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21화 (121/255)

121. 도보순찰

보성광장 파출소 안.

“아우 저 년들이 먼저 꼬리 쳤다니까요? 그리고 손밖에 안 잡았어요!”

“뭐? 년? 이 개새끼가!”

“손은 시팔! 내 손이 가슴에 달려있냐? 됐고, 저 새끼들 빨리 깜빵에 넣어줘요.”

“와 진짜 미쳐버리겠네!”

쾅쾅쾅!

“조용 조용! 횟집 cctv 가져오고 있으니까 확인 전까지 조용히 좀 합시다. 어?”

“확인할 필요 없다니까? 아저씨 내 말 못 믿어요? 지금 나 의심하는 거에요?”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확인부터 해야… 어 왜 안 오고 무전이야, 뭐? 미성년자? 술도 먹었어? 개판이구만, 거기 주인도 데리고 와.”

“술? 술 가져와 술!”

정말 개판이다. 한쪽은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고 있고, 한쪽은 나시티에 반바지만 입은 중년남성이 온몸이 벌게진 상태로 파출소 벤치에 누워서 술을 찾는다.

곽팀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파출소 접수대로 다가갔다.

근육질 사내들과 눈에 띄는 미모의 여경을 데리고 들어오자 자연스레 시선이 모였다.

“여기 소장님 어디 계십니까?”

곽팀장이 쭉 둘러보며 묻자 한 젊은 순경이 그의 계급장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경감인 곽팀장은 파출소장과 동일한 직급이다.

“충, 소장님 잠시 출동 나가셨습니다.”

“출동? 여긴 소장이 직접 출동도 나가나?”

“아, 가끔 가고 싶을 때 가십니다. 보통 소에서 계십니다.”

“열정적인 소장이구만.”

팀장이 돌아서서 접수대에 등을 기대자 순경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어떻게… 오셨는지.”

그의 말에 팀장이 가볍게 툭 뱉었다.

“어 강수대에서 왔어요. 여름파출소 지원.”

“가, 강수대!”

강수대라는 말에 순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벅찬 얼굴로 입을 가렸다. 목소리가 꽤 커서 소내에 그들을 신경쓰고 있던 다른 경찰들도 들렸다.

“강수대?”

“헐 그 강수대? 강진서?”

“와… 어쩐지!”

미아가 된 아이를 보살피고 있던 여경이 슬그머니 다가와 근육몬에게 말을 걸었다.

“호, 혹시 신형사님?”

막내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네? 아닙니다. 선배님은 이분이십니다.”

“아아 죄송해요. 신형사님! 너무 팬이에요. 진짜 멋있으세요!”

여경은 부끄러워하면서도 해수에게 악수를 요청했다. 그 모습에 막내는 제 일마냥 뿌듯해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꺄으, 감사합니다. 신형사님하고 같은 소에서 근무하게 되다니…!”

“아하하….”

여경은 황홀한 표정으로 꺄르르 웃으며 해수의 팔뚝을 살짝 터치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하루는 발을 옮겨 여경과 해수 사이로 끼어들었다.

여경은 갑자기 이 사람은 뭔가 째려봤지만, 하루가 그녀보다 머리가 하나는 더 있어서 자연스레 올려다보게 되어 금세 눈을 거두었다.

강수대라는 말에 그들을 향한 경찰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와 근육 봐, 하나같이 터질 것 같네.”

“아 그럼 저 분이… 그 베일에 싸인 여형사님….”

“상상했던 것보다 더… 우와, 어.”

“뭐, 말을 해.”

해수와 대원들은 마치 연예인을 대하는 듯한 소내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허허 이거 뭐, 꼭 싸인회 온 것 같네.”

“돌격이는 이제 연예인이네 연예인이야, 어, 선글라스에 마스크 하고 다녀 아주 그냥.”

“고민중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이들도 모두 경찰인데다가 같은 충남청이기에 강수대를 기억하고 있는 거지, 다른 청으로만 가도 강수대나 해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벤치는 이미 꽉 차 있어 어정쩡하게 서 있자, 남자 순경이 접수대에서 나와 곽팀장에게 말했다.

“위층에 휴게실이 있습니다. 소장님 오시기 전까지 그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어, 어 그래요. 가자.”

“옙.”

묘한 침묵이 흐르는 파출소.

덩치 큰 사내들이 줄줄이 등장했다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시장통 같았던 곳이 고요해졌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던 중에, 입구의 유리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흐 덥다! 이래서 출동을 나가봐야 해! 우리 애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 수 있잖아, 안 그래?”

“넵, 맞습니다.”

“하여튼 대답은 잘 해.”

걸걸하고 호탕한 목소리, 곽팀장은 낯익은 목소리에 뒤돌아섰다.

“어? 봉팔이?”

팀장의 말에 방금 들어온 무궁화 두 개를 어깨에 달고 있는 경찰이 고개를 돌렸다. 넉넉한 풍채에 술에 취한 듯 혈기가 왕성한 붉은 얼굴, 부리부리한 눈,

보성광장 파출소의 소장 김봉팔이었다.

“응? 꽉? 꽉수철이?!!”

“봉팔이 맞네! 맞아!”

곽팀장은 계단을 한달음에 내려가 소장과 거칠게 포옹을 했다. 그러고는 서로 팔뚝을 치며 반가움을 격하게 표현했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냐 봉팔아! 니 여기 있었냐?”

“4년? 5년 됐나?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 니 여긴 어쩐 일이야? 아, 강수대가 너야? 니가 강수대 대장이야?”

“그려, 강력1팀에서 강수대로 옮겼지, 내가 대장이야 대장.”

“키햐! 우리 꽉이 출세했네! 므찌다!”

곽팀장과 봉팔 소장은 경찰학교 동기였다.

그 후로도 파출소 뺑뺑이와 기동대 생활까지 같이 한 절친이었다.

그러나 곽팀장은 강력팀을 지원하고, 봉팔은 더 다급한 현장을 나간다며 파출소를 지원하여 서로 찢어지게 되었다.

서로 바쁘다보니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가 5년 만에 만난 것이다.

“우리 꽉이 열심히 살았네!”

“니도, 이 바쁜 곳에 있었어? 여기 얼마나 있었어?”

“나 아니면 누가 하냐? 4년째지, 원래 옮겨야하는데 온다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그냥 계속 한다고 했어.”

“어이구, 여전하구만, 이제 몸 아껴야 혀, 우리 늙었어.”

“너는 아껴서 강수대에 있고?”

“허허, 그런가?”

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소장의 대화만 들어도 정의감과 사명감이 투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급자가 오니 일처리는 금방이었다.

곽팀장은 파출소에서 소장과 함께 전반적인 일처리를 돕기로 하고, 나머지 네 명은 이곳 지리를 모르니 현지 경찰과 2인1조로 조를 이루어 순찰을 돌기로 했다.

계급이 높은 오갱과 해수는 낮은 사람과, 계급이 낮은 막내와 하루는 높은 사람과 조를 이뤘다.

“어쩜 이런 우연이! 같은 조가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신형사님!”

“네, 저도 영광입니다.”

해수는 아까 팬을 자칭하던 여경과 같은 조가 되었고.

“자,잘 부탁합니다. 하…순경님.”

“네.”

하루는 여자보다도 얼굴이 더 하얗고 순하게 생긴 경장과 같은 조가 되었다.

“자, 우리 돌격대! 열심히 순찰 돌고 와라! 들어오면 내가 얼음물 한 잔씩 줄게!”

“형님은 여기서 꿀을 빠시겠다?”

“그럼 내가 무궁화 두 개 달고 뙤약볕에 돌아다녀야겠냐?”

곽팀장의 말에 소장이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친구,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같이 젊은 시절 좀 떠올려봐야지, 소는 팀장들한테 맡기고 우린 순찰 한 바퀴 돌아보자고.”

“어,엉? 아니, 잠깐, 그게 무슨 소리세요 소장님.”

팀장이 임자를 만났다.

해수는 난감해하는 곽팀장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파출소를 나섰다.

* * *

“바다다!!”

“꺄하하하하!”

“야야 달려 달려!!”

삐익 삐이익-!

해변가 윗쪽에 랜트 승용차 한 대가 멈추어 서더니, 젊은 남녀 여섯 명이 우르르 내려 해변가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

이쪽은 비치발리볼을 하고 있고, 저쪽은 단체로 왔는지 모래사장에서 깃발을 꽂고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핫한 해수욕장이다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여름이 확 느껴진다. 피서라든지 해수욕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었는데, 젊은 열기가 피부로 와닿자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옛날 순경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 도보 순찰이었다.

“신형사님, 신형사님은 그럼 지금까지 강력범죄자들을 몇 명이나 검거하신 거예요?”

여경의 질문에 해수는 그녀의 이름표를 확인했다. 여자영, 특이한 이름이다.

“모릅니다. 특별히 세어 본 적은 없습니다.”

“와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검거하셨구나, 역시!”

“음, 네.”

반응이 과한 것 같긴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대충 생각해도 백 단위는 훌쩍 넘어섰다.

여순경은 앞이 아니라 해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저 신형사님 검색 하루에 한 번씩 하면서 너튜브에 새로운 영상만 뜨면 항상 잘 찾아봤어요. 신형사님 소식란 댓글들을 보면 막 제가 뿌듯하고, 경찰 하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 암튼 우리 경찰 중에 신형사님같은 분이 계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말만 많은 줄 알았는데 그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해수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잠시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며 뚝뚝하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와… 그런데 그런 신형사님과 함께 조를 이루다니, 진짜 꿈만 같아요….”

뒷말은 아주 작게 얘기했지만 해수가 듣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좋아하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미소가 머금어졌다.

여순경은 마치 좋아하는 가수를 만난 소녀팬같았다.

“다행입니다. 제 행동이 여순경님의 경찰 생활에 활력을 준다니.”

“네, 정말 큰… 거기 스톱!! 사람도 이렇게 많은 데서 폭죽 터트리면 안 돼요. 누가 그것도 낮에 폭죽을 터트리나 폭죽을.”

두 손까지 모으고 눈을 반짝이며 소녀같던 모습에서 돌연 눈에 힘을 팍 주며 복식호흡으로 호통을 쳤다.

해수는 방심하다가 흠칫 놀랐지만 티내지 않았다.

삑-삑!

여순경의 경고에도 무시하며 폭죽을 계속 터트리자, 그녀는 호루라기를 불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 * *

같은 시각, 하루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순해보이는 순딩이 경장과 도보 순찰 중이었다.

햇빛이 강하니만큼 근무복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지만, 남녀불문하고 하루를 힐끔힐끔 보는 시선이 많이 느껴졌다.

평범한 일터라서 각자 일이 바쁜 곳이 아니라, 놀러 오는 곳이니만큼 남들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이 유독 많았다.

“저쪽 끝에 커다란 섬 있잖아요. 거기까지 갔다가 오른쪽으로 쭉… 저기 바이킹 찍고 파출소까지가 우리 구역이에요. 외곽만 돌면서 걸으면 한 바퀴에 30분? 정도 걸려요.”

“네.”

하루는 짧은 대답을 끝으로 순찰을 이어갔다.

그녀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대화를 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단답만 하고 있는데, 순딩 경장은 하루가 낯선 근무이기에 긴장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보통 낮에는 더위 먹어서, 밤에는 주취자들이 난리이기는 한데. 간단하게 현장에서 조치하는 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

치직-

-여기 광하나, 북광장 알게모야 횟집 인근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주취자 신고.

순딩 경장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무전기를 들었다.

“도셋 송발하겠습니다.”

-도셋 송팔

알게모야는 꽃게를 주로 파는 큰 횟집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끼고 도는 골목길에 가보니 6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중년남성이 누워 있었다.

그 근처에는 젊은 남녀 커플이 혐오의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고자들이다. 그들은 근무복을 입은 하루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여기요. 빨리 좀 치워주세요.”

“신고하신 분들이죠?”

“네, 우리 그럼 가도 되죠?”

“네 그 전에 간단하게 몇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순딩 경장이 신고자들에게 기본적인 질문을 하는 동안, 하루가 주취자의 상태를 살폈다.

피부가 벌겋고 술냄새가 진동한다. 입가에는 토사물이 묻어있다. 숨은 쉬고 있으나 고르지 않고, 입 안에도 토사물이 조금 차 있다.

피부는 고열 환자처럼 뜨겁다.

하루는 바로 순찰띠에 꽂아둔 생수를 한 병 꺼내어 그의 몸 곳곳에 뿌렸다.

여름 파출소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 응급시를 대비하라며 받은 500ml 생수병 한 병이다.

눈꺼풀을 뒤집어 살피니 초점이 흐릿하다.

신고자들에게 질문을 마친 순딩 경장이 하루 옆에 앉아서 주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저씨, 아저씨? 경찰입니다. 괜찮으세요?”

그동안 하루는 중년인의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토사물들을 걷어냈다.

그 과감한 모습에 순딩 경장은 미간을 좁히며 감탄했다.

하지만 하루는 처음과 똑같은 감정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했다.

“상태가 좋지 않아보입니다. 구급차 먼저 불러주십시오.”

“네? 아 네네.”

고개를 갸웃거린 순딩이 경장은 순순히 핸드폰을 들었다.

곧 구급차가 오고 중년인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하루와 순딩 경찰은 보호자에게 인계를 하고 다시 파출소로 복귀를 했다.

확인한 결과 중년인은 뇌졸중이었다. 신고를 받자마자 출발했지만, 하루가 갔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는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상태가 되었다.

* * *

여름 파출소 첫날 퇴근 직전.

쾅!

파출소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하루의 허리만한 팔뚝을 가진 한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접수대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소리쳤다.

“누가 우리 아빠 죽였어! 너야? 니년이야?! 시팔 우리 아빠 죽인 경찰년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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