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92화 (92/255)

팀장의 말에 오갱이 그의 입을 다급히 막았다.

“우리 팀장님 너무 겸손하시네, 누가 보면 강수대 팀장은 당구쳐서 단 줄 알겠네.”

김영준은 그들의 만담 따위는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지금 몇 번을 쳤는지 새느라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아이쿠 미끄러졌네.”

한 번에 가락구까지 합하여 8점을 뺐을 때, 팀장이 공을 빗겨치며 실수인 척 차례를 상대편에게 넘겼다.

그런데 공 위치가 아주 최악이다.

“이,일부러...”

“내가 이런 것도 일부러 하면 프로게? 당구선수하지 경찰을 왜 해.”

상대편은 자신만만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결국 1점도 빼지 못하고 오갱의 차례가 되었다.

막내는 팀장에게 바짝 붙어 물었다.

“팀장님은 당구를 왜 이렇게 잘 치십니까?”

팀장은 큣대를 발가락에 끼우고 이리저리 돌리며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어, 우리 집이 당구장이었어, 우리 집에서는 내가 제일 못 쳐.”

“헐...”

다시 팀장 차례가 되었고, 팀장은 숫제 묘기당구를 치며 상대방을 농락했다.

그렇게 세 번째 팀장의 차례가 되었을 때 게임이 끝났다. 김영준 팀의 완패다. 영준은 끝나자마자 발악했다.

“이건 사기야! 어딜 경찰 앞에서 사기를 쳐?!”

“하 이 새끼... 추하게 나오네, 말해봐, 뭐가 사긴데?”

영준은 오갱의 당당한 모습에 우물쭈물하다가 팀장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저,저 사람 선수 출신이잖아! 강력반 팀장이 당구를 이렇게 치는 게 말이 돼?”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팀장이 품을 뒤적거렸다.

“아 지갑도 놓고 왔네, 근데 저기 김영준 경감? 경정인가?”

영준은 대답도 하지 않고 복잡미묘한 눈으로 팀장을 보았다. 팀장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선수인지 경찰인지는 경찰인 당신이 게임 시작 전에 확인했어야지, 명색이 경찰인데, 안 그래?”

그때 마침 막내가 팀장에게 지갑을 건넸다.

“아까 저한테 맡기셨습니다.”

“어 그래, 자, 이제 됐나? 아니면 청장님도 이 호텔에 계신데 가서 확인할까?”

영준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피했다.

“...아닙니다.”

오갱이 천천히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난 마누라 걸게 했으니까 니도 약속은 지켜야지?”

“강석아, 그게, 아니, 내가 잘못했다. 맞아, 니 말대로 나 깊게 어울리는 친구도 없고, 재수 없게 말해, 나 잘난 체 하는 맛에 살잖아, 미안하다.”

“진짜 내기 하나에 별의별 꼴 다 나오네, 이런 모습 봤어요?”

오갱이 영준의 뒤에 있는 팀원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자신의 팀장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 말 그대로 내기잖아 내기, 놀이, 놀이로 무슨 사람 인생을 거냐? 그것도 경찰이, 그치? 농담이었잖아, 나도 농담이었어.”

“그 주둥이 그만 다물고, 그럼 이렇게 하자, 싸대기 딱 한 대만 맞자, 뒤끝 없이, 어때?”

영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금세 비굴모드가 되어 말했다.

“싸대기? 근데 여기서는 좀...”

“그럼 여기 당구장 화장실에서.”

“그래, 알았다. 고맙다 친구야, 내 편의 봐줘서, 내가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영준은 직업을 걸었다가 따귀 한 대로 바뀌자 그 정도야 얼마든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이, 아 근데 나 말고, 어이 구경꾼 둘 중에 누가 할래?”

오갱의 말에 해수와 막내가 동시에 손을 번쩍 들었다. 둘은 눈이 마주치더니 자연스레 두 손을 맞잡았다.

“선배님 이번 건 저한테 양보해주시죠.”

“그럴 순 없지, 어떤 기횐데.”

뿌드드득-

악력을 겨루는 둘의 얼굴이 빨개졌고, 결국 막내가 항복했다.

그렇게 해수와 영준, 그리고 오갱이 당구장 화장실로 이동했다. 오갱은 나중에 딴 말이 나오지 않게 카메라맨 역할이다.

남자 화장실 안에서 해수와 영준이 마주 섰다. 영준은 당구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맛보았던 해수의 압도적인 기운에 몸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하겠습니다. 치아 빠지지 않게 어금니 꽉 무시고, 움직이면 고막 나갑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싸대기 하나가지고 뭘 그렇게... 으음”

영준은 해수의 말대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동시에 해수의 손이 움직였다. 허리도 틀지 않고, 어깨도 뒤로 넘기지 않는 가벼운 한 방이었다.

처얼썩-!

영준은 덤프트럭이 사이드미러로 얼굴을 치고 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볼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의식을 잃었다.

오갱은 기절한 영준을 그의 팀원에게 넘기며 당구장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김영준은 그날 이후로도 호텔 내에서 오갱과 마주칠 일이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피했다.

“어휴 속 시원하다. 새끼, 그렇게 잘난체를 하더니.”

해수는 재빨리 사라지는 영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말했다.

“형사 가족 넘보는 사람은 찢어 죽여도 됩니다.”

“알았어 알았어, 나도 알아, 그렇게 인상 쓰면서 그런 말 하지 마, 사람들 피하잖아.”

*

다음날 아침.

오갱과 팀장은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 있고, 해수와 막내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꼭대기층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났다.

“역시 선배님 여기 계실 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이런 뷰를 보며 운동할 수 있는 건 남자의 로망이지.”

“맞습니다. 일주일밖에 안 되는데 하루도 거를 수 없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

해수와 막내는 간단하게 런닝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일곱 시도 안 되었건만 젊은 여성들이 벌써 런닝머신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긴 머리를 하나로 깔끔하게 묶고, 레깅스에 탱크탑을 입고 있다.

그 모습에 여간해선 여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막내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런 복장으로 운동하는 여성들은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음, 역시 서울은 열정이 넘치는 곳이다. 질 수 없지.”

해수와 막내는 그녀들 사이에 껴서 천천히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0분이 넘어서는 둘 다 경쟁하듯이 단계를 올리다가 12단계로 달렸다.

쿵 쾅 쿵 쾅 쿵 쾅!

“뭐,뭐야, 무서워”

덩치도 크고 무섭게 생긴 사내 둘이 무섭게 쿵쾅거리자 그 사이에 있던 여성 둘은 공포를 느끼며 자리를 피했다.

“전망도 좋고 눈이 호강하니 운동력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한계를 뚫어야지, 20 더!”

“알겠습니다!”

험악한 인상에 험악한 근육을 지닌 둘의 열기에 사람들은 주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

아침운동을 간단하게 끝내고, 호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저녁때가 되었다.

팀장이 소파에 누워 배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여기 밥이 참 잘 나오거든? 고급지게? 근데 이상하게 삼겹살이 땡기네, 나는 체질이 그런가 봐.”

팀장의 말에 오갱이 동조했다.

“나도,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게, 여기는 없던데.”

팀장이 당장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하여튼 사람은 먹고 살던 걸 먹어야 해, 뭐해? 니네도 준비 해.”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에 호텔을 나와 근처 삼겹살 가게를 찾아다녔다.

한 곳을 발견하여 들어갔는데 조아라와 강력팀이 이미 와 있었다. 그들 사이에 등산복을 입어 정말 동네 아저씨 같은 청장도 끼어 있다. 청장이 꽤 신이 난 듯 보였다.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

“아빠, 아빠 제발, 빨리 마셔 임마 너는! 아빠 어깨춤 그만 좀 추게!”

“마시겠습니다. 장인어른!”

덩치 큰 팀원이 술을 마시기 직전, 청장이 번개같이 손을 뻗어 그의 팔목을 잡았다. 싸늘한 기운이 풍긴다.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죄, 죄송합니다! 취소하겠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렇지? 그럼, 청년 당근 원샷이겠-”

신나게 음을 넣던 청장이 찰나 얼어붙었다. 지금 막 들어오는 강수대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는 금세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우리 충남의 강력사건을 책임지는 강수대 왔는가?”

“예 청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그래, 아 잘 왔네, 합석 어때? 괜찮지?”

“아 괜찮습니다!”

“네 오세요.”

금세 테이블이 붙고 아홉 명이 둘러앉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직업과 같은 고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그러나 막내는 산적 같은 외모와는 달리 낯을 가렸다. 조아라팀은 그를 보고 무서워했다.

“저분은 왜 인상 쓰고 계시냐, 무섭게”

“우리가 마음에 안 드나...”

“몸도 위협적인데 인상도 위협적이네.”

상대적으로 금세 친해진 오갱이 그들의 말에 막내를 확 끌고 오며 소개했다.

“아 얘! 우리 귀염둥이 막내! 지금 낯가리는 거에요. 부끄럼을 좀 타요. 아유 귀여워.”

오갱이 막내의 볼을 마구 꼬집었다. 막내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죄송합니다 선배님들! 낯을 좀 가립니다.”

“어어, 불판도 씹어먹으실 것 같은 낯인데 낯을 가리시는구나.”

“형, 사람 얼굴로 놀리는 거 아니야, 그런 말 내뱉기 전에 거울 한 번 보고 와.”

“팀장이 더 나빠, 흑.”

그러나 낯가림도 잠시, 다들 이야기 주제가 비슷하자 막내는 금세 적응하여 나중에 해수에 관한 무용담을 늘여놓느라 신이 났다.

“...그래서 선배님이 그놈을 천장에 쾅!!”

“꼭 본 것처럼 말한다.”

“현장을, 현장을 봤습니다. 하하”

막내는 입만 열면 해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조아라 팀원들은 해수와 막내가 범죄자를 대하는 가치관을 듣고는 손뼉을 치며 동조했다.

“그러니까! 이건 뭐 범죄자를 잡으라는 건지, 범죄자님을 모셔오라는 건지 진짜, 그래서 현장에 가면 주춤대는 경찰들이 많은 거에요. 신형사님 진짜 멋지시네.”

“맞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과잉진압으로 징계도 많이 먹고 합의금 주느라고 빚에 시달렸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껏 진압해도 징계를 잘 먹지 않습니다. 위에서 막아줍니다.”

해수의 눈짓이 팀장에게 한 번 머물렀다가 청장에게 멈추어 섰다. 그 모습에 조아라가 팔꿈치로 청장을 툭툭 치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오~ 아빠 쫌 멋있는데?”

“허허, 참,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이전부터 저기 서장이랑 팀장이 잘 하고 있더라고, 나는 거기에 숟가락만 얹었지, 숟가락.”

청장도 이 자리에 있겠다. 형사들은 다시 범죄자를 잡을 때의 고충을 가감 없이 토로했다.

“...인터넷에서 이래서 진짜 요즘 경찰 공권력이 바닥입니다 바닥! 경찰을 진짜 호구 취급한다니까요?”

쾅!

그때 조아라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니까 열받네? 그때 그 변태 새끼를 고자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아니 그건 쫌...”

해수는 조아라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아라가 욱하면 팀원들이 말리는 저 조합이 이상하게 웃기면서 보기 좋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해수가 일어났다.

“아이스크림 좀 사오겠습니다.”

“어 저는 꽈배기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선배님!”

“아 나도 화장실 좀.”

“같이 가!”

담배를 피우는 형사들은 서로 눈빛을 마주하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쉬는 시간이 되었고, 나중에는 배려를 위해 빠지다 보니 청장과 조아라 둘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아빠 나도 화장실, 잠깐만 있어.”

“어? 음...”

조아라는 그런 건 몰랐다. 그렇게 청장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허허, 참, 어색하구만.”

청장이 어색함을 참으며 휴대폰을 들어 셀카를 찍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문이 거칠게 열리며 험악한 인상에 문신이 여기저기 그려진 무리가 들어왔다. 얼핏 보아도 열 명은 되어 보였다.

그들의 등장에 가게가 꽉 차 있었는데도 순간 적막해졌다. 다들 시선을 피하기 바쁘다.

“캬악- 퉤! 아이 씨벌 여덟 시가 넘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자리가 없네.”

“자리가 없으면 만들면 되지.”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커다란 흉터가 있는 사내가 건들거리며 셀카를 찍고 있는 청장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빈 의자를 툭툭 치며 짐짓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어이, 어이, 아저씨! 다 처먹었으면 빨리 꺼져야지 뭔 사진을 찍고 지랄이여? 나이도 처먹을 대로 처먹은 것이.”

“음? 허허, 젊은이, 내 기회를 줄 테니까 셋 셀 때까지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뭐? 하, 이 늙은이가 노망이 들었나? 여기서 혓바닥 뽑히고 싶어?”

사내가 청장의 멱살을 잡고 두꺼운 손을 추켜올렸다. 청장은 흔들림 없이 손가락 세 개를 펴고 하나씩 접었다.

“...셋.”

그와 동시에 사내의 관자놀이로 240사이즈의 발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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