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탈옥
신해수의 말에 방가코바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 참, 이제 별별 또라이가 다 빡치게 하네, 뒤져 이 새끼야!”
그는 쇠파이프를 번쩍 들어 해수에게 휘둘렀다.
훙-
해수는 고개만 틀어 그것을 손쉽게 피하면서 그의 뒤통수를 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면서 그의 얼굴을 벽에 박았다.
쾅!!
얼마나 강하게 꽂았는지 벽에 금이 가고 주변이 흔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벽에서 방가코바의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이 공포를 자아냈다.
해수는 기절한 방가코바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한테는 기회 줄 생각도 없었어.”
방가코바의 친구들은 움찔했다가, 쪽수와 무기를 인지하고 해수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시팔!!”
“죽어!”
해수의 눈이 번뜩였다.
영역싸움을 자주 하는 조폭도 아니고, 데모를 막으러 다니는 기동대도 아닌 일반인이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공격할 때는 백이면 백 대각선으로 휘두른다.
해수가 슬쩍 벽으로 붙자 각목 하나가 벽을 때리며 부러진다. 다른 놈이 휘두른 쇠파이프가 어깨로 향했다.
해수는 왼쪽 발을 한 발자국 뒤로 옮기며 상체를 물려 그것을 피하고.
콱!
벽을 찍은 쇠파이프를 잡고 확 끌었다.
“어어어!”
쇠파이프와 함께 딸려오는 놈의 턱에 해수의 손바닥이 꽂혔다.
쾅!!
손바닥으로 올려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 사내는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흰자를 보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 다른 사내가 앞으로 달려오며 각목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해수는 혀를 찼다.
뒤로 도망치지 못하게 아주 가까이서 휘둘렀는데, 그만큼 타격이 약해지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탁
해수가 오히려 앞으로 나서며 그의 각목에 이마를 들이밀었다.
사내가 느끼기에도 타격감이 전혀 없다. 다시 휘두르려고 각목을 치켜올리려 했지만 바위에 꽂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수가 이마에 각목을 댄 상태에서 한 손으로 잡고, 수도로 각목의 허리를 내리찍었다.
콰직!
사내의 멍한 눈이 동강난 각목을 좇았다.
모조각목처럼 손쉽게 부러진 각목을 보고 사내가 허망해할 때, 해수의 우악스러운 손이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어억!”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퍽 퍼억!
한 번 맞을 때마다 그의 눈이 풀린다. 입에서는 피거품이 나온다.
네 번째 따귀를 때리려고 할 때, 처음에 벽에 각목을 내리쳤던 사내가 반쪽짜리 각목을 들고 덤벼들었다. 학습이라는 게 없는 놈인 듯하다.
해수는 멱살을 잡고 있는 사내를 그에게 들이밀어 서로 박치기를 시켰다.
쾅!
“커허억!”
“끄으….”
따귀를 맞던 사내는 그대로 쓰러졌고, 마지막 남은 사내는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앉아.”
“아으, 아으 아파….”
해수는 발끝으로 그의 정강이를 찍었다.
콱
“아악!”
“앉아.”
콱!
“아욱!”
두쪽 정강이를 맞은 사내는 강제로 두 무릎이 꿇렸다.
해수는 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다가 움켜쥐었다.
“니네 뭐하는 놈들이야.”
“흐으, 흐으,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한 번 더 묻게 하면 피똥싸게 만든다?”
피똥이라는 말에 사내는 멈칫했다가 해수를 올려다보았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이 사람은 진심이다.
“저, 저, 저 새끼가 누구 하나 잡을 사람 있다고… 먼저 맞고 왔더라고요. 이빨도 세 개나 빠지고…!”
“음….”
처음 맞은 방가코바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벽에 얼굴을 부딪히고 이빨이 몇 개 더 빠졌다.
박치기를 당한 사내도 최소 세 개 이상, 따귀를 맞은 사내도 두 개는 빠졌다.
“친구들끼리, 공평해야겠네.”
해수는 그의 볼을 두 손으로 강하게 눌러 입을 강제로 벌렸다.
어리둥절하던 그는 방금 전에 해수의 시선이 다른 친구들의 이빨에 가 있었던 것을 눈치 채고 공포에 떨었다.
“하, 할려듀헤요!! 할려듀…!”
해수는 그의 이를 손가락으로 잡고 확 꺾었다.
우드득
“끄아윽!!”
그렇게 두 개를 뽑아서 그의 손에 쥐어주고, 그의 옷에 피를 닦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예, 여기 청개구리 노래방 입구입니다. 집단특수폭행범 네 명 신고합니다. 예, 지금은 제압했습니다. 쇠파이프 두 개, 못 박힌 각목 두 개입니다. 아, 다른 관할 형사입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형사라는 말에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빨 빠진 사내가 흠짓 떨었다.
해수는 품에서 케이블타이를 꺼내려다가 멈추고, 그에게 턱짓했다.
“차 문 열어.”
“에?”
갑자기 차 문은 왜 열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어 되물었다가, 해수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다가오자 다급히 몸을 뒤져 차 문을 열었다.
삐빅-
해수는 차 안으로 들어가 블랙박스 sd카드를 수거했다.
그곳에서 바로 휴대폰에 연결하여 확인해보니 차 안에서 범죄를 모의한 그들의 대화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루를 대상으로 특수폭행 뿐만 아니라 음담패설까지 하는 것을 보고는 해수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얘는 안 되겠네, 일어나.”
해수는 방가코바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강제로 일으켰다. 그러자 깨어났지만 계속 기절한 척 하고 있던 그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아아악!”
“너 뭐하려고 했어.”
“아윽, 이거, 이것 좀 놓고….”
방가코바가 고통에 신음하던 그때, 노래방 계단 쪽이 시끌시끌해졌다.
“…언니 그러면 진짜 같이 가는 거죠? 어?”
“응?”
가장 선두에 하루와 장금이 나오다가 해수와 마주쳤다. 두 여자의 시선이 해수에서 방가코바, 그의 친구들, 피 묻은 벽, 각목과 쇠파이프로 향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저 아저씨는…?”
“왜왜, 무슨 일이야?”
“헉, 코바 형…!”
장금이 기겁하자 뒤에 있던 다른 남자들이 다급하게 올라왔다가 해수를 보고는 얼어붙었다.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도 무서운 판에, 까만 옷을 입고 누군가를 개 패듯이 패고 있으니 눈만 마주쳐도 소변을 지릴 것만 같았다.
“누, 누구신지….”
그때, 하루가 상황을 금세 파악하고 계단을 빠르게 뛰어올라갔다.
타다다닥-
그러고는 마지막 계단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뻐억-!
하루가 날아오는 모습을 본 해수는 타이밍에 맞춰서 손을 놓았고, 하루의 무릎은 정확히 방가코바의 턱을 후려쳤다.
쿠웅!
방가코바는 눈알이 뒤집히며 노래방 앞 길바닥에 대짜로 쓰러졌다.
그것에서 끝이 아니다. 하루의 발이 시원하게 뻗어 올라가 있다. 이내 독수리가 내리꽂듯이 발이 내리찍혔다.
콰직!
“끄아아악!!”
하루의 발이, 그의 사타구니 사이를 찍었다. 그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기절에서 강제로 깨어나며 비명을 내질렀다.
두 손으로 그곳을 감싸고 데굴데굴 굴렀지만 고통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루의 거친 복수에 장금은 물론 다른 남자들도 입을 쩌억 벌리고 말문이 막혔다.
“헐….”
“허억!”
얼마 지나지 않아 순마 두 대가 도착했다. 해수는 앞장서서 경찰관들에게 그들을 넘겼다.
“어휴, 완전 엉망이 됐네, 지들끼리 싸운 건가요?”
“아닙니다. 제가 위험을 느끼고 확실히 제압하려다 보니, 조금 과잉진압을 했습니다.”
해수가 손을 들고 설명하며 주위의 무기들을 가리켰다. 경찰관은 해수의 설명을 듣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신형사님?”
“저를 아십니까?”
해수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 경찰관은 기억에 없었다.
경찰관은 해수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요! 이거 영광입니다. 너튜브에서 접하고, 신형사님 소식 많이 찾아봤습니다. 팬입니다. 덕분에 경찰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반인보다는 상대적으로 같은 경찰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경찰의 기사를 자주 살펴봤기에 알아본 것이다.
아무리 유명해졌다고 한들, 연예인이 아니기에 미디어를 보고 해수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아는 이들도 신형사라는 호칭은 알아도 얼굴까지 알아보는 것은 힘들다. 얼굴이 제대로 나온 영상이 없는 탓이 큰데, 대부분 멀리서 찍히거나 측면 영상뿐이다.
인터뷰나 기자회견등도 해수의 정체를 밝히지 않거나 얼굴 보호를 조건으로 한 데다가, 안서은의 협력까지 더해지니 거의 완벽한 수준의 은폐였다.
그런 만큼 진짜로 만났던 사람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알아본 사람은 지금까지 두 번째로 만난다. 둘 다 경찰이었다.
“아닙니다.”
“음… 일단, 서로 같이 가실까요?”
“예, 차로 따라가겠습니다.”
“네네.”
그래도 서로 폭행을 한 이상 조서 작성을 위해 경찰서로 가야 한다. 해수가 차에 타자 하루도 쪼르르 다가와 조수석의 손잡이를 잡았다가 멈칫했다.
뒤에서 장금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는 멈추고 해수에게 물었다.
“경찰서에서 조서 작성 얼마나 걸립니까?”
“최소 30분.”
하루는 돌아서서 장금을 보았다.
“오늘은 같이 못 감, 경찰서 가야함.”
“언니… 알겠어요. 어쩔 수 없죠,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장금이 혼자가 되자, 그 기회를 놓치는 독행남아가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장금에게 다가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장금아, 오빠 차 방향제 새로 바꿨다. 타고 갈래?”
“네… 고마워요 독행오빠.”
독행남아는 뒤에 다른 남자들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루는 차에 올라탔다가, 창문을 열고 길드원들을 보며 말했다.
“재밌었음, 겜상에서 보셈.”
“어, 어 하루야! 잘 가!”
“또 봐!!”
“언니 잘 가요! 또 올 거죠?”
하루는 검지와 중지를 펴서 경례 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또 보자, 힐러.”
‘머, 멋있어…!’
경찰서에 도착한 해수와 하루는 조서를 빠르게 작성했다.
“…협조적이시니 금방 끝났네요. 그런데… 이게 증거가 확실하기는 한데, 걔네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신형사님이나 여성분께 피해가 갈까 우려스럽네요.”
“괜찮습니다. 과잉진압 자주 해서 그쪽으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다행이네요. 아무튼 화이팅입니다. 저희도 이번 건 최대한 힘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으로 귀가하는 길, 해수는 하루와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다.
“정보는 재미있었어?”
“니에….”
“응?”
“네, 네, 재미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게임에서 만났던 캐릭터들이 인간으로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캐릭터와 얼굴은 많이 달랐습니다.”
“하하, 그렇지, 그렇겠지, 맛있는 건 많이 먹고?”
“네, 문어가 들어있는 튀김… 소주, 파전, 치킨… 정말 이것저것….”
하루의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해수가 옆에 있으니 안정감에 긴장이 풀려, 그제야 술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움, 그러니까 걔네가 저보고 이뿌다고 서른 일곱 번 했습니다. 해수님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술 마셨냐?”
“마셨따요, 뭐, 나 잡아갈꺼임?”
하루의 눈이 반쯤 감겨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금서 술 냄새가 훅 풍겨온다.
“얼마나 마셨지?”
“모릅니다… 소주 세 병? 맥주 네 병…? 그 새끼 때문에… 그 새끼가 게임에서… 나를 모욕… 모가지를 비틀었어야 했는데… 그 새끼 친구들도 알 두 짝을 다 뜯었어야….”
하루는 중얼중얼거리더니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어느 순간 부터는 고개를 꾸벅꾸벅거리며 졸고 있다.
해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운전에 집중했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는 자고 있었고, 해수는 조수석에서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꺼내어 안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러니까 분명 가지고 나왔던 것 같은데….”
“안 가지고 왔어, 빨리 가지고 와.”
“아유, 알았어요 알았어.”
이 새벽에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중년여인이 다가온다.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있는 것이 등산을 가는 길이었던 듯하다.
그녀는 해수와 하루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아이고, 새색시가 많이 피곤했나보네.”
“…네.”
“곱네 고와,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좋을 때다.”
해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중년여인은 9층을 눌렀다. 그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그녀는 해수보다 먼저 이곳에 살고 있던 부부였다.
해수가 출퇴근이 일정치 않다보니 다른 주민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10층을 누르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10층 사는구만?”
“예.”
그녀는 내릴 때 해수에게 말했다.
“애는 많이 낳아, 여유있는 사람이 많이 낳아야 돼, 나중에 키워두면 많을수록 좋아.”
“…네, 들어가십시오.”
중년여인이 가고, 하루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으음.”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는 해수의 품으로 더 파고 들어갔다.
* * *
며칠 뒤, 강수대 본부.
오갱이 휴대폰 전화를 받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 왜?”
“모창귀가… 탈옥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