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목소리, 붉게 충혈된 눈.
신해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사내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난장판인 전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타다다닥
그는 형사들과 조폭들을 스쳐 가며 한 곳만 바라보고 돌진했다. 그곳에는 막 형사에게 총을 쏘려는 조폭이 있었다.
“야!!”
짐승과 같은 포효에 조폭이 움찔하며 해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해수가 무섭게 달려오자 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동체시력이 뛰어난 해수는 그의 총구를 보고 몸을 살짝 틀었지만, 팔뚝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쿠웅!
거의 동시에 해수의 육탄 돌격이 사내를 덮쳤다. 사내는 교통사고라도 난 듯한 충격을 느끼며 붕 떠올라 5미터 가량 날아갔다가 바닥을 굴렀다.
해수는 부딪힌 것에서 멈추지 않고 바짝 쫓아가 발로 그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빠악!
“켁!”
그는 단말마를 내고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해수는 그 근처에 떨어져 있던 칼과 총을 집어 부상을 당한 형사에게 던지고, 칼을 역수로 쥐고 다음 사냥감을 찾아 달렸다.
푹 푹!! 까드득!
‘죽이지 말아야 한다.’ 라는 강력한 제한사항이 강제 해제된 해수는 늑대 굴에 들어간 호랑이처럼 날뛰었다.
그 엄청난 무력과 살기에 조아라는 자신의 상처가 주는 통증도 잊은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작 한 명의 아군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매우 불리했던 전세가 역전되었다.
이 기이한 현상에 조아라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
-조아라씨, 조아라씨! 정신 붙들어요! 정신!
-켁,크륵, 아,아빠, 미,미안하다고...
-댁이 직접 말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미,미안.
-조아라!!
돌연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기억, 자신이 방금 그 중국인에게 목과 배에 칼을 찔려 죽는 장면을 보았다. 아니 기억해냈다.
분명 같은 장소, 같은 상황, 꿈? 그때의 고통이, 공포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뭐,뭐야 이건...?”
조아라는 혼란한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섰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움이 필요한 형사들이 있다.
타다다당!
때마침 울려 퍼지는 총소리, 기관단총은 리볼버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 되었다. 조폭들은 물론 형사들도 일제히 움찔하며 머리를 숙였다.
“엎드려!!”
“모두 엎드려!”
그제야 도착한 경특대가 차에서 튀어나와 순식간에 장내를 포위했다.
타당!
“아윽!”
슬그머니 움직이며 떨어진 칼을 잡던 중국 조폭이 다리와 팔에 총을 맞고 바닥에 엎어졌다.
아무리 여기서 잡히면 사형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낫다.
가차없는 경특대의 사격에 전쟁은 순식간에 종결되었다.
경특대는 적아구분 힘드니 일단 모두 엎드리게 했다. 그러나 몇 명은 그 무시무시한 총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중에는 해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수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한쪽 팔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를 알아본 경특대 대원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괜찮으십니-”
타닥 턱-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해수가 뒤돌아서며 그의 손을 꺾고 칼로 옆구리를 찌르려고 했다.
“아윽!”
처적 척-
동시에 경특대 몇 명이 해수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렇게 칼이 옆구리를 파고들기 직전, 해수가 그의 복장을 보고 멈추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스르르 놓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여전히 살기가 가득했다.
대원은 해수가 들고 있는 피가 잔뜩 묻은 칼의 끝을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신경사님, 신경사님 칼 내려놓으세요.”
“크흐, 크으...”
그의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를 눈치채고 장내에 긴장감이 흘렀다.
제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경특대장과 대원들의 눈빛이 오고 가던 그때, 덩치 큰 사내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현장으로 달려왔다.
“선배님! 선배님!! 당신들 뭐야!! 미쳤어?! 그 총 내려!!”
막내는 절뚝거리면서도 전속력으로 달려와 해수가 칼을 들고 있던 말던 상관없이 확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등을 강하게 두드리며 말했다.
“선배님, 선배님 이제 괜찮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막내, 막내 왔냐.”
“예, 막내 우강철 도착했습니다...”
해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피 묻은 손으로 그의 볼을 한 번 쓱 훑었다. 그제야 눈에 가득한 살기가 스르르 사라지고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막내는 재빨리 해수를 잡고 부축했다.
*
중국 적해회 16명, 한국 강영파 17명, 총 33명의 조직폭력배. 일곱 명이 사망했고, 그 중에 네 명은 해수의 손에 죽었다.
경찰은 신기하게도 다행히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조아라 포함하여 중상이 세 명 있으나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경특대는 컨테이너에서 중국으로 팔려나갈 위기였던 실종자 열 세 명을 구해냈다.
그 중 절반이 영양실조 상태여서 경찰의 분노를 자아냈다.
평택 인근 병원, 새벽녘 한가했던 응급실이 갑작스레 꽉 찼다.
침상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돌연 눈앞에 어떤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아라다.
해수가 흠칫 놀라며 몸을 물리자 조아라가 묘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눈빛 뭐죠?”
“놀라서 그렇습니다.”
“왜 저를 보고 놀라죠? 제가 놀랄만한 얼굴은 아닌데.”
해수는 진지한 얼굴과 진지한 말투로 농담을 내뱉은 조아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품에서 죽었던 사람이 눈앞에 살아서 농담을 하는 모습은 묘한 이질감이 든다.
“다리는 괜찮습니까?”
“아 이거요? 괜찮습니다. 덕분에, 그런데”
조아라는 턱을 괴고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깬 상태로 꾸는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숨이 안 끊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지금처럼 리셋 전에 기억을 지닌 사람이 물어오면 해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항상 난감하다.
조아라는 해수를 빤히 바라보며 그가 겪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 그 기억에서 모두가 같은데 당신만 달랐어요. 그리고 원래 죽었을 내가 살았습니다.”
“...”
해수는 말을 아끼고, 그녀를 그저 헛소리하는 여자로 보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조아라는 굴하지 않았다.
“당신은 시간을 돌려서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까?”
이번에는 조금 뜨끔했다.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조아라는 해수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어나 엉덩이를 탈탈 털며 말했다.
“그러게요. 제 바람일 수도, 제가 초능력을 조금 믿는 편이라서, 아무튼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진심으로요.”
“아닙니다. 우리가 지원요청하고 돌발상황에 대비를 못 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제가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제가 아빠카드를 쓰더라도 꼭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조아라는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씨익 미소를 지으며 해수를 떠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경기 북부 형사들이 많이 다친 데에 경특대의 부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충남청 소속이지만 전국을 바쁘게 다니기 때문이다.
조아라는 지원을 기다렸어야 하는데 급하게 덮친 자신의 명령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다 내 탓이야, 내가 이번 건은 책임지고 자리를 내려...”
“아이 왜 그래요. 멋있게 타이밍 잘 맞춰서 명령 내렸고, 다 검거 했잖아.”
“그러니까, 팀장님 아니었으면 그 열 세 명, 다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네 명은 장기 털릴 사람이었다면서, 나머지도 거기 팔리면 죽는 게 나을 정도일 겁니다. 팀장님의 명령이 열 세 명을 살리신 겁니다.”
“맞아, 그래도 형사는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우리 조팀장님이 천운이 따르나보다.”
그 말에 조아라는 고개를 돌려 해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말, 죽은 사람이 없었을까?’
***
[입원했어, 며칠 걸려, 밥 잘 챙겨먹어.]
지이이이잉 지이이잉-
문자를 남기자마자 일 중일텐데 바로 전화가 온다.
“어.”
-많이 다치셨습니까?! 괜찮습니까? 어딥니까?
이 여자가 먹을 것 외에 이렇게 감정을 잘 드러냈던가? 누군가가 자신을 매우 걱정하는 모습은 참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해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대답했다.
“숨 골라, 지금 일 중 아니야?”
-안서은님께 허락 받았습니다. 안서은님도 몹시 궁금해합니다.
“몹시... 그래, 왼쪽 팔만 조금 다쳤고 멀쩡해, 여긴 평택차병원, 아, 올 생각은 하지 마, 여기 정신 없어, 조폭들이랑 형사들 많이 몰려와서.”
해수의 말에 하루의 목소리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해수님 다치게 한 범죄자도 그곳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아니, 그 사람은... 죽었어.”
-...아쉽습니다. 퇴근하고 금방...
하루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작게 저 멀리서 안서은이 뭐라뭐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정합니다. 지금 바로 안서은님과 함께 출발하겠습니다. 말리지 마십시오.
“어? 아니 여기 와봤자...”
하루는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해수는 허무하게 끊긴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팀장과 오갱이 어기적거리며 해수에게 다가왔다.
교통사고로 팀장은 머리와 무릎을 다쳤고, 오갱은 갈비뼈와 다리를 다쳤다.
“해수야, 괜찮냐? 괜찮아보이... 이런 시팔! 이거 총상이잖아!”
“뭐? 아니 썅 어떤 개새끼가!! 우리 돌격이를!”
해수는 온 사방을 떠들썩하게 하는 듀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응? 아...”
“그렇구나, 잘했어 잘했어, 형사한테 총 쏜 새끼는 뒤져도 싸.”
“그 역주행 차량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 저쪽에 있어.”
오갱이 가리킨 곳에는 젊은 여성이 부모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다.
“음주는 아니고 그냥 운전 미숙이더라고, 고가도로 입출구 헷갈리는 초보 가끔 있잖아, 그냥 치료비만 내달라고 했어, 너는... 애매하겠네.”
“전... 괜찮습니다.”
해수는 이번 일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동료의 죽음을 오랜만에 경험한 것이 크다.
자신이 조폭들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도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조아라의 죽음을 보고 미쳐 날뛰었다는 것이다. 순간이지만 자제력을 잃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저 휴가 좀 쓰겠습니다.”
“휴가 말고 병가 써, 어차피 우리도 최소 5주야.”
“나는 6주요.”
팀장은 오갱의 말을 무시하고 그 옆자리에 막내를 보며 말했다.
“막내도 이참에 좀 쉬어, 너도 다리 다쳤잖아.”
“작은 골절입니다.”
“그게 다친거야, 이참에 푹 쉬자, 잘못 관리하면 나중에 개고생이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수대 대원들은 사이좋게 같은 병실에 입원하였다. 통째로 빈 4인실이 없어서 6인실로 들어갔다.
같은 병실에 한 자리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인과 함께 있었다.
“정훈아, 그놈의 소설 작가 언제까지 할 꺼야? 사람이 움직여야 돈이 나오지 언제까지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을 거야?”
“아 몰라,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이거 소설이 대박 한 번 치면 한 달에 천 만 원씩 번다니까?”
“아휴... 그래서 지금은? 지금 몇 년째 한 달에 백 만원도 못 벌잖아, 정훈아, 우리 아들, 이번에 경찰 많이 뽑는다더라, 경찰 준비 좀 해봐, 아들은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잖아, 금방 합격할 거야, 응?”
어머니의 말에 정훈이라 불린 청년은 속이 답답해 죽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니 좀 기다리라니깐? 금방 대박 터진다고, 이번에 프롤로그 진짜 존나 잘 썼다니까? 그리고 요즘 경찰 그딴 걸 누가 한다고 그래!”
“그딴 거라니? 공무원인데!”
“공무원도 공무원 나름이지, 경찰 쎄빠지게 일해봤자 아무리 많아야 달에 300이야, 내 아는 형도 경찰인데 10년 됐는데도 290만원밖에 못 받는대, 그리고 그 범인 잡는 형사? 걔네는 더 하대, 사건 하나 터지면 24시간 맨날 서에서 먹고 자고 잠복하고 하면서 월급은 똑같애, 야간수당 추가수당 그딴 거 없고, 자기 사비까지 들인대, 그딴 고생을 뭐하러 하냐고, 돈도 쥐꼬리만큼 벌면서.”
아들의 따발총같은 말에 어머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도 그저 공무원이기에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귀한 아들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경찰이자 형사 사인방은 헛기침을 하기 바빴다.
“크흠”
“흠...”
“트,틀린 말이 없어...”
“아, 아고, 뼈 아퍼, 막내야, 나 뼈 또 부러진 것 같아.”
그때, 담당의사가 병실에 들어오며 밝은 얼굴로 강수대 대원들에게 인사했다.
“우리 곽수철 경감님, 오강석 경위님, 신해수 경사님, 그리고 우강철 경장님, 훌륭하신 형사분들을 저희 병원에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의사는 강수대의 계급까지 외운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한 명 한 명 지목했고, 맞은편 청년 정훈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