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요트 위에서
보성 광장 파출소.
할머니의 정체는 왜소한 몸을 지닌 남성이었다.
분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허리까지 굽히며 연기를 했던 것이다.
모자와 가면을 벗기니 아직 20대 초중반의 젊은 남자였다.
“이름”
“쪽새.”
“뭐? 제대로 말하세요.”
“쪽새요 족새, 김쪽새”
“이 사람이 지금 이름을… 맞네, 음, 이름이 특별하고 좋네.”
컴퓨터 앞에 앉은 경찰이 헛기침을 했다.
쪽새는 특별하다는 말에 입술을 삐죽삐죽거렸다.
“…그러니까 할머니 분장으로 부탁하면 잘 들어주니까 그랬다고요?”
“편하니까….”
쪽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여성처럼 하이톤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길거리장사를 이것저것 해보다가 실패해서 좌절해 있는데, 다른 할머니가 한 번 젊은 여자에게 부탁하는 것을 보고 떠올린 방법이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자리를 비웠다가 와서 미안하다며 아이스크림 하나만 주면 지들이 되려 고맙다고 하니까… 개꿀이라고 생각해서….”
조서를 작성 중인 경찰의 뒤로 곽팀장이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 정성이면 다른 정상적인 일을 해도 몇 배로 벌겠다.”
“정말요?”
“몰라.”
쪽새의 죄목은 매우 애매했다. 도망쳐서 일단 잡기는 했지만, 노동을 강제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전과는 없네, 솜씨만 보면 이전에도 이것저것 한 것 같은데….”
“처음이에요 처음, 봐주십시오.”
쪽새는 경찰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안서은에게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서은을 힐끔 보았다가 검지를 추켜올렸다.
“그런데, 진짜 예쁘세요. 연예인인 줄.”
서은은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며 피식 냉소를 흘렸다.
강비서가 서은에게 작게 말했다.
“유변호사 부르겠습니다.”
“아니, 됐어요.”
현재로써는 피해자가 서은밖에 없었고, 그 피해가 경미하기에 경찰들도 합의를 권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부터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아셨죠?”
“네,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서은은 합의금으로 만 원만 받고 끝냈다. 물론 일하면서 팔았던 아이스크림 값은 그녀의 몫이었다.
곽팀장은 신나서 껑충껑충 뛰며 파출소에서 멀어지는 쪽새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젊고, 몸도 날쌔고, 파쿠르 잘 하고, 변장도 잘해. 재주가 참 많네, 아깝다 아까워.”
해수는 팀장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번호 입력했으니까 감시 좀 하겠습니다.”
“우리 돌격이 척하면 척이네, 그래, 저런 놈은 분명 또 뭔가 일 친다.”
“네.”
사건이 정리된 후, 해수와 하루, 서은 이렇게 셋은 그제야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후… 오자마자 이런 일을 겪을 줄이야.”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왜요. 둘이서만 바닷가 오고, 저는 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이상하게 서은이 삐죽거린다. 해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민주국가에서 개인이 어딜 가든 사유지만 아니라면 자유지요.”
“휴가라서 왔어요. 나도 바다 보고 싶어서, 한 5년 만에 보는 것 같은데.”
“음…”
그때 하루가 끼어들었다.
“저는 처음 봤습니다.”
“저, 정말?”
“음….”
해수는 몸을 돌려 하루를 응시했다. 모르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녀가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그저 여름 파출소 지원을 나온 것에만 집중했었다.
“어땠어? 어땠어요. 처음으로 바다를 본 기분이.”
서은의 감성적인 질문에 하루가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뭔가… 뭔가… 뭉클했습니다. 이런 것도 있구나, 말로 표현해내기가 힘듭니다. 내 세상이 넓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아니, 잘 표현하는데요?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해수는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파출소에서 나오는 경찰들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만 가야합니다. 아직 근무 시간입니다.”
“아… 맞아요. 그렇죠, 그럼 언제 쉬시나요?”
“저는 내일 쉬는 날입니다.”
“저 하루는 내일모레 쉽니다.”
서은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하루가 빤히 바라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아, 어떡해요. 두 분이 따로 쉬다니, 같이 시간 보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죠, 그러면 내일 연락 드릴게요.”
“네, 그럼.”
해수가 먼저 걸음을 옮겼고, 하루가 그를 따라가다가 멈춰서고 서은에게 당부했다.
“안서은님, 강비서님과 김가드님을 항상 데리고 다니십시오. 수많은 남자들이 서은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아, 풉, 네, 하루씨도 화이팅.”
서은이 주먹을 쥐고 내리자 하루도 마주 주먹을 쥐더니 그녀에게 올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뭔가 비슷한 제스쳐지만 뜻이 달라진 듯하다.
저벅 저벅 저벅
해수와 하루가 근무지로 가는 길, 해수는 말없이 걷다가 대뜸 툭 말을 던졌다.
“처음 봤구나, 바다.”
“네.”
해수는 하루가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당연히 감회가 남다르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
그것이 내심 미안해졌다.
“또 안 가본 곳이 어디지? 계곡은, 산은?”
“아시다시피 언젠가 가본 적이 있을지라도,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회사 훈련소, 지하 투기장, 이후에는 해수님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그녀의 평생에 사람답게 살았던 적은 몇 년 안 된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금 상기시키면 가슴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 가자, 다음에 쉴 때는 계곡 가고, 그 다음에는 산도 가보자, 볼 게 많다.”
“…….”
하루는 투박한 해수의 표현에서 마음을 읽었다. 그녀는 해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 * *
다음날.
아침 여덟시 땡 하자마자 안서은에게 전화가 왔다.
-준비 되셨죠?
“외출 준비라면 아직 안 됐습니다. 현재 해안가를 달리다가 3분 전에 숙소로 복귀했습니다. 샤워를 해야합니다.”
-집 앞입니다. 5분 드릴게요.
“충분합니다.”
해수는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오랜만에 근무복이나 형사복이 아닌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입으니까 느낌이 확 달라지네요.”
서은은 라운드티에 반바지를 입은 해수의 모습이 꽤 낯설게 느껴졌다.
“칭찬입니까?”
“아니…요.”
“음.”
서은은 해수를 데리고 선착장으로 가서 요트를 탔다. 언제 탈지 모르니 아예 휴가 기간 동안 대여를 했다고 한다.
서은과 해수는 요트를 타고 그 수많은 인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바다로 향했다.
그녀의 요청에 따라 두 수행원은 대동하지 않았다. 강비서도, 김가드도 해수를 믿고 그 실력을 알기에 쉽게 수긍했다.
서은은 놀랍게도 요트 면허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배 위에는 둘 뿐이었다.
“낚시 할 줄 알아요?”
“방법만 압니다. 즐겨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도요. 한 번 같이 해봐요. 여기가 무슨 포인트라고 하던데.”
“네, 천천히 해보죠.”
서은은 미리 준비되어 있는 낚싯대와 미끼를 꺼내왔다.
“음, 으….”
지렁이를 본 서은의 얼굴이 흐려졌다.
하지만 그녀는 연애 경험도 없고 인간관계도 좁은데다가 위치 자체가 여우짓을 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이런 때에 어떤 행동으로 상대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그녀는 징그러워하면서도 해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손으로 지렁이를 들어 바늘에 끼우려고 애를 썼다.
“앗!”
그러다 다시 놓쳐서 땅에 지렁이를 떨어트렸을 때, 돌연 해수의 손이 훅 다가왔다.
“이렇게, 꽉 잡고, 상대방의 목을 꿰듯이….”
“자,잘 하시네요.”
“그렇습니까?”
서은의 칭찬에 해수가 고개를 들었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서은은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찰팡 찰팡 찰팡
푸르른 하늘, 사람 한 명,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오롯이 젊은 남녀 둘이서 있다.
물이 보트를 은근히 흔들고 있고, 주변은 적막했다.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기분이 묘해질만 한 곳이다.
서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입술이 메말랐는지 자꾸만 침을 묻힌다.
이를 본 해수는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상대방의 감정을 전에도 느낀 적이 있는 듯했다.
병원, 정영수의 어머니 건으로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을 때가 생각났다.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이지?’
하지만.
그녀의 배경이나 외모, 그보다 빛나는 커리어로 인해 해수는 그녀의 감정이 느껴지는 그대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기 힘들었다.
그때, 서은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해수씨는, 하루씨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루….”
해수가 시선을 내리며 질문을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의 분위기가 갑자기 확 바뀌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에, 서은은 실수를 깨닫고 다시금 질문했다.
“그럼, 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서은씨는, 좋은 파트너이자….”
해수는 조금씩 확신이 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 대답은 쉽사리 내뱉을 수 없었다.
“좋은 파트너이자?”
해수는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서은을 보며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고 입을 다시 열었다.
“좋은…”
그때.
후웅-
갑자기 하늘에 새까만 장막이 드리워지더니, 이내 해수의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다시 검은 장막이 걷혔을 때는, 전혀 다른 광경이 보였다.
-…그러니까, 여보도 해보라니까, 내 친구 하는 거 봤잖아, 겁나?
눈앞에 수영복을 입은 한 젊은 여인이 보인다. 아래에는 깊이를 쉽게 추측할 수 없는 바다가 보였다. 언덕같은 곳에 올라가 있는 듯하다.
-형님! 형님도 빨리 뛰어보세요! 엄청 재밌어요!
아래에서 한 까만 피부에 우락부락한 남성이 손을 흔들며 자신을 재촉한다.
‘허억, 허억 허억-’
바닷속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여보, 알잖아, 나 수영 못 하는 거.
남자의 말에 여자가 혐오의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답답하다 진짜, 내 친구 앞에서 쪽팔리게, 남자가 이 정도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해? 튜브 던져준다고, 아래에 쟤도 있잖아. 병신이야?
-하… 진짜.
남자가 일어서자 여자가 눈을 반짝인다.
-오오 하는 거야? 이야, 정진구 멋있는데?
-진짜 내가 딱 한 번만 한다. 여보 위해서, 다음부터는 겁쟁이니 병신이니 하지 마.
-당연하지! 빨리 뛰어봐, 내가 사진 잘 찍어줄게.
-후읍, 하나, 둘…
퍽!
예상치 못한 순간에 떨어져내리는 몸.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만큼 얼어붙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때 뒤에서 여자가 엉덩이를 발로 찬 것이다. 남자는 우악스럽게 바닷물에 빠졌다.
-어푸 어푸! 사,살려줘! 어푸!!
남자는 물에 들어가면 무조건 가라앉는 맥주병이었다. 생각치 못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짠 바닷물도 마시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느낌이 싸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옆에 아내의 친구라는 놈이 다가오지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에게 다가가도 다가간 만큼 멀어진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돌연 뛰어내리기 전에 상황이 떠올랐다. 주변에 이상하리만치 인적이 드물었다.
‘아, 위험이라고 적혀있는 레드라인을 넘어왔었지.’
허우적대며 아내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튜브를 던질 것처럼 들고 있는 상태로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남자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예전에, 연애하던 시절.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 진짜인지 실험을 한다며 개구리를 잡아와 물에 넣고 끓일 때의 그 눈빛이었다.
‘언제 죽을지 기대하는 눈빛.’
남자는 그 눈빛을 보다가 의식을 잃었다.
* * *
“허억, 헉! 컥, 컥!!”
서은은 방금 전까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심장을 졸이다가, 돌연 해수가 숨을 몰아쉬자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 튼튼하고 강한 해수가 다리가 풀려 요트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했다.
“해,해수씨, 해수씨 괜찮아요? 갑자기 왜…!”
서은은 해수가 뭘 먹거나 마시지도 않았고, 잠을 자고 있던 것도 아니기에 그의 행동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해수가 눈을 번쩍 뜨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다이빙, 다이빙이 가능한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네?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