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이지만 안에는 전구 하나 켜지 않아서 어둑어둑한 창고 안, 열 댓 명의 장정이 근육질 사내 둘을 둘러싸고 있다.
신해수의 말에 말통은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소리쳤다.
“뭐래 이 시팔놈이! 뭐하냐! 저 새끼 죽여!!”
“죽여!!!”
“와아아아아!”
“이야아아!”
해수는 그들을 상대하기 전에 막내를 힐끔 보았다. 전에 유마담을 잡을 때와 다르게 눈빛이 담담하고 차분하다. 상대가 칼이 없는 것도 있지만, 막내도 그 사이 마음이 단단해진 것이다.
해수는 걱정 없이 몸을 뒤로 물리며 쇠파이프를 피하고 한껏 젖혔던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해수의 풀스윙 주먹을 맞은 사내는 발이 지면에서 3센티 쯤 떠올랐다가 나자빠졌다. 그 뒤로 사내 두 명이 그에게 깔렸다.
훙-
그 틈에 반대편에서 못 박은 각목으로 해수의 머리를 찔러왔다. 그 악독한 수에 해수가 미간을 좁히며 수도로 각목 허리를 올려쳤다.
콰직!
각목을 부수고, 각목을 휘두른 사내의 목을 움켜잡아 높이 들어올렸다가 뒤에 주차되어 있는 차 보닛에 얼굴을 내리찍었다.
콰앙!!
콰장창!
동시에 막내가 한 사내의 머리를 차 창문에 꽂았다.
막내가 순간 눈이 마주쳤고, 해수는 엄지를 추켜올렸다.
“좋은데?”
콰장창!! 쾅!
해수와 막내는 서로 질세라 자동차 창문에 놈들을 꽂아넣기 시작했다. 네 명이 들어가 자리가 없으면 없는대로 쑤셔 박았다.
“아으윽!”
“야, 야 시발 움직이지 마!”
“젠장, 악! 유리 유리!”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꽂히다보니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발을 버둥버둥거렸다.
그렇게 차의 활약(?)으로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나머지는 해수와 막내가 오히려 사냥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우득 우직 쾅!
마지막 남은 사내를 들어 말통 옆에 내리꽂았다.
말통은 처음에는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다가, 점점 두 다리를 공손하게 모으고 담배도 껐다.
딸꾹
해수는 피가 가득 묻은 손을 말통의 머리에 툭 얹혔다.
“그러게, 더 자세히 알아봤어야지.”
“에...”
뻑!
말통은 입 안에 치아가 생으로 뽑혀나가는 것을 느끼며 뒤로 자빠졌다.
그때, 왜 이 중요한 순간에 감청을 하지 않았나 싶었던 오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시끄럽냐? 곰치 잡았다.
“예, 저도 말통 잡았습니다.”
-그게 뭔 말이야?
*
잠시 후, 창고에 있던 조폭들은 모두 강진서로 연행되었다. 네 명은 상태가 심각하여 응급실로 향했다.
강진서 강력반 사무실.
강수대 본부는 이 많은 조폭들이 들어오기에는 좁고, 조서를 쓰기에도 강력팀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강력반으로 데리고 왔다.
해수 맞은편에는 말통이 앉아있다.
“말통.”
말통이 흠칫한다. 해수가 타자를 멈추고 미간을 좁히며 그를 쳐다보았다.
“두 가지만 기억해, 묻는 말에는 예, 아니오로 대답한다. 침묵하면 맞는다. 거짓말해도 맞는다. 알았어?”
“에, 세, 세 가지인데요?”
“니네 인신매매도 하지?”
말통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요?”
“중국 놈들이랑 거래하지? 사람 보내고, 약 받고.”
눈을 크게 뜨고 있던 말통의 입도 쩍 벌어졌다.
“아...닐껄요?”
“그렇구나, 전 점장은 언제 중국으로 보내냐, 오늘?”
그가 흠칫하더니 어깨를 떨었다. 소름이 돋는 것이다.
“아,아니요?”
“오늘 어디로, 평택항?”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조폭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배신했어!”
“너 정말 유리잔처럼 투명한 놈이구나, 무릎 반대로 접히기 싫으면 앉아.”
털썩.
말통은 흉흉한 기세와는 달리 금세 자리에 앉았다.
팀장이 다가와 해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얘네 싹 없어졌으니 눈치 까는 건 금방이야, 오늘 다 잡아야 한다. 막내 경특대에 지원 요청하고, 강력반은 몇 팀 지원 가능하냐?”
“아, 우리 또 살인사건 터져서.”
“우리도 조폭 건 오늘 밤에 들어가야 해서.”
“젠장, 1팀은 없는 거 보니 바쁘고, 모자란데.”
막내가 거들었다.
“평택이면 해당 서에 지원요청 어떻습니까?”
“서에도 넣어야지, 하 근데 싹 잡아야하는데, 요즘 하필 순마 지원도 힘들어서.”
여름은 가장 바쁜 시기다. 보통 여름 파출소라고 하여 해수욕장 근처 파출소로 모두 지원을 나가기 때문이다.
평택이라고 하자 해수의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조아라팀장한테 연락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 그 경기 북부? 번호 있어?”
“예, 청장님이 찍어주셨습니다.”
“일단 오갱이랑 합류부터 하고, 연락 넣어봐.”
나가는 길, 해수가 구석에 쭈그려 있는 말통을 보고 멈췄다.
“얘랑 몇 명 데리고 가죠, 돌발상황 대비차”
“어? 어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말통, 누구 데리고 갈 거야, 두 명 골라.”
“예? 어디로 갑니까?”
말통의 질문에 해수가 팍 인상을 썼다.
“첫째.”
“...묻지 않는다. 쟤랑 쟤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 니네 둘 일어나.”
해수는 혼자서 세 명을 인도하여 봉고차에 넣고 그들과 같이 탔다. 막내가 운전을 하고 팀장은 조수석에 앉았다. 혼자서 세 명을 맡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는 태도다.
임시본부로 가는 길.
-경기 북부 1팀 조아라입니다.
“선배님, 저 충남 강수대 신해수입니다.”
-아? 어? 그 바디 나이스한 신경사님? 나한테 갑자기 전화를 왜, 아니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번호는 청-”
-아빠한테 물어봤구나, 나 깠다면서요. 막상 만나보니 아니야? 하긴, 내가 어디서 빠지는 외모는 아니지, 얼굴 귀욤귀욤하지, 몸매 나이스하지, 범인 잘 잡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설마... 마음? 하 참 이 남자가 또 심쿵하게 만드네, 알았어요. 어디서 볼까요? 몇 시?
해수에게 드디어 답변의 시간이 왔다. 해수는 드디어 잡은 기회에 랩을 하듯이 빠르고 정확한 딕션으로 말을 쏟아냈다.
“평택항입니다. 시간은 이따 정확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동원할 수 있는 강력팀 최대한 많이 지원 부탁합니다. 요즘 기승 부리는 인신매매 및 마약수입 조직 일망타진 계획입니다.”
-...네? 아, 그럼요. 마침 대기 중이었네, 시간 뜨면 연락 줘요. 그럼.
조아라는 민망했는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때마침 임시본부에 도착했고, 곰치와 오갱이 함께 있었다.
해수가 들어오니 곰치가 화들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 누가 잡아먹어?”
“죄,죄송합니다.”
그 뒤로 점장 말통과 똘마니 두 명이 수갑을 차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더 놀라워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에 덩치 큰 사내들 여덟 명이 들어오니 금세 후덥지근해졌다.
해수는 말통과 똘마니들을 구석에 밀어넣고 곰치와 마주했다.
“너 왜 사장한테 내 정체 말 안 했어?”
곰치가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듯이 말했다.
“...까봐.”
“뭐? 크게 말해.”
“죽,죽을 까봐...”
“풉”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 그의 답변에 오갱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상황판단이 빠르네, 맞아, 얘기했으면 거기 애들 다 잡고 너는 허리 반으로 접어주려고 했어.”
곰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손가락 사인 해석이 맞았다.
“하나만 확인하자.”
해수는 돌연 벌떡 일어나 그의 뒷덜미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쾅-
문까지 닫고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자 곰치가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왜,왜 이러십니까...”
“중국놈들이랑 언제 거래야.”
“...오늘입니다.”
“몇 시”
“23시 30분에 도착합니다.”
“니네는 사람 주고, 걔네는 약 주고?”
곰치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한 건 아는 모양이다.
“좋아, 너도 눈치 깠다시피 우리가 이미 이쪽은 다 먹었어, 얼마나 들어왔는지 느낌 오지? 이제 끝이야, 같잖은 의리따위 없는 거 안다.”
“네...”
“니가 할 거는 아무것도 없어, 그냥 이거 품에 지니고 가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돼, 알았어?”
해수가 위치추적 및 도청기능이 있는 기계를 그의 옷 뒤쪽에 붙였다.
“혀,형량은 낮춰주시는 겁니까?”
“살려는 줄게, 도망가면 그냥 평택항에 고기밥으로 주고, 가!”
해수가 화장실 문을 열어주자 곰치는 도망치듯이 나와 임시본부에서 쫓겨났다.
곰치를 풀어주고 형사들은 감청기를 틀었다.
“곰치가 도망가지는 않을까?”
“도망가도 약속시간은 맞을 겁니다.”
“사장한테 말하고 튈 가능성은?”
“사장한테 우리와 만났다가 풀려났다는 말을 하면 그놈도 죽은 목숨입니다.”
“그렇겠지.”
그때,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곰치,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예? 아, 중간에 타이어 펑크가 나서...
-그래? 분명해? 솔직히 말하면 봐줄게.
은근한 사장의 목소리, 살떨리는 것이 들리는 것 같은 곰치의 숨소리.
팀장이 미간을 좁혔다.
“뭐지 이 새끼? 눈치 깟나?”
“금방 풀어줬는데, 미행이라도 붙었었나?”
모두 무효가 될 수 있는 상황, 곰치가 위험해지면 일단 구하러 나가야한다. 해수가 일어나자 막내도 차키를 챙기고 일어섰다.
그때.
-그,그게... 그.
-이 새끼야! 뭘 그렇게 쫄아? 연애가 잘못이야? 니가 디스노래방 고정 에이스한테 꽂힌 거 소문 다 퍼졌어 임마, 그래도 일하는데 지장은 없게 하자, 엉?
“휴”
“휴... 아 심장 아파.”
-아,아하하...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말통 이 새끼들은 조용하네, 점장 달았다고 첫날부터 주머니 차는 거 아니야?
말통 얘기에 뒤에 있던 진짜 말통이 흠칫했다.
-말통 점장이 성실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괜찮을 겁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야, 양아치들은 주기적으로 쪼아줘야 돼, 세뇌가 될 때까지.
지이이잉 지이이잉
동시에 말통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 소리에 방 안에 있던 모두가 당황하며 난리가 났다.
“이런 시팔!”
“빨리 받아 받아!”
“손 손!”
“폰 어디야, 어디 있어?!”
“가위! 가위 없어?!”
사람들의 호들갑에 해수가 다가가 말통의 수갑을 두 손으로 잡아당겼다.
우드득-
급한대로 수갑의 고리가 끊어졌다. 말통은 해수의 괴력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진동소리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받았다.
“예 사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받어, 점장 됐다고 빠졌네?
“죄송합니다!”
-지금 어디냐?
말통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수를 보았다. 해수는 벌떡 일어나 창문 밖에 그들의 사무실을 가리켰다.
“사무실에 있습니다.”
-그래? 애들이랑 있어라, 들를테니.
사장의 말에 형사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예?”
-왜, 안 돼?
팀장은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 문을 열었고, 오갱은 밖으로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안 가 임마, 뭐 좋은 거 있다고.
사장의 말 한 마디에 형사들의 심장이 덜컹덜컹 내려앉는다. 오갱은 소리없는 욕을 사장에게 표정으로 마구 내뱉었다.
-말통아.
“예 사장님.”
-나는 사람 안 믿는다. 너도, 얘도, 나도.
“잘 하겠습니다.”
-그래, 피 볼일 없게 만들어라, 니 점장처럼 장기 팔리기 싫으면.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일 봐라.
전화가 끊기자 팀장이 그의 휴대폰을 빼앗아 정확히 끊겼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 씨, 그러니까 온다는겨 만다는 겨.”
“아오 이 새끼 피 말리게 하네, 다 끝나봐라, 아주그냥...”
그때 감청기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곰치야, 몇 시 배지?
-23시 30분 도착예정입니다. 22시에 출발하시면 될 듯합니다.
-그려? 몸도 배기는데 슬슬 가서 자리 잡자.
-예, 준비시키겠습니다.
이제 정확한 시간이 나왔다. 감청을 계속 하면서 돌발상황에 대비한다.
해수는 조아라에게 연락을 하여 시간을 알렸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너무 늦게 가서 미리 자리를 잡지 못하면 돌발상황에 대비하지 못하고, 너무 일찍 가면 약속장소가 변경될 경우 대비하기 힘들다.
그들보다 딱 1시간 일찍 출발한다. 팀장이 일어서자 다른 대원들도 따라서 일어났다.
“자, 가자.”
팀장의 말에 오갱이 무전기를 들었다.
“경특대, 경기, 수신”
-경특대 정상
-경기하나 정상
-경기 둘 정상
-경기 넷 정상
“송팔, 택배 도착지로 송발, 수하나 송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