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역납치(3)
배인성은 자신의 옆에 붙어 귀엽게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미모의 여성과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퍽-!
반짝이는 눈동자를 더 감상할 새도 없이, 날카로운 팔꿈치가 그의 코를 찍었다.
“컥!”
그가 찡한 고통에 뒷걸음질을 칠 때, 그의 비서가 경악하며 다가왔다.
“본부자-앙”
날씬한 다리가 시원하게 뻗어올라가며 다가오는 비서의 턱에 작은 발이 정확히 꽂혔다.
쿵-
비서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자빠졌다.
하루는 바로 돌아서서 남아있는 사내 둘을 보았다. 하루를 봉고차에 태웠던 무리, 조장 용팔과 부상당한 부하가 벽에 바짝 붙어 두 손을 들고 서 있다.
지금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굴복중인 것이다.
하루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배인성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단단히 움켜쥐고 뒤로 확 당겼다.
“아악!”
배인성은 머리가죽이 뜯겨질 것 같은 통증에 저질스러운 신음을 내지를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권위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만 했지, 이렇게 맞아본 적이 없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마치 치과 간호사처럼 건조한 목소리에 배인성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아…압!”
하루는 그가 입을 열자마자 바로 칼날을 넣어 물렸다. 그러고는 바로 무릎으로 그의 턱을 찍었다.
콰드득!
“끄아아악!!”
칼날을 쎄게 깨무는 모양새, 당연히 치아가 남아날 리가 없다. 나름대로 피한다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빗겨맞아 칼날이 한쪽 입꼬리까지 2센티 가량 찢고, 생니도 여섯 개 이상 뽑혀나가며 입 안에서 피를 질질 흘렸다.
그가 엉덩이를 든 채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두 손으로 입을 감싸고 있는데, 손가락 사이로 피가 새어나온다.
하지만 하루는 거기서 끝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발로 그를 밀쳐 넘어트리고,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서슴없이 그의 가운데다리에 내리꽂았다.
푹!
“꺼으억!! 헉 껴어어….”
하루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괴상한 신음을 내는 배인성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은 손을 들고 있는 용팔과 그의 부하에게 향했다.
“손 내려.”
하루의 말에 용팔과 부하는 즉각 손을 내렸다. 동시에 내리자마자 하루가 용팔의 손을 잡아 벽에 붙이고 칼로 손등을 찍었다.
“끄윽!”
“감사하지?”
“네! 네에….”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목소리와 얼굴에 진심이 묻어난다. 나머지 둘은 죽었다. 손이 병신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손등에 관통상 하나 정도로 끝나면 행운이 맞다.
하루는 그 옆에 부하를 힐끔 보았다가 빠르게 문을 열고 튀어나갔다.
쾅! 쾅! 콰직!!
밖에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신해수가 맨손으로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해수 혼자서 압도하고 있지만, 공터처럼 넓은 데다가 상대는 모두 길이가 긴 쇠파이프를 들고 있기에 그도 어느 정도의 공격은 허용하고 있었다. 허벅지나 팔뚝으로 막아 데미지를 감소시킬 뿐이었다.
맨손의 한 명, 다수는 무기를 들었다지만.
그 강함은 둘째 치고 하루는 해수가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눈이 돌아갔다.
“이이…! 나쁜 녀석들이!!”
하루는 어학원에서 배운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험악한 표현을 하며 2층 계단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그녀의 몸놀림은 고양이처럼 가볍고 날랬다.
스슥-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두 바퀴 굴러서 고민없이 난전이 펼쳐지는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뭐,뭐야 얘는?! 크윽!”
하루는 사내들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몸을 매우 낮춘 채로, 굴러다니면서 놈들의 발목을 베기 시작했다.
“아악!”
“큭!”
하루가 마지막 사내의 발목 힘줄을 끊어냄과 동시에 그 사내의 얼굴에 해수의 주먹이 꽂혔다.
쾅!
사내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두 바퀴 회전하였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후….”
하루는 그제야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를 낮추고 있으니 고운 얼굴에 피가 많이 튀었다.
해수는 그녀의 전신을 빠르게 훑어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좁히며 물었다.
“너, 왜 일부러…”
그때.
콰앙!!
폐공장 정문이 거칠게 열리며.
“돌격대! 돌격!!!”
“와아아아아!!”
“으리야!!”
시커먼 사내 세 명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어왔다.
강수대 대원들이다. 웬일로 곽팀장이 선두였다.
곽팀장은 양손에 쌍삼단봉을, 오갱과 막내는 어디서 구했는지 진압용 평화방패를 들고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어?”
“응?!”
거세게 돌진하던 그들은 쓰러져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내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해수와 하루를 발견했다.
“음? 다 끝났네?”
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갱이 해수에게 달려왔다.
“해수야! 해수야 괜찮냐?!!”
막내도 질세라 방패를 내던지고 하루에게 다가갔다.
“하후임! 후임 어디 다친 데 없습니까? 이거 뭐야, 피 피!!”
하루는 무표정으로 검지로 바닥에 쓰러진 사내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피입니다.”
“어?! 어 그런 건가?!!”
막내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동안, 해수가 곽팀장에게 다가가 나무랐다.
“팀장님, 제가 무조건 경특대와 함께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팀장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머쓱해했다.
“아 그게, 경특대 놈들이 느려 터져서. 출동 때문에 제주도에서 온다는데 어쩌냐, 다른 지원도 느리고, 내 새끼들이 위험한데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지. 근데 괜찮네?”
해수는 손으로 몸에 묻은 피를 털며 대답했다.
“네, 생각했던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구만.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구만.”
팀장은 해수의 몸을 면밀하게 살피고는, 쇠파이프에 맞아 피멍이 들거나 살점이 뜯겨나간 곳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누워있는 사내들을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빠르게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 강하나, 상황 종료 상황 종료, 검거대상 열 네 명이니까 순마 세 대만 와줘요.”
-순 셋 송팔
-순 다섯 송팔입니다.
-…특하나는 귀환합니다.
“응 그래요. 수고했어요. 특하나는 다음에는 좀 더 빠릿빠릿하게 오고.”
-…송팔
팀장이 무전을 하고 있는 그때, 2층으로 올라갔던 막내가 소리쳤다.
“우악! 팀장님! 여기 올라와보셔야겠습니다!”
“왜? 뭐여 또? 더 놀랄 일이 있어?”
“예, 그, 이 사람 그 사람같습니다. 그…”
팀장은 미간을 좁히고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그 뭐?”
“저번에 파출소에서 봤던 그 싸가지 재벌…같습니다.”
“…뭐??!”
그 말에 팀장은 전속력으로 계단을 뛰어올라갔고, 오갱도 검거를 하다 말고 그 뒤를 따랐다.
해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루를 보았고, 하루는 부끄러운 듯이 몸을 베베 꼬았다.
팀장은 2층 통제실에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기고 있는 배인성을 보고는 기겁했다.
“허,허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분명 이들이 잘못했고 나쁜 일을 꾸몄다는 걸 예상하면서도, 뒷일이 걱정되는 팀장이었다.
* * *
치료가 시급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진서로 이송시키고, 해수와 하루도 강수대의 봉고차를 타고 강진서로 돌아가는 길.
해수는 차에 타자마자 바로 하루 옆에 앉으며 물었다.
“배인성 저 쓰레기가 너를 납치해서 나를 유인했고, 그 장소에 뜬금없이 찢어진 옷을 입은 여자는 나를 성폭행범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는 건 알겠어. 이 외에 나한테 해야 할 얘기 말해봐.”
해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하루는 무언가 혼나는 기분에 억울했다. 그녀는 샐쭉 입술을 내밀고는 작게 대답했다.
“저는 몰랐습니다. 그놈들이 저를 미끼로 해수님을 부를 줄 몰랐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그 전에 끝냈을 겁니다.”
“끝내지는… 하, 그럼 왜 일부러 잡혀가면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하루는 작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위험하니까.”
“…뭐?”
해수는 그녀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 몰라서 살짝 당황했다. 해수가 되묻자 하루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해수님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습니다. 납치범들은 어설펐지만 그들이 회사일지 모르니까요. 제가 혼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하루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루야, 너한테 나는 지켜줘야 할 대상이야?”
“…….”
“안되겠네, 내일 체육관으로 가자, 제대로 알려줄게.”
해수는 하루가 자신의 실력을 백 퍼센트 알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체육관으로 데려가 최대한의 실력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때 하루가 앞에 대원들에게 들리지 않게 더욱 작게 말했다.
“…해수님도 강하지만, 마교관은 정말 강합니다.”
마교관, 그 사람이 문제다. 하루는 그를 본 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마교관이라는 사람을 심각하게 신경쓰고 있다.
해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일 체육관에서 어떻게 스파링을 진행해야 할지 고민했다.
* * *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그곳에 백발의 중년인이 서서 아래를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똑똑- 스윽
문이 열리며 강철같은 근육을 지닌 사내가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백발 중년인이 시선을 밖에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일성은 신해수 형사가 요주인물이라는 걸 모르나봐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구나, 알고 있었는데 건드렸군요.”
“주의 주겠습니다.”
“일성… 일성이라, 그래도 칠성회의 한 축인데. 넘어가세요.”
“가볍게 조언만 하겠습니다.”
강철같은 근육을 지닌 사내, 마실장의 말에 백발 중년인이 그제야 몸을 돌려 눈을 마주했다.
눈이 마주치자 마실장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목례했다.
백발 중년인은 마실장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그래요. 마실장 품위도 있으니.”
“감사합니다.”
* * *
배인성의 아버지이자 일성그룹 회장의 유력후보자 배신주 사장.
그는 자신의 작은 것 큰 것 온갖 귀찮은 일이나 더러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양씨가 보이지 않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목석처럼 우뚝 서 있는 비서를 닦달했다.
“양씨는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양씨만 나서면 쉽게 해결될 일인데! 지금 상황에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거 업무태만이야 태만!”
“죄송합니다. 연락도 닿지 않아서, 양씨는 물론 양씨가 이끄는 경호팀들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도련님 일과 관련이 있는 듯한데….”
쾅!
“추측은 필요없어!”
-똑똑
“들어와!”
그때, 가정부가 들어왔다.
“사장님, 이거.”
그녀가 네모난 상자를 들고 왔다.
“이게 뭡니까?”
“마실장이라는 사람이 보냈답니다.”
배신주는 다급히 그것을 열어보았다. 피비린내가 훅 풍긴다. 누군가의 손목이다.
“허읍!”
다시 보니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 자신이 양씨에게 선물로 준 시계였다.
그 손에 쪽지 하나가 들려있다.
[양씨는 개인사정으로 퇴사 시켰습니다. -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