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강수대 신입
청장은 눈을 두어번 감았다가 떴다.
“여성이, 실기 최고점을?”
“예, 체력시험 때부터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 올해 우리나라 여성 육상 기록를 넘어선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육상 기록을…? 육상 선수였나?”
“경호원이었다고 합니다.”
“경호원이라니, 음, 하긴 신체능력이 매우 뛰어난 인재가 가끔 튀어나오긴 하지, 여성이지만 골격과 근육이 남다르겠어.”
“그게,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부속실장은 말과 함께 패드로 인적사항을 띄워 청장에게 보여주었다. 청장은 그것을 받아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이, 이 사람이 맞아?”
“네, 저도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기록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아서.”
“흠….”
사진만 봐서는 가녀린 첫사랑 이미지다. 도무지 신체가 근육질인 여성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청장과 부속실장은 그녀를 해수와 함께하는 갈비집에서 한 번 마주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후드티에 레깅스를 입었고, 사진은 경찰 정복이기에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여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직 대성 가드라….”
오히려 청장은 자연스레 안서은을 떠올렸다. 진실인지 모르나 경찰을 돕는 데에는 진심인 사업가, 호의가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경호원이면 실전도 이미 좀 겪은 거 아닌가?”
“예? 그렇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경찰과 경호원의 업무는….”
“그러니까 이렇게 실기도 월등한 실력으로 1등을 하지, 안 그래?”
부속실장은 반론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청장은 지금 다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어도 묻는 게 아니다. 이 의견을 따라오라는 뜻이다.
눈치 빠른 실장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역시 김실장이 사람 볼 줄 아는구만, 그러면….”
청장은 앞에 있는 바나나 우유를 한 모금 쭉 빨고는, 검지를 들어 허공에 휙 저었다.
“바로 보내.”
“사보순경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강수대로 보내라는 말씀이십니까?”
“응, 청장 권한으로. 어차피 내년에 내가 없어지면 강수대도 없어질지 모르잖아? 강수대가 어떻게 하나 한 번 지켜보자고.”
“알겠습니다.”
* * *
강수대 본부.
끼익-
강진서 강력3팀 팀장이 문을 갑자기 확 열어 젖혔다. 강수대 곽팀장과 함께, 강진서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형사다.
“뭐여? 니가 웬일이냐? 여형사 신입 들어왔다고 자랑하러 왔냐?”
“어. 뭐 그것도 할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겹경사냐? 강수대 깜댕이들아!! 상큼이 신입 받아라!”
“엉?”
신입 받으라는 말에 업무를 보고 있던 오갱과 해수, 막내까지도 벌떡 일어나 출입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3팀장이 발을 옮기며 두 손을 뒤쪽으로 펼쳤다. 그러자 3팀장에게 가려져 있던 신입이 모습을 드러냈다.
맞춤옷을 입은 듯이 핏이 살아나는 정복, 화장기 하나 없어도 빛이 나는 얼굴. 그녀를 본 순간 강수대 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짜식들 좋아 죽네 죽어, 에휴 놀릴 거리가 금세 사라져서 아쉽구나, 수고들 해라.”
그들의 반응에 3팀장은 허허 웃으며 뒤로 사라졌다.
동시에 신입이 팀장에게 칼각으로 경례를 했다.
“신고합니다! 순경 하루, 오늘부로 충남 강력수사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혀, 형수님?”
“제수씨?”
1년도 더 전에 아주 잠깐 보고 말았기에 대원들은 하루와 닮은 경찰인가 싶었는데, 그 이름을 듣자 확신했다.
대원들은 하루가 경찰이 된 것 자체를 몰랐던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하루에서 자연스레 해수에게 옮겨졌다. 그러나 해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벌써 왔지?”
“벌써?”
“뭐야, 하긴, 한 집이니까 경찰 된 건 알고 있었던 거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체?”
해수와 대원들이 혼란스러워하자 하루가 깔끔하게 그것을 잠식시켰다.
“제가 교육을 수료하면서 충남 강력수사대를 오고 싶다고 거론했습니다. 그리고 청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강수대 선배님들께서 직접 정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아… 청장님께서?”
팀장과 오갱이 다시 해수를 보았다. 해수가 청장에게 전화를 해서 빽을 쓴 게 아닌가, 당연히 의심이 되는 부분이다.
그때, 팀장의 개인 휴대폰이 울렸다.
지이잉 지이잉
“으익?!”
[조감찬 청장님]
청장의 직통 전화다. 팀장은 휴대폰을 놓칠 뻔하다가 다시 잡고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상황이 휙휙 돌아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예 청장님, 경감 곽수철입니다.”
-그래요. 내 선물은 마음에 들어요?
“아, 신입, 방금 도착했습니다.”
-딱 맞췄구만, 그 친구 교육 성적 기수 내 1등이었어요. 강수대가 요즘 인원이 부족해서 힘들다는 얘기 듣고 청장 권한으로 사보순경 건너뛰고 바로 보낸 거니까, 잘 써먹어봐요.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보내도 되고.
“네… 감사합니다. 청장님.”
통화를 통해 팀장은 청장이 해수와 하루의 관계를 모르고, 독단적으로 하루를 이곳에 보냈음을 직감했다.
팀장은 전화를 끊고 해수를 힐끔 보았다가 하루를 보며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3팀장 말대로 상큼이 신입이구나! 하순경 입대를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막내 탈출…?이다!”
해수는 나중에 하루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기로 하고,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눈을 마주했다.
“잘 왔다. 처음부터 여기서 지내면 다른 곳은 쉽겠지.”
“다른 곳 갈 생각 없습니다.”
“그래, 그래. 음, 저기서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와.”
“예 알겠습니다.”
교육 기간 동안 제대로 군기가 잡혔는지, 말투부터 시선처리까지 제대로 형사 신입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루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대원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형수… 아니, 하순경 한 명 들어왔다고 본부가 밝아진 느낌입니다.”
“그러게,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강수대는 너같은 애가 들어와도 쉽지 않은 곳인데.”
“음, 두고 봐야죠, 청장님이 본부만 지키라고 하순경을 보냈을 리는 없으니.”
막내는 물론 팀장도, 하루가 보이는 대로 팔다리도 가느다랗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외모의 여성이기에 염려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오갱은 예전에 해수의 집을 습격한 4인조가 하루에게 당한 사실을 알기에 비교적 차분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기에 그도 완전히 염려를 놓지는 못했다.
그렇게 서로 염려되는 부분을 꺼내면서도 해수의 눈치를 본다.
해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하루의 실력은 확실했으니까.
스윽
그때, 하루가 활동복으로 환복하고 나왔다. 그녀를 보고는 대원들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음.”
“같은 옷인데, 이게, 많이 다르네?”
해수를 포함한 형사들이 가장 많이 입는 활동복인데, 전혀 다른 옷처럼 보인다. 마치 아웃도어 광고를 보는 느낌이었다.
해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명치부분에 살짝 튀어나온 두 개의 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뭐지?”
“네, 이 줄은 가슴 조이개입니다.”
해수의 물음에 하루는 곧바로 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잡아 앞으로 확 당겼다. 그러자 안에 덧대어 입은 옷이 가슴을 확 조여서 작아지게 만들었다.
대원들은 그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민망하해며 시선을 피했다.
하루는 꿋꿋이 설명을 이었다.
“조이고 있으면 숨을 쉬기가 불편하고 음식을 섭취할 때도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풀어둡니다. 그러나 범인을 잡기 위해 달릴 때는 클수록 방해가 되기 때문에 바짝 조이는 겁니다.”
“아, 음, 그렇군, 그래도 잡히지 않게 조일 때는 안으로 갈무리를 잘 하도록.”
“예, 신해수 경사님.”
“호칭은 선배님으로.”
“예, 신선배님.”
그렇게 강수대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했지만.
막내는 졸지에 첫 후임이 선임의 형수라는 사실에 스스럼없이 대하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날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본부에 대원들이 모이자 팀장이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회식이다! 신입 환영회!”
“오늘? 금요일이 아니고?”
“언제 주말이 사라지고 퇴근이 사라질지 모르잖아? 오늘처럼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 된 날 해야지.”
“그건 또 형님 말이 맞네.”
“저도 좋습니다.”
“저도 가능합니다!”
모두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하루만 남았다. 하루는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주먹을 말아쥐고 가슴께로 올렸다.
“감사합니다!”
“좋아!”
* * *
회식은 강수대의 단골가게인 한판 삼겹살집이었다. 예전에 동동파 애들이 피바다를 외쳤던 고기집.
오갱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이 집게를 들었다. 해수가 왔을 때도, 막내가 오고 나서도 고기를 굽는 사람은 오갱이었다.
그만큼, 그는 고기를 굽는 데에 자부심이 있었다.
“자, 이건 우리 새막내꺼.”
“어허, 대장 먼저 줘야지?”
“대장님은 여기 비계, 나이들면 관절 삐걱거려서 기름칠해야 돼.”
“애들아 나 말리지 마, 오늘 이놈이랑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어야겠다.”
“정말? 형님 괜찮겠어?”
오갱이 집게를 내려놓고 사이다병을 거꾸로 잡자 팀장이 그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 내렸다.
“어허, 당연히 농담이지, 내 주먹은 계급장이다 이 자식아, 절대 안 떼!”
막내와 해수는 둘을 지켜보며 여느때처럼 중계를 하고 있고, 하루는 진지한 표정으로 불판을 노려보며 가장 최적으로 구워진 고기를 바로바로 집어 먹었다.
오갱이 굽는 데 자부심이 있다면, 하루는 먹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하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어, 어 그래그래, 다녀와요.”
하루가 화장실을 가고, 해수는 가만히 고기를 응시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가 저희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건, 저와 친하건 상관없이 지금은 강수대 신입일 뿐입니다. 모두 하루를 강수대 신입으로만 대해주십시오. 하루도 그걸 원할 겁니다. 막내 너도.”
“예! 선배님! 확실하게 가르치겠습니다!”
해수의 진지한 말에 팀장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어? 어, 그래, 티 났냐?”
“조금 애매해하시는 게 느껴졌습니다. 오갱 형님도.”
“어, 허허, 미안하다. 이게 근데, 너랑 관계된 게 아니어도 우리가 여자 후임을 처음 받아봐서 어색한 것도 커.”
“그렇지 그렇지,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렇다고 막 오냐오냐 이뻐만 해주는 것도 실례같고.”
“막내 왔을 때와 똑같이 대하시면 됩니다.”
“음….”
팀장은 화장실 쪽을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진짜 걱정되는 건 현장이야, 어떻게 경찰학교에서 탑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여린 몸으로 우리랑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우리 일이 얼마나 거친지는 니네가 제일 잘 알잖아?”
해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팀장을 보았다. 진심이다.
해수의 집 습격 사건 때 4인조를 상대한 것이 사실 하루였다는 것을 팀장도 눈치 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아니면 오래 된 일이니 잊어버렸거나.
하지만 오갱도 오묘한 표정을 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루의 실력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저 가녀린 몸은 눈으로 확인했으니 염려가 있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다.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타이밍에 맞게 하루가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이제 다시 고기를 구워주십시오.”
“어? 어, 어 그래그래, 우리 신입이 구워달라면 구워야지, 여기요! 3인분만 더 주세요!”
* * *
그날 밤, 해수는 하루와 함께 퇴근길에 올랐다. 같이 산 지는 꽤 됐지만, 같이 퇴근을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어땠어?”
“좋았습니다. 신선했습니다.”
“대원들은, 다 괜찮지?”
“네, 곽수철 대장님은 저를 예뻐하십니다. 딸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오강석 선배님은 고기를 잘 굽습니다. 제가 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잘 굽습니다. 존경합니다.”
“존경까지?”
“우강철 선배님은 저를 불편해합니다. 힘들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음….”
딩동
-지하 1층입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왔다. 해수는 하루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며 진지한 어조로 설명했다.
“강수대 신입이기 전에 나와 함께 사는 동거인이니까 후임으로 대하기 힘들어하는 거야. 이건 네가 먼저 나서고 일을 알아서 잘 해야 하는 수밖에 없어, 무슨 일이든 먼저 나서서 해. 우강철이 못 시키면 내가 많이 시킬 거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좋아, 신입.”
“여긴 집입니다. 우리는 퇴근했습니다.”
“공과 사가 철저하군.”
딩동
-10층입니다.
하루는 발랄한 꽁지머리를 손으로 튕기며 도도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해수 또한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 * *
해수를 뺀 나머지가 가녀린 여성이 강수대 신입으로 온 것을 걱정하는 마음을 날려버릴 사건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따로 맡은 사건이 없어 주폭 건만 해결하고 강수대 전원이 다같이 퇴근하는 길.
본부 문을 열자마자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장창!!
“시팔! 내가 전화하지 말랬잖아! 나 무시하냐 이 짭새 새끼들아!!”
한 소년이 쇠파이프를 들고 순찰차 위에 올라가 있다.
그 아래에는 친구로 보이는 앳된 소년 몇 명이 쇠파이프나 야구방망이로 순찰차를 깨부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