력팀에게 지원 요청을 했고, 오갱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해수와 하루가 병실 문을 부술듯이 열고 들어왔다.

드륵- 쾅!

박지원은 인상으로 보나 근육으로 보나 훨씬 무서운 해수보다도 하루의 등장에 다급히 자신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며 한껏 움츠러들었다.

해수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환자침상 식사 테이블에 내리찍었다.

콰직! 콰직! 쾅!

“끅,끄악! 여,여기 경찰이 사람 잡네!! 컥!”

해수는 그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목젖을 움켜쥐고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한서영씨, 어디 있어.”

박지원은 하루를 힐끔 보았다가 이를 악물며 한 자 한 자 간신히 내뱉었다.

“나,나,부,터,풀,어…줘, 그러면 그 여자 살,려,줄게….”

그는 코뼈가 부러져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필사적이었다.

여기서 아무리 맞더라도 형사들이 반항하지 않는 범죄자를 죽일 수는 없다.

그런 만큼, 그는 유일한 탈출구인 한서영의 위치를 절대 불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서 그 고집을 읽어낸 해수가 오갱과 얘기를 하고는 병실 복도로 나와 팀장에게 무전했다.

“이거 필사적인데요.”

-하… 그새끼, 어쩌나, 풀어주면 백퍼 도망가는데, 아마 구하러 안 갈 거야, 한서영씨가 어떻게 되든 말든…

“그래도 이대로 두는 것보다 무슨 방법이든 써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그렇긴 하지, 근데, 안 그래도 인원 모자란데 그 새끼 추적을 한두명만 붙일 수도 없고…

해수는 병실 문에 달라붙어 작은 창문으로 안에 있는 박지원을 노려보는 하루를 힐끔 보았다.

“전문가 한 명만 붙이죠.”

-어? 전문가?

“네, 전문가.”

그렇게 강수대는 이례적으로 범인을 풀어주면서 위치추적기도 그 모르게 달고, 미행에 가장 능한 하루를 붙였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한서영씨를 찾기 시작했다.

* * *

박지원은 병원에서 나와 기지개를 늘어지게 폈다.

“벼엉신같은 새끼들 진짜, 큭큭, 아으윽!”

그는 나무젓가락에 찔렸던 두 손목의 붕대를 문지르며 인상을 확 쓰고는 걸음을 옮겼다.

“미행이 한 두세 명 쯤 붙었으려나, 어떻게 따돌릴까나….”

그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가 지하철을 탔다가 버스도 타고, 옷도 수시로 갈아입고 새로 구입한 가발도 쓰고 여장까지 하면서 미행을 뿌리치려고 난리를 부렸다.

팀장의 말대로 그의 행동을 보면 한서영이 죽든 말든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스슥

그럼에도.

하루는 그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 * *

아무리 급해도 아무렇게나 막 찾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

형사들은 먼저 실종자 한서영씨가 언제 어디서부터 행적이 끊겼는지 cctv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박지원은 두 번의 범죄에서 자가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이용 안 했다는 가정하에 찾아보았다.

“한서영씨 퇴근하고 걸어서 집 갔다는데?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 cctv 뒤져봐!”

“집 앞 시시티비 확인 중인데 귀가 안 하는데요?”

“친구들이랑 약속도 없었다고 하니까 이 사이네요.”

“여기! 여기 양석동에 설화 아파트 사거리에서 마지막으로 보이고 끊겼습니다.”

휴대폰의 마지막 위치, cctv로 보이는 한서영씨의 마지막 위치까지 확인하여 대충 수색 범위가 나왔다.

곽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수대와 강력팀 팀원들을 보며 외쳤다.

“젠장, 범위가 졸라 넓네, 이제 발로 뛸 시간이다! 근처 지원 가능한 순마 싹 다 부르고! 무조건 빨리 찾는다! 다 뛰어!!”

“예썰!”

“가자!”

형사들이 강력팀 사무실을 우르르 빠져나왔다.

미수 건까지 합쳐서 두 건 모두 모텔에서 저질렀기에 우선순위를 모텔로 해서 싹 다 뒤지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하여 구급차도 한 대, 미리 수색 범위에 대기시켜 놓았다.

‘보이지 마라, 보이지 마라….’

해수는 처음으로 미래시 능력이 발현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는 피해자가 죽기 한 시간 전에야 나타나는 능력.

발현이 된다면, 그것을 통해 힌트를 얻어 찾는다 해도 피해자를 구해내기엔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삐빅

-3구역 없습니다

-7구역 없습니다

-4구역도 없어요

-1구역 아무리 찾아도 안 보입니다

-하…

실종자 수색을 위해 민간인 가정집 수색만큼 까다로운 일도 없다. 그들이 수색을 거절하면 영장이 없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런 성과도 힌트도 잡지 못하고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저, 선배님, 혹시 한서영 피해자 이미….”

막내가 모두가 생각하고 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않은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해수의 눈앞에 까맣게 변했다.

-흐…

어두컴컴한 방 안, 천장, 곰팡이 든 벽이 보인다. 옆으로 누워있는 듯하다.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어도 메말라있어서 고통스럽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눈물이라도 나면 그것이라도 받아먹을 텐데, 이 처절한 광경에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끄…으…

숨쉬기가 너무 불편하다. 목구멍을 칼로 길게 그어놓은 것처럼 아프다.

말라 죽는다.

말라 죽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진다. 유일하게 나 있는 이십 센티 가량의 작은 창문너머로 미약한 빛이 들어온다. 그곳에 빨간 빛이 보인다.

그러나 시야가 너무 흐릿하여 그것이 어떤 빛인지 모르겠다.

-살려…세요…

눈도 뻑뻑하여 눈을 깜빡일 수도 없다. 눈을 감고 싶지만 감겨지지가 않는다.

-제…발…

그의 시야가 그대로 멈추고, 검은 장막이 걷혔다.

“꺼,꺼,꺼억, 허억!”

“서,선배님! 선배님!!”

해수는 눈이 빠질듯이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부축하기 위해 달려온 막내의 멱살을 잡고 숨을 골랐다.

숨을 고를 때가 아니다. 지금도 피해자는 메말라 죽고 있다.

“살아있어, 아직 살아있어.”

미래시로 보았던 모든 것들을 나열해본다.

“빨간색, 낮은 곳, 창문으로 다른 건물이 보이는 곳, 반지하 또는 일층, 이층까지, 차소리 들리지 않았고, 주변은 고요했고….”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

“빨간색, 빨간색을 찾아야 하나.”

마음이 급하니 머리가 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만으로 아무런 단서도 되지 않는다.

해수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전화기를 들었다.

미래시로 인해 정말로 피해자 한서영씨가 살아있고, 말라 죽을 위기라는 것을 알았다.

범죄자와 피해자의 목숨, 당연히 더 가치있는 쪽에 배팅한다.

-네.

“박지원 잡아서 한서영씨 어디에 감금시켰는지 알아내, 네 방식으로, 빨리.”

-알겠습니다.

* * *

박지원은 여장을 한 채 클럽에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왔다.

“이쯤이면 형사가 아니라 형사 할애비라도 추적을 따돌…”

그때, 그 앞으로 하루가 튀어나왔다.

“허업!”

하루는 그의 가발을 벗기고는 머리채를 움켜쥐고 구석에 골목길로 끌고 갔다.

“아,아아! 이거 놔! 말로 해 말로!”

철컥 철컥-

하루는 그의 팔과 다리에 수갑을 채우고, 옆에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들을 한 움큼 꺼내어 그의 입에 물렸다.

그러고는 수갑으로 인해 예쁘게 모으고 있는 그의 손을 돌바닥 위에 올리고, 삼단봉을 꺼내어 펼치지 않고 망치처럼 그 끝으로 그의 엄지 손가락을 가차없이 내리찍었다.

콱!

“으읍!!”

쾅 쾅 쾅 콰직 퍼석

“으르르으으븝!!”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찍자 엄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손톱이 다 쪼개지거나 살을 파먹었고, 하얀 뼈가 드러났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박지원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루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하루는 다시 그의 다른 손가락을 내리찍었다.

팍 팍 퍼석 푹!

그렇게 한 번 기절하고, 네 번째 손가락을 찍을 때, 박지원이 발광하며 소리쳤다.

“으에에엑! 마라께! 마라께!!”

하루는 건조한 눈으로 그의 입에 물린 쓰레기를 빼주었다. 그는 침을 질질 흘리며 입을 열었다.

“헤엑, 헤엑, 대신 나-”

콱!

“끄아아악!! 양석동, 양석동 반지하!”

하루는 삼단봉을 든 상태로 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해수가 하루에게 전화를 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하루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어.”

-양석동 반지하, 정확한 주소는 모릅니다. GPS26시에서 상선아파트로 가는 방향에 있다고 합니다. 일단 데리고 가고 있습니다.

“알았어, 수고했어.”

위치는 좁혀졌으나 찾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시가 급하다.

“구체적 위치 나왔습니다. GPS26시에서 상선아파트로 가는 방향에 반지하로 수색합니다.”

-어? 돌격아 그건 어떻게 알았냐?

“하순경 시켜서 조졌습니다.”

-진짜? 아씨 진작에 그럴 껄 그랬나?

“문제 생길 겁니다.”

-그래, 아무튼 빨리 다들 저 위치로 가서 찾자고!

해수와 형사, 경찰관들은 그곳으로 가서 다시 반지하를 찾기 시작했다.

그 앞에 갈림길이 나왔다. 생각보다 수색 범위가 넓고 시간은 없었다.

‘젠장, 벌써 20분이 넘어갔는데….’

그때, 해수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그의 시선 끝에는 십자가 하나가 새빨간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선배님?”

“십자가, 십자가였어.”

“십자가?”

해수는 막내의 물음을 무시하며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달렸다.

미래시에서 봤던 그 시야를 떠올리며 비슷한 각도가 나오는 위치로 향했다. 반지하 하나가 딱 보인다. 방범창이 있어 안에 유리창을 깨트려서 확인할 수 없다. 창문이 굳게 닫혀있는데 여기서부터 퀴퀴한 냄새가 올라온다.

“한서영씨! 한서영씨!!”

해수는 재빨리 벽을 돌아 반지하 입구로 향했다. 철문으로 굳게 잠겨있다. 해수는 바로 발을 들어 문고리를 찍었다.

쾅 콰직!!

문고리 부수고 들어가자 팔과 다리가 등 뒤로 묶여있는 젊은 여인이 보였다.

등이 활처럼 꺾여있고 손과 발이 뒤로 닿아있어 아예 일어설 수도 없는 끔찍한 자세다.

해수는 바로 무전기부터 들었다.

“한서영씨 찾았습니다. 오기로43번길 20 반지하.”

그러고는 한서영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품에서 접이식 칼을 꺼내어 밧줄을 끊고,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지고 있다. 해수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듯하다.

해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과 미리 챙겨둔 생수 한 병을 꺼내고, 손수건에 물을 묻혀 그녀의 입술에 대어주었다.

그 수분만으로 눈동자에 초점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희망, 포기했던 희망이 생기며 다시 생기를 돋운 것이다.

해수는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한서영씨, 경찰입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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