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억-!
아담한 발이 덩치의 얼굴을 야무지게 후려쳤다. 덩치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착지하여 자세를 잡은 조아라가 뒤돌아서며 발을 쭉 뻗었다.
퍽!
그녀의 발이 시원하게 뻗어 나가 덩치의 턱을 올려 찼다. 덩치는 비틀비틀 뒷걸음질을 치다가 쓰러졌다.
“야꾸야!!”
“뭐야 이년은!”
“야 잡아!”
갑자기 날아와 발길질을 해대는 조아라의 등장에 조폭들이 난리가 났다. 그들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네다섯 명이 조아라를 둘러쌌다.
“내 딸 건드리지 마! 이놈들아!”
조아라가 반격을 할 새도 없이 청장이 튀어와 그녀를 꽉 안고 막아섰다.
“안 비켜 이 늙은아!!”
퍼벅 퍽!
그들은 무자비하게 청장의 등을 발로 차고 밀었다.
“커헉!”
“아빠!”
그 시끄러운 소란에 밖에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던 형사 중 한 명이 돌아섰다가, 검은 무리에게 뭇매를 맞고 있는 청장을 발견했다.
형사들은 일제히 담배를 집어 던지며 다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화장실을 갔던 형사들도 도착했다.
“팀장님!”
“청장님!!”
“야이 개새끼들아!!”
형사들, 특히나 조아라 팀의 형사들은 거품을 물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나타나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을 보고 조폭들이 당황했다.
“뭐? 청장? 팀장?!”
“뭐야! 이 새끼들 작업 치는 거였어? 어디 새끼들이야!”
“경찰청파다 이 새끼야!”
퍽 퍽!
식당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몇몇 손님들은 화장실이나 밖으로 도망치고, 주인은 카운터 아래에 숨어 112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 경찰서죠! 여기 빨리 와주세요! 조폭들끼리 싸움났어요! 스무 명은 돼요!”
수가 열세인데다가 가게 안이기에 그들을 끌고 나오느라 오갱이나 형사들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 사이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오는 해수와 막내가 그 모습을 발견했다.
“앞에 싸움이 크게 났나 봅니다.”
“그러게, 저 사람은 오갱 형님 닮았네.”
“저 사람은 팀장님을 닮... 헙”
해수와 막내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우득 우득 우드득-
“선배님표 관절기다 이것들아!!”
“끄아악!”
둘이 합류하자 장내는 금세 정리가 되었다. 놈들은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가 무섭게 해수와 막내가 팔을 꺾어 무력화시켰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덩치 큰 사내들 스무 명이 있으니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했다. 게다가 비명까지 들리니 가까이 오지 않고 뒷걸음질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워크숍을 왔어도 뼛속부터 형사는 형사라고, 다들 수갑은 없어도 품에 케이블타이는 가지고 있어 그들의 손목을 묶었다.
마지막 열 번째 놈의 손목을 묶을 때쯤, 경찰차 세 대가 동시에 도착했다.
“소,손 들어!”
“모두 멈추세요! 멈춰요!”
경찰들은 여섯 명, 덩치도 크고 수도 많은 그들을 보자 지레 겁을 먹고 테이저건을 꺼내어 들었다.
해수와 막내, 그리고 형사들은 허허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이거 참, 신선하구만.”
청장은 안에 가게 주인에게 명함을 주며 손해배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찰들은 나머지 한 무리가 손목이 뒤로 가게 하여 케이블타이로 묶여있자 이상함을 느끼며 형사들을 보았다.
“그, 혹시...”
팀장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저기 로이스 호텔에서 왔습니다.”
로이스 호텔에서 강력버미죄수사대 전국 워크숍이 있다는 것은 관할 경찰들에게 이미 전달된 사항이었다.
“아, 네, 역시 그러셨군요. 음... 일단 그래도 서로 다들 이동하셔야겠습니다.”
“그럼 그럼, 원칙대로 해야죠, 갑시다.”
순마는 자리가 없어서 형사들은 신분증까지 보여주고 나서 자차를 타고 관할 경찰서로 이동했다.
출동했던 경찰들이 아닌 강력계 형사들은 덩치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혀를 쯧쯧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것들아,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술집에서 쌈을 벌여 쌈을... 헙? 이 여성분도?”
“저 여자가 먼저 내 얼굴 깠습니다!!”
“조용히 해라, 지금 또 까이고 싶지 않으면.”
“어어 그만 그만, 다들 앉으세요 앉아, 이 분도...?”
“허허, 그렇게 됐어요. 얼른 시작합시다.”
“네... 뭐, 일단, 이름이랑 주민번호부터...”
청장은 담담하게 알려주었고, 신원조회를 한 형사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추,충성!!”
“예, 수고가 많습니다.”
형사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 다른 형사들이 다가와 신원조회 화면을 확인했고, 현직 충남경찰청장이라는 직업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충성!”
순식간에 경찰서는 난리가 났다. 경찰청장에 경기 강력반에 충남 강수대가 단체로 한 경찰서에 왔다.
형사 한 명은 다급히 밖으로 나가고 몇 명은 제일 좋은 의자를 끌어와 청장에게 권했다.
“여기, 여기 앉으십시오 청장님.”
“아이고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안 그래도 부끄러운 일이구만.”
“부끄럽다니요! 쉬시는 중에도 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폭력배들을 잡으시지 않았습니까?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하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지.”
이어서 서장이 헐레벌떡 내려와 청장에게 인사를 했다. 같은 지방청은 아니지만, 서장은 깍듯이 대했다.
“아이고 청장님, 이렇게 누추한 곳에, 애들아 물 물! 아니 차 좀 갖다 드려!”
“에이 됐어요. 괜찮아요 괜찮아, 아니, 우리 딸랑구나 좀 줘요.”
“딸랑구? 따님도 계십니까? 아 이분께서! 엄청난 미인이십니다!”
“아 아빠 부끄럽게... 경기 북부 강력1팀 팀장 조아라입니다.”
“여성 강력팀장이라니요! 이렇게 멋진 분이 있을 수가 있나!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한바탕 공치사가 지나가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왜 우리만 묶여있어! 쟤네가 훨씬 많이 때렸다고! 내 팔 봐! 덜렁거려!”
거의 다 끝날 때쯤, 눈치가 더럽게 없는 무개념 돼지 하나가 상황파악 못 하고 시끄럽게 떠든다.
해수는 나가는 길에 발끝을 틀어 그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턱을 단단히 붙잡았다.
“야.”
해수와 가까이서 눈을 마주하자 위압적인 기운에 돼지가 시선을 피했다. 불과 몇 분 전에 그에게 팔이 꺾인 기억이 재생되며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네.”
“살살 한 거야, 나랑 현장에서 만나면 지금 말 못한다.”
“죄,죄송합니다.”
“그리고, 니네는 쌍방이 아니라 공무집행방해죄다. 그러게 상대를 봐가면서 까불었어야지.”
“죄송합니다...”
“잘 해, 내 눈에 띄지 말고.”
“알겠습니다.”
해수는 고분고분한 모습에 뒤돌아섰다. 해수가 멀어지자 그제야 돼지는 숨을 내쉬었다.
“으씨, 무슨 형사가 저렇게 살벌해.”
***
다사다난했던 일주일간의 워크숍이 끝이 났다. 강수대는 조아라의 팀원들과 뜨겁게 인사를 나누었다.
“크흑”
“반가웠습니다. 형제여!”
“언제 한 번 합동수사 합시다.”
“나중에 또 뵙시다. 강수대!”
사회에 나와서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형사들은 서로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마쳤다.
*
신해수가 강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대성병원 여성 입원실이었다.
창문가에 젊은 여성이 침상에 누워서 발을 구르고 있다. 허공 자전거 운동이다.
“잘 지내고 있네.”
해수의 목소리에 하루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해수와 눈을 마주하고는 입술을 삐죽삐죽 움직였다. 정작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 나도 반갑다.”
해수는 그녀의 눈빛을 읽고 대답하며 종이백을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그냥, 샀어.”
하루는 재빨리 종이백 안에 있는 것을 꺼내어 보았다. 해수가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서 산 옷이다. 회색 정장 투피스에 셔츠도 있다.
특수 방검복 제작 때 사이즈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 도움되었다.
촤라락 촤라락-
하루는 바로 커튼을 치고는 입어보려고 했다.
“아니, 음”
그녀가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복을 벗다가 손을 멈추고, 해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해수는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커튼 뒤로 나갔다.
본래는 해수가 먼저 멈추라고 나간다고 할 텐데, 이제는 먼저 눈치를 줄 줄도 안다.
슥슥 스윽-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커튼이 쳐졌다.
골반이 도드라지는 스커트, 허리라인이 살아나는 셔츠, 마이는 아직 입지 않았다. 그녀는 입에 머리끈을 물고 머리칼을 뒤로 모아서 하나로 깔끔하게 묶으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해수는 하루를 멍하니 바라보며 당장에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확실히 옷 태가 남다르다. 무엇을 입어도 200프로로 소화한다.
탄식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와...”
“언니 진짜 예쁘다...”
하루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해수를 보았다. 마치 대답을 강요하듯이.
해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잘 맞네, 환불은 안 해도 되겠어.”
“다행입니다.”
“이제 벗어, 집에 갖다놓게.”
해수의 말에 하루가 두 손을 교차시켜 자신의 몸을 감싸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싫습니다. 퇴원할 때 이거 입고 갈 겁니다.”
“...그래.”
***
일상으로 돌아왔다. 강수대 대원들은 다들 워크숍 후유증으로 인해 마음이 괴롭다.
팀장이 나무젓가락을 들고 허공에 원을 그리며 중얼거린다.
“수영장, 룸서비스, 죽이는 뷰...”
막내가 양손에 덤벨을 들고 스쿼트를 하며 말했따.
“저는 아침운동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아침 운동할 때 같이 달리는 나이스한 걸들이 기억에 남겠지.”
“덕분에 운동력이 배가 되었습니다.”
“튕기지 마! 징그러!”
정말로 워크숍에 다녀오니 막내의 근육이 조금 더 커졌다. 흉근이 통통 튄다.
“어 해수 왔냐?”
“예.”
막내가 덤벨을 바닥에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래, 일 해.”
“쟤는 팀장 형님 왔을 때도 안 저러더니, 하여튼, 마음속에 주군이야 주군.”
해수는 피식 웃고는 아직도 동태눈깔을 한 팀장을 보며 말했다.
“다들 마음이 싱숭생숭하신가 봅니다.”
“그렇지 뭐, 캬, 얼마나 좋았냐? 먹고, 놀고, 눈호강하고... 이러다가 사-”
텁
오갱은 무의식적으로 말을 하다가 의식하고 입을 막았다. 가방을 내려놓던 해수도, 덤벨을 다시 들던 막내도, 젓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팀장의 움직임도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멈추었다.
동시에.
띠리리리 띠리리리
내선 전화가 울렸다. 실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팀장은 벌떡 일어나 젓가락을 오갱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저 주둥이를 사형에 처하라!”
그러고는 전화를 받았다.
“강수대입니다. 예, 아 네 서장님! 네? 지금요? 네 알겠습니다.”
팀원들은 서장이라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그때 전화를 끊은 팀장이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서장님이 오란다. 우리 전부”
*
강진서 서장실.
네 명의 강수대 대원들이 뒷짐을 지고 나란히 서 있다.
“이야, 이렇게 쭉 세워두니까 진짜 무섭긴 무섭네요. 그쵸? 이름도 쎄, 강수대, 뭔가 강력하잖아요?”
“하,하,하.”
빨리 본론이나 꺼내라는 말이다. 팀장의 반응에 서장은 알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쭉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요리 잘 하는 사람?”
“네?”
“갑자기 요리는 왜...”
막내가 손을 들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는 합니다.”
“그래요? 잘 됐네, 포장마차 하나 차립니다. 넷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