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훈은 병원까지 찾아온 사채업자들을 보고 처음 드는 생각은 엄마가 오늘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여,여긴 어떻게...”
정훈의 말에 찰랑이는 단발머리의 사내가 씨익 웃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금니 하나가 돋보인다.
“어떻게 알긴, 고객님이 씨발 찾아오려면 찾아와 봐! 라고 욕 박을 때 말하지 않았어요? 어디든 지구 끝까지 찾아간다고.”
“아니, 제가 안 갚겠다는 게 아니라... 갚는다고 했잖... 아악!”
단발사내는 정훈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뒤로 확 잡아당겼다.
“내가 다 알아봤어요. 일용직도 안 나가고 일도 안 한다고, 갚을 생각이 없으니까 우리가 받아내야지.”
“지,진짜 갚을게요. 이거 보험비 나오거든요? 그걸로 일단 이자부터 갚을게요. 얼마, 얼마였죠?”
정훈의 말에 단발사내가 움켜쥔 머리를 살짝 풀어주었다.
“원금 천에 법정이자 20프로, 사업이자 일간 1프로, 고객님 찾느라 수고한 수고비 오백, 밀린 지 세 달 지났으니까 이자만 총 천 칠백, 여기 입원해있는 거 불쌍해서 이백 깎아줄게, 이자 천 오백.”
“...에? 아니 무슨 5년도 안 지났는데 이자가 원금보다 많아요?!”
“이따위로 나올 줄 알고 내가 가져왔지, 아야.”
“예 사장님.”
단발사내의 말에 뒤에 있던 사내가 서류 하나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정훈의 지장이 찍힌 계약 서류다.
“여기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요? 너도 동의했잖아요?”
아주 작게 표시된 사업이자 조항, 정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이,이건 사기잖아요! 잘 보이지도 않는데!”
“사기? 사기! 돈 떼먹고 잠수 탄 고객님이 사기꾼이지!!”
단발사내는 다시 정훈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손으로 따귀를 때렸다.
짜악!
“내가”
짝!
“제일 싫어하는 게!”
쩍!
“사기야 이 고객새끼야!”
척-
마무리 일격을 날리려던 그때, 누군가가 단발사내의 팔을 잡았다. 그는 분노 가득한 눈으로 휙 뒤돌아섰다.
“뭐야?!”
그의 팔을 잡은 사람은 환자복을 입은 한 중년인이었다. 배도 살짝 나오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데다가 다리에 깁스까지 했다.
그 몰골에 단발사내는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팔을 확 뿌리쳤다.
“아이 썅, 아저씨, 이 고객님처럼 되기 싫으면 저기 찌그러져 있어요.”
“어이 아저씨, 물러나세요.”
다른 사내들도 중년인과 단발사내 사이로 끼어들며 그를 밀었다.
“어이쿠 어이쿠, 인상 더러운 조폭들이 환자 때리네! 얘들아!!”
중년인이 헐리우드 액션으로 바닥에 엎어지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단발사내는 정훈을 놓아주고 뒤돌아서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얘들아? 뭐 꼴에 같은 편이 있나보지?”
단발사내는 슬쩍 병실을 돌아보고 모두 짐이 있는데 자리에 없는 것을 알아챘다.
“아... 여기 같은 병실 쓰는 환자들? 그래, 어디 한 번 다 데려와 봐.”
팍
그는 발로 중년인의 깁스한 발을 툭툭 치며 도발했다.
“다 데려와 보라니까? 사이좋게 싹 조져줄게!”
그가 발을 번쩍 들어 중년인의 깁스한 발을 강하게 밟으려고 할 때였다. 돌연 옆에서 누군가의 발이 그의 옆구리를 찼다.
퍽! 쿠당탕탕!
발길질 한 번에 단발사내는 추풍낙엽처럼 날아가 냉장고에 부딪혔다.
“왔다.”
발의 주인은 신해수였다. 그를 필두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는 오갱과 검은 봉지를 들고 있는 막내가 등장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괘,괜찮겠냐 이 새끼야, 니네는 대체 뭐하고 있었, 저놈들 뭐야...”
하나같이 헐렁한 환자복이 터질 것 같은 근육질에 사람 한 명쯤은 잡아봤을 것 같은 인상, 사장은 먼저 공격을 당했음에도 섣불리 그들에게 덤비지 못했다.
“니네 어디 식구들이냐? 아, 자해공갈단?”
“돌격아! 저 놈들이 나 밀치고 발로 막 밟았다! 돌격!”
“저 형님은 경찰한데 사람 때리라고 참 잘 시켜.”
“겨,경찰?”
해수는 정훈을 스윽 훑어보았다. 머리가 흐트러져 있고 볼은 퉁퉁 부었고 코피까지 흘리면서 울고 있다.
스윽
해수가 한 걸음 옮기자 사채업자들이 움찔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정훈씨, 어떻게 된 일입니까?”
“네? 아, 그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사채업자들이야, 법정이자 말고 사업이자라는 것도 따로 받는 불법 사채업자.”
팀장이 말에 해수가 다시 고개를 스윽 돌렸다. 오갱이 앞장서서 단발사내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고맙다. 치료 중에도 실적 올려줘서.”
“...네?”
*
단발사내와 부하들은 불법 고리대금 사채업으로 검거되었다. 그러나 고정훈이 빌린 돈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채무는 국가로 전환되었다.
정훈은 그 자리에서 사채업자들을 검거했던 강수대 형사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멋있어... 짜릿해.’
그는 다시금 경찰이 되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갑작스레 공부를 한다고 잘 될 리가 없다.
정훈은 3년이나 9급 경찰 시험에 낙방하다가 예전에 글을 쓰는 꿈을 잊지 못하고 공부했던 지식으로 경찰 소설을 쓰게 되었고, 꿈에 그리던 유료화를 하게 되는 것도 모자라 웹툰과 드라마화까지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경찰 소설의 실제 모델을 밝혔다.
-저랑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형사님들이 없었다면 이 소설도 없었겠죠, 하나같이 정말 무섭게 생기셨고 무시무시하게 멋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 화이팅.
***
가장 부상이 심했던 해수는 두 달 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아직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왼팔은 운동을 못하여 오른팔과 굵기 차이가 꽤 났다.
퇴원 후에도 바로 출근이 아닌, 며칠 더 쉬다가 출근하기로 했다.
“제가 저녁 차려드리겠습니다!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어? 그,그래.”
해수는 순간 하루가 끓여주었던 바닷물맛 김치찌개가 떠올랐다.
집에 오니 하루가 가장 신났다. 하루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하루가 멀다하고 병문안을 와서 빨리 나으라며 과일을 먹여주었었다.
아무튼 아프다고 뭘 해주려는 걸 보니 기특해서 부담되지 않고 쇼파에 가서 TV를 보았다.
뒤에서 뚝딱뚝딱거리는 소리가 바쁘다.
“해수님, 다 되었습니다. 드세요.”
하루는 언젠가부터 집주인님이라는 호칭에서 해수님으로 바뀌었다.
집주인님이라는 이상한 호칭에 적응되었는지 조금 어색하지만, 남들이 듣기에는 이게 훨씬 낫다.
그녀가 가져온 것은 볶음라면 위에 치즈를 올려놓았고, 옆에는 참치김밥 두 줄과 복숭아맛 음료수가 있었다.
“편의점에서 다른 학생들이 이렇게 해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요즘 ‘혼자’ 지내면서 여러가지 먹어봤는데 그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하루는 유독 혼자라는 말을 강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밥도 제대로 해먹지 못하는 여자가 혼자 두 달간 지냈을 생각에 조금 안쓰러웠다.
해수는 치즈가 길게 늘어지는 볶음면을 크게 한 입 먹어보았다.
“으음, 음, 음...”
알싸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져 나간다. 그것을 치즈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감싸며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매우면 이거 드십시오.”
하루는 김밥 하나를 들어 해수의 입에 쏙 넣었다. 병원에서부터 입에 넣어주는 게 버릇이 들어 상당히 자연스럽다. 타이밍은 어찌나 잘 잡던지 피할 수가 없다.
“우움...”
참치김밥이 매운맛과 짠맛이 질리지 않게 입안을 정화시켜주며 마요네즈의 느끼함이 매운맛을 다시 돋운다.
해수는 몇 번 씹다가 천천히 하루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루가 자신의 것은 먹지도 않고 눈을 초롱초롱거리며 해수를 보고 있다.
해수는 스윽 엄지를 들어 올렸다.
“맛있는데, 정말 맛있군.”
“역시, 해수님 입맛에도 맞을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하루가 허공에 대고 입을 벌려 육성으로 하하 소리를 내었다. 생전 처음 보는 행동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누군가에게 배웠나 보다.
그 행동이 퍽 귀엽고 신선하여 보기 좋았다.
“하루도 먹어.”
“네,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냠”
그녀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젓가락으로 치즈 올린 볶음면을 한 입 크게 물었다. 한 번에 절반은 먹은 듯하다.
입가에 치즈와 양념이 묻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와구와구 먹는 모습이 복스러웠다.
늦게 먹기 시작했는데 김밥 두 줄까지 해수보다 먼저 먹어 치웠다. 해수는 휴지를 뜯어 그녀에게 건네었다.
“네?”
“입.”
“아, 네.”
하루가 휴지를 받아서 대충 스윽 닦았다. 아직 왼쪽 구석이 남아있다.
“거기 말고, 왼쪽, 아니, 네 기준으로는 오른쪽, 이쪽, 아니, 줘봐.”
해수가 휴지를 받아들자 하루가 그 휴지를 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쭉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오리처럼.
“여기...”
해수가 휴지로 그녀의 입을 닦아내었다. 입술이 참 붉고 오밀조밀한 게 귀엽다. 그러다 문득 입술을 너무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시선을 올렸다. 순간 하루와 눈이 마주쳤다.
일 초, 이 초, 삼 초.
스윽
해수가 먼저 눈을 피하며 복숭아맛 음료수를 들이켰다.
하루가 분명 눈에 띄는 외모에 하는 행동도 귀여움이라는 감정을 일으키지만, 지금 관계는 보호자와 보호대상, 친오빠와 여동생과 같은 관계다.
해수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보호해야 할 대상, 챙겨줘야 할 대상, 그런데 요즘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꾸 더 신경이 쓰인다. 이전과는 무언가 미묘하게 다르게, 존재 자체가 신경 쓰인다.
“큼, 내가 없는 동안 안서은씨가 이곳에는 자주 왔나?”
하루는 해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서은님은 바쁘다고 몇 번 못 왔습니다. 아무래도 서은님도 요즘 저에게 소홀한 것 같습니다.”
‘서은님도...?’
노린 것이 분명하다. 한국어학원에서 공부를 참 열심히 한 것 같다. 본래부터 머리가 좋은지 세 달만에 금세 우등반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랬군, 경호원 일은 할만한 가?”
“재미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개인경호가 아닌 회사에 모여 훈련과 대련을 하는데, 그때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대련이라...”
하루는 전부터 운동이나 스파링을 좋아했다. 벌써부터 그녀와 대련을 하는 경호원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경호회사 내에 황장수 급은 되는 실력자가 있어야 나름대로 손이 오고갈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양민학살을 하며 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하루가 다쳐서 온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생각난 김에 나중에 황장수와 스파링을 시켜봐야겠다.
그때, 하루가 와인과 와인잔을 가져왔다.
“이거 드셔보십시오. 맛있습니다.”
“와인도 마실 줄 아나?”
“서은님과 가끔 마셨습니다. 이건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 안서은씨가 준 거군.”
하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닙니다. 회사 선배님이 주셨습니다. 30만원이 넘는 와인이라고 합니다.”
와인을 살펴보던 해수의 행동이 우뚝 멈추었다. 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누가, 남자가?”
“네, 신강원 선배님입니다. 서른 여덟, 기혼, 아이는 없고 아내가 있음, 앞에서 아내 흉을 자주 봄.”
하루의 브리핑에 해수는 오프너로 와인뚜껑을 따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동작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