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여름 파출소
털썩
신해수에게 따귀를 맞은 이기왕은 눈을 뒤집으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오갱은 쪼그려 앉아 그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일어나라 좋은 말로 할 때, 수갑 채우기 불편하다.”
“…….”
아무런 대답도 신음도 없자 오갱이 미간을 좁히며 이기왕의 호흡을 확인했다.
“야, 야 숨 쉬어 숨!”
숨이 느껴지지 않자 오갱이 그의 입을 벌려 혓바닥이 말려들어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그때, 해수가 그를 한 손으로 살짝 물리며 이기왕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눈 뜨고 숨 쉬어라, 이기왕.”
“야 해수야, 그러다가 죽어!”
해수의 손이 가차없이 휘둘러졌다. 그 손이 닿기 직전, 이기왕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러나.
쩌억!
이미 가속도를 받은 해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기왕은 이빨을 공중에 뱉어내며 방바닥을 한 바퀴 굴렀고, 오갱이 궁시렁거리며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사람 봐가면서 쇼를 해야지 이놈아, 얘 앞에서 그러다가 쇼가 진짜가 된다.”
“흑, 흐윽… 자,잘모해슴니다.”
* * *
전형적인 강약약강인 이기왕은, 이전에 있었던 폭력전과에 가정폭력 누적, 대중의 관심이 합쳐져 가중처벌로 징역 8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아들 이장국이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해서, 그가 가해자인 사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검찰이 아무리 경찰과 대립관계라고 해도 경찰서 습격은 중대죄로 친다.
촉법소년임을 이용한 행위, 경찰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경찰서 습격 등은 죄질이 나쁘기에 살인죄에 준하는 최고형인 보호처분 10호, 소년원 2년 송치를 받았다.
해당 판결 관련 기사는 금세 퍼져나갔다.
[아빠는 징역8년, 아들은 소년원2년.]
-귀농생활: 부전자전이네
-사도일: 사이좋게 둘 다 8년이면 좋을 텐데, 쓰레기같은 촉법소년법
-시언님: 제발제발촉법소년 폐지해라 폐지해라 아니면 20호까지 보호처분 호수 늘려라, 20호는 사형
┗장금: 요즘 촉법소년 관련 사건은 국민의 분노를 삼과 동시에 조회수가 잘 나오니 기자들이 과장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걸 정말 실수로 내 자식이 범죄에 휘말렸다고 생각해보세요.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성향이 너무 강해진 듯, 촉법소년, 당신의 자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리얼리: 응씹선비충 껒여
┗츠케: 일단 자식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블라타르: 일단결혼을했는지먼저물어봐야하는 거 아니냐
┗무적천권: 일단여친이있는지먼저…ㅅㅂㅜㅜ
┗mz세대: 아재요… 존나길어서안읽음
-닉넴이같아: 그래도 최대인 10호 받았네, 판사 웬일로 일했냐?
┗경찰 중에 지인 있나봄
-freestro: 뻔하지 뭐 사람들이 관심 많이 두니까 일한 거지, 이렇게 관심이 중요합니다.
해당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갖던 사람들은 죄목에 알맞은 판결을 보고는 으레 그렇듯 몇몇이 촉법소년법에 대한 분노만 살짝 남기고 관심은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사건은 그렇게 가라앉고, 사건에 묻혀 조금만 관심을 받던 여경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강진서 하순경의 퇴근룩)
(강진서 하순경의 검거 장면)
(존예 경찰의 하루)
커뮤니티 사이트에 하루의 사진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회견 때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여 그때 유포된 사진은 없으나, 그 이후로 파파라치가 따라붙었다.
모두 멀리서 찍은 사진이지만 하루의 외모를 추측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수많은 미인들이 방송을 하는 컨텐츠들이 많다지만, 경찰, 그것도 여형사라는 타이틀과 가녀린 외형에 어울리지 않게 과격한 진압을 하는 모습에서 오는 갭은 뭇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독행남아: 저 미모가 강수대에 있는 거 실화?
-츠케: 경찰 홍보팀에 지원 넣은 거 잘못 간 게 아닐까?
-귀농생활: 경찰 인력낭비 쩌네, 얼른 홍보팀으로 보내라
-발진돗정개: 시발시발개시발 존나보고싶다 제대로 된 사진 없냐 하순경 정면사진 제대로 된 사진 보고 싶다 비키니사진 핡핡
-개장수: 미친개발정개새끼야꺼져
해수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하루와의 동거 사실을 모든 동료들에게 알릴 정도로 당당하지만, 이게 밝혀지면 불특정다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나올 것이다.
리드빌딩 펜트하우스.
해수와 하루가 3인 소파에 같이 있다.
해수는 정자세로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고, 하루는 팔걸이를 베개삼아 머리를 대고 해수쪽으로 무릎을 접고 누워서 게임을 하고 있다.
“끄으.”
하루는 다리가 저려 본능적으로 발을 쭉 폈다. 덕분에 해수의 코 앞에 그녀의 발가락이 뻗어졌지만 게임에 집중하느라 몰랐다.
해수만 휴대폰을 보다가 발가락 테러에 눈이 동그래졌다.
스윽-
하루의 발이 천천히 내려가 해수의 무릎 위에 안착했다. 그저 푹신한 소파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해수의 무릎인 게 상관이 없는지 그대로 있었다.
해수는 그녀의 발을 치워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대로 두고 다시 휴대폰을 만졌다.
“안되겠다.”
“뭐가 말입니까? 어멋!”
하루는 휴대폰을 치우며 해수를 보았다가 자신의 발이 그의 무릎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해수와 함께 있을 때가 편해졌다는 뜻이다.
“죄,죄송합니다.”
해수는 그녀의 사과를 대충 넘기고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하루의 사진이 찍혀있다.
“네가 요즘 화제가 많이 되는 거 알고 있어?”
“몰랐습니다.”
하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로 몰랐을 수도 있다. 그녀는 기사같은 건 찾아보지 않는다. 집에 오면 운동과 게임, 가끔 편의점표 요리를 할 뿐이다.
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파파라치가 붙었어, 하나하나 잡아서 손볼 수도 없으니, 출퇴근을 따로 하는 게 좋겠다.”
“제가 하나하나 잡아서 손보겠습니다.”
해수와 함께 하는 출퇴근이 삶의 낙 중 하나였던 하루의 눈에는 은은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수는 다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아냐, 손보지 마, 어차피 대중의 관심은 금방 식어, 길어야 한두달이야. 그때까지만 따로 하자, 내 오토바이… 아니다. 이참에 네 차 하나 사라.”
해수의 만류에 하루는 살기를 갈무리하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그러면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다니겠습니다. 대성가드 출근 때 타보았는데 재미있었습니다.”
“대중교통…?”
“네, 대중교통 재미있습니다.”
하루의 표정을 보니 진심이 묻어난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사회에서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해내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듯하다.
전에 마트에서 직접 계산을 시켰을 때 결제를 모두 끝낸 후 영수증을 보며 기뻐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그래, 대신, 마스크랑 모자는 쓰고 다녀라, 얼굴 알려져서 회사라는 곳에서 알아볼 수 있으니… 경찰보다는 경호원이 더 나았을 텐데.”
해수의 말에 하루의 어깨가 조금 쳐졌다.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수는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고, 하루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 그녀는 마치 연예인처럼 마스크에 모자를 쓰거나, 후드를 푹 눌러쓰고 다녔다.
* * *
강수대 본부.
오갱이 서류철로 겨드랑이를 부채질했다.
“어우 더워.”
“겨냄새 나 이놈아! 저기 새파란 아가씨도 있는데 이것이”
팀장이 가장 끝자리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있는 하루를 가리켰다.
그제야 하루의 존재를 인식하고 오갱이 겨드랑이를 내렸다.
“아아, 하순경 미안, 나도 모르게.”
“괜찮습니다. 저는 선배님들께서 남자 후임이라 생각하시고 편하게 대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
“이야, 말도 참 예쁘게 잘 하네, 교육을 잘 받아서 그래 교육을.”
해수가 남들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막내 우강철은 그 모습을 캐치했다.
‘역시, 선배님께서 지시하신 건가, 그래서 형수님이 나랑 있을 때도….’
“저도 더워서 겉옷 좀 벗겠습니다.”
“어? 어 그래그래, 아니 이늠으 에어컨은 왜 이렇게 약해? 에어컨 좀 바꿔달라고… 어어어.”
하루가 벌떡 일어나 겉옷을 훌러덩 벗었다. 그러자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나시티가 드러났다.
해수도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동작 그만, 다시 입어.”
“예 알겠습니다.”
하루는 해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겉옷을 입었다.
“다른 옷 안 챙겨왔어?”
“예, 더웠습니다.”
“음… 기다려.”
해수가 나가자 팀장과 오갱이 그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아무리 사적인 감정 다 뗀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바로 챙기는 거 봐, 므찌네.”
“그러게요. 하순경 좀만 기다려, 해수 보급품 남는 거 가지러 갔을 거야, 그나저나 이 여름은 언제 끝나는 거야 대체.”
“조금만 참아라, 말복 지나면 거짓말처럼 더위가 가신다. 참 그런 거 보면 신기해.”
“말복? 말복이 언제지?”
오갱의 말에 하루가 즉각 대답했다.
“8월 15일입니다.”
“광복절 말복이네, 한 달만 참자 참아.”
“한달이 기일다.”
더위에 힘들어하는 선배들을 보며 막내가 그래도 힘을 주겠다고 긍정적인 말을 꺼내었다.
“그래도 이런 폭염에 큰 사건 안 터져서 밖에 안 뛰어다니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
갑자기 본부 내 공기가 싸늘해졌다. 냉랭한 팀장과 오갱의 반응에 막내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너,”
팀장이 뭐라 말하려던 그때.
띠리리리 띠리리리
내선 전화가 울렸다. 팀장은 막내를 노려보며 전화를 받았다. 막내는 그제야 금지어같은 한가롭다는 말을 내뱉었다는 것을 깨닫고 셀프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강력수사대 곽수철 대장입니다. 네, 아… 사건이 아니에요? 네에, 네, 네??? 네? 우리를? 우리 강수대인데? 강력수사대인데? 청장님이? 네… 알겠습니다.”
그 짧은 시간, 곽팀장의 표정은 극과 극을 달렸다.
“뭐야, 뭔데? 사건 아니면 뭔데 그래 대체? 내 상상력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데?”
팀장이 힘없이 걸어나와 막내의 등 위에 털썩 앉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후… 우리, 여름파출소 지원나가랜다.”
“여, 여름 파출소?”
여름 파출소라는 말에 하루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바로 강수대에 오는 바람에, 근무복을 입고 파출소 근무를 하는 판타지가 있었다.
그때, 본부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아씨퍽 깜짝이야”
“우리 어디로 갑니까?!”
미리 다른 강력팀 형사에게 소식을 들은 해수가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해수는 그와중에 한 손에 든 경찰이라고 적힌 반팔 라운드 티셔츠를 하루에게 건넸고, 하루는 그것을 받고 바로 겉옷을 벗으려다가 해수가 눈짓하자 구석으로 가서 옷을 입었다.
팀장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작게 입을 열었다.
“보성 해수욕장, 보성광장 파출소….”
팀장의 대답에 해수와 오갱의 눈이 커졌다. 보성 해수욕장은 충남에서 가장 핫하고 전국적으로도 머드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그중에서 보성광장 파출소는 그 중심을 맡고 있는 곳이었다.
* * *
다음날, 월요일.
보성광장 파출소 주차장에 근무복을 입은 강수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우 씨, 여름 파출소 보낼 거면 근무복이라도 좀 새로 주든가, 아우 끼어.”
“형님이 살이 찐 걸 왜 남 탓혀, 나 봐, 딱 태가 나지?”
“태는 씨… 저쪽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오갱은 팀장의 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해수와 하루가 마치 경찰 홍보 모델같은 포스를 풍기며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