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13화 (113/255)

113. 손목 도난 사건

험악한 인상의 사내 네 명과 모창귀가 마주보고 있다.

모창귀는 칼자루로 귀를 후비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 미친놈 맞고, 니네 중에 선장이 누구니?”

산적같은 선원이 주변에 있는 쇠꼬챙이 하나를 집어 들고 오며 말했다.

“선장님은 니가 알아서 뭐할 껀데?”

“너는 아니네.”

말과 동시에 모창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발을 옮기며 산적 선원의 목 왼쪽 경동맥 부분을 두 번 찍었다. 마치 이쑤시개로 사과를 찍듯이 아무렇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푹 푸슉-

선원의 목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고, 창귀는 주저앉는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목을 한 번 더 길게 베었다. 선원의 목이 아가미처럼 크게 벌어진다.

순식간에 선원 한 명이 당하자,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챈 선원들이 하나같이 살벌한 무기를 꺼내들고 창귀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

“죽여 저 새끼!!”

창귀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선원들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훙 후웅- 캉!!

선원이 쇠파이프를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모창귀의 몸에 닿지 않았다. 애꿎은 갑판만 두드릴 뿐이다. 그 저릿한 충격에 멈칫한 순간, 옆구리에 싸늘한 금속이 깊숙이 들어왔다.

푹 쯔즈즈-

“꺼, 꺼억.”

모창귀는 칼날을 위로 올려 장기를 휘젓고는 칼을 뽑았다.

동시에 옆에서 서슬퍼런 회칼이 뻗어왔다. 창귀는 고개만 뒤로 살짝 물리는 것으로 그것을 손쉽게 피하고, 상대의 손목을 잡아채어 팔꿈치에 칼을 꽂았다.

“끄아악!”

그러고는 칼을 뽑으면서 몸을 확 숙여 다른 선원의 쇠꼬챙이를 피하고, 회칼을 든 선원의 발목을 칼로 그었다.

“아으윽!”

쾅!

그 사이 쇠꼬챙이가 모창귀가 있던 자리를 내리쳤다. 창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상대에게 달라붙어 발목과 무릎, 옆구리, 겨드랑이, 마지막으로 목을 길게 그었다.

츄아악-!

그의 칼질은 처음부터 짜여진 각본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빨랐다. 선원은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그 칼질에 홀린 듯이 당했다.

쿠궁-!

선원 세 명이 시간차를 거의 두지 않고 시뻘건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 남은 사내는 가만히 벽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모창귀는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로 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다가와 물었다.

“거기가 선장인가?”

스읍- 후우-

사내가 말없이 담배연기만 내뿜고 있자, 모창귀가 손을 휘둘렀다.

팍-!

칼이 날아와 사내의 담배 끝부분을 자르고 옆에 벽에 꽂혔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사내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붙잡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맞소… 내가 선장.”

“그래, 대답할 수 있네. 다음부터 내가 묻는 말에는 한 번에 대답하는 거야, 안 그러면 나가사키고 뭐가 싹 다 고기밥 되는 거야. 알았어?”

“…알았소.”

창귀는 선장에게 다가가 피가 잔뜩 묻은 칼의 옆면으로 그의 볼을 툭 쳤다.

“꼴에 선장이라고 가오잡다가 혓바닥 잘리지 말고, 말투 바꾸고.”

“알겠습니다….”

“그래, 이제 배 돌려서 나가사키로 가. 혼자 할 수 있어, 없어?”

선장은 모창귀의 말에 반사적으로 바닥에 팔꿈치와 발목 한 쪽이 베인 채 신음을 흘리는 선원을 힐끔 보았다.

나머지는 움직임이 없지만, 저 선원은 저 정도 상처로는 죽지 않을 것 같다.

“조타수가 필요합니다. 최소 두 명….”

“두 명이라… 얘 쓰고, 야, 꼬맹이.”

모창귀의 부름에 선원에게 구타를 당하여 구석에 움츠리고 있던 남자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네, 네.”

“너 저 아저씨랑 배 몰래, 죽을래?”

“모, 몰게요. 배 몰게요.”

“그래, 여기 피 좀 닦고.”

“네, 네!”

아이는 언제 맞아서 쓰러져 있었냐는듯이 빠릿빠릿하게 돌아다니며 피를 닦고, 생존자들과 함께 시체도 옮겨서 바닷가에 던졌다.

그렇게, 모창귀를 태운 배는 일본 나가사키로 향했다.

* * *

한편, 남포 국제항.

“하… 시팔, 이 새끼 안 보이지?”

-없습니다.

-이미 뜬 것 같네요.

강수대와 특수기동대는 결국 모창귀를 찾지 못했다. 뒤늦게라도 cctv나 블랙박스를 싹 걷어와 국제항 상황실에서 분석해보고 나서야 모창귀를 찾았다.

“이 새끼 그새 또 갈아입었네.”

“난 놈이네, 이거.”

모창귀의 복장은 아무리 공유해봐야 쓸모가 없었다. 국제항에서만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은 것을 확인했다.

거기다 움직일 때 등도 굽고 걸음걸이도 달리 하여,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변장의 귀재였다.

그가 큰 배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배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팀장이 흥분하여 말했다.

“저거, 저거 어디 행이지?”

해수가 배 식별 번호를 확대했다. 막내가 그것을 보고 옆에 컴퓨터에서 빠르게 조회했다.

“상하이입니다.”

“시팔….”

이미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해양경찰이 망망대해에서 그 배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복귀하자.”

오랜만의 실패다.

아니, 강수대가 창설된 이후로 처음으로 겪는 실패다.

본부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은 싸늘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오갱이 돌연 앞좌석을 발로 찼다.

쾅!

“이게 뭐야! 시팔, 효성교도소 그 새끼들이 싼 똥 치우려다가 똥만 묻혔잖아, 개새끼들 탈옥을 했으면 바로바로 알리면 얼마나 좋아?”

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막내가 어깨를 떨며 움찔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팀장이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형사들을 독려했다.

“그러게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교도소라는 타이틀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아무튼, 아직 끝난 거 아니다. 모창귀 그 새끼, 우리 강수대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잡는다. 자자 다들 허리 펴고, 어깨 올리고!”

“예에….”

“예, 알겠습니다.”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강수대는 바로 중국 상하이로 모창귀에 대한 정보를 덧붙이며 협조 공문을 보냈다.

[흉악한 범죄자가 그곳으로 밀입국했으니 수사 및 체포에 협조 바란다.]

[알았다. 당국의 경찰은 유능하다. 직접 체포하여 한국으로 이송시키겠다.]

팀장이 혀를 찼다.

자신들이 알아서 잡을 테니 상하이로 오지는 말라는 뜻이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강수대는 다른 자잘한 사건을 맡으며 인터넷으로만 모창귀에 대한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상하이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이 새끼들 찾았으면 찾았다. 어렵다. 놓쳤다. 뭔 말이라도 해줘야하는 거 아니야?”

막내를 등에 앉히고 팔굽혀펴기를 하던 해수가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가며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물어봤습니다. 지금쯤 답변이 왔을 것 같은데….”

[여러 방면으로 수사했으나 못 찾았다. 허위사실 아닌가?]

“음….”

미적지근한 해수의 반응에 다른 팀원들이 달라붙어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이 새끼들, 찾지도 않고 이러는 거 아니야? 지네가 모창귀한테 한 번 엿돼봐야 심각성을 알라나.”

하지만, 해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진짜로 상하이가 아니라 다른 곳 간 것 아닐까요?”

“글쎄, 상하이가 그놈이 잠수 타기는 제일 낫지 않나?”

“제보자가 알려준 정보가 워낙 적어서, 그때 어느 나라를 목표로 한다는 걸 알았다면….”

모창귀를 제보했던 놈은 찾아봤지만 이미 잠수를 깊게 탄 후였다.

아마도 도망친 모창귀가 찾아올까 봐 제보하자마자 잠수를 탄 듯했다.

“그러게 말이다.”

해수는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팀장이 따라 일어나며 호들갑을 떨었다.

“돌격이 일어났다 일어났어, 돌촉 왔다. 가자가자.”

“어딜 가, 형. 그냥 해수 혼자 가게 놔둬, 해수야 어디든지 잘 갔다 와, 우리 필요하면 말하고.”

“예.”

해수가 나가면서 막내와 눈이 마주쳤다.

막내가 벌떡 일어나 차키를 챙기자, 해수가 손을 들어 손등을 천장이 가게 하여 위에서 아래로 저으며 그를 다시 앉혔다.

막내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 * *

효성교도소 접견실.

해수는 교도소 인원충원 VVIP답게 특별대우로 면회실이 아닌 직접 한 공간에서 만나는 접견실 사용을 허락받았다.

우걱 우걱 우걱

해수와 마주앉아 있는 사내는 바로 모창귀와 같은 호실을 쓰던 11호였다.

그는 딸기우유를 옆에 고이 두고 크림빵을 세 개째 처먹고 있었다.

“우움, 움, 어떻게 내 취향을 알았지? 내가 그 새끼 탈옥하고 다 괜찮은데 이거 못 먹는 건 힘들더라고.”

해수가 11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시선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요.”

해수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하루, 17호가 알려줬어.”

하루가 알려줬다는 말에 11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거의 20년이 지났는데도 자신이 딱 한 번 말했던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17호 이름이 하루입니까, 좋은…이름이군요.”

“좋은 이름이지.”

11호는 딸기우유를 시원하게 원샷하고 손을 털고나서, 그제야 자세를 잡았다.

“자, 나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회사에 관한 이야기겠지?”

해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창귀. 그에 대해서 아는 대로 털어봐, 언제부터 탈옥을 계획했는지, 걔가 왜 탈옥을 했는지.”

11호는 의외라는 얼굴로 등을 등받이에 기대며 기억을 더듬었다.

“음… 이유라, 모르겠는데, 가만히 책을 보다가 갑자기 ‘여기서 나가야겠다.’ 하고 그날 바로 일을 쳤습니다. 미리 준비된 게 아닙니다.”

“…정말 그것뿐이야?”

해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전의 명예와 조직을 되찾기 위해서도 아니고, 교도소 생활이 힘들거나 지겨워서 나가려 했다는 이유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껏 정말 많은 범죄자를 만났지만, 모창귀는 도무지 정상적인 사고를 유지한 채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때, 11호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검지를 추켜들었다.

“아.”

“왜, 말해봐.”

“이건 정말 사소한 일이긴 한데, 그 말을 하기 직전에 했던 행동이 있습니다.”

“무슨 행동.”

“이렇게 손으로 책을 넘기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다음장으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놈 두 손이 완전 아작났잖습니까? 그런 괴물같은 놈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

“내가, 그놈 팔을 뽑으려다가 그렇게 했는데, 그냥 뽑을 걸 그랬어. 왜 그러고 있어?”

해수가 말을 잇다가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11호는 어느새 두 무릎을 딱 붙이고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있었다.

신해수와 직접 붙어보지는 않았지만 워낙 교도소 내에 소문이 많이 돌아서 꽤 싸우는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회사 사람이 아니니 깔보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손해질 필요가 있었다.

“저, 저는 이 자세가 편합니다.”

“그래, 보기 좋네. 알았어, 들어가. 아, 거기 그… 동영파 행동대장도 거기 있지?”

“예, 며칠 전에 자수해서 다시 들어왔습니다.”

“걔도 모창귀 나갔다고 살판 났을 것 같은데, 니가 잘 좀 가지고 놀아.”

“예, 명심하겠습니다.”

11호는 해수가 가는 뒷모습에 대고 경례까지 했다.

* * *

해수는 강수대 본부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돌격이 왔다!”

“뭐 좀 건졌어?”

해수는 자신의 자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 손, 접합 수술 관련된 기사 다 찾아봐주십시오. 이 새끼 손 고치러 간 겁니다. 내가 아작낸 손.”

“손?”

“예, 일본도 뒤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해수의 생각엔 수술이라면 이 근처에서는 한국이 최고지만, 모창귀는 한국에서 탈옥까지 한 마당에 오랜 시간 수술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간다는 것도 이상하다. 보호자 없이 범죄자 신분으로는 통나무가 제발로 찾아온 꼴.

그렇게 해수가 들고 온 추측이자 정보로 열심히 탐색 중에, 막내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이상한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막내의 말에 강수대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기사는 어제 난 것, 제목부터 이상하다.

[살인+손목 도난 사건?]

-오사카 수지접합 전문 병원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손님으로 있었던 남자의 양손이 절단되어 있고, 의사는 경동맥이 끊겨 사망하였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손목이 절단된 손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두 손이 현장에 널브러져 있었다는 겁니다.

[모자이크 사진]

현장에 있는 손은 뭉개지고 뼈가 다 으스러진 상태였습니다.

해수는 그 손에 대한 묘사를 보자마자 미간을 확 좁혔다.

“모창귀.”

“왜, 뭐, 모창귀가 왜.”

“저거 모창귀 손입니다. 일본으로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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