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30화 (130/255)

130. 역납치

배인성과 그 무리가 파출소에서 나간 후.

파출소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안 지성 경위는 파출소 밖에 나와 멍한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상 선전포고를 하고 나니 현실을 자각하게 되어 걱정이 앞선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해수의 물음에 안 경위는 시선을 고정한 채 한숨부터 내쉬었다.

“괜찮지…않습니다. 솔직히 무섭군요. 저같은 소시민이 재벌과 맞붙으려니….”

“마음 가시는대로 하면 됩니다. 지금은 저렇게 나와도 합의금을 요구하면 받아들일 겁니다. 저들은 받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해수의 말에, 안 경위는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금세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받고 그의 불의를 눈감아줬을 겁니다. 저 사람도 그런 삶을 살아왔으니 돈이라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여 저런 행동을 했을 테고요.”

안 경위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해수와 눈을 마주했다.

“경찰인 제가 돈에 타협하지 않고 맞서야지, 누가 맞섭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눈빛에서 강한 집념이 보인다. 해수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옆에서 끝까지 돕겠습니다.”

* * *

일성전자 배인성의 사무실.

날카로운 눈빛에 안경을 쓴 그의 비서가 옆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안지성 경위는 와이프가 한사랑보험사에 근무 중이고, 자녀는 학계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딱 좋네, 와이프는 보험 고객 싹 다 끊어내고, 회사에 압박 줘서 자진퇴사하게 만들고. 고딩 딸은 같은 학교 학생들한테 용돈 좀 쥐어주고 알아서 쓰레기장에 쳐박히게 만들어, 그 인상 드러운 놈은?”

“신해수 경사는 본래 강수대 형사 출신이랍니다. 지금은 잠시 여름 파출소 지원을 나왔다고 합니다.”

배인성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형사라서 그렇게 깝쳤고만? 그럼 더 밟아줘야지, 빨리 말해봐.”

“그게… 경찰 치고 자산이 조금 넉넉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것 같고요. 같이 근무하는 형사들이 전부인 듯합니다.”

“경찰 따위가 자산이 넉넉해? 더 마음에 안 드네. 없으면 만들면 되지, 뭐가 좋을까….”

배인성은 다리를 떨며 사무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역시 난 천재야! 너, 예쁘장하고 돈 좋아하는 여자 한 명 구해와. 현직 형사가 여성을 강간하려다가 우연히 정의로운 기업인 배인성과 마주쳐 현장에서 제압당했다! 어때?”

“훌륭하십니다. 당장 배우를 찾아보겠습니다.”

“배우? 여배우를 데려오게?”

“아,아닙니다. 연기를 할 여자를 찾아보겠습니다.”

“아아, 오케이.”

배인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서를 내보냈다. 그는 자신이 짠 시나리오에 해수가 걸려들어 눈앞에서 빌빌 기게 될 모습을 상상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 도도한 눈깔을 찔러주지, 견찰 새끼가 감히.”

* * *

며칠 뒤, 비서가 먼저 배인성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본부장님.”

배인성은 바로 일어나 눈을 반짝이며 그를 맞이했다.

“왜, 배우 구했어?”

“예 준비되어있습니다만,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그때 보셨던 여경 말입니다. 신해수 경사와 같은 건물에 거주합니다. 동거 중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그 이쁜이? 오… 그래? 건방진 새끼가 미인까지 끼고 산단 말이야? 아주 개새낀데?”

그는 소파에 털썩 앉아 다리를 떨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30초 정도 있다가 다리의 떨림이 멈추었다.

“야, 배우한테 각본 변경한다고 알려, 재밌겠네, 꿩도 먹고 알도 먹고.”

“어떻게 진행할까요?”

“딱 보면 모르냐? 여경부터 확보해서 그 인상 더러운 새끼 유인하고, 그 자리에 배우 풀고 우리쪽 경찰 출동 시키는 거지, 주인 잃은 불쌍한 여경은 뭐 내가… 위로해줘야지.”

“역시 탁월하십니다.”

비서의 아부에 그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치? 빨리 애들 보내서 걔 데리고 와, 어으 배고프다.”

“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일성전자 사장실.

층고가 높고 넓은 사장실에는 골프 퍼팅 연습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사장이자 배인성의 아버지 배신주는 통유리 앞에서 골프채를 들고 퍼팅을 연습 중이었다.

똑똑

-양씨입니다.

“들어와.”

배사장의 허락에 사장실 문이 열리며 짧은 머리에 하얀 얼굴, 싸늘한 눈빛을 지닌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잘 벼려진 칼처럼 위험한 기운을 풍겼다.

그가 가까이 올 때까지 배사장은 눈길도 주지 않고 골프공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들이 경찰하고 마찰이 있었다며.”

“네,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경찰 주제에 뭘 또 버팅기나, 잡음 안 나오게 뒤 좀 잘 봐.”

“예,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양씨의 말에 배사장이 골프채를 휘두르려다가 멈칫했다. 그러자 양씨가 말을 이었다.

“도련님께서 작업 중인 사람 중에 신해수 경사가 끼어 있습니다.”

배사장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그제야 양씨에게 시선을 주었다.

“신해수? 그게 뭔데.”

“회에서 지켜보는 요주의 인물입니다. 마실장 측에서 주의가 들어왔습니다.”

“걔는 왜 건드려도 요주인물을….”

배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골프채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가 허리를 폈다.

“아 근데, 기분이 더럽네.”

그는 다시 양씨와 얼굴을 마주하고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물었다.

“양씨는 마실장 따까리야? 내 사람이야?”

“…….”

양씨는 무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배사장은 이미 지금과 같은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실망할 것도 없었다.

“마실장 그 새끼가 뭔데 주의를 주고 말고 지랄이야? 그래봤자 주먹 쓰는 무식쟁이잖아? 천선생 옆에 있다고 아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르네? 어?!”

그는 골프채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쾅!

“나 일성의 배신주야 배신주! 실질적인 일성의 주인이라고! 마실장, 그딴 새끼의 말을 내가 들어야 해? 어?”

하지만 양씨는 처음 들어올 때처럼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배사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목석같은 반응에 배사장도 덩달아 감정을 가라앉히며 손을 휘휘 저었다.

“이참에 마실장한테 서열 좀 제대로 각인시켜줘야겠어, 인성이 작업은 그대로 진행 시키게 놔둬.”

배사장이 다시 골프를 치려고 돌아섰는데, 마땅히 들려야 할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쉬며 다시 양씨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따라 기어오르는 것이 매우 거슬린다.

아니나 다를까.

양씨는 배사장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정중하게 모은 채 입을 열었다.

“…사장님, 마실장의 주의는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씨팔새끼가!!”

빠악!!

골프채가 양씨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양씨는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그것을 맞았다.

주르륵

양씨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배사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후, 후우… 하여튼, 양씨는 다 좋은데 마실장 얘기 나올 때는 참 마음에 안 들어, 나가.”

배사장이 검지로 문을 가리키자 양씨가 짧게 목례를 하고는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나가기 전, 배사장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툭 던졌다.

“병원이라도 가.”

배사장의 지나가는 말에 양씨의 발이 멈칫했다.

“예.”

양씨는 다시 돌아서서 배사장의 뒷모습에 대고 허리를 깊이 숙이고는 사장실을 나섰다.

* * *

보성 광장 파출소.

다시 근무 타임이 바뀌어, 18시 퇴근 시간.

신해수와 하루는 사복을 입고 함께 파출소를 나섰다.

여름인데도 그녀의 평상복 패션은 변하지 않았다. 레깅스 대신 검은 스타킹에 폴리 소재의 얇고 구멍이 뻥뻥 뚫린 후드집업을 입고 있었다.

“왜 맨날 후드를 쓰는 거야?”

하루는 해수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툭 내뱉었다.

“왜 맨날 똑같은 옷입니까? 돈 없습니까?”

해수는 검은색 기능성 바지에 검은색 라운드 반팔 티셔츠였다.

“어? 음, 같아보이지만, 같은 옷은 맞는데, 다른 옷이야. 같은 티셔츠를 일곱 개 가져왔어. 요일별로, 이게 편하니까.”

하루는 말없이 해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저도 일곱 벌을 사야겠습니다. 후드를 써서 머리를 감싸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음… 그렇군.”

해수가 담담히 수긍했다.

하루가 경찰 시험까지 단번에 합격하고 이렇게 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찌됐건 아주 오랫동안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왔기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는 오늘도 그녀를 조금 더 이해하며 걸음을 걸었다.

그렇게 말없이 5분 쯤 걷다가 해수가 먼저 침묵을 깼다.

“내일은 쉬는 날인가?”

“네, 해수님은 아니고, 저만 쉬는 날입니다.”

“그래, 너만. 나는 일하고, 내일 뭐하고 지내려고? 안서은씨도 복귀했던데.”

해수의 예상과 달리 하루는 이미 생각해두었는지 빠르게 대답을 내어놓았다.

“강진 집에 가서 잘 겁니다. 집에서 혼자 야외 목욕탕에서 목욕도 하고, 편안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낼 생각입니다.”

“음, 그래. 좋은 생각이군, 하루 동안 푹 쉬라고.”

“네 알겠습니다.”

휴가를 앞둬서인지, 건조하던 하루의 얼굴에 약간의 기쁨이 스쳤다.

해수와 그녀는 함께 숙소 건물에 들어갔다가, 하루만 5분 만에 다시 나왔다.

그녀는 가벼운 백팩 하나만 메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낯선 지역에서의 대중교통도 잘 이용하는 하루였다.

* * *

강진시 용수동, 리드빌딩 인근 버스 정류장.

끼이익.

버스가 멈추어 서고, 뒷문에서 하루가 터덜터덜 내렸다. 잠을 자서 머리가 부스스하다.

버스를 탈 때는 석양이 지고 있었는데, 한 시간 만에 금세 깜깜한 밤이 되었다.

리드 빌딩 입구는 대로변이지만, 버스 정류장 인근은 인적이 드물다. 오늘따라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끄하암-”

시끌벅적하던 바다와 달리 고요한 이곳.

그녀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펴고는 이번에 새로 산 무선 이어폰을 양쪽 귀에 끼고, 후드를 쓰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몇 걸음 옮겼을 때, 뒤쪽에 주차되어 있던 회색 봉고차 한 대가 갑자기 풀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앙- 끼이이익!

봉고차는 하루 앞에 멈추어 서더니, 문이 활짝 열리는 것과 동시에 검은 마스크를 쓴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내려 하루를 확 잡아끌어 봉고차 안에 태웠다.

드르륵 쾅!

문은 금세 닫혔고 봉고차는 바로 출발했다.

대로변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러나 봉고차 안은 조용하지 않았다.

우득-

“끄윽!”

하루는 자신의 오른쪽 팔뚝을 잡고 있는 사내의 손가락을 잡아 확 뒤로 꺾고 팔꿈치로 그의 턱을 올려치고.

퉁!

두 손가락으로 왼쪽에 있는 사내의 눈을 찌르고 목젖을 작은 주먹으로 찔렀다.

찍 푹-

“끄아아, 컥!”

동시에 뒤에서 한 사내가 칼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사색이 된 얼굴.

“가만히 안 있으면 모가지 쑤신-”

탁-

하루는 지갑으로 사내의 칼날을 잡고 확 비틀었다.

칼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떨어지기 직전, 그녀는 공중에서 낚아채며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사내의 팔뚝과 쇄골을 찍고.

푹 푹-

“아악!”

금세 몸을 비틀어, 자신의 오른쪽에서 손을 뻗으며 다시 덤벼드는 사내의 손바닥을 찔렀다.

칼날이 손바닥을 뚫고 손등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러나 사내가 그 상태로 칼날을 움켜쥐어 바로 뽑지 못했다.

그 틈에 왼쪽에 있는 눈을 찔린 사내가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의 목을 조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났다.

“시팔년 죽어어!!”

그녀는 손바닥을 찔린 사내의 배를 발로 차며 칼을 뽑아냄과 동시에 목을 조이는 사내를 봉고차 측면에 등을 부딪히게 하고, 자신의 목을 조이는 팔뚝을 가차없이 찔렀다.

푹!

“끄윽!”

그러나 사내가 손을 풀지 않는다.

하루는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두 손으로 칼의 손잡이를 잡고 생선 발라내듯이 그의 팔꿈치까지 쫘아악 찢었다.

“끄아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오며 목을 조이던 손이 풀렸다.

그때.

앞에서 덤벼드는, 손바닥에 구멍이 난 사내의 옆구리와 목을 칼로 찌르고. 하루는 휙 돌아서서 팔뚝을 부여잡고 있는 사내의 허벅지에 칼을 내리찍었다.

“끄윽!!”

푹 푸슉- 슥-

바로 칼을 뽑아 피눈물을 흘리는 사내의 눈동자에 갖다 대는 것까지, 하루가 차에 탄 뒤로 고작 몇분이 흘렀을 뿐이다.

그녀는 운전석에 있는 사내를 백미러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계속 가, 날 데려가려고 했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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