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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너무 강함-124화 (124/255)

124. 아이스크림 할머니

강진시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남짓.

깜빡 잠이 들었던 안서은은 솔솔 들어오는 바다 특유의 짠내에 눈을 떴다.

“아….”

마침 해변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서은의 눈앞에 별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멋있어요.”

“대표님 깨셨습니까? 저도 오랜만에 봅니다. 바다.”

“그러게요.”

젊은 나이에 대성 엔터의 대표이사가 되었고, 대성 병원과 가드, 호텔까지 대표 역할을 하다 보니 항상 일에 치여서 살았다.

시간이 나도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바다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즉흥적으로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바다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은은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에 멍한 눈으로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김가드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가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정차시켰다.

5분쯤 지나자, 서은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깜빡였다.

“여기서 내릴게요. 일단….”

그녀는 미처 보지 못했던 밖에 수많은 인파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다행히 비키니를 입은 여성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다섯 명에 한 명꼴로.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요.”

“여기서 말입니까?”

“네.”

슥 스윽-

서은은 바로 단추를 풀고 블라우스를 벗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운전석에 있는 김가드와 조수석에 강비서가 시선을 휙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차 안에 지독한 적막이 흐르고, 두 남자는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상상력을 자극하는 옷이 스치는 소리가 멈췄다. 그러고는 둘 사이로 서은의 작은 얼굴이 툭 튀어나왔다.

“여기 계속 있으시려고요? 밖에 나가 있는 방법도 있는 것 같은데.”

“아, 아 네 죄송합니다.”

“저, 저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두 남자는 빠르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오피스룩의 정석으로 입고 있던 서은이 검은색 비키니에 하얀색 얇은 카디건으로 갈아입고 차 밖으로 나왔다.

서은을 보자 강비서와 김가드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처음 보는 안서은의 수영복 차림에 눈을 떼야 하는데 바로 떼지지가 않았다.

서은은 그들의 반응을 보고는 피식 미소를 흘렸다.

“뭐, 나쁘지는 않은가 보네요. 가요.”

강비서는 차를 주차장에 놓으러 가고, 김가드는 서은의 뒤에 바로 붙었다.

서은은 몇 발자국 걷다가 샌들을 벗어들고 맨발로 모래를 밟았다.

“감촉이 진짜 부드러워요. 좋다. 신기하다.”

“제가 들겠습니다.”

김가드는 서은의 감성적인 말 따위는 들리지 않고, 그녀가 샌들을 불편하게 들고 있는 것만 신경 쓰였다.

하지만 서은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샌들을 든 손을 휙 안쪽으로 당겼다.

“아니에요. 이건 이렇게 들고 있어야 더 예뻐요.”

“아 네, 죄송합니다.”

서은이 해변을 대충 둘러보고 강비서를 마중 나가는 길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저기… 아가씨.”

“네 할머니.”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얼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허리도 매우 굽었다.

“나 화장실이 급해서, 다녀오려는데 이거 잠깐만 맡아줄 수 있어요?”

“네?”

“손님이 오면 아가씨가 팔아주고.”

할머니가 가리킨 곳에는 이동식 아이스크림 판매기가 있었다.

할머니의 말에 김가드가 앞으로 나섰다.

“죄송합니다만 이 분은….”

서은이 재빨리 김가드를 제지하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 천천히 다녀오세요.”

“천천히…그려, 고운 얼굴처럼 마음도 고운 아가씨구려, 고마워요.”

할머니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비서도 도착했다. 그렇게 셋이서 일단 아이스크림 기계를 지켜서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어, 이, 이거 아이스크림 파는 거에요?”

“아 네네, 팔아요. 드릴까요?”

남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서은을 힐끔힐끔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 주세요.”

서은이 아이스크림을 푸려고 하자 이번에는 강비서가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맡겠다고 했는데, 가만히 계세요. 두 분은.”

“아, 네 알겠습니다.”

서은이 단호하게 끊어서 말하면 그 뒤에 더 말을 붙이면 안 된다. 강비서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왼편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스크림 스쿱을 쥔 서은이 미간을 좁히며 고민했다.

“이걸로… 이렇게 푸는 건가? 이런 모양새였던 것 같은데….”

“네 네, 그걸 이 과자에 올려주시면, 그렇게”

“됐다. 완성이네요. 하.”

“네, 하하”

모양은 좀 일그러졌지만, 떠낸 아이스크림을 콘에 무사히 올려낸 것에 서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가 아직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지도 않았는데 이를 본 남학생 또한 함박웃음을 지었다.

“여기요. 맛있게 드세요.”

“아, 그, 얼마에요?”

예상치 못한 질문.

서은의 얼굴에 난감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이렇게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한 번도 사먹어본 적이 없다. 살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가 사와서 직접 현금으로 계산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님 앞에서 얼마정도 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그녀는 도움 요청하는 눈빛으로 강비서를 보았지만, 그도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서은은 하는 수 없이 대충 떠오르는 가격을 내뱉었다.

“음… 마,만 원?”

“아…”

생각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에 남학생이 입을 살짝 벌리며 놀라워했지만, 차마 남자의 자존심에 비싸다는 말은 내뱉지 않았다. 그는 만 원짜리를 서은에게 당당히 내밀었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남학생이 용기내어 아이스크림을 사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남자들이 슬금슬금 서은에게 다가왔다.

“저도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아니, 두 개, 이만 원이죠?”

“네, 잠시만요.”

한 남자는 거금 이만 원을 주고 서은에게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갔다. 남자를 기다리고 있던 뒤의 여자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이 보인다.

“뭐, 뭐야 고작 이게 이만 원? 오빠, 알면서 저기 갔지?”

“엉? 아 이거 그 맛있어 보이잖아! 딱 그 값어치 하네.”

“값어치는 무슨, 동광장에도 똑같은 거 3천 원에 팔드만!”

“에이, 거긴 똑같은 사람이 아니겠….”

“뭐?!”

구매하자마자 다투기 시작한 커플이 지나가고, 연이어서 다른 남자들이 줄을 서서 구매했다.

“감사합니다. 호,혹시 남자친구 있으신가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 진짜 제 이상형인데 혹시 번호 좀….”

“오빠가 저기서 큰 횟집 하는데, 이거 때려치우고 오빠 가게에서 알바 할래? 두 배로 줄… 어어 이 아저씨들은 누구?”

이미 시세를 아는 이들도 세 배나 되는 돈으로 사가며 감사하다고 하는 건 기본이고, 부수적인 정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남자는 구매한 지 10분도 안 되어 또 와서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

“마,많이 퍼주세요. 많이.”

“네 알겠습니다. 잠시… 이렇게, 꾹꾹 눌러담는… 앗!”

아이스크림을 과자 손잡이 안으로 꾹꾹 누르다가, 손이 흔들려 상체에 스치고 말았다.

“죄송해요. 다시 퍼드릴게요.”

서은이 가슴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내며 콘을 버리려 하자, 손님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요. 그걸로 주세요!”

“네? 아니, 더러워져서.”

“저, 저는 원래 더러운 거 좋아합니다! 과자도 일부러 땅에 떨어트리고 먹어요!”

“특이하시네요. 알겠습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복받으실 거예요!”

그는 서은을 향해 몇 번이나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서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름이라 그런지 아이스크림 장사가 잘 되네, 이거 원가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알아보겠습니다.”

“아니에요. 나중에, 지금은 휴가니까.”

“네.”

그렇게 한 시간. 특별한 헤프닝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지났다. 서은은 손목과 다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화장실을 멀리 가셨나, 안 오시네요.”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아이스크림을 푸던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서은님?”

“응? 아.”

하루에 이어서 신해수까지 나타났다. 멋있는 근무복을 입고, 서은은 다급히 얼굴을 가렸다.

그들 앞에서 멋지게 짠 하고 나타나고 싶어서 평생 입어본 적도 없는 비키니를 입은 것이다. 그런데 하필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이스크림 풀 때 마주치니 창피하기 그지 없었다.

해수가 다가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불법 노점상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서은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쩜 이런 우연이, 참, 하루씨도 오랜만이고, 하하.”

하루도 반색하며 서은에게 다가갔다.

“네, 안서은님, 아이스크림 장사도 하십니까?”

“아 이거, 어떤 할머니분이 잠깐 맡기고 간 건데, 왜 이렇게 안 오시지….”

해수는 강비서와 김가드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신고가 들어왔으니 치우셔야 합니다.”

“네? 아 그런데 이게 제 꺼가 아니라서, 난감하네요.”

그때 근처에 튜브를 대여해주는 사장이 멀리서 서은이 장사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다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아가씨, 이거 혹시 분홍 나비 머리핀 한 할머니가 화장실 갔다온다고 부탁했어요?”

“아, 네, 맞아요.”

“이 할머니 또 이러네, 지나가다가 참하고 예쁜 아가씨들 잡아서 맡기는 거. 상습범이야, 상습범, 그러면 매출 잘 나오니까, 자기는 편하게 구경만 하고. 근처 있을 텐데….”

“근처?”

근처라는 말에 다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해수의 눈에 저 멀리 편의점 건물 2층에서 망원경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해수는 서은의 어깨를 톡 치고는 검지로 그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 분입니까?”

“오, 네 맞아요!”

서은의 대답에 해수와 하루, 서은과 강비서, 김가드, 이렇게 다섯 명이 걸음을 옮겼다.

졸지에 선행을 베풀었던 튜브 장사꾼이 아이스크림 기계를 지키게 되었다.

그들이 다가가자 이쪽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망원경을 접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이미 해수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할머니, 할머니 이리 와보세요.”

할머니는 해수를 힐끔 보았다가 뒤쪽으로 이동하여 2층 난간 위에 올라섰다.

그 모습에 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도망? 도망을?”

할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2층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꺄앗!”

그 모습에 서은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착지와 동시에 한 바퀴 굴러서 낙법을 완벽하게 펼치고는, 반대편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

“응?”

“무, 무슨….”

“파쿠르?”

모두 충격적인 장면에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할 때.

타다다닥

하루가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 모자가 거슬렸는지 중간에 모자를 벗어서 터프하게 뒤로 내던졌고, 해수에게 정확히 날아왔다.

턱-

해수는 그녀의 모자와 자신의 모자를 벗어 바로 옆에 서은에게 주고는, 그 뒤를 쫓았다.

할머니, 아니 할머니로 변장한 누군가는 담과 커다란 지형지물도 훌쩍훌쩍 넘어다니고, 지붕 위도 망설임 없이 타고 다녔다. 파쿠르 고수가 분명했다.

그러나 하루도 만만치 않았다. 가벼운 몸과 전국구급 달리기, 천부적인 운동신경으로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왜 쫓아와!”

“왜 도망가십니까?! 저 아이스크림 기구는 버리는 겁니까?”

“그, 그건 아닌데… 악!”

달리는 길 옆에서 해수가 툭 튀어나오자.

크게 당황했는지 변조가 아닌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왔고, 그가 체구가 작은 젊은 남자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남자는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해수를 마주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토끼처럼 옆으로 뛰어올랐다.그 몸놀림이 얼마나 날쌨는지 동체시력이 좋은 해수도 옷자락만 스치고 놓쳤을 정도.

그러나 그 급격한 방향 꺾기로 하루와의 거리가 확 줄어들었고, 나비처럼 날아오른 하루가 그를 덮쳤다.

퍼억!

“우악!”

하루가 그를 넘어트리고 바로 다리를 잡아 꺾기 직전, 해수가 그녀의 손을 잡아 멈춰세웠다.

그러고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니 얼굴에 쓴 가면이 반쯤 벗겨져 있는 채로, 잔뜩 울상을 지은 눈동자는 젊은이의 그것처럼 초롱초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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