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갑질
“커헉! 컥 컥-”
이응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땅바닥에 꽂혔고, 그 충격에 숨을 쉬지 못하고 켁켁거렸다.
신해수는 가차없이 그의 등을 무릎으로 짓누르며 팔을 잡아 뒤로 확 꺾었다.
우드득-
“끄아악!!”
“이응태씨, 너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 힘 빼, 반대쪽도 꺾기 전에.”
“네, 네 선생님 힘 뺐습니다….”
수갑을 채우고 고개를 들자 하루가 앞에 서 있었다. 해수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이응태를 일으켜 데려가는 해수의 표정을 썩 좋지 않았다.
하루의 실력이 지금 오갱이나 근육몬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위험한 상황을 겪고 나면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 *
강진서 강수대 본부.
강사현과 이응태가 보험금을 노린 살인을 공모했다는 것은 현재의 정황과 깨톡 대화, 보험 가입 등의 증거로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목격자가 경찰이다.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을 해수가 보았고, 적극적으로 살리지 않는 정황과 해수가 CPR하는 것을 말리는 장면을 안서은이 목격했으니 살인미수 혐의는 문제 없이 기소할 수 있다.
문제는 2년 전 강사현의 전남편 사망 건이다.
이번 사건과 연결지어 재수사권은 받아낼 수 있었던, 트럭이 강사현의 전남편을 치고 도망친 뺑소니 사건.
가장 중요한 트럭은 대포차였던 데다 cctv에 트럭 운전수의 얼굴이 찍히긴 했지만 흔들리고 화질이 좋지 않아, 결국 범인을 못 찾고 수배만 걸고 흐지부지해진 미결 사건이다.
여기저기 구멍이 많았지만 아내 강사현이 마음이 아프다며 금방 조사 포기를 원하여, 형사들도 별수없이 금세 내려놓았던 것이다.
보험사도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하고.
슥-
그때, 뺑소니 건 cctv를 분석 중이던 하루가 돌연 손을 번쩍 들었다. 해수가 먼저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 찾았어?”
“네, 뭐 찾았습니다.”
“그래서 뭐, 봐봐.”
하루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여 모니터가 잘 보이게 했다. 화면에는 트럭 운전수의 얼굴이 잡혀 있었다.
“아.”
흐릿하게 찍혀있는 트럭 운전수의 얼굴, 그러나 이응태라는 것은 알 수 있을 정도의 윤곽이다.
조사 자료에 나와있는 장면과는 다른 각도, 확실히 하루가 찾은 장면이 이응태를 단번에 떠올리게 한다.
해수는 정보과에 동영상 원본을 넘겨 최대한 선명하게 복원시킨 후, 이응태에게 들이밀었다.
“2년 전 강사현 전남편 뺑소니 건 범인이야, 이게 누구로 보여?”
이응태는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요… 모,모르겠는데….”
“눈이 잘 안 보이나 봐, 기다려봐, 내가 잘 보이게 해줄게.”
“왜,왜,왜 이러세요…!”
해수는 일어나 한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잡아 머리를 고정시키고, 다른 한 손 집게손가락으로 그의 눈을 크게 뜨게 했다.
“아,아,아!! 보,보여요 보여! 잘 보여요!”
“아깝네, 곧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응태는 수갑찬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울먹거렸다.
“뭐,뭐가 나와요…흑.”
“그래, 이게 누구로 보여?”
“접니다….”
이응태의 자백을 받은 후.
해수는 그제야 자리에 앉아 자세를 고치며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강사현씨 전남편 뺑소니 살인, 그럼 살인미수에 뺑소니 살인까지… 20년쯤 나오겠다. 재수없으면 무기 뜨고.”
“에? 아,아,아니 20년? 무기징역? 나,나,나는 시킨 대로 하기만 한 건데? 그년은, 그년은요?”
“강사현씨는 현남편 박제원씨 살인미수로 한 2년 살겠지 뭐.”
쾅!
잔뜩 겁먹었던 그의 눈에 억울함이 스쳤다.
이응태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 전남편, 강상한, 그래 강상한도 저년이 죽이라고 했다니까? 왜 그건 안 넣어요? 내가 혼자 한 거 아니라니까?”
해수는 그의 억울함을 이해한다는 듯이 자비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까닥거려 그를 앉혔다.
“알아, 그런데 증거가 없잖아, 없으면 그냥 너 혼자라도 죗값 다 짊어져야지.”
“증거? 아, 증거… 아이 씨, 저년이 시킨 거 맞다니까?”
이응태는 중얼거리며 머리를 쥐어짜다가 취조실 밖을 손가락질했다.
무려 살인 공모를 하면서도 상대방을 무조건 믿고 흔한 녹음 하나 안 했나보다. 이런 머리이기에 강사현이 이용해먹은 듯하다.
“아 진짜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저 년이 끼어들어서, 저 년이 인생역전 한 번 해보자고 꼬셨다고오!”
해수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깍지를 끼고 허리를 조금 더 숙여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공범이 적극적으로 범죄를 밝히려고 한다면, 증거를 찾는 것은 시간 문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자, 강사현씨와 관련된 것들… 전부 천천히 얘기 해봐요. 먼저 어디서 강사현씨를 처음 만났습니까?”
“어디서? 그야… 클럽에서….”
이응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느리게 기억을 더듬었다.
.
.
.
잠시 후.
끼익-
해수가 취조실에서 나왔다.
“뭐 좀 나왔어?”
두 사건이 얽혀있던 만큼 할 일이 많아, 취조를 지켜보고 있던 대원은 없었다.
해수는 팀장과 눈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대포차량, 강사현이 구해준 거랍니다. 판매자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대포차… 오케이.”
대포차량 판매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렇기에 그들 중 일부는 구매자가 구매를 하거나 찾아오는 장면을 꽤 오랫동안 보관해놓는다. 만만한 자들이면 구매자에게 협박과 금품갈취를 위해서, 또는 여러가지 목적을 위해서다.
해수와 강수대 대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포차 판매업자를 찾아갔고, 삼일 만에 강사현이 대포차량이자 전남편을 뺑소니로 치고 간 트럭을 구매하는 장면을 찾아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비로소 현남편 살인미수로 인해 전남편 뺑소니 위장 살인사건을 밝혀낸 것이다.
곽팀장은 공범 둘을 모아놓고 대포차량을 구매하는 장면을 틀어주었다.
그것을 보자 강사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이응태가 손뼉을 쳤다.
“역시, 선수들이라서 금방 찾는구만?”
그 반응에 강사현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니가 말했어? 너 어쩌자는 거야.”
“뭐가 어쩌긴 어째, 나 혼자 독박 쓰리? 다 니가 시킨 거잖아? 난 시킨 대로 한 죄밖에 없다고.”
“남자 새끼가 의리도 없이… 날 위해서라면 대신 죽기라도 해준다며 이 사기꾼 새끼야!”
“의리는 미친, 니가 내 위치 불었잖아 이 썅년아!!”
이응태는 팔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 이마를 강사현에게 들이받았다.
퍽!
“꺄악!!”
코뼈가 부러진 강사현은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독한 눈빛으로 일어나 힐로 이용태의 가운데 다리를 깠다.
“이 개새끼야!!”
따로 취조를 할 필요도 없었다. 둘이 붙여놓으니 알아서 술술 불고 피 터지게 싸웠다.
곽팀장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어나 취조실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똑똑
“됐어, 이제 둘 다 끌어내.”
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해수와 하루가 들어왔다.
해수를 보자 분노조절잘해 이응태씨는 바로 뒷걸음질을 치며 눈을 내리깔았고, 강사현은 하루에게도 발길질을 하다가…
우드득
“꺄아아악!!”
발목이 꺾였다.
* * *
보험금을 위해 전남편을 살해하고, 현남편도 살해 시도를 했던 드라마같은 강사현 사건은 꽤 이슈가 되었다.
[남편 살해만 두 번째? 사망 보험이 살인을 부른다]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인간이 직접 일으킨 인재라고도 생각합니다. 이런 흉악범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법을 강화시켜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노력해주세요.
┗졸라 선비님이시네 알겠습니다.
┗기사제목 ㅈ같네 사망보험이 사람 죽였냐? 보험금 노리고 살인한 년이 미친년이지
┗뭐 크게 다른 말도 아님, 은근히 유도하잖아? 보험사때문에 범죄 늘어난 건 모름? 님 보험팔이임?
┗그래도 두 번째 남편은 살아서 다행이다
┗당한 남편이 병신
[전남편 살해자 강모씨, 현남편 익사 살해 시도 중 현직 경찰에게 발각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이걸 걸리냐 ㅋㅋㅋ
┗순찰 중도 아니고 휴가 중에ㅋㅋㅋ코난이냐?
┗아 진짜네? 쉬는 날에 이걸 발견했다고? 쩐다 진짜, 그 와중에 이 분도 신모씨네, 신형사 아니야?
┗보성 광장 파출소 소속이라자나, 신형사님은 자랑스런 강진경찰서 강수대이시거든?
┗현남편은 전생에 거북선 조타수였나보네, 저 경찰한테 매년 명절때마다 찾아가라
┗여자 이쁜거같다 모자이크좀 치워라
┗ㅈ이 대가리를 지배한 나쁜 예
┗신형사님항상응원합니다신형사님멋있습니다신형사님덕분에새인생을살고있습니다충성!
┗뭐냐 이 오징어냄새 풀풀 풍기는 개찐따는?
┗인터넷이라고막말하지마십시오찾아가서턱걸이대결걸기전에
┗요즘 경찰이 열일하는거같기는 함
┗(링크)보성광장 아이스크림녀/죠녜
해수는 댓글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맞짱 회원들을 턱짱으로 바꾸었다.
* * *
같은 시각, 대성 E&M 대표이사 사무실.
“어머…!”
안서은은 어찌됐건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 기사로 나오자 더욱 꼼꼼히 챙겨보았다. 그러다가 의심스러운 링크가 있어 눌렀다가, 놀라서 두 손으로 볼을 감쌌다.
영상에는 자신이 비키니를 입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멀리서 찍었고,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핫)보성광장 아이스크림녀]
┗여기어디냐 여기가 천국이냐
┗저 몸매에 얼굴이 안 이쁠수가 없다 얼굴보고싶다
┗여봐라! 얼른 모자이크를 치워라!
┗(3:46)(3:46)(3:46)(3:46)
┗오오씹 감사감사 대충그랜절박는이모티콘
┗와… 나도 아이스크림이 되고 싶다
┗저손님새끼 눈나가 바꿔준다는거 그냥 달라고 하는 거지? 개부럽다
┗나도 저 날 저기 갔는데 왜 못 봤지? 내가 봤을 땐 할머니밖에 없던데
┗직관한 사람으로써 알려주는데 몸매보다 얼굴이 더 이뻤음, 여배우인 줄, 잠깐 한 한시간 있다가 경찰에 신고 들어와서 가던데
┗아니 왜 신고를 해? 저 정도면 보성시에서 돈 주고 홍보대사 써야하는 거 아니냐?
┗내 말이
┗비제이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 아이스크림눈나 별스타 아시는 분, 사례합니다
서은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댓글을 꼼꼼히 읽으며 흐뭇해했다.
그녀의 반응에 강비서가 고개를 기울여 힐끔 모니터를 보고는 황급히 자세를 다잡았다.
“죄, 죄송합니다. 바로 영상 내리고 소송 절차 진행하겠습니다.”
서은은 손을 들어 소심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됐어요. 나쁜 일도 아니고, 얼굴도 가렸는데. 뭐, 우리 그렇게 까다로운 기업 이미지 주지 맙시다.”
“아, 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다음 스케줄이….”
“일성전자 배신주 사장의 출간기념 사인회입니다.”
강비서의 말에 서은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사인회는 무슨… 누가 보면 연예인인 줄 알겠네요.”
“진짜 연예인들은 좀 오겠죠, 가실까요?”
“하하… 네.”
* * *
강수대는 강사현 사건을 마무리짓고 다시 보성 광장 파출소로 출근했다.
전에는 주간이었고, 이번에는 가장 힘든 타임인 주야간이 맞물리는 18시 출근이었다.
이제 일주일 후면 여름 파출소 특별 지원 기간도 끝이 난다.
그래서인지 다시 출근한 강수대를 파출소 경찰관들이 유독 반겼다.
“충성!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사로 봤습니다. 역시 강수대 클라스… 그 잠깐 사이 사건을 후딱 처리하고 미제 사건까지 해결하고 오셨군요.”
경찰관들이 두 엄지를 추켜들며 칭송한다. 기존 팀원이나 해수와 달리 하루는 이런 환대를 어떻게 넘겨야할 지 몰라 근무모를 푹 눌러쓰고 구석으로 숨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파출소장도 호탕하게 웃으며 강수대를 반겼다.
“키햐, 내 친구 자랑스럽다! 일루 와봐!”
“아이 싫어, 징그럽게, 어어 턱수염 들이밀지 마!”
여자영 순경은 해수에게 몰래 다가와 속닥거렸다.
“신해수 경사님? 수고 많으셨어요. 이거 좀 드시겠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저는 이제 퇴근이라서… 아쉬워요. 화이팅.”
여순경이 작은 주먹을 들어보인다.
해수는 여순경이 건네준 종이컵 냉커피를 받아들며 마주 주먹을 쥐어보였다.
하루는 그 순간을 캐치하고는 여순경이 퇴근하는 그 뒷모습까지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시선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눈을 뗐다.
교대 시간, 해수와 하루가 가야 할 3구역 근무자가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소장은 근무자를 확인하고는 직접 무전을 했다.
“여기 광장 하나, 광장 셋, 광장 셋 문제 있나?”
-여, 여기 광장 셋, 아, 그… 곧 복귀하겠습니다…
무전 소리에 소장이 미간을 좁혔다. 소장의 무전을 선임이 아닌 신입이 대신 무전을 받았다. 게다가 목소리가 떨린다.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보고하기 어려운 종류의.
소장은 해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이 생겼나본데, 직접 가서 보고 좀 해줘요.”
“예 알겠습니다.”
해수는 하루와 눈을 마주치고는 무전을 들고 빠르게 파출소 밖으로 나섰다.
꽤 거리가 있기에 적당한 속도로 뛰어서 3구역에 전 근무자가 알려준 장소로 도착했다.
모래사장 구석에 젊은 남녀 대여섯 명이 모여있다.
그 중심에는 나이가 지긋한 경찰관 한 명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젊은 순경이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젊은 무리 중에 가운데에 금목걸이를 한 남자가 히죽거리며 경찰관을 올려다보았다.
“잘 안 들린다. 더 크게!!”
“자,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 이 할배가 진짜! 경찰이 되가지고 그따위로 목소리가 모기같으면 시민들이 안심하겠어?!”
남자는 윽박을 지르며 모래를 경찰관의 얼굴에 강하게 뿌렸다.
그 모습에 하루가 바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