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즐거운 밀항
몇 분 전, 남포 국제항 화물 분류장.
모창귀는 컨테이너에 딱 붙어서 어딘가를 힐끔거리고 있다.
‘저 찢어죽일 새끼가 왜 여기 있나?’
자신의 손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 신해수를 보고 모창귀를 이를 으드득 갈았다. 순간 분노가 차올랐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는 선불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달까, 이 새끼가…!’
돈과 위조 여권을 가져오기로 한 부하가 잠수를탔다. 배신이다. 모창귀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쩐지 돈과 여권을 주는 것을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미루더니, 결국 경찰에게 알리고 배신을 한 것이다.
모창귀의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발을 돌리거나 가만히 있으면 금세 위치가 노출될 것이다.
그때, 마침 그의 눈에 인적이 드문 컨테이너 사이에서 키스를 격정적으로 나누고 있는 커플을 발견했다.
구석에는 캐리어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배 시간을 기다리다가 뭐가 그리 급한지 이런 곳으로 숨어든 것이다. 가만 놔두면 속옷까지 내릴 기세다.
창귀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니 나랑 옷 바꿔 입자.”
“어맛!”
여자가 화들짝 놀라 떨어지고, 남자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뭐? 미친 사람이야?”
“한국 놈들은 맞아야 말끼를 알아들어.”
창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주먹을 가볍게 뻗었다.
퍽-
그의 주먹은 남자의 코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잠시 후, 한 컨테이너 박스 안.
“저거 타고 가라, 실시간으로 니 애인 모가지 썰리는 거 보고싶지 않으면 남들한테 잡히지 말고, 알았어?”
“네, 네, 제발….”
어느새 모창귀의 옷으로 갈아입은 남자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창귀는 그와 여자의 휴대폰을 영상통화로 연결시키고 여자의 모습이 찍히게 했다.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게 하는 방법이면서 언제든지 여자를 죽이겠다는 협박이다.
“자, 가라.”
“오, 오빠, 오빠아….”
여자는 눈물콧물을 흘리며 모창귀에게 얌전히 붙잡혀 있었다. 그녀의 하얀 목에 모창귀의 칼이 딱 붙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걸음을 옮기며 여자를 몇 번 보았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원래 모창귀가 탈 배로 가는 중, 모창귀는 여자와 단 둘이 남자 눈빛이 확 돌변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하고 덜덜 떨었다.
“살려, 살려주세요….”
모창귀는 휴대폰 음성을 끄고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며 물었다.
“내가 니를 왜 살려줘야 하나? 그럴 이유가 없는데? 쟤는 니가 죽든 말든 모르고 저쪽 나라 갈 꺼다.”
“제발, 제발… 무슨 일이든 할게요.”
그녀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그에게 부탁했다. 모창귀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게 살고 싶어?”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알았어, 대신 잘 해야 돼.”
그는 돌연 여자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제로 벗겨서 금세 속옷만 입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치욕감에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바닥에 뚝 뚝 떨어진다.
“대가리 들어라.”
하지만 얼음같은 그의 목소리는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 따위는 금세 사라지게 만들었다. 여자는 고개를 번뜩 들었다.
모창귀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더니 몸을 천천히 돌렸다. 그렇게 그녀의 남자친구가 갔던 배 쪽이 아닌 입구 쪽을 바라보게 하고, 그곳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니는 저쪽으로 뛰어가는 거다. 관리원들 있는 곳까지, 알았어?”
“예, 예 알겠습니다.”
능욕도 하지 않고, 살려주는 것이 확실해졌다. 여자의 대답이 한층 밝아졌다.
“딴 데로 새면 죽는다. 가!”
모창귀는 동시에 그녀의 손목을 칼로 확 그었다.
“꺄으윽!”
피가 컨테이너 안에 쫙 뿌려졌다. 그녀가 고통을 느낄 틈도 없게 모창귀가 그녀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가!”
여자는 저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생존본능에 따라 손목을 붙잡고 관리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손목이 뜨끈뜨끈한 것이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거벗고 뛰는 것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흐으윽 흐으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멀리서부터 튀는 여자의 상태를 보고 관리원들이 먼저 나와서 그녀를 맞이했다.
“무,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장씨 장씨! 119, 119 불러!”
그 사이 금세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그쪽으로 들이닥쳤다.
오갱이 관리원들 사이로 파고 들어가자 그들이 반발했으나, 뒤따라온 팀장이 다급히 경찰 배지를 보여주었다.
오갱은 직접 지혈을 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경찰입니다. 누가 이랬습니까? 혹시 이렇게 생겼나요?”
오갱이 모창귀의 사진을 그녀에게 들이댔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진에 시선을 두지도 않고 공포에 빠져서 몸을 덜덜 떨었다.
안전한 곳으로 왔다는 생각에 온몸의 긴장이 싹 풀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뒤에서 지켜보던 팀장이 답답한 마음에 그녀에게 소리치듯이 물었다.
“어떤 옷을 입었어요? 어떤 옷인지만 알려줘요!”
그녀의 떨리는 동공이 팀장에게 움직였다. 목소리도 들었고 어떤 질문인지 이해를 했지만, 자신이나 남자친구가 그에게 해를 당할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핸드폰은 그 악마가 가지고 있었다.
“하… 참.”
오갱과 팀장은 그녀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바로 인지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사이.
해수와 막내, 그리고 특수기동대는 여자가 나온 방향을 뒤지고 있었다.
“여깁니다!”
기동대의 목소리에 해수가 재빨리 달려갔다. 그곳에는 반쯤 열린 컨테이너 안에 피가 여기저기 튀어있고, 찢어진 여자의 옷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동대장이 미간을 좁히며 소리쳤다.
“흩어져! 1, 2조는 나 따라와! 항구로 간다!”
해수는 기동대가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가 다시 현장을 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모창귀, 모창귀, 어디로 간 거냐…?’
해양 경찰도 대기하고 있어서 배를 특정할 수 있으면 멈춰세우겠으나, 모든 배를 멈추고 몇 시간 동안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배를 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모창귀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고민했지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놈이기에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놈의 생각을 읽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선배님, 어디로 가야….”
“젠장….”
막내의 눈에 해수는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저 단순하게 범인이 아니라, 모창귀라는 특정인물에게 너무 매몰되어 머리가 휙휙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강수대와 특수기동대가 동분서주하며 뒤지고 다니는 동안, 저 멀리서 작은 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 * *
모창귀는 여자로 인해 소란스런 틈을 타서, 그곳을 벗어나 다른 작은 어선에 올라탔다.
선원들을 보니 딱 봐도 밀항이 의심되는 배였다.
그가 몰래 올라타는 것을 보고 한 선원이 다가오자 씨익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 돈 많으니까 태워주소.”
선원은 살짝 고민하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돈이 많은지 없는지 확인은 나중에 해도 상관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빼앗고 팔아버리면 된다.
배 위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바다속에 묻힐 뿐이다.
선원을 따라가니 어두컴컴한 지하가 나왔다. 그곳에 방 하나를 열자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겼다. 네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사람들이 꽉 꽉 채워져 있다.
하나같이 차림새가 꼬질꼬질하다.
“여기 들어가라고?”
“싫으면 나가던가.”
모창귀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갔고, 선원은 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는 벌레 보듯이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자리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벽 쪽은 물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곳도 앉을만한 자리가 확보되지 않는다. 누구 하나 패야 하나 고민 중인데 바지를 살짝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져서 고개를 숙였다.
열 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모창귀를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엉덩이를 비척비척 움직여서 자리를 조금 만들어준다. 앉으라는 뜻이다.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꼬마애 옆에 앉았다.
“야, 이거 어디 가는 배냐.”
“저도 몰라요.”
“넌 어디 가는 줄도 모르고 가는 거야?”
“끌려왔어요.”
납치를 당했거나, 어디 기관에 의해 팔려온 것이다.
모창귀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단순 밀항이 아니라 인신매매라면 더욱 배를 철저하게 감출 것이다. 그만큼 형사들에게 들킬 확률이 줄어든다.
“아저씨, 손 좀요.”
“뭐?”
아이는 피딱지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모창귀가 무섭지도 않은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딱 보아도 오래된 작은 비닐팩, 그 안에 들어있는 여러 종류의 밴드, 여기저기서 구한 것을 모아둔 듯하다.
“약은 다 써서, 이것밖에 없어요.”
그는 모창귀의 팔뚝에 긁힌 상처에다가 밴드를 붙여주었다. 창귀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넌 살려줄게.”
“네?”
모창귀는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들어 철문만 바라보았다.
잠시 후.
끼이익-
철문이 열리며 험악한 인상의 선원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모창귀를 데려왔던 선원이고, 한 명은 턱수염이 덥수룩하여 산적같은 선원이다.
산적 선원은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모창귀 옆에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야, 나와.”
“저, 저요?”
딱 한 번 물었을 뿐이다. 그 물음에 대답은 입이 아닌 발이었다.
퍽!
아이는 체중이 실린 거친 발길질에 뒤로 엎어졌고, 연이어 몇 번이나 배를 걷어차였다.
산적같은 선원은 아이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는 씩씩거리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내한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고기 밥 되기 싫으면.”
아이가 끌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창귀를 데려왔던 눈이 째진 선원이 다시 찾아왔다.
“어이, 너 나와.”
“알았소.”
모창귀는 기꺼이 그의 뒤를 따랐다. 주변은 아무도 없고 어두컴컴하다.
“아까 걔는 왜 데려갔소?”
“왜, 너도 맞고 싶니?”
이런 취급은 정말 오랜만에 당하는 것이라 신선하여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선원은 창귀를 보며 인상을 험악하게 썼다.
“배때기 찢기기 싫으면 표정관리 잘 하라, 니 돈, 줘봐.”
창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육지에 도착하면 주겠소, 근데 어디로 가는 거지?”
창귀의 물음에 선원이 품에서 녹슨 칼을 꺼내어 들며 이죽거렸다. 을러대는 폼이 아주 익숙해보였다.
“궁금한 게 많으면 뒤지는 거야, 일단 손가락 하나부터 시작하자.”
“그래.”
모창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내어 무표정으로 선원의 옆구리를 두 번 찌르고, 칼을 든 손을 벽에 붙이고 손등에 칼을 찍었다.
순식간이었다.
푹푹 콱!
“끄으읍!!”
비명이 채 새어나오기 전에 창귀가 선원의 입을 틀어막고 귓가에 속삭였다.
“어디부터? 새끼 손가락? 아니아니,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처음부터 쎄게 가야지, 엄지부터….”
그러고는 칼을 손등에서부터 질질 끌어서 선원의 엄지를 도려냈다.
“끄으으으윽!!!”
선원은 고통에 신음했지만 모창귀의 강한 힘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내 궁금증을 풀어줄 준비가 된 것 같은데, 모자란가?”
선원은 고개를 일 초에 대여섯 번이나 끄덕였다. 파르르 떨리는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제야 창귀는 그의 입을 막았던 손을 떼어냈다.
“어디 가는 거라고?”
“사, 상하이.”
창귀의 인상이 확 찌푸려진다. 베트남, 필리핀, 일본, 어디든 상관없지만 중국은 좋지 않다.
이미 얼굴이 많이 팔렸고, 그를 잡으려는 놈들이 많다.
“위에는 몇 명이나 있나?”
“일곱….”
“그래? 알았다.”
모창귀는 칼을 뽑아 선원의 목을 두 번 찌르고는 시크하게 그를 지나쳐 갔다.
선원은 복도에 피를 분수처럼 뿌려대며 그 자리에 천천히 쓰러졌다.
윗층, 갑판 위 선장실.
쿠당탕!
얼굴이 퉁퉁 부운 아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산적같은 선원이 아이의 머리에 발을 올리고 이죽거렸다.
“니 말끼 못 알아들어? 한국말 몰라? 중국말로 해줘?”
“죄, 죄송해요….”
저벅 저벅 저벅
그때, 계단을 밟는 소리가 들려오고, 한 남자가 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는 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가 한 줄기 묻어 있었다.
산적 선원은 물론 그 뒤에 있는 다른 선원들도 낯선 남자를 보고 의문을 품었다.
“니 뭐니?”
모창귀는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았다가 산적 선원을 보고 입을 열었다.
“배 돌려라, 나가사키로.”
“뭐래니 이 미친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