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이 못 본 척 수영장을 지나가려는데, 한참 팀원을 물에 처박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아빠!”
지금 행동과는 상반되게 해맑은 목소리에 청장이 몸을 휙 돌리며 우디르 급 태세전환을 했다.
“어? 어 우리 딸랑구 거기 있었네? 수영하고 있었니?”
“아니, 이 새끼가 내가 작다고 수영복 입을 필요 없다고 지랄을 해서, 덜렁거리면 방해돼서 압박한 줄도 모르고, 이 새끼야, 내가 어? 풀면 어마어마해, 알아? 아무튼, 아빠는 여기 왜 왔어?”
“그렇구나, 이리 데리고 와, 더 밟아야겠구나.”
청장의 딸은 팀원을 풀어주고 청장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아빠 여기 왜 왔냐고? 아빠도 초대받았어?”
“아니, 우리 딸랑구 보려고 맞춰서 하계휴가 썼지, 바빠서 보기도 힘들잖아.”
“아빠도 참, 그럼 미리 얘기하지 증말”
그녀는 수영장 밖으로 나와 옷이 다 젖은 상태로 청장에게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에 뒤에 수영장에 빠진 팀원들이 처음 보는 팀장의 애교에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우리 팀장 맞냐?”
“아닌 것 같습니다.”
“저분은 충남청장님 아니시냐? 청장님이 팀장님 아빠인 거 알았냐?”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팀장님 애교 정말 어메이징하다.”
“귀여운 것 같습니다.”
“뭐? 정신차려 이 자식아! 너 방금 팀장한테 돌려차기 맞았어!”
“업계 포상... 컥컥”
다른 팀원들이 그를 다시 물 안에 집어넣으며 입을 막았다.
청장은 뒤늦게 자기 딸인 것을 알았다는 듯이 돌아서서 강수대에게 소개했다.
“어, 그, 내 딸랑구, 강수대는 아니고 경기 강력2팀 조아라 팀장”
“1팀”
“알아 알아, 장난친 거지, 1팀, 딸랑구, 이쪽은 충남 강수대.”
“안녕하세요.”
그녀는 한 마디로 다람쥐를 닮았다. 볼살이 있고 눈은 크고 동그란 것이 귀염상인데, 눈매와 눈빛은 형사답게 날카로웠다. 오묘한 조화다. 언밸런스하지만 그래서 오묘한 매력을 뿜어냈다.
“아이고 청장님께 이런 멋진 따님이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강수대 팀장 곽수철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경기 북부서 강력1팀 팀장 조아라입니다.”
청장은 한 걸음 나서며 신해수를 친히 가리키며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 딸랑구 깐 신해수 경사”
“아빠 나 남자 관심 없다니까...만, 튼튼하게는 생기셨네.”
뒤끝있는 청장의 소개에 어느새 수영장에서 나온 그녀의 팀원들이 바짝 붙었다.
“누가 북부서의 아이돌 조팀장님을 깠다는 겁니까?!”
“누굽니까! 그 용자가!”
“아 진짜 그 입입, 형 쟤들 입 좀 막아, 쪽팔리게.”
귀하디 귀한 강력팀 여자팀장인데 젊고 귀여운 외모에다가 형이라 부르는 털털함까지 지니니 강력팀에서 팀장을 좋아하고 아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특이한 팀입니다.”
“그러게, 좋아 보이네, 우리 놈들은 팀장을 내놓고 다니는데.”
청장은 허허 웃으며 팀원들을 조팀장에게서 떨어트렸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다가 강력팀과 헤어지고, 그날 저녁에 호텔 내 소강당에서 프로파일러이자 범죄심리학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열심히 듣는다던 오갱은 막내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졸았다.
“형님, 끝났습니다.”
“스룹, 어, 어, 그래, 좋은 강의였다.”
길목이 좁아 다른 형사들이 나갈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있는 사이.
“아씨”
오갱이 돌연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가렸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가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오강석?”
오갱은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켜며 그와 마주했다.
“어, 그래, 영준이.”
“여기서 어떻게 보냐, 미영씨는 잘 지내?”
“뭐, 그렇지.”
남자가 뒤돌아서 자신의 일행에게 설명했다.
“얘가 내 대학 동긴데, 신기하게 우리 과 퀸카랑 만나서 결혼했거든, 동기들이 진짜 다 부러워했는데... 어디 있어?”
“하하, 나 충남 강수대에 있지.”
“아... 충남도 이번에 새로 생겼다고 했지, 팀장?”
“팀원.”
“아 그렇겠네, 너도 참 대단하다. 아직도 현장을 뛰고 있고, 설렁설렁해, 우리 나이에 현장 뛰다가 다치면 뼈도 잘 안 붙는다. 그럼 네가 아니라 미영씨가 고생하는 거야.”
“그래.”
“난 저기, 서울청에 있어,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가 명함을 건네주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계 팀장 김영준]
“그래, 가라.”
“어 뭐, 그래, 하하, 간다.”
그가 위로하듯이 오갱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오갱의 뒤에서 해수와 막내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누굽니까, 저 오랑우탄은?”
“탈모도 있습니다.”
오갱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했다.
“어, 나랑 같은 경행과 대학동기, 같이 공부했는데 저새끼는 간부 붙고 나는 포기하고 다음 해에 순경 시험 봤지, 여전히 재수 없네.”
“오갱 형님이 더 무섭게 생겼습니다.”
“칭찬인 거 같은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네.”
팀장이 그 남자처럼 오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갱아, 힘내라, 뼈 안 붙으면 휴가 더 줄게, 넌 현장 체질이야.”
“젠장, 정말 그만둬야 하나.”
오갱은 씁쓸한 얼굴로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컵라면에 즉석밥에 김치로 씁쓸함을 달래고 팀원들 모두 뒹굴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무료함을 즐겼다.
그때, 소파에서 뒹굴던 오갱이 말했다.
“아래층에 당구장 있던데, 갈래?”
“당구 말씀이십니까? ”
“당구도 수사에 중요해, 각을 잘 봐야 하거든, 안 그렇습니까?”
오갱의 말에 눈을 감고 티비를 보던 팀장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맞아.”
“갑시다아~”
강수대 팀원들이 당구장으로 가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건 이렇게 잡고, 이게 안 돼?”
“팔이 그 각도로 안 접힙니다.”
“어? 진짜네, 야 운동 좀 그만 해 임마! 이게 안 접히면 어떡해? 일상생활 가능해?”
“응가 닦는건 좀 힘듭니다.”
해수는 빈 당구대에서 오갱이 막내를 가르쳐주는 모습을 힐끔힐끔 보며 자세를 고쳐잡고 있다.
톡 톡 삑-
큣대로 쵸크를 치다가 빗겨 맞았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본 오갱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 괜히 당구 치자고 했나 봐, 얘네 언제 가르치지? 오늘 칠 수 있어?”
오갱의 말에도 팀장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저 당구에 관심이 없는 듯 긴 의자에 누워 TV를 시청했다.
그때, 당구장 문이 열리며 멀건한 얼굴의 무리가 들어왔다. 김영준과 서울청 경찰들이다.
“어, 뭐야, 강석이 아니야? 강력반도 당구를 칠 줄 아나? 범인만 잘 치는 거 아니었어?”
“이참에 배워보는 거지.”
“어 그래, 좋지, 배우는 거, 그래, 열심히 배워봐, 폼 봐라, 큣대 부수겠다.”
영준이 막내를 보며 이죽거렸다. 그의 말에 뒤에 사람들이 킥킥거린다.
오갱이 큣대를 내리고 그 무리를 바라보았다. 이마에 한 줄기 힘줄이 튀어나와있다.
“영준아.”
“왜?”
“넌 참, 대학교 때부터 말하는 게 재수가 없었어, 니 주변에 깊은 관계인 사람 있냐?”
“뭐 임마?”
“없지? 지금 니 뒤에 동료들도 겉으로는 같이 킥킥거려도 뒤돌아서면 니 씹을 거야.”
오갱의 말에 영준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동료들을 보았다. 그들이 눈을 피한다.
“뭐라고 했냐? 정신 나갔어?”
“머리 들이밀지 마, 니 말대로 우리 강력반이다. 잘 쳐, 범죄자 아가리도 잘 치는데, 재수없는 놈 아가리도 잘 찢어놔.”
영준이 오갱 뒤에 덩치 두 명을 힐끔 보며 차마 덤비지는 못하고 허리춤에 손을 얹고 턱을 들었다.
“하, 참,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어디 계급도 낮은 하빠리 새끼가...”
“덤비지는 못하겠고, 주둥이만 더럽게 터는구나, 됐고, 내기 당구나 한 번 할까?”
“이 와중에 내기? 하, 한 번 씨부려봐, 뭐 내기.”
“우리가 이기면, 니 경찰 그만 둬라, 쫄리면 받지 말고.”
“뭐? 어 그래그래! 시발 내가 지면 경찰 관둔다 관둬! 대신, 내가 이기면, 니는 미영이랑 이혼해라, 내가 들이대게, 알았냐?”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오갱의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콱
해수다. 그가 한 손으로 영준의 멱살을 잡고 벽 끝까지 밀어붙이고는 천천히 들어 올렸다. 영준은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기운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컥, 컥, 커”
“형사 가족 건드리면 찢어죽여도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아, 아니, 커...”
그때, 오갱이 다가와 해수의 어깨를 툭 툭 쳤다.
“놔줘, 그래, 그러자, 경찰 관둔다는데 그 정도는 걸어야지, 너는 사퇴, 나는 이혼, 대신 약속 안 지키면 뒤지게 맞아도 아무 책임 없는거다.”
“켁,케, 누가 강력반 아니랄까 봐 무식해가지고... 콜, 딴 말 하기 없다.”
밖으로 새나가면 경찰 망신을 줄만 한 말도 안 되는 내기가 성사됐다.
2대2로 종목은 삼구였다. 가위바위보를 이겨 오갱이 먼저 했다.
내기 조건이 만 원 이만 원도 아니고 인생을 뒤흔들만한 것들이다. 큣대를 쥐고 있는 오갱의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삑-
“큽”
“푸흡”
오갱의 큐 끝이 공을 빗겨 쳤다. 처음부터 실수다. 비웃음이 난발한다.
“어휴, 역시 쟤는 패기만 넘치고 대가리가 모자라, 그러니까 아직도 저렇게 현장에서 개고생 하지, 쯧쯧”
오갱은 자신이 한 행동이 있어서인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제 영준의 차례, 그는 자신만만해했던 만큼 꽤 좋은 실력을 지녔다. 첫 타에 3점이나 뺐다.
“아깝네, 바로 압살시키는 건데.”
다음은 강수대의 팀장이다. 그는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해수는 걱정되어 자신이 한다고 했지만 오갱이 극구 말렸다.
“형님, 형님 칠 차례야.”
“후릅, 응? 나? 어어 그래.”
팀장이 아무거나 큣대를 집어 공으로 다가가 칠 자세를 잡았다.
“그거 말고 노란 공.”
“풉”
영준은 생사가 걸린 내기에 자기 편의 공도 구분하지 못하니 승리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아 미안 미안, 이거 치면 되는구만.”
게다가 지금 치려는 방향도 이상한 각이다. 영준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팀장은 세상 권태로운 표정으로 큣대를 움직였다.
텅-
그때, 큐 끝이 공을 때리며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고수는 큐가 공에 닿는 소리부터 다르다. 영준은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퉁 퉁 퉁 토독
처음부터 빈 쿠션을 때리더니 영준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서 쓰리쿠션을 치고 공 두 개를 맞혔다. 게다가 공 두 개가 천천히 굴러가 서로 가까이 붙었다.
영준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기선제압이다. 자주 연습한 묘기로 기를 죽이려는 거다. 그걸 감안해도 꽤 치는 고수이기는 하네.’
그래도 같이 온 팀원이 영준보다 잘 치기에 아직은 여유로웠다.
그런데.
퉁 퉁 퉁 토독
무슨 혼자 치러 온 것처럼 큣대를 놓지 않는다. 영준과 팀원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해수와 막내 역시 칠 줄 몰라도 대충 봐도 어마어마한 실력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오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내 마누라까지 걸었겠냐? 확신이 있어서 그렇지, 우리가 절대 지지 않는다는 확신.”
“당신입니다 당신! 저번에 섯다도 그렇고, 당구까지, 팀장님은 도대체 못하는 게 뭡니까?”
당구를 치면서 귀는 열려있던 팀장이 허리를 펴고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