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경찰 합격
하루의 폭탄발언에 신해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얼어붙었다.
하루가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검지로 볼을 콕콕 찔렀다.
“요즘 찌르기에 맛들렸네.”
하루는 다급히 손가락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음… 어쩌다 경찰을 하기로 결심한 거지?”
해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로이기에 왜 경찰을 택했는지 이유를 추측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주변을 둘러보듯이 자연스럽게 해수의 손과 목에 난 상처를 물끄러미 보고는 눈을 마주하며 입술을 열었다.
“멋있습니다.”
“뭐가?”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범죄자를 추적하여 검거한다는 행위 자체가 멋있습니다.”
가끔 하루에게 ‘행위’같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이럴 때마다 적당한 때에 한국어학원에 보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 네가 생각한 것처럼 멋있지만은 않아, 음? 가까이서 날 보면 알잖아, 하루가 제일 좋아하는 밥도 자주 거르고, 운동할 시간도 훈련할 시간도 잠잘 시간도 모자라고, 퇴근도 제시간에 못할 뿐더러 사건 하나 터지면 퇴근 자체를 아예….”
해수는 방언 터지듯이 경찰, 아니 형사 생활에서 힘든 부분을 말해주다가 하루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고 아차 싶어 멈추었다.
이렇게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해보니 정말 형사는 못할 짓이다. 하지만, 정작 해수는 그만 둘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는 하루도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범인 잡는데 어떻게 내가 하고싶은 일을 다 하고 삽니까? 그 정도 정성은 들여야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알겠다. 하루아침에 정한 것도 아닐 텐데, 응원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돕지.”
하루는 오늘 하루만에 정한 일이기에 마음 한구석이 찔렸지만, 다시 물릴 생각은 없다.
하루는 배꼽에 두 손을 얹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왠지 용돈을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해수는 용돈 대신 부대찌개로 하루의 선택을 응원해주었다.
하루가 하고 싶다는 경찰은 위험하기로 유명한 강력계 형사로 생각되지만, 이상하리만치 걱정이 되지 않았다.
* * *
대성 E&M 건물 스카이라운지.
“…경찰? 정말요?”
“네.”
안서은은 하루의 발언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왜, 왜요? 언제부터 경찰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혹시… 해수씨 때문에?”
범죄자의 심리는 잘 읽어도 여자의 심리는 눈꼽에 낀 때만큼도 모르는 해수와 달리, 서은은 단번에 이유를 맞췄다.
하루는 정곡이 찔려 잠시 조용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옆에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은은 하루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서은이 해수가 귀국했을 때 보았던 상처를 보고 느꼈던 감정과 동일했다.
서은은 어떻게 하면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가의 방어 장비를 지원해줘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하루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선택했던 것이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많이 아쉽네요. 저는 하루씨라면 평생 제 등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해수에게 더 가까이 간다는 것보다, 하루와 떨어지는 것이 더 아쉬운 서은이었다. 그녀의 고운 얼굴에 서운함이 묻어난다.
“가끔 쉴 때 프리랜서로 뛰겠습니다.”
“하하, 경호원 프리랜서라, 신선한데요?”
하루식의 위로에 서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면 제가 명예 경호원직 같은 형식으로 하루씨의 이름을 그대로 올려둘게요. 언제든지 돌아오셔도 되고, 가끔 후배 경호원들에게 현직 경찰 겸 전직 경호원으로써 조언도 해주시고.”
“아직 현직 경호원입니다. 그리고 공무원은 겸직 불가라고 들었습니다.”
“페이를 안 주면 괜찮아요. 그런 쪽은 제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알겠습니다.”
하루도 유일한 친구인 서은과 멀어지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서은의 제안을 바로 수락했고.
하루는 경찰 필기 시험이 붙기 전까지만 경호원으로써 출근을 하기로 했다.
* * *
휴일.
하루는 테라스에 앉아 책을 열심히 보고 있다. 그녀의 공부법은 특이했다. 펜이나 연필같은 필기도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노트북이나 패드로 적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라는 것을 어학원 말고는 평생에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하루이기에, 해수는 그녀가 금세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끈덕지게 앉아서 공부를 놓지 않는 것이 기특했다.
그러나, 경찰 시험은 앞으로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해수는 그녀에게 건강 주스와 먹기 좋게 깎은 과일을 갖다주며 말했다.
“이번 시험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준비해, 시험 보고 나서 하반기를 제대로 하고, 처음부터 너무 달리면 나중에 지친다. 하루는 머리가 좋으니까 금방 붙을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에서….”
* * *
하루가 열심히 경호원 일과 경찰 상반기 공채 지원을 준비하는 동안, 해가 넘어갔다.
해수는 서른 둘, 하루는 스물 넷이 되었다.
강수대 대원들은 지금까지의 업적으로 모두 특봉이라고 하여 1호봉이 아닌 2호봉씩 올라갔다.
팀장 빼고 세 명은 모두 작년에 진급을 해서 1년 만에 바로 특진은 불가하다고 여겨, 호봉 추가로 그들의 활약에 보상을 해준 것이다.
대원들은 오히려 좋아했다.
“어차피 진급하면 우리 다 찢어져야 돼.”
오갱의 말에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기대도 안 했어, 무궁화 세 개 다는 게 쉽지 않지.”
“아, 얼른 형님 밀어내고 내가 대장 달아야 하는데.”
“내가 그 꼴 보기 싫어서 진급 안 한다.”
“저도 여기서 팀원이 더 바뀌는 건 싫습니다!”
“음, 저는 신입이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긴 하지, 일이 너무 많아, 많아, 손이 너무 부족해.”
“맞습니다.”
오갱이 열 손가락을 허공에 움직이며 죽는 시늉을 했다. 해수도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극 공감했다. 강수대의 명성이 높아진 만큼 온갖 곳에서 협조 요청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는 상반기 공채 시험을 보았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그 후로 다시 경찰 공부를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해수는 그녀에게 시험을 잘 봤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시험을 한 번 보고 나서 현실을 깨닫고 그냥 경호원 일을 계속 하겠다고 결심한 줄 알고, 위로의 의미로 김치찌개를 끓여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하루가 퇴근하자마자 해수에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상반기 공채 필기 시험 합격자… 하루?”
하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시험이 쉬웠습니다. 합격을 확신했습니다.”
“그, 그런 거였어?”
하루, 생각보다 더 똑똑한 듯하다.
그녀는 시험 결과가 난 뒤에 대성 가드에서 송별회를 가졌다.
많은 남자 경호원들이 송별회에서 마치 연인과 이별하듯이 슬퍼했다.
“우리 가드 마스코트가 가는구나….”
“꿈같던 1년이었다.”
“역시, 이런 거친 판에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었지.”
* * *
필기시험 합격자 체력 시험날.
젊고 건강한 미래의 여성 경찰들이 한 곳에 모였다. 그 중에서도 하루는 유독 눈에 띄었다.
시험을 돕기 위해 파견된 보조교관들은 그녀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쟤는 왜 여기 왔대? 사진보다 더 튀네, 홍보계 들어가려고 지원했나? 그냥 연예인이나 하지.”
“난 저런 애들이 제일 싫어, 얼굴 믿고 인생 쉽게 살려는 애들. 저런 애들이 경찰 욕 먹이는 거야.”
“딱 보니까 약골이야, 잘하면 여기서 걸러질 수도 있겠네.”
“그러게.”
하루는 그녀들의 대화가 들렸지만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잠시 후.
보조교관 둘은 둘 다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하루의 모든 체력시험이 여성 경찰의 기준을 아득히 넘어서 1등을 가뿐히 찍고, 남성 경찰 기준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띡-
“37번, 11초48….”
100미터 달리기 측정이 끝나고, 보조교관 한 명이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쟤는 왜 여기 왔대…?”
아까와 똑같은 말이지만 뉘앙스가 달랐다.
“그러게… 육상선수나 하지, 우리나라 여성 육상 기록이 몇이지? 설마 깬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겠지… 아니려나…?”
그녀들은 나중에 알았다. 하루가 우리나라 역대 기록은 아니지만, 올해 여성 선수의 기록을 넘어섰다는 것을.
하루는 그렇게 최우수 성적으로 체력시험을 마치고, 면접은 간신히 통과하고 최종 합격을 했다.
* * *
강수대 본부.
쾅!
곽팀장이 문을 거칠게 박차고 들어와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이냐?! 강력팀에 신입이 네 명이나 들어왔대, 그것도 다 특수부대 기수로 유명한 321기!”
팀장의 말에 오갱이 해수에게 물었다.
“해수 니가 특별교관 갔을 때 몇 기 가르쳤냐?”
“321, 322기입니다.”
“오 그래? 그럼 한 번 가서 인사 좀 나눠봐, 아 2주라서 별로 기억 못 하려나.”
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2주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그것도 경찰학교 졸업 이후로 1년 동안 지구대를 돌면서 새로운 경험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학교에서의 기억은 완전히 잊혀진다.
팀장은 다리를 꼬고 자리에 앉아 불만을 토로했다.
“에혀, 아니 그렇게 강력팀은 잘 들어가면서 왜 우리는 신입 충원이 안 되냐고.”
“여기 코난급으로 강력사건 많이 맡기로 유명해져서, 강수대 기피 지원 1위라고 소문이 자자하대요.”
오갱의 말에 팀장이 다시 벌떡 일어나 흥분하여 말했다.
“기피 지원이라니? 여기 목숨만 두 개면 나름 재밌는데! 흉악범도 많이 잡지, 병원도 자주 가지, 스릴 있는 위장잠입도 자주 하지!”
“듣다 보니 다 맞는 말이네, 피할 만 하네.”
“저는 지금 정말 좋습니다!”
“우리 팀에서 제일 정상같아보이는 우강철이가 사실은 엄청난 특이케이스였던 거지.”
오갱의 말을 듣자마자 해수가 슬며시 일어나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오갱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제가 비정상같습니까?”
“어, 그거 묻는 것도 비정상같아! 너 무서워, 미안해, 그렇게 쳐다보지 마.”
“음….”
그때, 누군가가 강수대 본부 문을 노크했다.
똑똑
“어?”
“누구지, 들어와요.”
끼익
문 앞에는 정복을 입고 있는 파릇파릇한 경찰 네 명이 서 있었다.
해수는 단번에 그들을 알아보았다. 321기 교육생이었던 경찰관들이다.
남자 한 명은 교육생 대표였던 김웅민, 또 한 명은 오성주 국회의원의 딸인 오미연이었다.
“충성! 신고 합니다!”
“에이 우리한테 신고를 왜 해, 그거 신고하면 강수대 들어와야 한다?”
오갱의 말에 321기는 금세 손을 내렸다. 강수대 들어온다는 말이 호랑이가 찾아온다는 말처럼 효과가 좋았다.
넷 다 귀한 순경 형사들이다.
각자 다른 지역에서 지구대 있을 때 형사가 되고 싶다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근무하여 각 지구대에서 검거율 1,2위를 찍고 드디어 형사로 발령받았다.
이 곳에 해수가 있다는 소식에, 발령받자마자 인사를 왔던 것이다.
팀장이 그들에게 물었다.
“여긴 왜 지원하지 않았어요?”
오갱의 직설적인 질문에 그들은 서로 눈을 피하기 급급했다. 오미연이 작게 물꼬를 텄다.
“신해수 교관님을 존경하지만….”
“그때의 훈련이 저희가 힘들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지만…!”
“같은 서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만족합니다!”
팀장은 신입들의 대답에 팔짱을 끼고 입술을 베 내밀었다.
“그러니까, 여기 오긴 싫다는 말이네.”
“소문이 대체 어떻게 난 거야?”
신입이 대거 들어와서 강력팀은 분위기가 좋았지만, 강수대 대원들은 오히려 더욱 힘이 빠졌다.
* * *
강수대 대원들이 신입이 들어오지 않아 힘들어한다는 소식은 충남 경찰청장에게도 들려왔다.
이번에 임기가 마지막인 청장은 그 소식을 듣고 얼굴이 매우 심각해졌다.
“흠, 강수대가 얼마나 좋은데, 왜 그러는 거지? 우리 대원들이 그렇게 힘들면 안 되지, 아무래도 홍보를 좀 제대로 해야겠어.”
청장의 걱정에 부속실장이 작게 말했다.
“정식은 아니고, 강수대 지원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부속실장의 말에 청장의 고개가 번쩍 들어졌다.
“엉? 누군데?”
“이번에 막 교육을 마친 신입입니다. 사보 순경이 지나면 바로 보낼까요?”
“신입이? 허허, 패기가 좋은 친구네, 흠… 일단 누구든 충원해줘야 우리 강수대 사기가 살아날 텐데, 교육생 때 성적은 어떤데?”
부속실장은 검지를 추켜올리며 대답했다.
“모든 실기 과목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강수대에 어울리지.”
“그런데, 여성입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