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남다른 충성심
신해수가 급하게 취조실을 나오자 하루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하순경.”
“네.”
하루는 바로 일어나 해수를 따랐다. 일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같이 살아서 그런지 죽이 잘 맞는다.
“뭐,뭔데?!”
“박제원씨가 위험한 것 같습니다. 팀장님이 강사현 취조해주십시오.”
“허… 알았다.”
곽팀장을 뒤로 하고 해수는 주차장으로 가면서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젠장!”
해수는 직접 운전석으로 들어가며 이번에는 정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신형님
“이 번호 위치추적, 당장.”
-네! 바로 추적하겠습니다!
신고자 박제원이 사는 고암동 방향으로 출발하고 5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정영수에게 문자가 왔다.
해수는 휴대폰을 하루에게 덥썩 넘겼다.
“문자.”
“고암동 둘레길로…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겠습니다.”
“그래.”
부아아아앙-
해수는 대답과 동시에 액셀을 깊게 밟았다.
박제원의 휴대폰이 꺼지기 전 마지막 위치는 무궁화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약간 남쪽…
지이이이-
해수와 하루는 그곳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골목길에 덩치 큰 사내 세 명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해수는 성큼성큼 걸어서 그들에게 향했다.
가까워지니 그들 중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해수의 접근을 눈치채고 돌아섰다. 그런데 얼굴이 낯익다.
생각났다. 직접 정신교육을 시켰던 맞짱 카페 회원들이다.
“뭐야, 니네 여기 왜 모여있어?”
“시,신해수 형사님….”
“헙!”
“헛.”
세 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흠칫하거나 한 걸음 물러선다.
그 중 한 명이 깨진 휴대폰 들고 있다. 박제원의 휴대폰과 같은 기종이다. 위치도 동일하니 그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해수는 검지로 휴대폰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니네가 왜 가지고 있어.”
그들이 얼굴에 당황이 물든다.
“어,아….”
“그,그게, 이거!”
“야야, 애들아,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신형사님 오셨으니까 오히려 잘 됐지…!”
앞으로 나선 사내는 예전에 만났을 때 처음으로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자칭 전국구 주먹 구름이라고 하던 놈이다.
구름은 심호흡을 길게 내쉬고는 해수를 향해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가 멈칫하더니, 다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신,신형사님, 우리가 이제 건전하게 턱걸이 동호회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호회명은 턱짱, 대상은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 운동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그래서.”
그는 ‘빨리 결론만 말해라’ 라는 것 같은 해수의 눈빛 압박에 침을 꼴깍 삼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휴대폰의 주인분이 운동이 필요해 보여서 턱걸이를 권유하려 했을 뿐입니다. 절대 위협하지 않았는데… 도망치셨습니다. 휴대폰도 떨어트리시고….”
“음….”
일단 턱걸이 동호회를 만들었다는 것은 거짓말 같지 않다. 셋 다 광배근과 승모근이 전보다 더 발달하였다.
그리고 애초에 가오가 뇌를 지배한 맞짱 회원들은 거짓말이란 남자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다.
“어느 방향으로 갔어, 이쪽?”
해수가 검지로 그들의 뒤쪽을 가리키자 세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흩어져서 그 사람 찾아, 찾으면 내가 보냈다고 먼저 말해. 도망가지 않게, 그리고 나한테 전화해, 전화번호 있지?”
그들이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어 번쩍 들며 외쳤다.
“있습니다!”
“영광스럽게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래, 찾아, 못 찾으면 니넨 저 휴대폰처럼 된다. 알았어?”
해수가 이번에는 깨진 휴대폰을 검지로 가리키자 회원들이 움찔 떨었다.
“헙!”
“헉-”
“네 알겠습니다!”
“뛰어!”
해수의 말이 무슨 버튼이라도 되는 것처럼 턱짱 회원들은 뿔뿔이 삼방으로 흩어졌다.
박제원이 다시 올지 모르니 하루는 놀이터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해수는 정면으로 찾으러 갔다.
그렇게 흩어져 찾은 지 5분이 되지 않았을 때, 진동이 울렸다.
지이이잉
[맞짱 구름]
“찾았어?”
-네 신형사님! 여기 계십니다! 신형사님이 보냈다니까 멈추셨습니다.
“바꿔봐.”
-네? 네네, 아저씨, 전화받으라는데요. 가까이 좀, 진짜 신형사님입니다. 아…
곧 박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멀리서 얘기하는 듯하다. 거리를 두고 스피커폰으로 말하는 것이다.
-여,여보세요?
“신해수입니다. 그 친구들 제가 보낸 거 맞으니까 안심하시고 같이 아까 휴대폰 떨어트리셨던 놀이터로 오세요.”
-아, 휴… 저는 이 사람들이 아내가 보낸 줄 알고… 신형사님이 이렇게 빨리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대한민국 견찰… 아니, 경찰들 진짜 오해를 많이 했네요. 최고입니다! 제가…
“네,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해수의 목소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렸는지 박제원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곧이어 턱짱 회장 구름이 박제원을 데리고 왔고, 지레 오해하며 벌어진 일이라 휴대폰은 박제원이 알아서 하기로 했다.
해수는 턱짱 회원들이 다시 모이자 그들을 둘러보다가 회장 구름과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잘했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전하게 활동하고, 지켜본다.”
“지,지켜본다….”
“여,영광입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턱짱 회원들은 칼각으로 경례까지 했다. 해수는 이상하게 그들에게서 막내 우강철의 기운이 느껴졌다.
키운 적도 없는 충성심이 그들에게서 풍겨왔다.
“어, 뭐, 그래.”
그들과 멀어지고 박제원과 함께 차로 향했다.
“어디 가시는 길이었습니까? 자차는 있으십니까?”
“아, 여기가 저희 부모님 집입니다. 잠깐 담배 사러 나왔다가… 전 다시 들어가야죠.”
“네, 그럼… 휴대폰은 바꾸셔야겠습니다.”
“아 이거, 그러게요. 알겠습니다.”
그를 보내고 차에 타서 운전대를 잡자마자 하루의 얼굴이 훅 가까워졌다.
오묘한 냄새가 풍겨온다. 향수도 쓰지 않는데, 그녀에게는 기분이 이상해지게 만드는 좋은 향이 난다.
“뭐, 왜.”
“저 사람들 재밌습니다.”
“그래?”
“신선배님께 충성심이 높습니다. 합격입니다.”
“도대체 뭐가 합격인데.”
하루는 싱긋 웃으며 얼굴을 멀리했다. 이렇게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던가?
그때, 무전이 울렸다.
-여기 오갱! 이응태 눈치 까고 튀었어, 형님 이새끼 위치 추적 좀.
-이런 씨… 알았다.
해수는 무전을 듣고 정영수에게 바로 전화하여 박제원의 위치 추적을 멈추고, 이응태의 번호를 불러주고는 그곳으로 바로 향했다.
* * *
같은 시각, 곽팀장은 취조 테이블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손에 쥔 아몬드를 아그작 아그작 씹어먹었다.
그렇게 세 개째 먹는 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주머니에서 압수했던 강사현의 휴대폰을 툭 내려놓았다.
휴대폰 화면에는 강사현과 내연남 이응태의 대화가 떠 있었다.
그것을 본 강사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분명 이번 경찰 수사가 들어오고 나서 아예 대화 내용을 지웠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이 정도 복구는 일도 아니지.”
둘의 채팅방에는 남편 박제원을 살해하기로 공모를 한 대화가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두 번째 살인을 공모한 사람들치고 치밀하지 못한 행동이 강수대를 도왔다.
“어딨어요? 이응태.”
“몰라, 너 같으면 얘기하겠어?”
“반말은 하지 마시고, 나랑 띠동갑은 되겠는데, 그래서 동갑인가? 나랑 친구할래?”
친숙하게 다가오자 강사현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몸을 뒤로 물렸다.
“미친…!”
팀장은 피식 웃으며 다시 몸을 물리고, 아몬드를 씹어 먹으며 말했다.
“어차피 정황도 증거도 확실해서 징역은 확정이고, 문제는 판결인데, 이게 대한민국 법이 이상한 게 시킨 사람보다 직접 실행한 사람이 더 가중처벌 돼, 시켜서 한 건데? 억울하든 말든 칼을 쥐어준 놈보다 칼을 들고 찌른 놈의 죄가 더 크다고 치는 거지.”
본래는 시킨 사람이 얼마나 강제력을 가졌느냐, 실행한 사람의 의지가 어땠는지에 따라 다르다.
팀장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숙여 강사현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고는 속삭였다.
“그런데 그놈이 안 잡힌다? 그럼 당신이 그 벌 다 받는 거야, 가볍게 한 2년 살 거 15년 사는 거지, 그만큼 그 남자가 중요해?”
팀장의 말에 강사현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팀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십수년이 넘는 형사 생활을 하면서 나쁜 새끼들의 유일한 장점(?)을 알게 되었다.
하나같이, 의리가 쥐뿔도 없다는 것이다.
* * *
해수 조와 오갱 조가 이응태의 휴대폰이 꺼진 위치를 중심으로 수색하고 있던 그때.
-이응태 위치 나왔다.
무전이 울렸다. 곽팀장이다.
“어딥니까?”
-삼안 촌구석으로 튀었어, 주소 보낸다.
-역시 형님, 수고했어요.
“예, 수고하셨습니다.”
-너네가 수고해.
해수는 바로 하루와 함께 팀장이 찍어준 은신처로 향했다.
은신처에는 오갱과 막내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그곳은 촌 허허벌판에 비닐하우스 몇 개가 달랑 있는 곳이었다.
오갱은 놈이 차를 타고 도주하거나 다른 이동수단으로 도주할 것을 대비해서 차에서 대기하고, 막내는 하나밖에 없는 도주로를 차단했고, 해수와 하루는 비닐하우스로 천천히 접근했다.
마치 고양이가 사냥감을 향해 다가가듯 숨과 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스슥 슥
-낄낄
문 앞에서 귀를 기울여보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루도 느꼈는지 해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해수가 들어가려는 문이 아닌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무슨 자신감인지 문이 잠겨있지도 않다. 해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휴대폰을 낡은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비스듬히 세우고 예능 프로그램을 크게 틀고 보면서 짜장라면을 먹고 있는 이응태의 옆모습이 보였다.
“흐흐, 흫 아 웃겨, 후룹”
해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재밌냐?”
낯선 목소리에 이응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뭐여 시펄!”
그는 짜장라면이 담긴 냄비를 해수에게 던지고 품에서 손도끼를 빼들고는 뒷문으로 도망쳤다.
무기를 들었으니 덤빌 수는 있지만, 바다에서 한 손으로 자신을 가볍게 제압했던 해수의 괴력은 덤빌 생각을 일찍부터 접게 하였다.
쾅!
뒷문을 발로 차서 열자마자 검은 마스크에 후드를 푹 눌러쓴 하루와 마주쳤다.
“비켜 시펄!”
이응태는 서슴없이 하루에게 손도끼를 휘둘렀다.
훙-
하루는 옆으로 한 발자국 옮기며 삼단봉을 앞으로 쭉 뻗었다. 삼단봉은 펼치지 않은 상태였다. 길게 펼치면 찌르기를 했을 때 다시 접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초근접 전투 스타일 특성상 삼단봉의 길이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
콱!
“악!”
삼단봉 끝이 이응태의 손목을 찍었다. 뻗어오는 삼단봉에 이응태가 전력으로 손을 휘둘러 부딪힌 꼴이다.
손목 뼈가 골절된 것 같은 찌릿한 통증에 그는 도끼를 놓쳤고, 그 사이 하루의 재빨리 한 번 더 뻗었다.
쿡!
“컥!”
이번에는 삼단봉이 이응태의 목젖을 찔렀고, 그는 캑캑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에 묵직한 바위 같은 것에 막혔다.
턱
두꺼운 손이 그의 머리칼을 강하게 움켜쥔다. 귓가로 악마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 왔네?”
동시에 이응태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뒤돌기라도 한듯이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콰광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