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마실장
신해수의 강수대와 조아라의 강력팀이 출발하기 전, 그 앞에 있는 일반인 팀이 막 출발했다.
“우리 뒤에 시끄러웠던 사람들 경찰 맞는 것 같지? 팀장님이니 강력팀이니 어쩌구 하는 거 보니까, 경찰들이라 그런가 몸이 다들 좋네.”
안경을 쓴 친구의 말에 어디에서 빠지지 않는 근육질의 훈남이 말을 받았다.
“몸 좋은 거랑 레프팅이랑은 상관이 없는데, 괜히 힘으로만 하다가는 근육이 다칠 수 있거든.”
“욜… 우리 정식이만 믿으면 되지?”
정식이라 불린 훈남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것만 기억하면 돼, 하나에 밀고, 둘에 당기고, 너는 보트가 중앙으로 가게 꼬리 잘 잡아주고.”
“든든하다. 역시 조정 선수 조정식!”
“아직 아니야, 예비지 예비, 누가 들을라, 가자.”
친구들은 조정 선수를 준비하고 있는 조정식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며 보트 위에 올라탔다.
“자 하나에 뻗고, 둘에 당기고! 하나!”
“둘!”
“하나!”
“두울-”
“오오, 진짜 정식이 말대로 하니까 쭉쭉 뻗어나가네!”
“이러다가 앞에 보트 추월하겠어!”
정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로 앞에 보트를 가리켰다.
“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한 번 해볼까?”
“진짜?”
“가자! 하나!”
“둘!”
“하나!”
그때, 고막을 찢을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두우우울!!!”
“헙 뭐야?”
인간보다는 짐승의 것이 더 가까운 괴성, 그들이 낸 게 아니었다. 정식과 친구들은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소리는 분명, 뒤에서 들려왔다.
정식이 뒤돌아서자, 무시무시한 무리가 보였다.
“으아아아악!! 가즈아!!”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셋넷!!”
투다다다다다!
두 대의 보트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하늘을 솟구치는 물보라에 그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하늘 위로 무지개가 떴다.
투타타타타!!
두 대의 보트는 정식과 친구들의 보트를 순식간에 앞질러갔다. 정식은 아주 잠깐 스치는 그들의 눈빛에서 광기를 보았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이, 그들은 금세 눈앞에서 멀어졌고, 정식이 있는 자리는 고요해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식의 친구들이 중얼거렸다.
“어,엄청나다….”
“저거시 바로 대한민국 경찰의 힘인가…?”
“아냐… 아무래도 저 보트는 뒤에 모터를 단 것 같아….”
조정식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식아, 정식아?!”
“어,어?”
“괜찮아?”
“어, 어… 가,가자….”
다시 노를 젓는 정식의 손에는 왠지 힘이 빠져 있는 듯했다.
* * *
촤아아아악!!
보트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물보라가 크게 일어나며 두 대의 보트가 급정거를 했다.
간발의 차이로 강수대가 먼저 도착했다.
“헤엑! 헤엑! 헤엑!”
“후욱, 후욱- 허억!”
그제야 숨을 크게 몰아쉬는 두 팀은,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오직 팀장만이 땀 대신 물을 맞은 상태로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갱은 숨을 크게 한 번 내뱉고는 건치를 보이며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를 이 정도로 몰아붙인 건 10년 전 그날 이후로 처음이군.”
“십, 십년?”
“그때 우리 뭐 했었나?”
곽팀장의 물음에도 오갱은 꿋꿋하게 상대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조아라팀 선임 형사가 받았았다.
“허억, 허억… 7년만인가, 패배의 쓴 맛을 본 게… 쓰지만, 나쁘지 않은 맛이군.”
“적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어.”
“훗, 졌…잘…ㅆ-”
오갱과 선임 형사가 서로 주먹을 맞대기 직전.
퍽!
“그만 해! 이 자식아!”
조팀장이 선임 형사의 옆구리를 발로 차서 말리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강제로 떨어진 오갱과 선임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반쯤 돌아서서 엄지를 살짝 추켜들었다.
‘다음에 또’
‘만납시다.’
그들의 뒷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정식아, 뭐해? 우,울어?”
“응, 나, 조정 그만 두려고.”
“왜, 왜?”
“아무것도 아니야, 훌쩍”
.
.
.
10년 뒤, 자유형 200미터 금메달리스트 조정식 선수의 인터뷰 중-
“10년 전 레프팅을 하던 그날, 제가 믿던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사뿐히 꿈을 접게 해준 그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그 분들로 인해 지금의 조정식이 태어난 겁니다. 대한민국 경찰… 화이팅.”
* * *
훈련과도 같았던 여름 파출소 뒤풀이 이후, 신해수와 하루는 강진시에 있는 리드빌딩 집으로 드디어 귀환했다.
“후… 역시 집이 최고입니다.”
하루는 짐도 풀지 않고 바로 뛰어들어가 소파에 철푸덕 누웠다. 반바지가 짧아서 하얀 허벅지 위쪽까지 훤히 드러나 아슬아슬했다.
해수는 수건 하나로 그녀의 다리를 덮어주었다.
“씻어, 밥 먹자.”
“넵 알겠습니다!”
밥이라는 말에 하루는 언제 엎어졌냐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 * *
다음날, 휴일.
해수와 하루는 일찍부터 황장수의 사무실 지하에 있는 체육관을 찾아왔다.
황장수는 그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달음에 지하로 내려왔다.
“야!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오늘은 훈련 설렁설렁 할래?”
하루는 황장수가 왠지 분위기가 해수와 비슷하여 오히려 강수대 사람들보다도 편했다.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로.
“반갑습니다. 황장수님.”
“아,어, 네, 그래요. 반가워요 하루씨, 허허.”
해수는 팔목에 붕대를 감으며 대답했다.
“보성에 지원 나갔었어.”
“보성? 그 보성? 너랑 나랑 고딩 때 가서 접수했던 그 보성?”
“조용히 해.”
황장수는 링에 기댄 채 허공을 바라보며 옛추억을 꺼내었다.
“한창 때였지, 고 2때니까 벌써 14년이 지났네. 캬… 그때 어땠냐면, 해수는 이렇게 인상 팍 쓰면서 머리를 뒤로 까고 다녔는데….”
둘이 고등학교 때 보성 해수욕장을 갔다가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었었다.
양아치들은 여덟 명, 그들은 두 명, 한창 운동을 배우던 때라서 그들은 자신감이 매우 충만해져 있었다.
“그만 해라.”
“어? 그럴까?”
해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이 창피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하루는 인형처럼 가만히 서서 눈을 깜빡이며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그놈들이 몇 놈이든 사실 중요하지 않죠, 둘이서 그 여덟 놈을 아주 눈도 못 마주치게 짓밟아줬습니다.”
하루는 작은 목소리로 ‘역시’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신고 들어와서 경찰 오는 바람에 엄청 도망쳤죠, 아, 지금 눈 앞에 경찰이 두 명이나 있네.”
“저는 해수님과 황장수님을 잡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네, 아, 아 하하.”
애매해진 분위기.
하루가 입을 가리고 눈썹이 부드럽게 휘는 것이, 자기 나름대로 농담을 한 듯했다. 혼자 재밌어한다.
해수는 그런 하루를 가만히 보다가 시선을 돌려 황장수를 보았다.
“안 바쁘냐.”
“나 안 바쁜데?”
해수의 미간이 확 찌푸려진다. 그 모습에 장수가 링에서 등을 떼었다.
“아, 급한 일이 생긴 것도 같고.”
장수가 그렇게 자리를 뜨고, 하루와 단 둘이 남은 해수는 링 위에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배인성 사건 때 하루의 반응이 떠오른다. 그녀에게 자신은 믿음직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꽤 큰 충격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해수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하루, 네가 마교관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몇 살이었지?”
“제가 열세 살때, 그는 서른 살 정도였습니다. 젊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마흔이 넘었겠군, 신체나이는 스무 살을 기점으로 점점 퇴보한다. 그때의 네가 두려워하는 마교관은 이제 늙었어.”
“그건….”
하루의 눈동자에 초점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어깨를 떨며 몸서리를 쳤다. 마교관을 떠올리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건 정신적인 문제도 크다. 해수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하루가 마교관을 마주했을 때 심리적인 압박이 심하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수도 있다.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마교관에 대해 말해봐, 자세히.”
“마교관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의심이 됩니다. 그는 늙지 않을 겁니다….”
하루의 목소리는 왠지 단호했다.
* * *
며칠 전, 한 낡은 체력단련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내들 여섯 명이 각자 흩어져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그 중에는 일성그룹의 해결사 양씨도 있었다.
양씨는 휴대폰을 들어 몇 시간 전에 온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마실장님: 곧 방문하겠습니다. 기다리고 계십시오.]
퉁퉁 퉁-
그때, 체력단련실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일시정지가 되었다.
슥
스윽-
그들은 천천히 일어나 품에서 칼을 하나씩 꺼내어 들었다.
양씨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하고는 걸음을 옮겨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스으윽-
문을 열자 그림자가 양씨에게 드리워졌다. 양씨는 본능적으로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저벅 저벅 저벅
190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 드넓은 어깨, 짧은 머리에 강인한 턱,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 그의 눈빛은 일반인은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둡다.
양씨가 그에게 짧게 목례했다.
“오셨습니까, 마실장님.”
그러고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뒷주머니에서 두 개의 칼을 빼내어 들었다. 카람빗, 끝이 휘어진 외국 용병들 전용 실전 칼이다.
“추하군.”
마실장의 목소리는 지하 동굴 깊은 곳에서 말하는 것처럼 매우 낮고 굵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 와라.”
마실장은 맨 손으로 그에게 손을 뻗어 손목을 까딱거렸다.
“핫!”
양씨가 카람빗을 휘두르며 마실장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마실장은 양씨의 손을 빠르게 잡아채어 반 바퀴 돌리고는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그 행동으로 인해 같이 덤벼들던 사내들이 주춤했고, 양씨는 몇 미터나 날아가 운동기구에 쳐박혔다.
콰광 쾅!!
그 사이 다른 사내가 마실장에게 칼을 뻗었다. 마실장은 그의 팔을 잡아채어 확 꺾고는 그가 칼을 들고 있는 상태로 쇄골을 찌르게 했다.
자신의 칼로 자신의 몸을 찌른 기이한 모양새다.
휙-
그 사이 다른 사내 둘이 달려든다. 일반인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빠른 몸놀림, 마실장은 쇄골에서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고 있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 방패처럼 들이댔다.
푹 푹 슥-
그의 몸이 금세 엉망이 되었다. 마실장은 그를 앞으로 밀어 던지고는 반대편에 덤벼드는 사내의 목을 잡아채어 확 꺾었다.
우드득 으득-
덩치도 크고 팔뚝도 강철같은 근육에 뒤덮여있는데, 그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을 지닌 자가 바로 마실장이다.
그는 맨손으로 칼을 든 전문가들을 순식간에 잠재웠다.
푹! 꽈득, 치이이익-
마지막 사내의 목을 칼로 반쯤 자르고, 칼을 버리고는 양씨 앞에 섰다.
양씨는 이미 두 팔이 바닥에 축 쳐져 있었다. 칼을 잡고 싶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잡지 못했다.
마실장은 양씨와 눈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수고했다.”
그러고는 굵직한 손으로 그의 목을 사정없이 비틀어버렸다.
으드득-
* * *
하루는 마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공포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루, 하루 정신 차려.”
“네,네?”
“그런 쓸데없는 정보는 필요 없어, 나한테도, 너한테도.”
해수가 두 손으로 하루의 볼을 감싸고 고개를 들려 눈을 마주했다.
“잘 들어, 그 사람의 기술, 싸우는 방식을 얘기해, 천천히,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네,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