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05화 (105/255)

105. 용의자들

“흠….”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해보니 전화기도 꺼놓았다.

신해수가 허망하게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자 팀장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거 참, 성격 더러운 놈이네, 하긴 이중에 그렇지 않은 놈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냥 두고 싶지만,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면 욕 먹는 건 경찰이다. 해수는 바로 정보과에 구광헌의 휴대폰 위치추적을 요청하고 나머지 한 명인 박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전화는 받지 않는다.

“박서영씨는 기혼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 그랬던 거 같아, 거기 남편 번호도 있을껄?”

“예.”

해수는 박서영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그제야 통화가 연결되었다. 그는 구광헌과는 달리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모종의 이유로 아내가 위험하다는 말씀이시죠? 지금은 형사님이시고.

“예, 현재 신원조회기록에 나와있는 주소로 가는 중입니다. 5분 안에 도착합니다. 박서영씨와 떨어져 있다면 남편분이라도 함께 계셔주십시오.”

-하… 일단 오세요. 제가 집에 있으니까, 같이 찾으러 갑시다.

박서영은 집에 있지 않았지만, 대신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차를 쫓아오라고 했고, 그 목적지는 소망의집이라는 보육원이었다.

“꺄아악, 이모 이모한테 갈 꺼야!”

“서영 이모 도망친다!”

“얘들아 잠깐만 잠깐만, 이거 좀 끝내고 같이 놀자.”

“싫어요! 이모 같이 놀아요오!”

화장기 없는 여인이 빨랫거리를 빨랫줄에 널다가 아이들에게서 도망쳐다닌다. 매우 친밀해보이는 것이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던 듯하다.

“저 분이…?”

“네, 결혼 전부터 쭉 여기 다녔다고 합니다.”

성인남성 세 명의 등장에 아이들이 굳었지만, 박서영은 자신의 남편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여보? 이 분들은….”

아이들이 보고 있어 팀장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박서영씨 안녕하세요. 충남 강력수사대 팀장 곽수철이라고 합니다. 잠깐 얘기 좀 나눌까요?”

“강력수사대….”

놀랍게도, 박서영은 이미 결혼 전에 남편에게 과거를 털어놨다고 한다. 그녀는 이후 팀장에게 다른 사람들이 살해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 역시 매우 심각해져 박서영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결국, 벌을 받게 되겠군요. 저도.”

“아니, 무슨 말이야 자기야? 자기 평생 후회하고 속죄하고 있잖아? 안 올 거야, 우리한테는 안 올 거야, 오더라도, 누구도 자기 못 해쳐, 내가 지켜줄게.”

“아냐… 여보가 나 때문에 다치면… 나 못 살아, 그런데… 나 두려워, 어떡해?”

남편은 서영의 머리를 끌어안고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형사님들도 그래서 이렇게 오셨잖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해수는 부부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과거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평생을 속죄하며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 그녀를 벌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그 범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다. 막아야 한다. 그것만 생각한다.

“아무 일 없게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먼저 그때의 동영상은 받으셨습니까?”

서영은 남편을 힐끗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그 일과 관련된 지인이 찾아오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뇨… 없었어요.”

박서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원래 피해자 여학생과 꽤 친했었다. 그러나 여학생이 이 무리의 눈 밖에 나게 되고, 서영은 살기 위해 그녀를 괴롭혔다고 한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영은 그 무리와 친하지 않았다는 증언은 들은 적이 있다.

여학생이 사망한 후 서영은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나름대로 속죄하는 삶을 이어갔던 것이다.

“추천드리는 것은 가능하면 당분간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자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거주하시고, 관할 서에 신변보호를 받는 겁니다. 위치만 알려주시면 저희가 요청 해놓겠습니다.”

“네, 남편하고 얘기해볼게요….”

“예, 그럼….”

해수와 팀장은 서로에게 기대는 부부를 뒤로 하고 돌아섰다.

차에 탑승한 팀장이, 박서영의 현재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속죄하고 사는 걸까?”

“사람 변한다는 건 믿지 않는 편이지만, 가짜로 10년이 넘게 이어가기는 쉽지 않죠.”

“그렇긴 하지.”

팀장은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고 액셀을 밟았다.

“오갱이는 만났으려나? 말이 없네.”

“해볼까요?”

“아냐, 괜히 방해될라, 알아서 연락 오겠지.”

“예.”

* * *

불그스름한 불빛이 돋보이는 가게, 문을 열자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어서 오세요.”

오갱은 가게 한쪽에 매달려 있는 소의 사체를 힐끔 보았다가 자신을 맞이한 사내에게 물었다.

“강진씨 이십니까?”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자 그는 살짝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 모습에 오갱은 지갑 속 경찰 배지를 보여주었다.

“경찰입니다. 잠시 대화 가능할까요?”

경찰 얘기에 안쪽에 있던 중년인도 나왔다. 그가 사장인 듯했다.

“경찰이 여긴 무슨 일이쇼? 진아, 너 일 쳤냐?”

“일은 무슨, 애도 아니고.”

“예, 일 치신 거 아니에요. 잠시 강진씨와 대화 좀 나눠도 되나요?”

“쟤한테 물어보쇼.”

오갱과 강진이 다시 마주보았고, 몸을 돌린 강진은 구석의 식탁 앞에 털썩 앉았다. 오갱과 막내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

“뭔 일입니까?”

오갱은 강진의 손 검지와 엄지 사이에 상처가 크게 생긴 것을 보고는 눈을 좁혔다.

“그 상처는 어쩌다 생긴 겁니까?”

강진은 멈칫하더니 손으로 상처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 일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많이 서투릅니다.”

“아하, 그렇군요. 칼 다루는 게 쉽지 않죠,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뭐 이것저것… 그런 것도 말해줘야 하나요?”

강진의 눈빛에서 짜증과 불쾌감이 스며들었다.

오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평소에 방어적인 성향인 듯하다.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몸이 좋으시길래.”

“네.”

오갱은 강진을 왜 찾아왔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동영상을 받은 자들은 모두 습격을 당했고, 다섯 명 중에 네 명이 죽었다고.

친구였던 자들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다음에는 자기자신이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그는 그다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변보호 요청이라는 걸 해라?”

“예,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는 일도 잠시 쉬시고 범인이 찾기 힘든 지역에서 신변보호 요청을 하는 게 가장 좋지만요.”

“언제 올 지도 모르는 놈 때문에 일을 쉴 수는 없지, 신변보호 요청하면 어떻게 됩니까? 경찰이 날 24시간 따라다닙니까?”

“아… 아니요. 그건 불가능합니다만, 주기적으로 관할서와 지구대에서 강진씨가 알려준 행동반경을 24시간 순찰하고, 그쪽에서 건네준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흔들면 강진씨의 위치로 바로 출동합니다.”

강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꽤 유의미한 시스템이군요. 다른 친구들은 신변보호를 요청 했습니까?”

오갱은 멈칫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세 명 뿐이고, 강진 외에 둘은 어떤지 알지도 못하니까.

그러나 가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예, 모두 신변보호 요청하고 행동반경 내에서만 생활하신다 하셨어요.”

“알겠습니다. 신청하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진과 헤어지고 차에 탑승하자 오갱이 정육점 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뭔가, 뭔가 비슷한데….”

“뭐가 말씀이십니까?”

“기억이 잘… 아! 상담원, 상담원이랑 비슷했다.”

“네? 상담원? 저 사람 말투가 말입니까?”

막내는 전혀 공감할 수 없어 되물었다. 그러자 오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말투 말고 느낌, 내가 며칠 전에 TV가 고장나서 상담원이랑 통화를 했었는데, 그때 느낌이랑 비슷해.”

“느낌…말입니까?”

모호한 말에 막내가 갈피를 못잡자 오갱이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말을 이었다.

“신변보호 관련돼서 얘기할 때, 어떻게 보호해주는 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려고 질문하는 느낌이라는 거지.”

“…아!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응, 친구들 물어보던 것도 그렇고, 느낌이 쎄하네…? 그 사람 키가 몇이었지.”

“cctv 용의자 말입니까? 180정도는 되어 보였습니다.”

“쟤도 그 정도 되는 것 같지?”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오갱은 무전기를 들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쟤 쳐다본다. 일단 차 좀 옮겨봐.”

“예 형님.”

오갱은 정육점에서 충분히 멀어지자 무전을 쳤다.

“여기 오갱, 형님 김선함 만났어요?”

-어 만났어, 강진 봤어?

“예, 그 김선함이 범인 인상착의 아는 거 좀 얘기해줘요.”

-별거 없어, 남자, 키 180정도, 눈빛 무섭고, 이게 끝.

팀장의 말을 들은 오갱이 미간을 좁혔다. 능글맞던 평소와 달리 매서운 눈빛이었다.

그는 입을 무전에 가까이 대고 긴히 말했다.

“지금 생각해봤는데, 가족이나 친구가 없으니까 가해자들 중 한 명이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나?”

-왜, 뭔데?

“강진, 거슬리는데.”

-니가 쓸데없이 감은 좋지, 오케이, 밀착 감시해. 우리는 마지막 한 명 만나러 가니까, 주기적으로 무전 치고, 아무 일 없다면 없다고.

“예썰, 수고하쇼.”

오갱은 무전을 끊자마자 정보과에 연락하여 강진에 대해 정밀 조사를 요청했다.

“유도선수 유망주였으나… 그 사건 이후에 나락으로… 어휴, 고딩 때부터 폭력 사건도 많네, 교도소도 폭력으로 두 번 왔다갔다 하고.”

“어쩐지 인상이 무서웠습니다.”

오갱은 막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의 볼을 만지며 말했다.

“그래? 나는 이상하게 친근하던데.”

“예?”

“아니야.”

오갱과 막내는 멀찍한 곳에 차를 세우고 강진을 따라다녔다.

그는 퇴근을 조금 일찍 하고 정말로 경찰서에 가서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왼팔에 스마트워치를 찬 것까지 확인한 오갱이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아닌가….”

“그래도 작은 것도 의심하고 파헤쳐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어 그래, 쫓아가기나 해, 머얼~리서.”

“예.”

강진의 집으로 향하고, 그는 집에 들어갔다가 새벽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흠… 왠지 장기전이 될 것 같네, 이러다 나가리면….”

그때, 팀장의 긴급한 무전이 울렸다.

-박서영 스마트워치 울렸다! 우린 저쪽으로 출발한다!

“이런 젠장! 위치 보내!”

막내는 바로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았다.

* * *

냐옹 냐아옹

박서영의 부모님 집, 거실 쇼파에 고양이 한 마리가 스마트워치를 물고 양쪽으로 마구 흔들고 있다.

“하….”

“음.”

졸린 얼굴의 박서영은 잠옷바람으로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경찰과 형사들을 맞이했다.

“정말 죄송해요… 잘 때 옆에 풀어놨는데, 냥뇽이가….”

팀장은 애써 웃음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아닙니다. 정말 저 알림이 필요할 때보다 백번 낫죠, 다행입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우리는 이만 돌아갑시다. 다들 주무실 시간이니까.”

팀장의 말에 따라 출동한 경찰들도, 해수도 돌아서서 발을 옮겼다. 그때, 해수의 눈앞에 새까만 장막이 뒤덮었다.

어두컴컴한 공간, 퀴퀴한 먼지, 흙 냄새, 바람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듯하다.

눈앞에는 해수가 좀 전에 만났던 구광헌이 비닐을 깔아놓은 바닥에 대 자로 묶여있다.

-으아악! 으악!! 사람 살려!!!

시선의 주인은 구광헌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요리사용 넙쩍한 칼이 들려 있고, 감정은 약간의 분노와 쾌감이 섞여 있다.

-성대가 갈려나갈 때까지 소리 질러봐, 혹시 모르잖아, 누가 와서 구해줄지…

저벅 저벅

-오, 오, 오지 마! 오지 마!! 시팔! 그 동영상에서 나온 놈들만 죽인다며!! 나는 안 나왔잖아? 왜!

시선의 주인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내 눈이 카메라야.

동시에 그가 넙쩍칼로 구광헌의 두 다리 사이를 내리찍었다.

팍!

-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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