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수사망에서 포착하지 못했던 놈들이다.
이들은 인신매매나 약 거래를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천천히 범죄에 물들게 한다. 이게 범죄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작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양심이 허용하는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다.
“사장님 봬러 가는 겁니까?”
“아니, 니가 뭔데 사장님을 만나, 나중에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말통은 탑차 뒷문을 능숙하게 열어젖혔다. 안에는 맥주 박스가 꽉 들어차 있었다.
“이거 배달하면 된다. 운전 할 줄 알지?”
“예.”
“제가 하겠습니다!”
“좋네, 운전은 막내가 해야지.”
막내가 재빨리 운전석으로 향했고, 말통과 해수는 조수석에 탔다.
“주류업체가 아니라 우리가 넣습니까?”
“이새끼 금방 까먹었네, 첫째.”
“묻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그래, 우리도 가만히 있는데 돈 들어오는 거 아니다. 열심히 일해야 돈을 버는 거야, 옛날처럼 가오만 잡는다고 돈 안 들어와, 그렇게 편히 벌려는 새끼들은 다 도태되는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말통은 네비를 조작했고, 막내는 네비를 따라 운전했다.
“자, 여기는 여기까지, 열 박스, 아니 그거 말고, 딱 여기서 여기까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만 내린다. 섞이면 절대 안 돼.”
“똑같은 맥주인데 섞이면 왜 안 됩니까?”
이번에는 막내의 질문이다. 해수와는 달리 막내의 질문에 말통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내가 질문하지 말고 까라면 까랬지 씨발놈아, 내 말을 좆으로 들었어?”
“...죄송합니다.”
“내가 씨발... 어?”
척
그가 욕을 찰지게 내뱉은 김에 막내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해수가 손으로 탑차 뒷문을 닫으며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낮은 어조로 말했다.
“욕은 자제하시죠, 얘는 한 번 돌면 저도 못 말립니다.”
“뭐? 지금 나 협박하는 거냐?”
해수가 그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보호하는 겁니다.”
“허허 참...”
그의 위협적인 기운에 말통은 고개를 돌리며 허허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와씨 심장 떨리네, 해수 저거 왜케 줄타기를 잘 해.
-내 말이, 돌격아 우리 이러다 심장마비 걸리것다.
말통은 맥주박스를 가득 실은 구르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끌고 따라와.”
“예.”
말통은 거래처 사장들에게 해수와 막내를 꼬박꼬박 인사 시켰다.
“이번에 새로운 애들이에요. 얼굴 기억해두고,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말고.”
그렇게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한 노래방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장이 노래방 가장 끝에서 다른 중년인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노래방 안에 자욱하다.
“...이러다 손님 오는 줄도 모르겠네, 도박 적당히 하고, 얘들 얼굴 기억하고.”
말통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척하던 사장이 쳐다보지도 않고 해수에게 만 원짜리 하나를 던졌다.
“야, 담배 좀 사와.”
팔뚝에 만 원짜리를 맞은 해수는 순간 뇌가 정지되어 가만히 있었다.
-돌격이 담배 셔틀로 전락!
-참아라, 아직 아무것도 안 밝혀졌다.
해수가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야하나 사장 대가리를 바닥에 박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 이번에는 막내가 나섰다.
“제가 사오겠습니다! 어떤 담배 삽니까?”
사장은 미간을 좁히며 빈 담배각을 막내 얼굴에 던졌다.
“안 보여? 요즘 애새끼들은 눈치가 없네, 눈치가.”
해수는 고개를 돌려 말통을 힐끔 보았다. 저 멀리서 담배만 태우고 있다. 다 듣고 있지만 상관 안 하겠다는 자세,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겠다는 태도다.
슥
해수는 막내에게 돈을 빼앗아서 고이 찢었다.
찌이익 찌직
겨우 돈 만 원이라고 하지만 돈을 찢는 행위는 사람들을 주목시키기 충분했다. 해수는 건조한 눈으로 돈을 열 여섯 조각으로 찢으며 말했다.
“요즘 노래방 사장 새끼들은 목숨이 두 갠가...”
“뭐, 뭐? 너 미쳤냐?”
해수는 그에게 다가가 갈기갈기 찢은 돈을 그의 머리 위에 소금 치듯이 뿌렸다.
“이 돈처럼 되고 싶어? 우리가 댁 담배심부름이나 할 정도로 한가해 보여? 시발?”
위협적인 근육에 위협적인 인상을 지닌 자가 위협적인 말을 하니 주변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해수의 기운에 사장은 물론 같이 고스톱을 치는 사람도 겁을 먹고 그를 말렸다.
“어이 강사장 왜그려”
“이,이 새끼들이... 말실장! 애들 교육 어떻게 하는 거야?!”
그제야 말통이 다가와 건들거리며 말했다.
“교육은 니미, 딱 보면 가다 안 나오나? 이런 괴물들을 같잖은 기선제압하려는 강사장이 동태눈깔인 거지, 쇼하다 쳐맞으면 우리도 책임 안 져, 앞으로들 알아서 해, 가자.”
“허,참, 기선제압은 무슨...”
사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지만 정작 해수와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노래방을 나오고, 탑차에 올라타자 말통이 물었다.
“너 알고 있었지?”
“뭐가 말입니까?”
“모르는 척 하기는, 아무튼 잘 했어, 우리가 아쉬운 게 없거든, 지네가 아쉽지.”
신입 유통원이 들어오면 거래처 사장이 기선제압으로 조금 더 수월하게 거래를 하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아쉬운 게 없다라...’
-넘쳐나는 게 주류유통인데 아쉬운 게 없으면 하나지.
-약이네, 저기에 약이 있겠네.
오갱과 팀장이 해수의 속마음을 얘기해준다. 역시 형사들은 작은 것만 보고도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말통은 해수와 막내를 데리고 열 군데를 돌고 나서 다시 창고로 향했다.
“오늘 수고했어, 차 타, 사무실로 가자.”
“수고하셨습니다.”
그들은 검은 승용차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차가 4층짜리 낡은 건물 앞에서 섰다.
“앞으로 여기로 출근하면 돼, 일단 여기서 일하는 식구들하고 인사 좀 하자, 다들 모여 있을 거여.”
“예.”
3층으로 올라가자 두 개의 방을 불법으로 튼 것 같은 넓은 공간이 나왔다. 체력단련실처럼 바닥에 매트가 깔려있고 운동기구가 많았다.
그곳에는 하나같이 인상이 더러운 사내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식구다. 이름도 안 물어봤네, 이름이 뭐라고?”
“강수입니다.”
막내는 당황했다가 해수의 대답에 그도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해철입니다.”
대답과 동시에 둘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뭐야, 신입이었어?”
“몸 존나 좋네, 나 보자마자 쫄았잖아.”
“다른 데서 온 형님들인 줄 알았네.”
말통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피지컬만 좋은 거 아니니까 니네 괜히 까불지 마라, 선배랍시고 깝치다가 쳐맞으면 족보 꼬인다.”
“쟤네가 그렇게 잘 치나?”
“그러니까, 존심 상하네.”
말통의 말이 오히려 호승심을 돋웠다. 몇몇 몸 좋은 사내들이 덤벨을 내려놓고 가까이 다가왔다.
“얘는 모르겠고 얘는 잘 쳐, 혼자서 딸대기랑 부랄 두 명 가지고 놀았다.”
“딸대기는 개좁밥이고, 말통형이 이렇게 기 살려주면 처음부터 버릇 잘못 들어, 신고식이라도 빡세게 해줘야지.”
해병대 머리에 관자놀이 부분에는 긴 흉터가 있는 사내가 손가락 관절을 풀며 해수에게 다가왔다.
말통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 걸음 물러섰다.
“후, 니네 맘대로 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병대 머리 사내가 해수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오며 손을 뻗었고, 그에게도 두꺼운 손이 뻗어나갔다. 해수가 아니다. 그보다 더 두꺼운 손이다.
척-
“컥”
막내가 그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덕분에 그의 손은 해수에게 닿지 못했다.
후웅-
막내는 한 손으로 그를 번쩍 들어올렸다가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아앙!!
죽지 않게 등부터 내리찍었지만 그 충격이 어마어마하여 사내는 정지된 것처럼 숨도 쉬지 못했다.
“꺼어어억, 커헉 커헉 허억!”
사내는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충격에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막내는 또 다른 사내를 보며 물었다.
“신고식 더 필요합니까?”
사내는 최대한 착한 눈을 뜨고 손사레를 치며 뒷걸음질을 했다.
“어? 아,아니, 난 찬성, 든든한 막내들이 들어와서 너무 좋다. 좋아.”
말통은 놀라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막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쯤 하고 나와라, 점장님한테도 인사 해야지, 따라와.”
점장이 있는 사무실은 4층에 있다. 4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 말통이 막내에게 엄지를 추켜들었다.
“크... 한 놈이 물건이길래 한 놈은 짜바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베기가 따로 있었구만? 좋아.”
막내는 수줍게 웃었고, 그 사이 4층에 철문으로 된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말통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끼익-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런데, 입구에 점장이 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은 피떡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머리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말통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문을 열었으니 다시 닫을 수는 없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돌려보니 상석에 새하얀 바탕에 진청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데, 한 손에는 피가 잔뜩 묻은 재떨이를 들고 있었다.
탱그랑
그가 겁 먹은 말통의 얼굴을 보고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말통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해수와 막내는 얼떨결에 같이 허리를 숙였다.
“어이, 말통이 왔냐, 니도 이리 와 봐, 형이 긴히 물어볼 말이 있다.”
“예 사장님!”
자신이 모시던 상사가 걸레짝이 되었으니 말통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바짝 쫄아서 사장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 앉어봐.”
“옙!”
해수는 상체를 틀어 단추 카메라가 사장이라는 자에게 향하도록 조절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외관을 최대한 카메라에 담아 나중에 잡기 쉽다.
-조금 더 왼쪽으로, 약간 아래로, 응 그렇지 그렇지.
오갱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 위치를 조절하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사장 양쪽에는 덩치들이 기립해 있고, 점장 옆에는 바닥에 흘린 피와 이빨을 닦는 사내가 있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내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떴다.
해수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뭐야, 저새끼 표정 왜 저래? 붕어야?
‘시...팔.’
강진시가 넓고 이곳에 멀다고 해도 같은 지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하필 놈이 다잉나이트에서 마주쳤던 놈인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강쇠파 출신으로 기억한다.
이발도 하고 태닝도 했지만 워낙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여 놈이 해수를 한 번에 알아본 것이다.
해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은 그를 보았다. 그러자 눈을 희번덕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공손하게 모은 손에서 검지만 펴서 그를 가리키고는 손가락 마디를 까딱까딱 굽혔다.
‘너, 말하면, 허리를 반으로 접을 거야.’
사내는 턱을 덜덜 떨며 해수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금 3층까지 합한 전체 인원과 해수의 전투력 중에 누가 더 우세한지 가늠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