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대로 주인한테 가져다줘, 남자는 관심 없으면 껌 한 통 사주지 않아.”
“...아픕니다.”
신해수는 하루의 말에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았다. 자신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녀 손을 꽉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의 손이 오프너 모양으로 짓눌려 새빨개졌다.
“미안.”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미 몇 번 마셨습니다.”
“그럼 같은 걸 사서 줘야겠군, 잘 들어, 남자에게 선물을 받을 때는 사심이 있는 지 없는지 잘 살펴야 해, 3만원, 아니, 만 원 이상이면 사심이 있는 거다. 그리고 받으면 빚을 지운 것이기에 너에게 다른 것을 원하지.”
“다른 것...?”
“밥 한 끼라던가, 영화 한 편이라던가,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할 것이야, 매사에 조심하도록.”
“왜 남자를 조심해야 합니까?”
“유부남이잖아, 유부남은 아내 외에 다른 여자에게 그런 비싼 선물을 하면 안 돼.”
“유부남 아니면 괜찮습니까?”
“유부남 아니면...”
해수는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쁘게 그릇을 치웠다.
“맛있었다. 앞으로도 좋은 신메뉴를 배우도록.”
“네, 해수님.”
하루는 다급히 운동방으로 향하는 해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강진서 강수대 본부.
오랜만에 모든 인원이 본부에 모였다. 해수가 가장 마지막 복귀였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상이 있었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조금 쉬니 회복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셨습니까!! 기다렸습니다!”
해수의 인사에 막내가 먼저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마치 몸만 큰 새끼곰같은 느낌이다.
“이게 누구야, 와, 왼쪽 오른쪽 차이가 심하네.”
“우리 돌격이 팔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다음부터 오른쪽도 운동하지 마!”
“슬슬 왼쪽도 할 생각입니다.”
“천천히 해 천천히, 괜히 무리하다가 나중에 골병 든다.”
“명심하겠습니다. 사건은 없었습니까?”
“어 저번에 가폭 사건 있었는데 어제 해결됐어, 오늘은 오랜만에...”
띠리리리 띠리리리
내선 전화다. 팀장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멈추고,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예, 예 알겠습니다. 파일 보내주세요.”
상황실이다. 전화로 내용을 듣는 팀장의 얼굴이 심각하다.
“어떤 건입니까?”
팀장은 수화기를 든 채 멍하니 있다가 해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살인사건, 경찰.”
경찰이란 말에 본부 내에 형사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었다. 문맥상 경찰이 가해자는 아닐 것이다. 피해자다. 경찰이 죽은 것이다.
막내는 덤벨을 내려놓고, 해수는 운동화를 갈아신고, 오갱은 컵라면과 젓가락을 놓았다.
팀장은 무전기와 차키를 챙겼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차에 가는 시간도 길었는지 팀원들은 참지 못하고 질문을 쏟아냈다.
“어디 소속이야?”
“경기 남부청”
“이름이 뭡니까?”
“조방희”
“여자입니까?”
“응”
“몇 살입니까?”
“서른, 질문 그만, 이걸 보자.”
팀장은 상황실에서 보낸 조방희의 신원 조회 창을 띄운 무전기를 보여주었다.
거주지는 강진시 용수동, 시체를 발견된 곳도 이곳이기에 강진서로 신고된 것이다.
그 사이 봉고차에 모두 타고, 막내가 차키를 받아 운전석에 탔다가 조방희의 신분증 사진을 알아보았다.
“어, 이 여자.”
“왜, 아는 사람이야?”
“개인적으로는 아니고, 잠깐 화제가 됐었습니다.”
“뭔데?”
“그, 15년 전에 진마읍 여중생을 감금하고 집단 폭행한 건 있었잖습니까?”
진마읍이라는 곳에서 여덟 명의 남녀가 여학생을 이틀 동안 감금하고 폭행한 사건, 나중에 탈출해서 신고를 했지만 아버지라는 작자는 가해자들과 합의를 하여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피해자 여학생은 얼마 안 되어 집에서 홀로 사망했는데 사망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바람에 매스컴을 탄 사건이다.
해수도 그때 사건을 접하고 오랫동안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팀장도 떠올랐는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게 갑자기 왜 나와?”
“그 사건 가해자라고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
“...뭐?”
“커뮤니티 사이트에 그때 그 사건, 뭐 이런 식으로 한 번 뜬 적이 있는데, 네 명은 구속되었으나 2년도 안 돼서 나왔고, 나머지 네 명은 범죄 이력도 남지 않아서, 경찰이 되었다고 다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마 소속 지구대 게시판 그때 난리 났을 겁니다.”
“흠...”
“개새끼였네...”
형사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경찰이지만, 천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 보호자의 합의로 인해 이런 식으로 사회에 방생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해수가 눈을 좁히며 물었다.
“피해자 가족이 더 있습니까?”
“어... 없어, 없네, 그 죽일놈의 아빠 한 명이었는데, 그 사람도 딸 죽고 얼마 안 돼서 그해 겨울에 술 처먹다가 객사했네.”
“음...”
그 사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조방희의 거주지는 주상복합 건물의 꼭대기층 투룸이었다.
순찰차 두 대가 와 있고, 위로 올라가자 들어가기 전부터 피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수고하십니다.”
“아, 네, 강수대가 오셨군요. 이쪽입니다.”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큰 방으로 들어간 해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음...”
“아우”
혼자 자기에는 큰 퀸 사이즈 침대 위에 여인의 시체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목, 팔 두 짝, 다리 두 짝, 몸통까지 여섯 개로 나뉘어 있다.
토막난 시체 아래에는 이런 사람을 받은 경찰을 희롱하는 것인지 경찰 근무복이 깔려 있었다.
근무복은 물론 아래 침대가 완전히 빨갛게 젖어 있다. 중간 중간에 살점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나, 피의 양을 보면 침대 위에서 직접 작업한 듯했다.
해수는 가장 먼저 직장온도와 시반을 살피며 사망시간을 추정해보았다.
이미 토막이 난 것을 보면 오래된 듯했고, 실제로도 최소 4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오랜만이네, 이런 시체 보는 건.”
“그러게요. 살도 말렸어, 살아있을 때 잘랐네.”
“흠, 여기 연골 부분은 뜯겼네요. 대충 자르고 나중에는 뜯어낸 겁니다. 힘이 장사군요.”
“미친...”
강수대는 조방희의 시체와 방을 세심히 살펴보았다.
“피가 거의 안 튀었습니다.”
“방향이 그렇지?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다는 거고...”
“수면제 혹은 마취제를 썼던가, 아, 여기가 처음입니다. 경동맥을 먼저 끊고 죽어가는 동안 토막 작업을 했군요.”
막내가 손을 들었다.
“여기 발자국 이상한 거 있습니다.”
“어디? 음, 본드네, 밑창에 본드 발랐어, 용의주도하네, 쉽지 않겠어.”
팀장의 말대로 현장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지문을 뜨긴 했지만 기대가 있지는 않았다.
첫째, 조방희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일 때 죽였다.
둘째, 아직 살아있을 때 몸을 토막 냈다. 원한이 깊은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셋째, 신발 밑창에 본드를 바를 정도로 용의주도하고 계획적이다.
“돌격이랑 막내는, 아니, 오갱이랑 막내는 근처 시시티비 블랙박스 싹 수거하고, 돌격이는 CSI에 인계하고.”
“제가 가겠습니다.”
해수의 말에 오갱이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나 괜찮아, 여기 있기 좀 힘들다. 나간다.”
“예, 알겠습니다.”
*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도 있다. 그리고 가해자는, 현시대에 면적대비 시시티비 대수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에서 찍히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얼굴을 가리는 것이 최선이다.
강수대는 지금 오갱의 모니터로 모자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나오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근데 안 맞네, 사람들 출근 시간에 나왔다라... 죽이고 나서 작업을 다 했다고 해도, 너무 늦게 나온 거 아니야?”
오갱의 말에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산 채로 사람 토막내는 놈이야, 일부러 출근 시간까지 그 시체랑 같이 짝짜꿍하고 있었던 거지.”
“으... 젠장”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직 더운데 품이 큰 점퍼를 입어서 체형을 알지 못하게 하는 걸 보면 더 의심이 듭니다.”
“지하철에서부터 사라졌지?”
“예.”
팀장은 오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니네 다 나가, 나가서 이 사람이 지나갔던 길 싹 다 발자국 한 번 채취해 봐.”
“노가다네...”
“그래도 나오면 용의자 특정하기는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다. 돌격이는 나랑 조방희씨 지인 만나러 가자.”
“예.”
조방희의 부모는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그녀의 끔찍한 죽음을 듣자 어머니는 졸도했고 아버지는 강수대에게 화를 냈다.
“당신들은 우리 아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뭐하고 있었어! 관할서 어디야! 내가 니네 가만 두나 봐!!”
자식의 죽음에 제정신이 아닐 것을 감안하더라도, 평소에 어떤 식으로 일처리를 했을 지 예상할 만한 인성이었다.
경기 남부 지구대에서 동료 경찰들을 만났지만, 성격이나 대인관계가 원만하여 딱히 그녀에게 원한이 있을만한 사람은 없었다.
“조방희 경장 말입니까? 오늘 안 나왔던데, 무슨 일 있습니까?”
“조경장... 항상 밝고 다정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길고양이 사료도 챙겨주다가 동네 주민한테 혼나기도 하고...”
“쯧, 그때 그 사건 주인공이라는 거 듣고 멀리 했어요. 솔직히 개과천선은 안 믿거든요.”
“항상 웃고있기는 하지만 느낌이 싸하기는 했어요.”
오히려 커뮤니티 사건이 터졌을 때 동료들에게 굉장히 미안해하며 밥도 여러번 샀다고 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해수와 팀장은 그녀가 자주 고양이 사료를 주었다는 지구대 근처 공원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챙겨먹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휙휙 지나다니다가 해수와 팀장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들 경찰이에요?”
팀장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사복인데 한 번에 알아본 것보다도, 해수의 얼굴을 보았는데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이 더 놀라웠다.
“어떻게 알았어? 대단한데?”
팀장의 대답에 남자애는 표독스러운 눈빛을 하더니 빽 소리쳤다.
“경찰은 나빠!!”
그러고는 다시 킥보드를 타고 휙 도망쳤다. 해수와 팀장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이없어할 때, 남자애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근처로 왔다.
팀장이 최대한 착한 얼굴과 목소리로 물었다.
“멋진 꼬마야, 경찰이 왜 나쁘다고 생각하니?”
“나 꼬마 아닌데요.”
“아 그래, 이름이 뭐니?”
“강철이요. 이강철.”
“정말 강하고 멋진 이름이구나, 우리 팀원도 그 이름 있는데, 그래 강철아, 왜 경찰이 나쁘니?”
강철이는 팀장이 아닌 수풀쪽에 시선을 두며 울먹울먹거렸다.
“경찰아줌마가, 경찰아줌마가 고양이 괴롭히고 죽였어요! 저번에 그 아줌마가 어떤 아저씨 때리는 것도 봤어요!”
“...뭐?”
해수는 돌연 묘한 촉이 발동하여 바로 무전기를 꺼내어 조방희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고양이 괴롭히고 죽인 경찰아줌마가 이 아줌마니?”
강철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이 아줌마 나빠요!”
“이 아줌마가 어떤 아저씨도 때렸어?”
“네, 막 밀치고, 손으로 얼굴도 때리고, 저는 무서워서 숨었어요.”
“그래? 맞은 아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니?”
“몰라요. 모자 달린 모자 쓰고 있어서, 불쌍하게 생겼어요.”
“그게 언제인지 기억하니?”
“오래 됐어요. 꽃 필 때였어요.”
봄이다. 몇 달이나 된 것이다. 시시티비로 확인은 불가하다.
해수가 탐문하는 사이 팀장이 휴대폰으로 용의자가 찍힌 시시티비 화면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혹시 이 아저씨가 맞은 아저씨야?”
“얼굴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아요? 근데 왜 자꾸 물어봐요?”
“아, 그 나쁜 경찰아줌마 혼내주려고 하지.”
“정말요? 알았어요. 이 아저씨랑 비슷한 것 같아요.”
강철이의 대답에 해수와 팀장이 다시 얼굴을 마주보았다.
혹시 몰라 공원 시시티비를 뒤져보았다. 조방희에게 맞았다는 용의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강철이의 말대로 고양이들을 사료로 꾀고 가위로 꼬리나 귀를 자르는 엽기 행위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 충분히 고양이를 죽였을 가능성이 컸다.
조방희는 개과천선 따위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본성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고, 그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조방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아주 잘...’
그때, 무전이 울렸다.
-조방희 시신에서 동물들에게 사용하는 마취제 성분이 검출되었답니다.
“동물 마취제...”
어쩌면 이 힌트로 용의자를 확 줄일 수도 있겠다.
“팀장님, 먼저...”
“어, 먼저 그때 가해자들 신변 확보해야겠다.”
“예.”
해수는 오갱 팀과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가해자들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막내에게 무전이 왔다.
-선배님, 여기 가해자 성수안씨 찾아왔는데... 보름 전에 살해당했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