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죄책감은 선물이다.
“돌격아, 돌격아?”
강철도 씹어먹을 것 같은 비주얼의 신해수가 병약한 여고생처럼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리자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갑자기 연기라도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팀장의 상식으로는 ‘연약한 신해수’는 성립할 수 없는 명제였다.
몇 초 지나지 않아 해수가 다시 눈을 뜨고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머리를 털었다.
“예, 가시죠.”
“어, 어 그래.”
해수는 고개를 뒤로 돌리려다가 말고 시간을 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차분하게.
박서영의 집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상주차장, 해수는 자신이 운전석으로 향하며 말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밤눈이 밝습니다.”
“어? 밤눈? 그래.”
팀장은 해수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일단 군말없이 자리에 앉았지만.
팀장이 바로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해수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해수가 직접 안전벨트를 채워주고는 바로 액셀을 깊게 밟았다.
부아아앙!
“으헉! 불만 있으면 말로 해애, 후-”
해수는 운전을 하면서 바로 무전을 했다.
“오갱 형님, 그 사람 목소리 녹취한 것 좀 들려주십시오.”
-어? 혹시 강진 말하는 거야?
“예.”
-잠깐만
오갱은 강진과 만나서 인터뷰를 할 때 동의를 받고 휴대폰으로 녹취를 했었다. 그의 목소리를 무전기를 통해서 들려주자.
[…뭐 이것저것… 그런 것도 말해줘야 하나요?]
‘그 목소리다.’
해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구광헌이 아닌, 시선의 주인의 목소리.
강진이 구광헌을 죽인 것이다. 한 시간, 아니 50분 후면 이미 납치당했다는 말.
“강진 위치 추적해주세요! 빨리! 팀장님은 구광헌 위치 추적 요청해주세요!”
“어, 어 알겠다!”
팀장은 일단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해수가 말한 대로 했다. 해수가 가끔 이렇게 무섭게 몰아칠 때가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마다 급박한 사안이었고 그는 정확한 조치를 취했었다.
그래서 팀장과 팀원들은 해수가 피지컬만큼이나 형사의 감도 좋다고 여기며 암묵적으로 맞춰주곤 했다.
요청에 대한 답은 즉각적이었다.
구광헌과 강진 둘 다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강진 위치 집인데? 휴대폰, 스마트워치 둘 다
해수는 미간을 좁혔다. 미래시에서 봤던 장소는 절대로 그의 집이 아니다. 흙바닥, 먼지, 비명을 꽥꽥 질러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
“구광헌 위치도 떴다. 여기 어디야, 서강댐 근처인데?”
“강진의 집과 가깝습니까?”
“음, 이 정도?”
팀장은 구광헌과 강진의 집 위치를 지도에 찍어서 비교하여 보여주었다.
해수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지도를 힐끔 보며 머리를 굴렸다. 강진은 박서영의 스마트워치가 울리기 전까지 집에 확실히 있었다. 구광헌을 찾아가서 범행장소로 데려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멀지 않은 곳이다.
구광헌의 휴대폰은 그를 납치하자마자 근처에 버렸을 것이다. 대충 이동경로가 추측된다.
“팀장님, 정보과에.”
“어, 어, 그래.”
팀장은 무전기로 정보과 직통번호에 전화를 걸고 스피커폰을 하고는 해수에게 들이밀었다.
-강진서 정보과 김지혜입니다.
“강수대 신해수입니다. 우성시 방주동 고정길882번길을 기준으로 주변 반경 최소 200미터 부근에 건물이 없는 허허벌판같은 곳 좀 찾아봐주십시오.”
-그런 특징이면 빨리 찾을 수 있는데, 전화 끊지 마세요. 잠시만요. 몇 군데 되네요.
“예.”
팀장님은 정보과 직원이 알려준 주소를 휴대폰으로 바로 받아적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해수의 휴대폰으로 정영수에게 전화가 왔다.
“말해.”
-그놈 위치 땄어요! 선불폰이더라고요?
“어디.”
-고정길881번길 22요.
“알았다.”
해수는 바로 전화를 끊고 위치를 확인했다. 정보과가 알려준 네 군데 중에 한 곳이다.
“오갱 형님, 위치 보냈습니다. 여기로 먼저 가서 구광헌이랑 강진 찾아주세요.”
-어 봤다. 오케이!
우연인지 노린 것인지, 강진의 집 위치 기준으로 구광헌의 집과 박서영의 친정 집은 정반대였다. 오갱은 이쪽으로 오는 길에 차를 돌렸기 때문에 적어도 해수보다 10분은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부아아앙!
네비게이션으로는 53분이 걸린다고 나와있다. 그 시간대로 도착한다면 미래시를 본 지 한 시간이 넘어가는 것, 해수는 급한 마음에 액셀을 깊이 밟았다.
* * *
콱!
“끄아아아악!!!”
구광헌의 다리 사이에 넙쩍한 칼이 깊게 찍혔다. 그곳의 바지가 찢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칼의 주인, 강진은 칼을 들어올려 손목을 돌리며 냉소를 지었다.
“정확했어.”
“사,사,살려줘, 살려, 허윽, 허.”
“걔도 그랬잖아, 걔도 살려달라고 했잖아, 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애원했지, 울고불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고.”
구광헌은 누운 상태로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다가 멈칫했다.
“그건, 그건… 너,너도 같이 즐겼잖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나도 후회하고 있어! 반성하고 있다고… 우억!”
구광헌의 외침을 가만히 듣던 강진이 다시 넙쩍칼을 번쩍 들어올렸다가 그의 팔에 내리찍었다.
퍽!
얼마나 힘이 강한지, 아니면 관절을 딱 맞춰서인지 광헌의 팔이 한 번에 뚝 잘려나갔다.
치이이익-
잘린 팔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광헌은 고개만 돌린 채 지금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마치 남의 것처럼 바라보았다.
“꺼어, 허어어….”
고통을 넘어서서 아픔보다도 현실감이 떨어져 그저 바보가 된 것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강진은 그의 잘린 팔을 들어 구석에 던져놓고는 얼이 빠져있는 광헌을 보며 말했다.
“넌 운 좋은 거야 임마, 고통도 없이 한 방에 딱. 다른 애들은 톱으로 썰었어, 과도로 대충 살만 도려내고 뽑아버린 애도 있고”
강진의 끔찍한 설명에 구광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하고 깨달았다.
확실하다.
오늘, 자신은 이 자에게 죽는다. 저 눈은 지금 했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살인마의 눈이다.
애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으, 으, 으아악!!”
광헌은 죽을 힘을 다하여 발버둥을 쳤다. 그 모습을 보고 강진은 재밌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 위로 휙휙 저었다.
“더, 더 해봐, 이렇게 저항하는 놈은 또 처음이네. 역시 재밌어, 구광…!”
바스락
그때, 강진의 귀에 무언가가 이질적인 소리가 잡혔다. 구광헌도, 자신이 낸 소리도 아니다.
짐승 아니면 사람, 칼을 들어올린 채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강진은 우선순위를 정했다.
“나머지는 생략, 마무리부터 해야겠다.”
“우,우,우악!!”
강진은 자리를 옮겨 구광헌의 머리로 향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머리를 발로 밟고 목을 향해 칼을 내리찍었다.
콱!
“허,허,헉!”
구광헌이 발버둥치는 바람에 칼이 빗나갔다. 그의 목에 살짝 혈선이 생겼지만 아쉽게도 경동맥은 잘리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시간 없어, 안 아프게 끝내줄게, 자.”
“아,아악! 안 돼애애!!”
강진이 광헌의 얼굴을 무릎으로 강하게 짓누르고 다시 칼을 들었을 때였다.
쾅!
비닐하우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탕!!
“강진! 꼼짝마!”
오갱이다. 그는 허공에 공포탄을 한 번 쏘고 강진을 겨누었다.
강진은 칼을 내리찍으려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칼 버리고, 손 머리 위로 올리고 바닥에 엎드려.”
강진은 오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찾았지? 어떻게 알았지? 형사의 감, 촉, 그런 건가?”
“그래, 내가 감이 좀 좋-”
휙-
오갱이 대답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강진의 칼이 오갱에게 날아갔다. 오갱이 몸을 숙여 그것을 피하는 틈에 강진이 바짝 따라붙었다. 몸통박치기다.
콰광 쾅 콰직!
강진은 소처럼 우람한 몸으로 오갱을 들이받아 그대로 밀고 가며 비닐하우스 문을 반대로 꺾이게 만들었다.
쿵! 콰장창!
솨파이프가 쌓여있는 곳에 오갱이 내리꽂혔다. 오갱은 그 충격에 켁켁거리며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강진이 오갱의 총을 빼앗으려는 그때, 옆에서 주먹이 날아왔다.
퍼억!
어마어마한 충격에 강진은 네 걸음이나 밀려났다가 고개를 털고 상대를 보았다. 정육점에서 보았던 신입 형사, 쓸데없이 근육만 많은 줄 알았는데 꽤 칠 줄 안다.
막내는 틈을 주지 않고 그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훙 척-
막내의 주먹이 날아올 때, 강진이 두 손을 뻗었다. 막내가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후웅- 쾅!!
막내는 공중에서 빙글 돌았다가 바닥에 내리찍혔다. 막내가 다시 일어날 때는 이미 강진이 10미터 이상 멀어진 상태였다.
그도 두 형사를 재빨리 제압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도주를 택한 것이다.
“거기 서 이 새끼야!”
탕 탕!!
오갱이 뒤늦게 총을 쐈지만 그는 옆에 다른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았는지 안에 잡식물들이 높이 자란 곳이었다.
“젠장, 어디 간 거야? 막내야, 넌 저쪽 가봐.”
“예, 괜찮으십니까?”
“어어 빨리 가, 여기 천하나! 지원 도착 아직 멀었습니까?”
-여기 순둘, 10분 후 도착 예정
“제기랄, 이거 놓치면 안 되는데.”
* * *
같은 시각, 강진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형사들을 따돌리고 구석에 비닐하우스에 기대고 앉아 휴대폰을 들었다.
“실패했습니다. 형사들이 왔어요.”
강진의 말에 수화기너머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그는 버리고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으세요.
여성의 목소리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건조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어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그리고 찌르려는 순간.
콰지직-!
비닐하우스가 찢어지며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튀어나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 우악스러운 괴력에 강진은 속수무책으로 비닐하우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강진은 자신의 목을 움켜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못하고 손발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발버퉁칠수록 그의 목은 점점 더 옥죄어질 뿐이었다.
파닥 파닥
그의 움직임이 점차 줄어들다가, 이내 축 쳐졌다. 그제야 해수는 팔을 풀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반갑다. 나는 신해수야.”
해수의 말과 동시에 그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더니 해수에게 손에 이미 쥐고 있던 흙을 뿌리고 비닐하우스 문으로 도망쳤다.
타다다닥-
문을 열기도 전에 친절하게 자동으로 열린다. 그러나 그는 이미 속도가 멈출 수 없는 상태였다. 강진이 나올 타이밍에 맞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터덕 훙-
강진의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이내.
쿠웅!!
바닥에 등을 강하게 내리찍혔다.
“커헉!”
오갱이었다. 그는 강진의 팔을 등 뒤로 확 꺾어 수갑을 채웠다.
“막내 복수다 이 새끼야! 막내야, 구광헌 응급조치 했냐?”
-예 일단은, 구급차도 금방 온답니다.
해수는 눈에 들어간 피 섞인 흙을 털고, 강진이 통화하던 자리를 뒤졌다. 바닥에 휴대폰 하나가 떨어져 있다. 정영수가 말했던 그 휴대폰이다.
띡 띡 띡-
[그럼 그는 버리고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으세요.]
방금 통화했던 내용이 녹음되어 있다. 박서영의 목소리다.
“목숨까지 바쳐도 혼자 죽기는 싫은가보네.”
“크윽, 그녀의 결정을 돕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 잘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