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22화 (122/255)

122. 억울한 딸

보성광장 파출소.

덩치 큰 여인이 인상을 쓰면서 들어와 다짜고짜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여경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너야? 너야!!”

“읏, 왜 이러십니까?!”

“너냐고 우리아빠 죽인 년! 이 썅년아!!”

퇴근 준비를 하던 신해수는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옆에서 바람이 스쳐갔다.

후웅-

익숙한 향기, 익숙한 뒷모습, 하루가 바람같이 튀어나간다.

타닥 탁-

하루는 단번에 그녀의 손가락을 잡아 꺾어 여경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풀고, 다시 여자의 손목을 잡아 뒤로 이동하여 무릎으로 팔꿈치를 올려쳤다.

우득-

“끄아악!!!”

가녀린 팔이 두 배는 될법한 그 두꺼운 팔을 확 꺾은 모양새다.

아무리 두껍다고 해도 근육이 아닌 살덩이다. 살덩이를 지탱하기 위한 근력이 있겠지만 하루의 기술이 우위였다.

하루의 눈빛이나 분위기로 보아 부러트려야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다.

해수는 다가가 하루의 손을 잡아 여자의 팔을 풀어주며 말했다.

“잘했어, 흉기 든 게 아니면 웬만하면 부러트리지 마.”

“네, 알겠습니다.”

풀려난 여자는 두 손으로 하루를 확 밀치며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이 시팔! 경찰이 민간인 막 패도 돼? 어?! 너지? 네가 그 년이지?!”

하루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여자의 손에 밀쳐졌다.

몸무게를 담은 밀침에 가녀린 하루의 몸이 뒤로 확 밀려났고, 해수가 재빨리 그녀를 받쳐주었다.

그때, 마침 곽팀장과 함께 순찰을 나갔다가 들어온 소장이 부리부리한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파출소에서 경찰을 밀쳐? 당신 유치장 가고 싶어요?!”

“뭐,뭐,뭐요?! 유치장?!”

경찰이, 그것도 딱 보아도 계급이 높아보이는 경찰이 막무가내로 나오며 유치장까지 거론하자 여자가 멈칫했다.

“아니, 아니 내 아빠를 얘네가 죽였다니까! 우리 아빠 돌려놓으라고! 흐읍-”

그녀는 돌연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토로했고, 해당 사건 담당이었던 하루와 순딩 경장을 뒤에 두고 소장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신고 시간을 보면 알겠지만, 의사 소견으로는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상태였어요. 강동식씨가 그렇게 되신 건 유감이지만… 출동한 우리 경찰들이 뭘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조금 수그러드나 싶더니 여자는 다시금 주먹으로 접수대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럼 아빠는 언제부터 그랬냐고! 정확히! 경찰이 그런 것도 몰라? 세금 받아쳐먹으면서?!”

“하… 이거 참.”

눈물콧물을 뿌리면서 아빠를 찾는데 강경진압을 할 수도 없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그 아픔이 또 얼마나 클까 이해가 되어 그녀를 모질게 대하기가 힘들었다.

소장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곽팀장이 나서서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뇌졸중 현상이 일어났는지 한 번 찾아보죠. 하순경, 그리고 그… 순하게 생긴 분, 강동식씨 동선 좀 따봐요. 걸어서 다녔으니까 쉽게 딸 수 있을 거야.”

소장은 곽팀장의 결정에 살짝 놀라워했다. 그러고는 작게 팀장만 들리게 말했다.

“그걸 다 따려고? 얼마나 개고생인데.”

“이렇게 욕먹이는 것도 개고생이야. 금방 할 거야, 우리 애들 전문이잖아.”

“흠… 대기 애들 좀 붙이자 그럼, 몇 명이나 붙일까?”

“됐어, 우리 애들만 있으면 돼.”

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해수와 눈을 마주쳤고,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팀장의 추측대로 뇌졸중으로 뇌사 상태에 이른 강동식씨는 걸어서 이동했기에 동선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쓰러진 곳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구석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친구로 보이는 중년 남성과 함께 술을 먹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두 시간 정도 술을 마시고는 친구와 헤어지고,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친구와 헤어지는 시간과 신고 시간이 40분 정도 차이가 난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얼마 가지 못해 쓰러진 것이다.

쓰러진 장소인 골목길의 앞뒤쪽 큰길가 cctv를 확인해보니, 앞쪽으로 벽을 짚으며 비틀비틀 들어갔다가 뒤쪽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쓰러져서 30분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결과를 알면서도, 뒤쪽 cctv에서 아버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아빠, 아빠… 왜 안 나와, 아흐, 왜 안 나와…!”

이미 퇴근시간이 지났기에 해수는 곽팀장은 돌려보내고, 자신이 하루와 순딩 경장을 데리고 이 사건을 전담으로 맡았다.

해수는 여자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입을 떼었다.

“아버님과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분은 아시는 분입니까?”

“흡, 네… 저쪽에서 여관방 하는 박사아저씨… 그럼 박사 아저씨가 죽인 거네! 우리 아빠 상태 안 좋은 거 알았을 거 아니야! 그렇게 혼자 보내면 어떡해!”

그녀는 돌연 또 다시 급격히 분노하여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로 죽음을 남탓하려고 하는 걸 보면 그저 슬픔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좀 있는 듯하다.

일단 그 박사 아저씨라는 사람에게 가보아야 하기에 해수는 그녀를 말리지 않고 뒤따라 갔다.

쾅쾅쾅!

“박사 아저씨!! 박사 아저씨 문 열어요!”

그녀는 꽤 오래되어 보이는 집의 철문이 부서져라 두드렸다.

그렇게 난리를 치니 금세 cctv에서 보았던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었다.

끼익-

“누구여? 누군데 문을 부술라고… 엉? 동식이 딸내미 아니여?”

“아저씨!”

여자가 아저씨를 보며 화내려던 찰나, 오히려 아저씨가 먼저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너 너!! 너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이놈아! 아빠한테 잘 해! 부모한테 나가 죽으라는 게 그게 자식이야? 어!”

“…에?”

“어제 얘기 다 들었어, 니 다이어트 뭐 어쩌구 신청해서 살 좀 빼고 시집가라고 했더니 나가 죽으라고 했다며, 아니면 니가 죽는다고! 아빠가 돼서, 노처녀 딸 시집 가라는 말도 못하냐? 가슴을 쥐어짜면서 얼마나 속상해하던지, 딸 말대로 지가 죽어야 한다고 술을 아주 그냥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먹더라!!”

“아, 아아… 아빠, 아빠….”

아저씨의 말에 여자는 더 이상 남을 탓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자신이 죽였다는 생각에 자책하고 자신이 뱉었던 말을 후회했다.

여기까지 확인한 해수는 하루를 이끌고 조용히 물러났다.

순딩이 경장 또한 안타까운 표정으로 따라나왔다.

“아빠, 아빠 내가 잘못했어, 아빠 내가 미안해, 평생 안 그럴게… 흐윽, 아빠.”

평소에는 억세고 따박따박 대들던 친구의 딸이 지금은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목놓아 울자 박사아저씨는 어리둥절하여 그녀를 가만히 보았다.

오랜 세월을 살면 감으로도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박사아저씨는 그녀를 한 30초간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더니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야, 얘야, 뭔 일이여, 동식이한테 뭔 일 생겼어?”

“아저씨… 아저씨이, 아빠, 아빠 못 일어나요….”

“그, 그게 뭔 말이여, 똑바로 말 못하냐?”

여자는 끝내 아빠가 뇌사상태라고 직접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고, 그 반응으로 박사아저씨는 불길한 추측에 대해 확신하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아이고 동식아, 동식아 아이고….”

한참동안 울음바다가 되었다가, 둘은 강동식씨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해수와 하루, 순딩 경장은 퇴근시간이 이미 넘어갔으니 그곳에서 바로 해산했다.

* * *

보성은 강진시와 조금 거리가 있다 보니, 자택과 멀어서 경찰청 측에서 숙소를 잡아주었다. 정확히는 숙소를 알아서 잡고 금액을 청구하는 것이다.

강수대는 파출소 근처 원룸을 숙소로 잡았다. 여름만 되면 지원을 나오는 경찰들이 있으니 거의 경찰 사저로 쓰는 곳이었다.

2인 1실에 여성인 하루만 혼자 방을 썼다.

해수와 하루는 함께 해변길을 따라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노을이 지면서 바다가 붉게 물든다. 지금은 자연이 만들어낸 그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 때문인지 우악스럽게 놀면서 파도를 타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연인들이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는 모습이 많았다.

연인들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고, 연인이 되기 직전인 남녀는 손이 거의 닿을락말락 서로의 어깨가 가까이 붙은 채 걸었다.

하루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지금 보니 자신과 해수의 모습이 딱 그러하다.

하루는 홀린 듯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해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빤히 바라보니 해수도 마주 고개를 돌렸다.

하루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의 눈이 마주치고, 해수의 눈썹이 살짝 떨렸을 때.

지이잉

진동이 울렸다. 해수는 금세 시선을 거두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경찰, 그것도 형사는 24시간 언제든지 휴대폰을 잘 확인해야 한다.

“음, 하루, 지금 팀원들 조개구이집에 있다는데 갈까?”

“싫습니다.”

하루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하루이기에 해수는 그녀의 변화를 금세 눈치 챘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니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같다.

해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래, 나도 별로야, 숙소나 가자.”

“…네.”

해수는 조개구이집으로 가고 하루만 숙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숙소로 간다는 말에 하루는 금세 마음이 풀렸다.

그는 그녀와 함께 조용히 걷다가 오늘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하루야.”

“네, 말씀하십시오.”

“이번 사건 어때, 어이없지 않았어?”

“조금, 그랬습니다. 제 책임이 없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건이었습니다.”

“맞아, 하지만 피해를 받은 당사자, 또는 지금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은 그렇게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해.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음….”

“강력팀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맡기 때문에 지금같은 일이 적지만, 파출소는 사건이 펼쳐지는 현장에 실시간으로 투입되는 것이기에 언제나 조심해야 해, 작은 실수에도 죄를 뒤집어쓸 수 있으니까.”

하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재 또는 돕기 위해 출동한 경찰이 왜 죄를 뒤집어씁니까?”

“원래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분노가 가라앉기 때문에 세상은 책임질 사람을 찾아, 그리고 그 대상으로 가장 만만한 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고.”

“가장 만만한 건 경찰….”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일수록 경찰이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힐 희생양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오늘처럼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사건은 특히 조심해야 돼, 오늘 일처리는 잘 했어. 현장에서 녹화가 불가능하면 녹음이라도 해, 일단 이거 네가 가지고 다녀.”

해수는 하루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녹음기 펜을 건네주었다. 24시간 단위로 녹음이 되고 저장공간도 넉넉한 녹음기 펜이다.

그러나 하루는 해수의 말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이번에는 잘 넘어갔지만, 주취자가 그냥 잠을 잔다고 생각했다면 파출소로 데려가서 눕혀놓고 오랫동안 방치했을 가능성도 컸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하루라고 무조건 옳은 선택만 하라는 법은 없기에 더더욱 겁이 났다.

“경찰은 의사가 아니니까 착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잘못될 경우에는 경찰 측에서 보호해주지 않습니까?”

애처롭게 해수를 올려다보는 하루의 눈.

해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위에서는… 보호해주지 않아, 오히려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게 잘라내려고 애를 쓰지, 지금 이 소장님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앞으로도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행동해.”

“알겠습니다.”

“그래, 저기서 비빔면에 삼각김밥이나 사갈까?”

해수가 편의점을 가리켰다. 하루는 언제 심각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치즈도 사고 싶습니다.”

“그래, 내 것도.”

* * *

강진서 강력팀 사무실.

스트라이프 투피스 정장에 빨간 하이힐을 신은 여인이 들이닥쳤다.

그녀의 뒤에는 정장을 입은 남성 둘이 종이박스를 양손에 가득 들고 있었다.

그녀의 등장에 강력팀 형사들의 시선이 단번에 모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와.”

“아…!”

“누, 누구신, 아니 누구 찾아오셨습니까?”

외형만 봐도 여배우 포스가 좔좔 흘렀는데, 선글라스를 벗으니 더욱 얼굴이 빛이 나서 형사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고운 미간을 좁히며 빨간 입술을 열었다.

“강수대, 어디 갔습니까?”

“아,아 강수대, 그, 여름 파출소 지원 갔습니다. 보성 해수욕장이었나….”

“보성 해수욕장…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까딱 숙이고는 휙 돌아서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비서, 나 여름 휴가 쓸게요.”

“가, 갑자기요?”

“응, 너무 더워요. 차라리 잘 됐네, 수영장 질리는데. 해수욕장에서 수영도 좀 해봐야지.”

“…네, 수영복 챙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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