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어머머”
“어...”
담당의사의 인사에 병실이 순간 어색한 공기로 가득 찼다.
정훈의 어머니는 민망해하고, 정훈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병실에서 도망쳤다.
“음? 고정훈 환자분 컨디션이 안 좋나요?”
“아,아니에요. 선생님, 화장실 간다고 하네요.”
“그렇군요. 병실 내 화장실은 소리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죠, 배변 활동은 중요합니다.”
담당의사가 나가고, 정훈 어머니가 강수대 대원들에게 와서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형사님들, 우리 아들이 철이 없어서... 큰 실수를 했어요.”
팀장이 일어나 정훈 어머니를 만류시키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일어나세요. 맞는 말인데요 뭐, 괜찮습니다. 허허허”
오갱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라서 슬프다.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해서 슬프다.”
“저는 국민들을 지키는데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막내는 단순해서 좋네, 그래, 그러니까 니가 순경 때부터 형사를 지원했지.”
해수가 현실자각 타임이 온 것 같은 오갱을 바라보다가 돌연 휴대폰을 꺼내었다.
“청장님께 경찰 월급 올려달라고 건의하겠습니다.”
“야야 됐어 됐어, 쟤 좀 말려라! 청장님한테 미운털 박힐라!”
오갱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해수의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했고, 해수 팬 막내는 그런 오갱을 막아섰다.
그 사이 해수가 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신경사가 내 직통으로 전화를 다 걸고, 무슨 일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저는 지금 평택 차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다수의 조직폭력배 검거 중에 많은 경찰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해수는 다른 사람들은 조용하라는 듯이 아예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다. 정말 청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오갱과 팀장은 말리기를 포기했다.
이미 연결되었는데 갑자기 끊게 하면 그건 더 실례다.
-뭐요?!! 얼마나 다쳤는데? 신경사 괜찮아요? 잠깐, 김실장, 다음 스케줄이 몇 시지?
“청장님, 전화드린 이유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범인을 잡는데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배척을 받는 경찰의 현 실상이 속상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어? 아, 월급...
“한 청년이 병실에서 경찰공무원을 희망하지 않는 이유 중에 고된 업무 강도와 그와는 반대되는 적은 월급을 예로 들었는데, 저희는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음, 그러니까... 병원에 형사들끼리 입원해 있는데, 월급 적다는 얘기가 나와서 월급 올려달라고 나한테 전화를 했다는 말이네요?
청장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팀장과 오갱, 막내가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숨을 멈췄다.
해수는 본질을 단번에 파악한 청장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월급 올려주십시오. 특히 사비까지 써서 범인을 잡는 데 노력하는 형사에게는 업무 외 시간 추가수당과 생명수당을 추가해주십시오.”
-허허허...
싸늘하다. 오갱은 지금 당장에라도 해수의 전화를 끊고 싶었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니 겁이 난다.
청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알겠어, 나도 전부터 생각은 했었는데, 이참에 좀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지, 몸은 괜찮아요?
“팔에 총 관통상을 입어서 무통제를 수시로 누르고 있지만 괜찮습니다.”
-총상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아니 여기는 이렇게 큰 사건인데 보고도 안 올라오고 뭐 하는 거야!
“평택에서 일어난 일이라 보고가 늦을 겁니다.”
-평택? 경기? 우리 딸랑구 있는 곳?
“네, 따님, 조팀장님은 허벅지에 칼을 찔렸지만 괜찮으십니다.”
-뭐??!!! 왜 그걸 이제 말해!!
“죄송합니다.”
-야이! 김실장! 평택차병원 네비 찍어!
청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해수를 제외한 강수대원들은 침상 아래로 머리를 숨겼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끊긴 휴대폰을 바라보는 해수의 모습에 오갱이 엄지를 추켜올렸다.
“역시, 해수의 깡다구는 적아를 가리지 않는구나.”
*
같은 시각, 현역 형사들 앞에서 경찰과 형사를 적나라하게 깠던 고정훈은 소변도 마렵지 않으면서 괜히 화장실을 어슬렁거렸다.
탈 탈
“이거 나오지도 않네, 어휴...”
정훈은 화장실에서 나와 복도 벽에 기대어 자신의 병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저길 이제 어떻게 들어가냐? 어쩐지 다 조폭같이 생겼더라, 들어가면 맞는 거 아니야?”
그가 두려움에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때, 모솔 총각의 귀를 자극하는 구두굽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또각
지면에 굽이 닿는 소리가 날카롭고 짧게 울려 퍼진다. 구두굽 끝이 좁고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이다. 고로 젊은 여자가 신는 하이힐이고 날씬한 여자일 가능성이 크다.
정훈은 본능에 충실하게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업! 여,여신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간호사들이 있는 접수대에 시크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머리칼을 깔끔하게 뒤로 묶은 무결점 도도여신이 강림해 있었다.
화장을 짙게 하지도 않았고, 어디 하나 고친 곳이 없어 보이는데 정훈의 심장을 미친듯이 쿵쾅거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도도여신은 그 분위기에 걸맞게 무서운 표정으로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신해수”
‘모,목소리까지!’
목소리가 보통 여자와는 달리 착 가라앉은 중저음이다. 그래서 더 분위기 있고 특별했다.
“네?”
“신해수”
“화,환자분 이름이요?”
“신해수”
“네,네 잠시만요.”
간호사가 신해수 환자의 병실이 어딘지 찾는 사이 다시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여신은 그 소리에 뒤돌아섰다.
‘저 한 줌 허리, 쭉 뻗은 라인, 뒤태도 완벽하다.’
정훈이 감탄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또 한 명의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만 생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고혹적인 검은 원피스에 새하얀 재킷을 걸치고, 화룡점정으로 검은 스타킹을 신은 청순 세련 여신.
‘커헉, 모,못 고르겠어!’
한 명은 도도여신에 한 명은 청순여신, 정훈은 한 손으로 심장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 모습에 도도여신이 그를 힐끔 보았다.
“헙!”
정훈은 화들짝 놀라 뒤돌아섰다. 눈이 마주쳤다. 자신 같은 찐따는 범접할 수 없는 여신들, 그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걸음을 떼었다.
‘눈호강 잘 했다. 오늘은 길이길이 기억해둘 테다.’
그는 자신의 병실에 가까워지자 다시 현실을 깨달았다. 조폭들이 형님 할 만한 형사들이 자리도 뜨지 않고 전부 그대로 있다.
정훈은 땀을 삐질거리며 어기적어기적 들어와 가장 인상이 좋은 형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어? 아 하하, 아니에요. 그래도 우리 그 쥐꼬리만 한 돈 받아도 열심히 잡고 있어요. 이렇게 총도 맞으면서.”
팀장은 검지로 해수를 가리켰다. 해수는 붕대를 칭칭 감은 자신의 팔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훈이 형사들에게 사과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뒤돌아섰을 때, 눈이 멀 뻔했다. 바로 코앞에 그 도도여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수님!”
도도여신은 아까 그 중저음의 서늘한 목소리가 아닌, 걱정이 가득 묻어난 하이톤으로 외치며 팔이 다친 형사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팔에 붕대 따위는 무시하며 확 껴안았다.
그 모습에 정훈의 눈은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
“어, 어...”
신해수는 하루의 처음 보는 모습에 낯설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분에 어색하게 허공에 뻗어있는 손으로 그녀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또각 또각
그 뒤로 안서은이 강비서와 김가드를 대동하고 들어왔다. 병실 문 앞에는 서은의 경호원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납치됐던 때 이후로 하루를 포함하여 경호원을 네 명이나 둔 것이다.
“생각보다 괜찮으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강비서와 김가드의 양손에는 과일바구니와 음료수가 가득 들려 있었다.
하루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고, 서은은 민망 또는 부러움의 눈길을 주고 있는 다른 형사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안서은입니다.”
“아이고 여전히 여배우처럼 아름다우시네요. 병실이 환해지는 것 같습니다.”
안서은과 형사들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해수는 하루를 밀어냈다.
“하루, 나 아프다.”
“아, 네, 죄송합니다. 피가 납니다.”
“네가 꽉 안아서.”
“죄송합니다. 아픕니까?”
하루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거린다. 금방이라도 톡 떨어질 것만 같다. 해수는 무통 버튼을 세 번 연달아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저거나 먹자.”
서은이 가져온 과일과 음료수로 공용 냉장고가 가득 찼다.
서은이 접시까지 챙겨와 직접 칼로 딸기의 꼭지를 자르려는데, 하루가 칼을 반강제로 빼앗았다.
“칼은 제가 잘 다룹니다.”
“아, 하하, 그래요. 난 이거 나눠야겠다.”
하루는 정말 묘기라도 보는 것처럼 신기할 정도로 깔끔하게 꼭지만 따냈다. 마치 작은 생명체의 목을 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서은은 과일과 음료수를 담은 접시를 형사들에게 나눠주고, 정훈에게도 주었다.
“이거 드세요.”
“우린 괜찮은데, 고마워요 아가씨, 아유 어쩜 이렇게 고와.”
“가,가,가,가...”
정훈은 서은을 매우 가까이에서 영접하자 숨이 멎을 것 같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모습에 정훈 어머니는 그의 등짝을 때렸다.
“얘는! 고마운 분한테 왜 계속 가라고 그래? 그러면 못 써”
“아,아니, 가,감사합니다!”
큰 오해가 쌓일 뻔하여 정훈은 용기내어 외쳤다. 그의 반응에 서은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커헉, 이대로 죽어도 좋다.’
정훈은 지금 이 순간, 다른 어떤 친구들도 부럽지 않았다. 여신 두 명과 같은 병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지고 행복했다.
그러나 한 형사만은 격하게 부러웠다.
“나도 먹을 수 있다니까...”
“아닙니다. 무리하면 아까처럼 피 납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그러니까요. 한쪽 팔은 링거, 한쪽 팔은 붕대를 감았는데 어떻게 혼자 먹어요. 아-”
“하... 웁”
해수는 다른 형사들이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것에 부끄러워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 틈에 하루가 그의 입에 딸기를 넣어주었다.
“하루씨, 여기 포크 있는데 맨 손으로 먹여주면 어떡해요. 해수씨가 손가락도 먹게, 혹시 노린 거?”
“아닙니다.”
하루가 부정하는 사이, 서은이 또 포도를 해수에게 먹여주었다.
마치 둘이서 경쟁하듯이 과일을 먹여주는 모습에 주변 남성들의 시선은 점점 더 따가워졌다.
안서은이 바쁜 몸이기에 하루와 함께 금방 떠나고, 정훈은 아직도 그녀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러다가 휴게실에서 아까 그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팔 다친 형사 해수를 발견했다.
정훈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형사님.”
“아, 예.”
“그... 아까 그 두 여신님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요?”
“음, 형사가 누굴 만나겠습니까? 두 분 다 사건 피해자였습니다.”
“...아!”
정훈은 무언가 강력한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하고 돌아섰다. 그는 곧바로 돌아가 주먹을 굳게 쥐고 다짐했다.
“어머니! 저 결심했습니다. 경찰이 될 겁니다. 형사!”
“응? 아... 형사?”
정훈 어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금 단체로 입원하고 있는 형사들을 힐끔 둘러보았다.
***
며칠 뒤, 평화로운 오후.
정훈이 경찰시험 관련 서적을 열심히 쇼핑 중일 때였다. 병실 내에 돌연 검은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이야~ 고정훈이, 여기 있었네? 소리소문없이 병원에 틀어박혀 있으면 우리가 못 찾을 줄 알았지?”
인상이 사나운 사내 세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정훈이 코인을 한다고 끌어다 쓴 사채의 업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