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14화 (114/255)

114. 반갑다

일본은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행정적인 부분은 주먹구구인 경우가 많다. 덕분에 신분세탁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범죄자들이 새로운 신분을 얻기 위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모창귀도 손목 수술과 신분세탁을 위해 일본을 택한 것이다.

일본 오사카.

마치 2000년대 한국 강력팀 사무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본 경찰의 강력팀 사무실.

현지 경찰들과 강수대가 한 자리에 모여있다.

cctv나 블랙박스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빈틈이 많기 때문에 범인 추적이 힘든 상황에서, 강수대가 범인에 대한 정보를 준다고 하니 협동수사를 허락한 일본 경찰들이었다.

“…그래서 수지접합 병원을 찾아간 겁니다.”

신해수의 설명에 일본 경찰 중 한 명이 실소를 흘렸다.

“하, 참… 한국 경찰이 여기까지 단숨에 넘어온다길래 무슨 엄청난 일인가 했는데, 이런 어이없는 말이라니….”

그는 검지로 손목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수술 직후에 의사를 죽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리고 뭐 로봇도 아니고, 아무거나 막 붙인다고 잘 움직일 리가 없잖아?”

모창귀는 수술 후에 의사를 죽이고, 병원 내 cctv까지 없애고 간호사까지 죽이고 병원을 나갔다.

cctv는 수술 전에 없앴다고 치더라도 그 행적이 갓 수술을 마친 자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에 일본 경찰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일반인들 기준이고, 모창귀는 모창귀다.

“갈비뼈가 네 대나 부러지고 한쪽 다리가 골절인 상태에서도 건장한 조직원 여섯 명을 살해한 흉악범입니다. 그의 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해수의 진지한 말에 일본 경찰 팀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서서 자신의 팀원들에게 말했다.

“자, 저 뚱뚱한 한국 경찰의 말이 믿기는 힘들어도 우리가 경찰인 이상 작은 의심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본래 추적했던 대로 자신이 다른 곳에서 살해했던 사람의 손목을 현장에 놓고 간 사이코 범인인지, 아니면 저 한국 경찰의 말이 사실인지 아무도 모른다. 일단 수사 범주에 넣고 우리는 양쪽을 모두 추적한다. 알았나?”

“그러기에는 인원이 부족합니다.”

“한국 경찰이 왔잖아, 저들에게 맡긴다.”

팀장은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작은 정보라도 얻으면 서로 공유하는 걸로, 알았지?”

“알았다. 배 나온 팀장.”

“푸흡-”

“크크!”

통역사가 이번 말을 통역하지는 않았지만, 팀장은 현지 경찰들의 시선과 비웃음을 보고 어떤 말인지 깨달았다.

“이 새끼들이 일본까지 넘어와서 다이어트 욕구 충만하게 하네, 이것들 비웃음거리 안 되려고 내가 뱃살 꼭 빼고 만다.”

“형님, 평균 몸은 우리가 압도적이야. 힘내.”

“젠장, 내가 평균을 많이 깎아먹는구만.”

“그건 반박할 수 없네.”

둘이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고 있는 사이, 해수는 모창귀에 대해 생각하느라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창귀가 어디로 갔을까요? 회복을 위해 몸을 숨길까요? 아니면 신분 세탁을 위해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까요?”

“그래,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지, 상대는 모창귀야.”

막내 우강철은 한 번도 모창귀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모창귀에 대한 무서움을 모른다…라고 하기에는 최근에 들은 것이 너무 많다.

특히 현존 지구최강이라고 생각했던 신해수 선배가 정신 못 차리고 긴장하는 모습은 막내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본래 상상이 현실보다 더한 편이다. 막내의 머릿속에 모창귀는 이미 어마어마한 괴물이 되어있었다.

그는 해수를 따라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모창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분 세탁을 위해 움직이던, 돈을 위해 움직이던, 그에게 회복을 위한 잠복기는 없을 듯합니다.”

막내의 말에 해수만이 공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음… 일리있는 말이야, 확실히….”

그때, 현지 선임 형사 중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여기 계속 있을 건가? 한국 경찰들은 사무실에서 대화만 하고 현장을 직접 발로 뛰지는 않나?”

축객령이다. 곽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쪽 선임을 밀고 상대 팀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알겠어, 나가서 찾을 테니까, 총이나 좀 줘. 이놈은 총 아니면 잡기 힘들다고.”

하지만 일본 측 팀장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니까? 저기 위에서 너희에게 총기소지 허락을 하지 않아서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들 중에 가장 덩치가 큰 형사가 책상에 기대어 앉아 이죽거렸다.

“니네 말대로라면 손 병신 한 명인데, 그런 놈을 못 잡나? 그 근육들은 폼인가? 여자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헛근육이야?”

“응, 니 아가리 찢기 위한 근육이야.”

오갱이 손가락 관절을 풀며 그에게 다가가자, 막내와 해수가 다급히 오갱을 말렸다.

그렇게 강수대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지고 본부 밖으로 쫓겨났다.

강수대가 나가고, 현지 팀장은 팀원들을 모으고 긴히 말했다.

“앞으로 건지는 모든 정보는 저놈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하나씩 쓸모없는 것들을 던져줄 테니까 너네는 지금 하던 대로 쭉 해, 알았어?”

“당연하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되도 않는 헛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요.”

“좋아, 그럼 흩어….”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 사무실 전화가 크게 울렸다. 팀 막내가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살인 건이요. 목격자가 전화했다고요. 그런데, 범인 손이 인형처럼… 잘랐다 붙인 것 같다고요?!”

막내가 돌아서서 다른 팀원들을 보았다. 팀원들도 동시에 막내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전화가 끊기고,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팀장이 작게 말을 이었다.

“일단 이번 건은 우리끼리만 알고, 그놈 우리가 먼저 잡는다. 출동 준비해!”

“예!”

* * *

같은 시각, 강수대 봉고차.

“…하, 답답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쪽 정보과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갱은 인상을 찌푸린 채 턱을 쓰다듬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야, 저놈들이 우리랑 정보공유 할 것 같냐? 해수, 아까 거기 팀원이랑 뭐 얘기 좀 하는 거 같더만, 뭐 좀 건졌어?”

해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뭐라도 알려줄까 봐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말도 아끼고, 아마 우리끼리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거 큰일이네, 저놈들이 심각성을 인지했으면 안 저럴 텐데.”

해수가 가만히 있다가 막내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휴대폰 하나 더 있지.”

“예? 예 선배님, 여기.”

막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분의 휴대폰을 해수에게 주었다.

해수는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는 의문이 가득해보이는 팀장을 보며 말했다.

“감청 좀 해봐야겠습니다. 막내야, 다시 서로.”

“예!”

해수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막내의 여분 휴대폰에 전화를 걸고, 그 휴대폰을 들고 경찰서 강력1팀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미 강력1팀 책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수는 통역사를 앞세워 다른 팀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 어디 갔습니까?”

“우리도 모릅니다? 시간도 없는데, 그런 거 다 알리나? 한국에서는?”

해수는 미간을 확 좁히며 강력1팀 책상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내선 전화 하나를 들어 재다이얼을 눌렀다.

-네, 상황실입니다.

해수는 억양과 느낌으로 상황실임을 직감하고 통역사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방금 전에 어떤 사건 신고였는지 물어봐주십시오.”

“네, 네, 아… 한국협동강력팀입니다. 빨리 출동해야 하는데, 방금 어떤 사건을 강력1팀에 신고하셨습니까?”

상황실은 당황스러워했지만, 찬찬히 신고 내용을 다시 알려주었다.

해수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바로 그곳을 뛰쳐나왔다. 내용을 들은 통역사도 다급하게 따라나왔다.

저 멀리, 해수가 통역사와 함께 달려나오자 강수대 팀원들이 무언가 급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바로 봉고차 문을 열어주며 시동을 걸었다.

드르륵-

해수는 봉고차 안에 탑승하자마자 숨도 고르지 않고 말했다.

“막내야, 이 주소로 가자.”

막내는 바로 휴대폰을 받아 내비를 보며 액셀을 밟았고, 해수는 다음으로 팀장을 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살인 사건 방금 신고 들어왔습니다. 전직 야쿠자, 현재는 신분증 팔이. 목격자가 있는데 손목이 인형처럼 잘랐다가 붙인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랍니다.”

“모창귀네.”

“이런 시팔놈들, 시작부터 바로 이 지랄이야?”

부아아앙!

운전석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막내는 더욱 깊게 액셀을 밟았다.

* * *

같은 시각, 도심 외곽에 위치한 낙후된 지역.

좁은 골목길이 많고 가로등이 드문드문 설치되어 동네 자체가 어두컴컴한 곳이다.

현지 경찰 강력1팀은 사건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곳의 지하실에, 책상 앞에 한 사내가 엎드린 채 숨져 있다.

형사 한 명이 그의 목을 살펴보았다.

“얕아, 딱 경동맥만 잘랐어.”

“얼굴을 왜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었대?”

“이거 살 말린 거 보니까 죽이기 전에 얼굴 먼저 엉망으로 만들고, 경동맥 자른 것 같습니다.”

팀장이 구석에 있는 한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어쩌다가 보게 된 거라고?”

“죽이는 건 못 봤고, 피 묻은 칼을 들고 나가는 건 봤어요.”

“아… 어떻게 생겼어?”

“공부 잘 하게 생겼어요.”

“그렇구나, 두 손은 잘 움직이고 있었어?”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까지는 몰라요.”

“아, 그렇겠구나.”

소년은 두 손을 막 돌리며 말을 이었다.

“칼을 손목에 칭칭 감았어요. 청테이프로.”

“청테이프….”

팀장의 얼굴이 언짢아졌다.

점점 한국 형사들의 말이 들어맞는다. 두 손을 쓰지도 못하면서 칼을 손목에 감아서 고정시키고 살인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이 새끼 진짜 보통 놈은 아닌가보네… 어디로 갔다고?”

“저쪽이요. 다리를 절뚝거리니까 멀리 가지 못했을 거에요.”

“알았다. 나중에 상을 주마, 가자!”

강력1팀은 모두 소년이 가리킨 방향으로 떠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소년의 손끝과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검은 인영이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소년의 목을 두 손으로 천천히 감싸며 일본어로 말했다.

“잘했어, 이제 약속대로 한 시간을 주지, 최대한 멀리 도망쳐.”

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모창귀는 소년의 등을 살짝 밀었다.

“시간 간다. 살고 싶으면 뛰어라, 아가야.”

턱 턱 턱 턱, 타다다닥-

소년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간신히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다가, 지하실 문을 통과하자 그제야 달려서 도망쳤다.

모창귀는 팔을 들어 자신의 새로운 손을 보았다. 지금처럼 남의 손을 붙이면 열에 여덟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는 괴사하며, 하나는 마치 제 짝처럼 잘 움직인다고 했다.

지금 모창귀는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두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더없이 긍정적인 예후.

그는 다시 되찾을 화려한 생활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그때, 모창귀가 문을 열기 전에 먼저 지하실 문이 열리며 현지 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1팀 중에 가장 덩치가 큰 형사다. 그는 모창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 시선을 내려 그의 팔을 보고는 이를 꽉 물었다.

한쪽 손목만이 아니라 양쪽 손목에 회칼이 청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다. 게다가 반팔, 이건 뭐 범죄를 숨길 생각이 없어보인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애가 계속 벽 구석을 힐끔거리더라고, 괴물이라도 숨겨놓은 것처럼.”

모창귀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뒷걸음질로 계단을 다시 내려가며 물었다.

“혼자 왔나?”

“뭐야, 일본 말도 할 줄 알아?”

“여기서 태어났거든, 아주 좃같은 날들이었지.”

“그렇구나. 혼잔데, 이제 곧 아닐 거야.”

그가 총을 들어 모창귀에게 겨누고 어깨에 멘 무전기를 눌렀다.

“여기 아까 그 지하-”

그 순간, 모창귀가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손목에 고정시킨 회칼이 정확히 총을 든 형사의 손목과 팔꿈치를 베고, 마지막으로 그의 목을 꿰뚫었다.

슥 슥- 푸슉-

그러고는 겨드랑이에 형사의 팔을 끼워 확 꺾었다.

철커덩

총이 떨어지고, 형사는 모창귀를 노려보며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창귀는 발로 그를 밀어 지하실 계단 아래로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진 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발로 툭 밀었다.

-선배님, 어디십니까?

-너 왜 대답 안 해, 어디야, 지하라고 했나?

콰직!

모창귀는 씨익 웃으며 무전기를 발로 밟아 부쉈다.

* * *

좁은 골목길, 현지 강력1팀 팀원들이 지하실로 다시 돌아가는 중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팀장은 가장 뒤쳐지는 중이었다.

“헉,헉,헉, 아니 우리가 이렇게 많이 왔나?”

팀장이 허리를 굽히고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그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팀장을 챙기는 팀원인가 싶어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들어 휘휘 저으며 먼저 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일단 놈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슥-

그런데 돌연 손이 불에 덴 듯이 뜨거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맥이 베여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 앞을 보니 한국 형사가 사진으로 보여줬던 그 자가 내려다보며 씨익 웃고 있다.

“안녕?”

슥- 푸슉

팀장의 목에 혈선이 길게 생겨났다.

모창귀는 팀장이 쓰러지는 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른 팀원이 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팀장은 그의 등을 보며 손을 뻗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타다다닥-

이미 지름길을 알고 있던 모창귀는 금세 팀원들과의 거리를 좁혔고, 그는 금세 팀원 중 한 명의 등을 발견하고 미친듯이 뛰어갔다.

“반갑다 이 새끼야!!”

낯선 목소리에 팀원이 달리는 속도를 조금 늦추며 뒤돌아섰다. 동시에 모창귀의 칼이 그의 목에 닿기 직전.

콰장창!!

나무 문이 부서지며 누군가가 모창귀를 덮쳤다. 모창귀는 반대편 문까지 부수고 가정집 안으로 들어가 벽에 강하게 꽂혔다.

쾅 쾅 쾅!!

신해수는 모창귀의 멱살을 잡고,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반갑다. 이 씹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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