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접착제 살인사건
저렴한 여관 방 안.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방 안에는 팔과 다리가 뒤로 묶인 시체가 놓여 있었다.
보고대로 눈과 입이 강력접착제로 강하게 붙어있다.
곽팀장은 자세를 낮춰 코를 보았다. 코 안에도 접착제로 인해 꽉 막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거 싸이코 아니야?”
하루가 들어오려고 하자, 막내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아세웠다.
“후임, 시체 처음 보지? 마음 단단히 먹고,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그날 밤에 그 모습이 계속 떠올랐었는데, 심리치료 필요하면 말….”
스윽
하루는 허리를 숙여 그의 손을 피하고는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해수는 자신의 옆에 다가온 그녀를 힐끔 보았다가 시선을 거뒀다.
맨 처음 하루를 발견했을 당시가 떠오른다.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사방에는 누군가의 팔다리, 장기가 널브러져 있는 잔혹한 장면, 그곳에서도 하루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 누구보다도 시신을 감정의 흔들림 없이 볼 수 있을 수도 있다.
“시신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훼손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 사망시간을 추정해야 하니까 냄새가 난다고 창문을 열어 내부 온도를 바꾸는 것은 좋지 않아.”
“네.”
해수의 설명에 여관 주인아저씨가 눈치를 보며 열어놨던 창문을 닫았다.
“시선을 터치해야 할 때는 무조건 장갑을 끼고, 외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옷도 증거가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안에 외상 확인한다고 함부로 벗기는 것은 금물. 살짝만 들어서 확인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해수의 설명에 옷을 막 들어재끼던 곽팀장이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거 외상이 전혀 없네, 아무래도 질식사같다.”
“엽기적인 수법입니다.”
“그러니까, 물에 빠트린 것도 아니고 숨 쉴 구멍을 막아서… 잔인하다 잔인해.”
해수가 일어나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복도에 서성이고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물에 빠트린 것도 아니고 숨 쉴 구멍을 막아서… 잔인하다 잔인해.”
해수가 일어나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복도에 서성이고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물었다.
“저 cctv는 작동합니까?”
방 안에는 당연히 없고, 복도에 cctv 한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반짝이거나 붉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
“아… 그게, 저거 모형이에요. cctv 돈도 매달 나가고 장사도 잘 안 되고 그래서….”
“음….”
일이 어렵게 되었다. 여관만큼이나 주변도 낙후되어 cctv 확보가 힘들기 때문이다.
“막내, 하루, 주변 차량 협조 구해서 블랙박스 받아오고. 오갱 형님, 저랑 cctv 찾으러 가죠.”
“어 그려, 여긴 뭐 더 볼 거도 없겠다. 형님 현장 부탁해요.”
곽팀장은 시신이 있는 방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며 한 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모두가 나가자 팀장은 뒤돌아서 그들이 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든든하네, 든든해.”
* * *
잠시 후, 현장으로 강수대 대원들이 다시 모였다.
“시시티비 따오기는 했는데, 여기랑 너무 멀어서 별로 기대는 안 되네.”
“저희는 근처 차량 운전자들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한 명은 욕을 하면서 끊었습니다.”
오갱과 하루의 말을 건성으로 듣던 팀장이 증거품 비닐팩을 들어보였다. 머리카락 한 가닥이 들어있다.
“나는 이거 하나 발견했다. 길지?”
“여자?”
“염색도 한 거 보니까 젊은 여자인 것 같은데, 아무튼 보내봐야지.”
그렇게 강수대는 큰 소득 없이 본부로 돌아와 cctv를 분석했다. 그러나 거리가 많이 떨어져있는 만큼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스페이스바로 화면을 멈춰놓고는 고개를 돌렸다.
“피해자 휴대폰 켜졌나?”
“확인해보겠습니다.”
현장에서 발견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폰은 배터리가 나가서 꺼져 있었다.
지문은 이미 채취하여 분석중이고, 조금 충전한 휴대폰을 하루가 갖다주었다. 비닐팩에 싼 채 휴대폰을 뒤지다보니 수상한 어플 하나를 발견했다.
‘채팅 어플?’
-사진 있음?
-[코와 입술 나온 사진][가슴골 사진][미니스커트에 스타킹 신은 다리 사진]
-오 ㅅㅂ 죽이네 콜, 얼마임
-20
-15
-그럼 한 시간
-오케이 빨리 와라. 고암동 별빛여관
-금방 갈게. 오.빠
어느새 채팅 화면을 같이 보고 있던 오갱이 중얼거렸다.
“성매매네.”
“일주일 전, 시간은 밤 11시 이후로, 이 여자가 유력 용의자군요.”
휴대폰을 정보과에 맡기고 상대편의 아이디와 아이피 추적에 들어갔다.
정보과에 다녀온 해수는 본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막내에게 손짓했다.
“막내 나와.”
“넵 알겠습니다!”
하루가 온 이후 거의 항상 해수가 하루와만 다녔는데, 자신이 지목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막내였다.
해수는 막내를 데리고 여관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고는 현장을 한 번 둘러보고, 나와서 주변을 살폈다.
여관 앞에 낡은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다. 먼지도 쌓여있는 것에 꽤 오랫동안 버려져 있는 듯했다.
전화번호도 붙어있지 않다.
“이 차 조회해봤어?”
“옙, 차주한테 전화했었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다시 해볼까요?”
해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막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받지 않았다.
“음….”
블랙박스가 있기는 한데 차가 방전되어서 꺼져 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후드티에 뿔테 안경을 쓰고,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한 청년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손목에는 편의점표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 있다. 차림새를 보아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 듯했다.
“거기 뭐하는 거에요?”
건장한 사내 둘이 장기주차된 차를 살펴보고 있으니 수상할 법도 했다.
막내는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경찰 공무원증을 보여주려고 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펼치기 직전, 그가 먼저 검지로 해수와 막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형사들이다. 그쵸? 여기 살인사건 났다고 하더니, 대박, 수사하는 형사 처음 봐.”
“아, 네, 하하… 이 근처 사시나봐요?”
“네, 저어기… 근데 뭐가 잘 안 되나봐요?”
남자의 질문에 차 안을 살피던 해수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그를 위아래로 살펴보고 물었다.
“일주일 전 밤에 이 근처 지나셨습니까?”
“일주일 전이라…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해수는 명함을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이웃 주민들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됩니다. 저한테 문자 한 번만 주시죠.”
남자가 해수의 명함을 받아 확인하고는 손을 내리며 대답했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뭐라도 생각나시면 이쪽으로 연락주세요! 하던데, 지금 당장 문자 드려야 하나요?”
“네, 제가 급히 전화드릴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에이, 이거 아무래도 나 번호 따려는 거 같은데, 맞죠?”
“…예?”
남자는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뭐 나쁘지는 않은데, 일단 휴대폰을 집에 놓고 나와서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화이팅!”
그는 한쪽 눈까지 깜빡이며 윙크를 하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윙크를 정통으로 맞은 막내는 가슴을 부여잡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어우, 뭔 남자가 저런 애교가 저렇게 자연스러운지.”
해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막내의 옆구리를 툭 쳤다.
“억.”
“저 남자 미행해봐, 집에 들어갈 때까지,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네,넵 선배님.”
막내는 군말없이 남자의 뒤를 쫓으러 가고, 해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돌연 팔꿈치를 들어 차의 창문을 찍었다.
콰장창!!
손쉽게 창문을 으깨고 안으로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풀었다. 바로 차 안으로 들어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꺼내었다.
휴대폰에 연결시켜 살펴보고 있는 중에 막내가 돌아왔다.
“별거 없는데요. 여기서 꺾어서 100미터쯤 거리에 원룸에 들어갔습니다. 복도에서 3층 불이 켜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어, 수고했어, 가자.”
“옙! 선배님.”
해수는 본부로 돌아오자마자 차 창문까지 으깨면서 얻은 메모리카드를 확인했다.
드문드문 찍힌 것을 보니 차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만 찍히도록 설정되어있는 듯했다.
기적적으로 같은 날, 밤 12시 즈음에 영상이 하나 있었다.
-쿠궁 쿵
-어으, 어으, 꺽, 끄흐
한 취객이 비틀거리며 차에 기대어 있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는 장면부터 시작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그때, 취객과 반대편에서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걸어왔다. 취객은 그녀를 술병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워우, 야, 야! 얼마야! 야! 이리 와 봐!
여자는 무시하고 지나가다가 그가 길까지 가로막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취객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여 뭐라 중얼거리고 그를 지나쳐 갔다.
취객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다시 욕을 내뱉으며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이 여자다.”
“어디 어디!”
해수의 말에 강수대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고는 화면을 보고 실망했다.
어둑어둑한 밤이라 화질이 엉망인 데다가 멀리서 찍혔고, 게다가 취객에게 가려져 여자의 얼굴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이씨… 좋다 말았네.”
“후임, 그래도 우리 형사들은 놓지 않고 이런 정보 하나하나를 모아서 범인을 잡는 겁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오.”
“네, 명심하겠습니다. 우강철 선배님.”
“서,선배님….”
그 사이 정보과에서 연락이 왔지만 건진 것은 없었다. 채팅어플 가입정보로 휴대폰 번호까지는 알아냈지만 대포폰으로 추정되었다.
“역시 계획범죄군요. 채팅어플을 이용한 걸 보면 원한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삼는 묻지마 살인….”
제일 추측하기 힘들고 재범률도 높기로 악명이 높은 묻지마 범죄.
사건을 맡았을 때, 원한 살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을 수록 형사들은 조급해진다. 빨리 잡지 않으면 다음 살인이 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네, 일단 부검 결과는 나왔다. 질식사 맞고, 수면제 성분도 나왔단다. 머리카락은 유전자 맞는 거 없고.”
“하….”
“후….”
보통 가장 큰 단서를 쥐어주는 국과수에서의 정보가 아무런 단서도 되지 못할 때, 형사들은 더더욱 무력감을 느낀다.
짝짝
그때.
곽팀장이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정신 차리자, 사건이 또 일어나기 전에 이놈 잡아야 한다. 뭐든 찾아, 니네 싹 다 그 어플 가입해서 그 아이디 비슷한 거라도 싹 다 찾아서 말 걸어보고! 저 뒷모습만 나온 취객도 나가서 찾아봐, 용의자 얼굴 본 사람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에 네 명이 일제히 일어나 2인1조로 흩어졌다.
지이이잉-
그 사이, 해수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저에요. 박지원이라고 저장해주세요. 형사님(하트)]
“누굽니까?”
하루의 목소리에 해수는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닫았다. 그러고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 이상한 남자에게 하트를 받은 것도 기분이 나쁘고, 하루 앞에서 반사적으로 그놈의 이상한 문자를 감춘 것도 기분이 더러웠다.
해수는 다시금 당당하게 휴대폰을 들어 번호를 저장하며 말했다.
“아까 현장에서 마주쳤던 이웃주민, 이상한 놈이야.”
“박지원…놈 맞습니까?”
“맞아, 여기 강둘, 휴대폰번호로 신원 조회해주십시오. 공일공….”
해수가 무전으로 신원 조회를 부탁하자, 곽팀장에게서 거의 바로 회신이 왔다.
-어, 얜 뭔데? 이름 박지원, 95년생, 남자놈이 얼굴이 뭐 이렇게 예쁘장하냐. 입술에도 뭘 쳐발랐네, 무전에 사진 보냈다.
“예, 감사합니다.”
해수는 운전을 하느라 하루에게 무전기를 주었고, 하루가 먼저 박지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해수에게 들어서 보여주었다.
“맞네, 이름도, 번호도… 흠.”
“곱상하게 생겼습니다.”
“음….”
하지만 지금은 목격자나 단서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해수는 일단 박지원에 관한 의심을 접어두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 * *
같은 시각.
타다다닥 타닥 타닥
한 피시방 구석에서 후드를 눌러 쓴 남자가 키보드를 열렬하게 두드리고 있다.
[대박, 내 사건 강수대 붙었다. 신해수 번호 땀ㅋㅋㅋ (작성자: 제임스본드)]
-내가 저번에 한 명 또 천국 보냈다고 했자나, 이거 형사 붙었는데 그 유명한 강수대임, 신해수 형사 실물 영접함ㅋㅋㅋ 번호도 따임.
┗프렌치키갈: 이 새끼 또 뇌내망상이네
┗니마누라내꺼: 신형사 있는 강수대면 설립하고 검거율 100프로 아님? 니 좃됐네?
┗니돈내돈: 개구라에 낚이는 틀딱도 있네. 제목도 존나 어그로성. 딱 봐도 여기 커뮤에서 신해수 유명한 거로 어그로 끈 거자나. 이새끼 여기 입장 인증도 가라로 했을듯 ㅋㅋㅋ
┗(작성자): 진짜라고 개찐따병신새끼들아, 한 명도 천국 못 보낸 새끼들이 존나 키보드질만 더럽게 갈기네, 번호 보여줌?
┗니돈내돈: 구라 걸리니까 부들부들하쥬?
┗니마누라내꺼: 이 새끼는 맨날 인증도 안하고 지가 뭐 천국을 몇 명을 보냈다 어쨌다 지랄이야, 인증부터 하셈.
┗프렌치키갈: ㅇㅈ/인증부터 해야지 모솔찐따히키코모리새끼야, 마주치면 눈도 못 마주칠 새끼가. 어디서 강수대 어쩌구저쩌구 진짜 역겹네.
┗(작성자): 그래, 이 씹새들아.
┗(작성자): 내가.
┗(작성자): 강수대 형사 한 명 잡고 인증한다.
┗니돈내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렌치키갈: 그거 인증하면 바로 신급이지, 존나 떠받들여준다. 발꾸락 핥아줄게
┗(작성자): 기다리고 있어, 형이 금방 올린다.
걸리지 않은 범죄를 인증해야만 다크웹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범죄 사이트.
그는 마우스로 사이트를 닫았다. 그러자 그 뒤로 강진서 홈페이지가 드러나며, 강수대 대원들의 얼굴과 이름이 나와있는 조직도가 펼쳐졌다.
“다 존나 쎄보이긴 한데… 딱, 하나, 구멍이 있단 말이지….”
딱딱딱딱딱딱
그는 마우스 커서로 하루의 얼굴을 광적으로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