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23화 (123/255)

123. 아이스크림 아가씨

강수대 대원들이 출근하자 파출소 소장이 손뼉을 한 번 치고는 입을 열었다.

“자, 형사님들 어제 돌았던 구역 기억하죠? 앞으로 형사님들이 맡을 구역이에요. 파트너는 이제 강수대 형사님들끼리 둘둘씩 조를 짜서 돌아요. 오늘은 1,2번 구역으로.”

소장의 말에 그 옆에서 가만히 듣던 곽팀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파출소 직원들하고 친해지고 좋다며.”

“아, 너무 경쟁률이 심해. 장난으로 넘어가면 좋은데 서로 마음 상할 정도야. 그래서 그냥 아예 경쟁을 하지 않게 하는 게 낫겠어.”

“아… 우리가 아주 그냥 인기스타구만?”

“뭐 아무튼, 그러니까 강수대끼리 돌아, 대신 우리 대원들이 대기할 때 좀 피곤하게 굴 수도 있는데. 그게 강수대 대원분들도 더 편하죠?”

소장의 말에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그래도 같이 다니는 내내 질문을 던지거나 과한 눈빛을 보내기도 해서 부담스럽게 느낀 사람도 있는 터였다.

“네네 뭐, 편하긴 하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짧으면 이 주, 길어봐야 한 달이다. 나이가 들면 미래에 관계가 끊기기로 내정된 관계는 굳이 친분을 다지려고 하지 않는다.

막내는 아쉬워했지만 오갱과 해수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곽팀장은 소 내에서 무전을 받기로 했고, 네 명이 두 개 조를 이뤄야 한다. 이제 조를 짜야 할 시간, 어쩌다 보니 해수와 막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위험한 투샷에 팀장이 둘 사이로 손을 넣어 벌리며 기겁했다.

“야,야! 니네는 떨어져, 사람들 무서워서 도망가, 떨어져 떨어져.”

“음….”

해수와 막내는 서로 마주 보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의 말을 인정했다.

‘경찰이 주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면 안 되지.’

“돌격이가 하순경이랑 가, 오갱은 막내랑 가고.”

“예! 알겠습니다.”

조가 정해지고, 도보 순찰을 위해 소를 나서는 하루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 * *

“와!”

“어우….”

해수와 하루가 붙어서 다니니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힐끔거렸다.

반팔 근무복이기에 해수를 본 사람들은 그 강철같은 팔뚝과 거미줄같은 힘줄에 놀랐고, 하루를 본 사람들은 근무복으로는 가려지지 않는 태와 모자를 써도 다시 보게 되는 외모에 놀랐다.

“…저 모자 벗은 것 좀 보고 싶다.”

“요즘 경찰들은 얼굴 보고 뽑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해수에게도 들려왔고, 그는 무표정으로 걷는 하루를 힐끔 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화장을 하지 않는 건 어떤가?”

해수의 말에 하루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다가 근무모를 벗어 보였다.

“저 화장 안 했습니다. 선크림만 발랐습니다.”

“아… 그렇군.”

하루가 모자를 벗을 때 주변에 몇 명이 ‘아’하는 탄성이 들린 듯하다.

고개를 끄덕인 해수는 계속해서 순찰을 이어갔다.

도보 순찰을 다니다보면 경찰이 마치 이 보성 해수욕장의 안내원으로 생각하여 사람들이 길을 묻거나 행사 관련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두 시간 동안 도보 순찰을 돌면서 해수와 하루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꽤 오랫동안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렇게 교대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소로 들어오는 길.

-여기 광하나, 동광장 부근 칼부림 발생, 동광장 부근 칼부림 발생, 근처 있는 조 있나?

이번 근무 팀장의 무전이 들려왔다.

해수는 자신이 무전을 들어 대답하려다가 멈추고 하루를 보았다. 그러자 하루가 눈치채고 재빨리 무전을 들어 대답했다.

“도하나 송발합니다.”

무전을 마치고 해수와 눈이 마주쳤고, 해수는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칼부림은 촌각을 다투는 사건이다. 둘은 사건 현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겁도 없는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 헤매지 않고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일루 와, 니 모가지는 꼭 따줄게.”

“닥쳐 이 개새끼야, 내가 니 대가리 터트려줄 테니까!”

“어 그래, 터트려봐, 일루 와.”

부엌칼을 든 사내와 각목을 든 사내가 대치하고 있다. 구석에는 사내 한 명이 팔뚝을 붙잡고 앉아있다. 팔뚝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삐이익!

해수는 멀리서 그들을 보고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왔다.

“거기! 두 분 다 무기 내리세요!”

경찰까지 왔는데도 둘은 무기를 내릴 생각이 없었다.

각목을 든 사내가 슬그머니 내리려고 했지만, 칼을 든 사내가 내리기는커녕 경찰에게도 휘두를 기세로 있자 그도 다시금 각목을 들어 올렸다.

칼을 든 사내는 이미 한 명을 칼로 베었기에 경찰이 와도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선을 넘었다는 걸 무의식 중에라도 알고 있는 만큼, 더더욱 이성이 폭주하는 것이다.

모여든 구경꾼들이 그들의 호승심에 더욱 불을 지폈다. 해수와 하루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멈칫하는 순간조차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와씨 경찰 와도 빠꾸 없네, 지리네.”

“저러다 경찰도 찌르겠어.”

“눈빛 봐, 존나 살벌해….”

“아니 무슨 경찰이 칼 든 사람 제압도 못하냐?”

“여경은 오늘도 뒤에서 구경만 하쥬?”

“오 씨 존나 이뻐… 걸그룹 춤 시키려고 뽑나.”

해수는 사람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침착한 어투로 칼 든 사내에게 말했다.

“칼 버려요. 직접 버리는 것과 제가 제압하는 건 형량에 차이가 큽니다.”

하지만 해수의 말에 사내는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

“닥쳐 시발! 제압하려면 해봐!!”

사내가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해수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때, 하루가 해수를 지나치며 튀어 나갔다.

탁-

하루는 낮은 자세로 들어가다가 사내가 휘두른 칼끝에 근무모 챙이 스치며 모자가 벗겨졌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손목을 잡고 돌아서며 몸을 그의 몸과 밀착시켜 단숨에 업어쳤다.

사내의 몸이 빙글 돌아 바닥에 내리꽂힌다.

쿵!

“컥!”

사내는 등이 콘크리트 바닥에 내쳐진 충격에 컥컥거리면서도 손에 쥔 칼을 놓지 않았다. 그러자 하루는 그의 팔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엑스자로 교차시켜 목까지 조였다.

그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작게 중얼거렸다.

“헙!”

“포, 포상이다.”

우드득-

“끄아악!!”

그때.

하루가 가차 없이 그의 팔을 꺾어 부러트렸다. 그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손에 든 칼을 놓았다.

“아니구나.”

“오히려 좋아….”

동시에 해수가 각목을 든 사내에게 다가가자 그는 뒷걸음질을 치며 각목을 바로 바닥에 내던졌다.

“오오, 대박.”

“우와아아!!”

짝짝짝짝!

“멋있다!”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되자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루를 향해 환호와 박수 세례까지 했다. 몇 명은 휴대폰으로 열심히 찍고 있다.

해수는 재빨리 하루의 근무모를 집어 그녀에게 넘겼다.

“써.”

“아, 네.”

끝까지 칼을 들고 설쳤던 사내에게만 수갑을 채우고 순찰차를 기다리던 중, 먼저 관할서 강력팀 형사들이 도착했다.

칼이나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건은 강력 사건으로 파출소와 강력팀으로 동시에 호출이 된다.

그들은 이미 정리된 현장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벌써 끝났나?”

형사의 말에 다른 형사가 해수를 알아보고는 대답했다.

“그분들이네요. 강수대 형사, 여름 파출소 지원 나왔다더니….”

“아…!”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몇몇씩 나뉘어 구경꾼 및 해수, 다툰 사내들에게 다가가 경위를 묻기 시작했다.

칼로 사람이 다친 건인 만큼 단순한 합의 정도로 끝나지 않는 형사 사건이다.

강수대에 있을 때는 지금부터가 또 다른 시작이지만, 해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형사들에게 사건을 넘겼다. 그러고는 현장에 온 순찰차를 타고 파출소로 복귀했다.

“가끔 이렇게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것도 나쁘지 않-”

“아이 씨, 무슨 확인이에요 확인은! 내가 증거라니까? 이 아저씨가 내 허벅지 만졌다고요!”

“꼭! 확인해주세요. 확인하면 내 억울함이 좀 풀어지겠지.”

파출소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30대 남자와 젊은 여자가 경찰을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그리고 해당 타임의 팀장이 아닌 강수대 대장인 곽팀장이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진정들 하시고, 일단 cctv 가져왔으니까 확인부터 해볼게요. 기다리세요. 막내야!!”

“네 팀장님!”

팀장은 부드럽게 타이르면서 막내를 부를 때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러자 막내가 그의 장단에 맞춰 허겁지겁 달려왔다. 방금 전까지 대기실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던지라 근육이 더욱 화나 있었다.

“어, 어우, 경찰분 몸이 좋으시네.”

“칫, 할 일 없이 운동만 하나….”

웃어주는 팀장도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외침과 몸으로 위압감을 주는 막내의 등장에 남녀의 기세가 조금 사그라졌다.

해수는 궁금한 마음에 곽팀장에게 다가가 cctv를 같이 보았다.

남녀는 디스코팡팡을 같이 타다가 남자가 중심을 못 잡고 여자의 허벅지를 스치듯 닿은 것이다. 고의성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만지기는 했다는 사실이 컸다.

“아, 이건….”

“어렵겠는데요.”

“그르니까, 소송도 길어질 수 있고 어쩌면 디스코팡팡 디제이도 과실이 잡히겠는데?”

“음….”

남자가 안타까워지는 순간이다. 팀장이 그들에게 다가가 패드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며 말했다.

“이미지씨, 성추행으로 고소하시겠습니까? 다만 cctv를 확인했음에도 고의성을 입증하기 모호하기 때문에 소송의 결과는 어떨지 모릅니다. 기간도 매우 길고 복잡해지는데 원하는 결과를 못 얻을 수도 있어요.”

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허공을 바라보다가 남자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됐고 그럼 합의해요 합의, 얼마 줄 거에요?”

“하…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시팔 그냥 그러면 깜빵 들어가세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면 잘못 아니야? 내가 저 손 가슴에 닿고 얼마나 기분이 더러웠는데!”

여자의 말에 남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가 턱을 추켜들며 물었다.

“얼마요. 얼마면 되는데.”

“백만원! “

여자가 검지를 추켜들며 합의금을 불렀다. 그 금액을 듣고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진짜? 오빠 돈많아요?”

남자가 단번에 수락하자 이번에는 되려 여자가 놀랐다. 금세 호칭이 아저씨에서 오빠로 바뀌었다. 이를 지켜보던 경찰들 중 몇몇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저냥 카페하고 있습니다.”

“카페 사장님? 어디요?”

“케이카페라고, 저기 남광장 끄트머리 언덕에…”

“어머 어머 케이카페 나도 가봤는데, 거기 엄청 이쁘게 잘 해놨던데!”

“네 뭐, 신경 좀 썼죠.”

여자의 칭찬에 남자도 점점 억울함 가득 담겨있던 목소리가 풀렸다.

여자가 남자를 일으키더니 어느새 팔짱까지 꼈다. 남자는 인상을 쓰면서도 풀지는 않았다.

“대박, 그러면… 아, 우리끼리 알아서 해도 되죠?”

여자는 무언가 깜빡했다는 듯이 뒤돌아서 곽팀장에게 물었다. 곽팀장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물론이죠.”

“네, 그럼.”

그렇게 둘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팔짱을 끼고 나갔다.

그 뒷모습에 경찰들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

“허허.”

파출소장이 다가와 해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웃기지? 근데 저런 일이 흔해요. 여기 있으면 어이없는 사건을 많이 봐, 재미있어.”

“그렇네요. 재밌네요.”

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무하지만 그래도 일이 커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렇게 꿀같은 대기시간이 지나고, 막 교대를 하려고 다시 순찰 조끼를 입을 때였다.

낮 타임 팀장이 외쳤다.

“광장 중앙에 불법 노점상 신고! 아니 무슨 아가씨가 비키니를 입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대요. 신고 들어왔으니까 일단 빼달라고 해주세요. 누가 갈 거야.”

“비키니? 허허, 사업수단이 좋네.”

“열정적이네요.”

경찰들의 반응에 해수는 피식 웃고 나가려는데 하루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오, 도하나? 아 담당구역 끄트머리이기는 하네, 부탁 좀 할게요.”

“네!”

신입의 열정이 좋다.

해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하루를 데리고 나왔다.

그렇게 경보하듯이 빠른 걸음으로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낮에 칼부림 때처럼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차이점은, 남자들이 대부분이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수와 하루가 인파를 헤치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우뚝 서 있고, 검은색 비키니에 하얀색 얇은 가디건을 걸친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푸고 있다. 그 모습이 매우 어색한 것이 초보인 듯했다.

하루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서은님?”

“응? 아.”

서은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볼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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