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08화 (108/255)

108. 옥수수 수확

방가코바는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동시에 희고 작은 손이 그의 얼굴로 휘둘러졌다.

그러나 방가코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가, 그것도 젓가락으로 살짝만 힘을 줘도 손목이 똑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여자의 따귀가 맞으면 뭐 얼마나 아프겠는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퍼억-

따귀를 맞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둔탁한 소리, 방가코바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이건 따귀가 아니다. 손을 펴서 따귀를 갈긴 것 같지만 손바닥 아래쪽 단단한 뼈 부분으로 턱을 옆으로 비껴친 것이다.

덕분에 순간 시야가 새까맣게 변하고 골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씨팔!!”

방가코바는 가녀린 여자의 따귀에 자신이 요단강 배표까지 끊었던 것이 쪽팔리고 당황스러워 욕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키가 180이 훌쩍 넘는 그였기에 작지 않은 키의 하루는 그를 한참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고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안녕, 반가워.”

그녀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빨개진 그녀의 손이 퍽 귀엽다.

방가코바는 솥뚜껑만 한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다가 멈칫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길드원들 말고도 이 식당에 있는 다른 손님들, 사장까지.

몇몇은 혐오의 눈빛으로, 몇몇은 놀람과 경악의 눈빛으로, 마치 정말로 때릴 거냐고 묻는 듯했다.

그는 어색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하루에게 마주 손을 흔들었다.

“어, 어 그래 반갑다. 인사가 참 화끈하네.”

그는 아직도 얼얼한 턱을 쓰다듬으며 자리에 앉았다.

하루는 테이블을 돌아 그와 맞은편 자리로 가며 대답했다.

“이제 시작, 수틀리면 종나 팰거임.”

“하, 하, 하하하!”

“와 하루님? 하루 웃기다!”

“재밌다.”

“예쁘다!”

“사랑한다!”

“응?”

이제야 제대로 하루를 환영하는 길드원들, 남자들 몇 명이 후다닥 일어나 그녀에게 메인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본래 가장 늦게 왔지만 메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장금이의 옆자리다.

“아, 여기 좁아서 오, 언, 하, 하루씨가 불편할 텐데….”

“난 괜찮음, 선수는 채를 탓하지 않음.”

“으, 응?”

“그게 지금 맞아?”

하루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장금이 게임상에서 말했던 대로 맛있는 음식이 많았다.

냠 냠.

적당한 소개도 없이 일단 젓가락을 들어 먹을 것을 한 입씩 먹는 하루를 보자 다른 사람들이 피식 웃음지었다.

“하루 잘 먹네, 마음껏 먹어, 이것도 먹어.”

“하루야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 여기 메뉴판.”

“됐슴, 일단 다 먹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음식 남기는 거임.”

장금은 한껏 꾸몄는데도 옆에 대충 가까운 동네 마실 온 차림의 하루에게 밀리자 옆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그러나 이젠 그녀의 마음에 관심도 없는 남자들은 하루에게 관심을 쏟아부었다.

“와… 대박 진짜, 하루살이가 여자였다니.”

“아니 근데 그러면 왜 성별을 속였지?”

하루는 타코야키를 입에 쏙 넣고 볼빵빵한 채로 대답했다.

“안 속임.”

하루의 말에 왕십리70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그래… 하루가 성별을 말했던 적이 있던가?”

“헐, 진짜 없네.”

“당연히 남자인 줄, 상남자.”

“진짜 존나 소름, 지금 생각해보니까 장금이가 오빠라고 부를 때 대답 한 번도 안 했던 거 같애! 그래서 너 살짝 삐졌었잖아, 하루오빠가 나만 무시한다고, 크크크”

“내가 언제 그랬어? 이거나 먹어.”

“응, 고마웡.”

장금이 태아군에게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물려주었다. 태아군은 그저 좋다고 허허거리며 그것을 씹어먹었다.

왕십리70은 하루를 보며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가 세 개로 바꾸며 말했다.

“나이만 말했었지? 스물 셋, 맞지?”

“너 기억도 잘한다.”

“니가 그냥 흘려들은 거겠지, 남자라고 생각하고.”

독행남아는 속마음이 들켜 허허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대충 입었어도 연예인 싸다구를 때리는, 다른 테이블에서도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는 하루의 등장에 관심이 온통 그녀에게 쏠렸다.

하루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젓가락을 들어 엑스자로 교차시켜 차단했다.

“멈춰, 먹을 거 다 먹고, 질문은 게임 관련해서만.”

“아 그래그래, 배고팠지, 이것도 먹어.”

“와, 근데 하루는 진짜 게임에서랑 말투가 똑같다.”

독행남아가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하루를 보며 말하자 장금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오덕후 말투? 나는 그래서 하루 오빠, 아니, 하루 언니 진짜 안경 쓰고 뚱뚱하고 체크무늬 셔츠 입고 그런 사람 생각했었는데.”

“어? 너 잘생겼을 것 같다고 안 했어?”

“내가? 언제?”

“아닌가? 아무튼… 난 그것까지는 아닌데, 아무튼 반전이네, 여자일 줄이야, 그것도….”

“그것도 뭐?”

장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째려보자 독행남아는 그것도 자신을 향한 질투로 해석하며 허허 웃음을 지었다.

“어? 아, 아니, 뭐, 우리 길드 좋다! 최고네!”

“치….”

장금은 평소와 같은 여왕벌 노릇을 하지 못하여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때, 하루가 타코야끼를 먹다가 양념이 떨어졌다.

툭-

양념은 가슴 위에 안착했다. 그 모습에 남자들은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아이고 어떡해! 후드티도 하필 하얀 색인데!”

“와, 양념이 부러운 거 처음….”

“저기요! 여기 물티슈좀요!”

“됐음.”

하루는 휴지로 대충 닦고는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때, 하필 갈릭치킨 다리를 하나 집어 물던 장금이도 양념이 떨어졌다. 그녀는 가슴이 아닌 치마에 묻었다.

“아…씨.”

“푸, 풉.”

“장금아 괜찮아? 아니 왜 똑같이 떨어졌는데 넌….”

“닥쳐줄래?”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가슴까지 비교당하자 장금의 기분이 확 상했다. 그녀가 정색하자 농담이랍시고 가슴을 비교하던 남자가 찌그러졌다.

그때, 장금의 앞에 무언가가 휙 내밀어졌다. 물티슈다. 하루가 다른 남자에게 받은 물티슈를 쓰지 않고 장금에게 건넨 것이다.

장금은 생각치 못한 호의에 당황했다.

“이, 이거 언니도 쓰셔야 하잖아요.”

“난 안 씀.”

“아, 네… 감사합니다.”

장금은 그것은 받아 자신의 치마에 묻은 양념을 닦았다.

하루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을 툭 던졌다.

“나 부를 때 대답 안해서 쏘리.”

“네? 아, 아니에요… 저는 근데 진짜 저 싫어하시는 줄….”

장금은 본래 이렇게 쭈그러드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하루 앞에서는 기가 죽었다.

처음부터 조폭같은 방가코바를 후려갈긴 강렬한 모습 때문인지, 압도적인 비주얼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 장금 좋아해, 힐 잘 주잖아.”

그러고는 찰나, 아주 살며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까지 인형처럼 완전한 무표정을 일관하던 그녀가 장금에게만 미소 비슷한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아, 아… 네.”

‘뭐야, 왜 멋있어.’

장금은 그 뒤로 하루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다기보다는, 신경이 쓰여서 계속 힐끔힐끔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한참 자리가 무르익어 하루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흩어질 때, 맞은편에서 턱을 매만지며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방가코바가 잔을 내밀었다.

“야, 하루야, 오빠가 맞아줬으니까 한 잔 따라봐.”

순간 그의 말을 들은 주변 분위기가 싸해졌다. 하루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느끼한 눈으로 하루와 눈을 마주하며 씨익 웃었다.

“술은 여자가 따르는 게 제맛이지.”

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따라줄 테니까 원샷해.”

“하하, 관심 표현이 격하네, 알았어, 얼른 따라 봐, 공손하게.”

하루는 맥주병과 구석에 있는 소주병을 들어 그의 잔에 콸콸 따랐다. 아주 가득.

그녀의 도발이 귀엽다는 듯이 방가코바는 피식 웃으며 바로 잔을 비웠다.

“끄으, 너도 마셔.”

그러고는 하루의 잔에 똑같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가득 따라주었다.

“야, 야 코바야 뭐하는 거야? 너무….”

“코바형, 이건 좀, 나중에 하루 정모 안 나오면 어떡해요?”

그때, 하루가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그들을 만류했다. 그러고는 바로 잔을 들어 원샷했다.

“후, 이제 너.”

“허허, 해보자는 거네, 너 쓰러지면 내가 책임질게.”

방가코바의 말에 하루는 돌연 젓가락 하나를 들더니 작게 말했다.

“한 번 더 그런 말 하면, 이걸로 혓바닥 뚫어버린다?”

“큽, 크, 아 재밌네, 아 귀여워 귀여워, 따라봐!”

하루는 사양하지 않고 다시 소맥을 그의 잔에 따랐다. 그렇게 정모는 어느새 하루와 방가코바의 술 대결에 집중되었다.

잠시 후, 2차로 호프집을 가는 길목.

방가코바가 한 사내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야아! 내가 시발 누군지 알아! 어!”

“형 형, 그만 좀 소리 질러요. 이러다 신고 들어와.”

“신고? 신고 씨발!! 신고 해봐 이 개새끼들아! 신고하면 나한테 뒤질 줄 알아!”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거리를 벌리며 부끄러워했다.

“하 시발 저 형은 맨날 저러냐? 추방할 수도 없고 진짜.”

“맨날은 무슨, 오늘은 더 심하네, 아오 진짜… 쟤네땜에 참는다.”

그들은 앞쪽에 장금과 하루가 나란히 걷고 있는 뒷모습을 보며 금세 헤벌쭉했다.

“…그러니까 내가 어? 왕녀에… 아 잠깐만, 읍,읍, 우웨엑!”

“아오, 썅 진짜 가지가지 한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먹은 안주를 다시 확인한 방가코바는, 그제야 술이 조금 깨는지 조금 걷다가 턱을 매만졌다. 그의 시선은 하루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오 썅 아직도 입 벌릴 때 아프네, 야, 하루, 야이 썅년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리 와 봐.”

방가코바의 말에 하루는 기다렸다는 듯이 휙 돌아섰다.

“드디어 강냉이를 털어줄 시간인가.”

“뭐? 너 뭐라고 했어.”

“아니, 왜.”

“내가 시발, 아, 아, 아오… 이 쥐똥만 한 년을 때릴 수도 없고, 내가 이거 맞은 게 억울해서, 계산은 제대로 해야겠어.”

비딱하게 웃은 그의 손이 하루의 가슴으로 향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냐?”

하루는 왼쪽 발만 뒤로 옮겨서 슬쩍 피했다. 그의 손이 허공을 가른다.

“방금 그거 닿았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뭐, 뭐라는 거야? 경찰이야?”

“집주인님이 형사.”

형사라는 말에 방가코바가 멈칫했다. 그동안 하루가 집주인님을 언급할 때마다 놀리고 욕했던 때가 떠오른다. 술이 확 깨면서 주변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모두가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그는 억울하고 창피한 마음에 욱 하여 손을 휘둘렀다.

“니가 먼저 꼬리쳤잖아! 이 썅년아!”

순간 하루의 눈이 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보는 눈이 많고 cctv도 적절한 위치에 있다. 대각선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 블랙박스도 켜져 있다.

쩌억-!

하루는 방가코바의 솥뚜껑만 한 손에 맞고 2미터 가량 날아가 쓰러졌다.

그 모습에 방가코바는 당황하여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이, 이렇게 쎄게 때렸나?’

“꺄악!”

“뭐, 뭐하는 거야!”

“야이 미친 새끼야!!”

슬쩍 물러서있던 이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루는 벌게진 볼을 감싸고 일어나면서, 작게 그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입모양까지 자세히 보여주어 착각할 수 없도록.

“지금부터 정당방위.”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이 말리기도 전에 하루가 그에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는 하루에게 따귀를 맞았던 때가 떠올라 본능적으로 막으려고 손을 뻗었다.

탁 으득-

하루는 방가코바의 손가락 중지와 약지를 잡아 꺾으며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통과하여 등 뒤로 위치를 잡았다.

그러고는 발끝으로 그의 오금을 찍자.

팍!

그의 무릎이 힘없이 접히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반대쪽 오금도 찍혔다.

쿵-

방가코바는 금세 두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다. 그가 어떻게 된 건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루가 그의 손가락 두 개를 더 꺾었다.

우드득-

“끄아아악!!”

그가 머리를 뒤로 젖히며 하늘 위로 비명을 내뱉었다. 고요한 밤거리에 슬픈 메아리가 울려퍼지고.

그 타이밍에 하루가 수도로 그의 쇄골을 찍었다.

팍!

“커헉!”

그가 손으로 목을 잡으며 고통에 겨워할 때, 하루가 옆에 서서 길쭉한 다리를 쭉 뻗자.

빠악!

그녀의 발이 방가코바의 턱에 정확하게 꽂혔고.

쿠웅-

방가코바는 눈이 풀리며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후두둑

살짝 벌린 입에서는 공깃돌처럼 하얀 것 몇 개가 피에 섞여 흘러나왔다. 하루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마우스피스 끼고 오라니까.”

장내에, 순간 지독한 적막이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