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접착제 살인사건(2)
해가 저물고 달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초저녁.
강수대 대원들은 며칠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본부로 다시 모였다.
“후….”
“하, 갑갑하구만.”
“뭐,뭐야, 이게 무슨 냄새야?!”
마지막에 들어온 팀장이 두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본부 창문을 다급히 열었다.
그제야 다른 대원들도 냄새를 인식하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루만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음, 난가?”
오갱이 신발을 벗고 발 냄새를 확인하려는 순간, 다른 쪽에서 신음이 나왔다.
“우욱! 저,저인 것 같습니다.”
막내가 자신의 발냄새를 맡고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 오갱도 자신의 발냄새를 맡았다.
“어우, 스멜, 단독범행이 아니었네.”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반증이다. 해수도 몰래 자신의 신발을 벗어 냄새를 맡았다가 머리가 핑 돌았다.
“발도 좀 씻고, 기동화도 좀 말려야겠습니다.”
“에휴, 고생 많네. 내 새끼들, 그래 한 시간이라도 휴식 좀 취해라. 범인 잡기 전에 우리가 쓰러지겠다.”
오갱이 자신의 자리에서 새 신발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뭐라도 나오면 힘이 나겠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더 죽겠네. 형님, 정보과에서 별 말 없어?”
“안 그래도 전화해봤는데, 아무것도 없어.”
“어휴….”
오늘로 사흘 째.
퇴근도 안 하고 잠도 서너 시간 씩밖에 자지 않고 수사했다. 그러나 계속 제자리걸음이니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갱이 구석에서 와이프와 통화를 하는 듯 소곤거리고 있었다.
“…어, 수사 중이니까 못 들어갔지, 아니 끝난 게 아니고, 내일 아침에 속옷이랑 옷 좀 갖다 달라고. 아 신발도, 제일 편한 거, 냄새 안 나고. 응, 응.”
그것을 보고 팀장도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고, 막내도 여자친구에게 부탁했다.
해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하루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하루의 모습도 꽤나 초췌했다.
“하순경.”
“넵, 신선배님.”
해수의 부름에 하루가 단숨에 튀어왔다.
“집에 가서 옷이랑 속옷, 신발 좀 챙겨줘, 네 것도.”
“앗,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 이것이 바로 회사 선임의 갑질인 것입니까?”
“갑질은 무슨, 이것도 업무의 연장선이야, 가.”
해수가 밀자 하루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짐을 챙겼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팀장이 손짓했다.
“하순경, 가는 김에 천천히 씻기도 하고 내일 아침에 와, 어차피 밤에는 할 일 없어. 시커먼 사내들이랑 부대끼면서 자봤자 좋을 거 없어, 알았지?”
“아닙니다. 바로 오겠습니다.”
“아휴 아니라니까, 우리도 나가서 잘 테니까 내일 와. 가.”
하루는 대답없이 목례를 하고는 본부 문을 열었다.
“하루 배웅 좀 하겠습니다.”
“엉? 배,배웅?”
“뭔 배웅을… 아, 그래, 젠장, 왜 부럽지, 내 와이프 알라뷰.”
해수가 같이 본부를 나서자 하루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절 배웅해주시는 겁니까? 어디까지?”
하지만 해수는 바로 서 입구에서 멈추었다.
“응, 여기까지.”
“다른 목적이 있군요. 절 이용했습니다.”
“맞아, 가.”
하루가 입술을 빼쭉 내밀고는 가만히 해수를 바라보다가 휙 돌아섰다.
해수는 구석으로 가서 휴대폰을 들었다.
-예 신형님~!
“어, 방금 문자로 어플 이름이랑 아이디 보냈다. 그 아이디 주인에 대해 조사 좀 해줘, 대포폰으로 가입해서 정보도 안 나오거든, 아주 작은 힌트라도 알아내봐.”
-아하… 이번 사건은 뭔가 어렵나보네요? 알겠습니다. 뒷조사는 또 제가 전문 아닙니까? 걱정 마세요!
정영수는 오늘따라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가 있었다.
“기분 좋아보인다?”
-그,그런가요? 하하, 사실, 저같은 놈에게도 봄날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런가봅니다.
“봄날? 그래, 좋을 때다. 수고 좀 해줘라. 뭐 나오면 너한테 공유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봄날, 그 전에 극장에 여자랑 같이 갔다더니. 그 여자와 만나는 듯하다.
해수는 괜히 그의 데이트를 방해하는 것 아닌가 신경이 쓰였지만, 생각을 접고 본부로 들어갔다.
* * *
하루는 운전면허를 따긴 했지만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편이었다.
끼이이익- 취이익.
버스가 멈추어 서고, 문이 열리자 그녀가 올라갔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이 거의 일제히 쳐다보곤 한다. 그러고는 몇 번씩 힐끔거린다.
하지만 이를 버스 이용 문화로 생각하고 있는 하루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타다다닥
그때 뒤늦게 남자 한 명이 버스에 올랐다. 하루는 다른 사람들처럼 올라탄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박지원.’
증명사진 하나밖에 보지 않았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눈도 마주쳤지만 하루는 바로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박지원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맞죠?”
“맞습니다.”
“네?”
“네.”
“하하 특이하시네, 그 강수대 형사님 맞으시죠? 이름이… 하루 순경님!”
그는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루 옆자리에 앉았다.
“네.”
단답으로 대답했지만 하루의 고개가 돌아가 그를 보았다. 어떻게 알았냐는 의문을 표현한 것이다.
“아, 우리 집 앞에 살인사건 터져서 형사님들 조사하는 거 봤어요. 내 번호도 따갔는데.”
“네.”
“그래서 신기해서 지나가는 길에 경찰서 한 번 들렀었어요. 조직도에 나온 사진이 너무 예쁘셔서 기억에 남더라고요. 고생 많으시네요. 뭐 좀 진전이 있어요?”
신기하다고 경찰서까지 들러서 조직도를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하루는 이 사람의 행동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루는 다시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업무상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없나보네, 에휴. 내가 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아, 그런 말이 있잖아요. 범인은 반드시 사건 현장에 다시 온다.”
“맞습니다. 그 말이 널리 퍼져서 요즘은 가까이 오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는 범인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아무튼, 제가 며칠 전에 동네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사람을 봤거든요. 그게….”
하루는 그의 말이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하여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에 박지원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우리 국민을 위해 고생하시는데 뭐라도 좀 챙겨드려야지.”
그가 가방에서 피로회복제 한 병을 꺼내어 하루에게 건넸다.
“이것 좀 드세요.”
“괜찮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드세요.”
“음.”
하루는 박지원의 눈을 살짝 보았다가 그것을 받았다.
“그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하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한 번에 마셨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박지원의 한쪽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 * *
하루가 본부에서 나선 뒤.
오갱이 소파에 엎어지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휴…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하순경은 얼마나 힘들겠냐, 여자는 원래 속옷도 하나 더 있잖아, 안 씻으면 찝찝한 것도 더하지 않나? 본능적으로.”
“그럴 겁니다.”
“그래도 불평불만이 한 마디도 없네.”
“일등 신입이 들어온 거지. 여성이라서 우리가 못하는 일부 일들도 할 수 있지, 그런데 체력도 좋지, 쌈도 잘 하지, 최고네 최고. 최고 신붓감이야.”
“네?”
“아냐, 쉬라고.”
“네, 오갱 형님, 팀장님 좀 쉬십시오. 막내.”
“옙! 선배님.”
막내는 엎어져 있다가 해수의 부름에 벌떡 일어났다. 해수가 손짓하자 그가 차 키를 챙기고 재빨리 따라나섰다.
덩치 둘이 본부를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팀장이 중얼거렸다.
“젊음이 좋긴 좋다. 쟤네 팔팔한 거 봐.”
“어응,음냐.”
“그래, 자라 자라.”
* * *
사망 추정 시간은 새벽이었고, 블랙박스에 취객과 여자가 찍힌 시간도 깊은 밤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찾으려면 밤에 찾아야 더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해수는 막내를 데리고 다시 현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경찰차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경찰관 두 명과 사람들 몇 명이 전봇대 주변에 모여있다.
“뭔 일이 있나봅니다.”
“가보자.”
“넵!”
해수가 스윽 경찰관 옆에 다가와 물었다.
“수고하십니다. 무슨 일입니까?”
“엇!”
동부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이미 전설로 소문이 파다한 해수를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라 경례를 했다.
“넵! 취객이 전봇대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
해수는 눈을 좁히며 취객을 살펴보았다.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티셔츠에는 토사물이 가득하다.
손을 뻗어 그의 모자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 사람이다.’
뒷모습과 옆모습만 나왔었지만 머리스타일과 그 실루엣이 닮았다.
“어우, 누구야! 누가 불 켰어!”
해수가 다시 모자를 씌우자 금세 잠잠해진다.
“이 분 우리가 데려가겠습니다.”
“네,네? 아… 우리야 좋지만….”
“사건 관련자입니다. 찾고 있던 사람입니다.”
“아 넵! 알겠습니다!”
경찰관들은 금세 각을 잡고 해수와 막내에게 다시 경례를 했다.
“항상 멋지십니다! 수고하십시오!”
해수는 그들에게 엄지를 추켜올리고는 취객을 인도했다.
그의 티셔츠를 벗겨서 빨고, 활동복을 입히고, 숙취해소제를 먹이자 조금 정신이 드는 듯했다.
해수는 바로 휴대폰으로 블랙박스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거 아저씨 맞습니까? 이날 기억하십니까?”
“어? 어… 잘 모르겠는데…”
취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여자가 나오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어! 저 년! 아니, 저 새끼!”
“이 여자가 기억나십니까?”
취객은 검지로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거, 남자야 남자!! 분명 이쁜 여잔 줄 알았는데 거기가 내 꺼보다 커!”
해수와 막내는 서로 마주보고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 동네 주민!”
“박지원!”
해수는 바로 박지원의 얼굴을 취객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입니까?”
“으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이, 눈이 왕방울처럼 크긴 하던데… 비슷한디, 아녀, 맞는 것 같어.”
여장으로 눈화장을 하면 눈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커보였을 것이다. 이것으로 취객이 본 여자가 여장을 한 남자 박지원일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여장남자인 박지원이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에 채팅 어플로 성매매를 하려던 것, 사망 직전 시간에 그가 그곳을 지나갔던 것, 유일한 목격자인 취객이 범인을 여장남자라고 증언한 것.
모든 정황이 그를 용의자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도,돌격이 너 그 사람 휴대폰 번호 있다고 했지?”
해수는 이미 팀장이 말하기도 전에 휴대폰을 꺼내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 녹음으로 연결됩니…
“꺼져 있습니다.”
해수가 대답하고는 시선을 막내에게 주었다. 막내는 벌떡 일어서며 차키를 챙겼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