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슥 삭삭
스카이 라운지.
한 중년인이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창문 가에 앉아 스테이크를 칼로 썰고 있다.
꽤 넓은 고급 식당에 점심시간이었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질기네.”
그의 말에 뒤에 기립해 있던 덩치 큰 사내가 입을 열었다.
“요리사를 교체하겠습니다.”
“아니야, 늙으면 원래 다 질긴 법이야, 내가 문제지, 요리사가 문젠가?”
“네.”
사내의 대답에 중년인이 칼질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마실장은 참 담백해, 쓸데없는 아부 없이, 그래서 가끔 기분이 나빠.”
“죄송합니다.”
중년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집어먹고는 입을 열었다.
“잘 안 됐다고.”
“예, 한 명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중환자실에 있던 말벌은 어젯밤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한 명이라... 말벌 네 마리가 한 명에게 당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중년인은 포크를 든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이 정도면 됐어, 대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두고 보자고.”
“네, 회장님.”
***
안씨 본가.
쾅!!
“내가 그러니까 경찰 놀이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냐!”
안서은은 퇴원하자마자 본가로 불려 갔고, 얼굴을 비추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서은은 움츠러들기는커녕 그 맑은 눈에 독기가 서렸다.
“하나만 묻죠.”
안회장은 말없이 굳은 얼굴로 서은을 보았다.
“전에도 같은 말씀을 하시고 간접 경호를 붙이셨죠, 이번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한 일 아니냐? 이 나라는 나라의 규칙이 있어! 네가 그 무모한 경찰과 손을 잡고 규칙에 망치질하면 그것을 만든 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서은은 다가와 소파에 앉아서 안회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거 말고, 김실장이 혼수상태고, 강실장도 크게 다쳤습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그 위에 규칙을 만든 쓰레기들의 타깃이 될 줄 알고 계셨습니까?!”
서은의 말에 안회장이 그녀에게 삿대질했다.
“감히 누구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규칙을 거스르려고 하지 마라, 너뿐만 아니라, 대성이 다친다. 마지막 경고야.”
안회장의 경고에 서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저는!”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안회장을 똑바로 보고 말을 이었다.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 끝이 닿을 때까지...”
그녀는 휙 돌아서서 그곳을 나섰다.
***
대성병원 복도, 하루가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녀가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준비됐나.”
그녀의 물음에 옆에 있는 소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고작 그런 팔로 가능하겠나”
그녀는 깁스하지 않은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쪽 팔이면 충분하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럼 시작해볼까, 준비... 출발!!”
와다다다다-!
병동 복도에 두 개의 휠체어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둘은 초반에 출발은 비등했지만, 곧 하루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상대방을 앞질렀다.
“꺄악!”
“뭐하는 짓이야!”
그 위험한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간호사들이 기겁하며 놀라워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중앙 로비를 지나칠 때, 돌연 앞에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
콰쾅!
두 개의 휠체어가 거짓말처럼 우뚝 멈추어 섰다. 맨손으로 둘의 휠체어를 막은 사람은 바로 해수였다.
해수와 눈이 마주치자 기세등등했던 하루의 눈이 순하게 바뀌며 쭈그러졌다.
“독방으로 옮겨줄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해수는 그 옆에 눈을 질끈 감은 소녀를 보았다. 그녀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소녀다.
지금까지 시한부 환자 취급만 받다가 하루가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대하자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해수가 둘의 휠체어를 돌려 밀며 말했다.
“이러면 병동 사람들한테 민폐다. 병실에 가만히 있어.”
병실에 도착하자 하루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작게 투덜거렸다.
“심심합니다.”
하루의 말에 해수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주었다. 새 휴대폰이다. 하루의 휴대폰은 전에 봉고차 안에서 굴렀을 때 부서졌다.
휴대폰을 본 하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갤록시 G 플립 3!”
전에는 휴대폰을 다룰 줄도 모르더니 이제는 외관만 봐도 어떤 기종인지 딱 알아맞힌다. 해수는 그저 최신형을 샀기에 기종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게다가 256기가!”
그녀는 휴대폰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몇 분 뒤에야 해수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마침 이벤트 기간이었는데 다행입니다.”
“이벤트?”
“아무것도 아닙니다. 안 바쁘십니까?”
“그래, 바쁘다. 간다.”
“안녕히 가십시오.”
*
여름 끝자락에 다다르자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강수대 팀원들도 책상을 아예 에어컨 쪽으로 옮기고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때, 팀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됐다!”
“뭐가 떴습니까?”
“강력 수사대 합동 워크숍!”
팀장의 말에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해수도 마지못해 다가가 모니터를 확인했다.
전국에서 몇 팀밖에 가지 못하는 워크숍 명단에 충남 강수대가 떡하니 적혀 있다.
“이야! 내가 살다살다 강수대 워크숍을 다 가보겠네.”
“얼마나 좋을까? 일주일이래, 거기 호텔에 수영장도 있대, 이쁜... 읍읍”
팀장은 뇌가 가는 데로 말을 내뱉다가 자신이 직접 입을 막았다.
워크숍이 발표되고, 강수대 팀원들은 붕 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실실거리며 일했다.
드디어 워크숍 날이 다가왔다. 강수대는 경찰서에서 모여서 한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해수가 가장 먼저 도착했고, 오갱이 두 번째로 도착했다. 해수와 마찬가지로 오갱도 강수대 본부에 들어가기도 싫은지 더운데도 흡연실 옆에 정자로 왔다.
“옷이 그게 뭡니까?”
오갱은 형광색 반팔이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왜? 지금부터 분위기 내면 좋지 뭐, 너는 그게 뭐냐? 어디 초상집 가냐?”
오갱이 해수의 복장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해수는 새까만 정장에 하얀 셔츠까지 깔끔하게 빼입은 상태였다.
같은 곳을 가는데 둘이 복장이 차이가 크다.
“저는...”
그때, 막내 차가 들어왔다. 그는 차에서 내려 해수와 오갱을 보고는 헐레벌떡 달려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는 새까만 정장에 안에 셔츠까지 검은색을 입어서 덩치까지 완전히 어깨형님이 따로 없었다.
해수는 그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복장이 그게 뭐냐, 조폭이야?”
“죄송합니다! 갈아입을까요?”
“됐어.”
“남말할 처지냐? 이야 조폭 형제네 조폭 형제 아주 그냥, 무서워서 아무도 안 다가오겠어?”
오갱이 둘을 번갈아 보며 킥킥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형 왔다!!”
가관이다. 누가 팀장 아니랄까 봐.
챙이 큰 모자에 하와이안 티셔츠, 형광색 수영복 바지에 선글라스까지 꼈다.
그 타이밍에 경찰서를 견학 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들어오고 있다.
해수는 몸을 휙 돌려 정자 근처 잎사귀를 매만졌다.
오갱은 아예 걸음을 옮겨 자신의 차로 향했다.
막내만이 어쩔 줄 모르다가 정자에 다리를 걸치고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뭐,뭐야 니네? 어디가? 내가 창피해?”
그들의 모습에 아이들이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경찰서에 이상한 아저씨 있어요.”
“쉿, 쉿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마요. 경찰서는 원래 이상한 사람들이 잡혀 와요.”
선생님과 아이들의 대화를 들은 해수와 막내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 모습에 팀장은 주머니를 뒤적뒤적거리다가 경찰공무원증을 꺼내어 보이며 소리쳤다.
“아니야~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강력수사대 대장이야 대장! 얘들아! 강수대 팀원들! 오갱 돌격 근육몬! 집합!!”
“선생님 무서워요!”
“눈 마주치지 마, 이리와, 빨리 가자, 빨리.”
“아니, 그게 아니라 얘들아, 아저씨가 오늘 워크숍을...”
보다 못한 오갱이 차에서 다시 내려 팀장을 끌고 왔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은 경찰서 차량이 아닌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야, 이게 해수 차야?”
“예, 이번에 구입했습니다.”
“와우, 아주그냥 삐까뻔쩍하네!”
“멋있습니다 선배님!”
해수는 국산 차량 중에 가장 튼튼하기로 유명한 차를 구매했다. 7인승이기에 안에 공간도 넉넉했다.
강수대 팀원들은 차에 탑승하여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신이 났다.
“차 좋다~”
“어후 새 차 냄새, 설렌다 설레.”
“저도 월급 열심히 모아서 이 차 사겠습니다!”
“얌마, 너는 결혼자금이나 모아, 뭔 차야 차는, 차 있잖아.”
좋은 차에 편히 타고 일주일 동안 쉬는 곳으로 향한다. 그 이유만으로 강수대 팀원들은 작은 것에도 웃음을 터트리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
강수대는 한 시간 반에 걸쳐 서울 근교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네 형사들은 차를 발레파킹을 맡기고 호텔을 올려다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키햐, 높다.”
“입구부터 번쩍번쩍하네, 금테를 아주그냥 싹 다 둘렀어.”
“후욱 후욱! 이 호텔은 마지막 층에 피트니스센터가 있다고 합니다! 선배님!”
“그래? 거기부터 들러야겠군.”
“맞습니다!”
“어우 헬창들.”
호텔은 U자 모양으로 되어있고, 중앙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었다. 인공 폭포가 있어 물결이 끊임없이 출렁거렸다.
팀원들은 체크인하고 먼저 숙소로 향했다. 네 명의 숙소는 방이 세 개에 주방과 거실 사이에 바도 있고 남쪽 통유리 뷰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오갱은 짐을 쇼파에 집어던지며 통유리에 붙어 화를 냈다.
“아니 도대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어! 어!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어으, 오갱아 우리 약속 하나만 하자, 와이프한테 여기 생활 얘기 안 하는 거로.”
“당연하지, 사진도 안 찍을 거야, 혹시나 볼 까봐.”
“그래, 우리의 뇌에만 행복하게 각인시키자고.”
“형님도 이따가 강의 열심히 듣고 필기해요. 공부만 하다 왔다고 하게.”
“그거 좋은 생각인데?”
오갱과 팀장이 서로 마주 보며 킥킥거린다. 그 사이 해수와 막내는 짐을 풀고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와아...”
“숙소는 맛보기였네.”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 살고 싶습니다.”
해수는 말없이 막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둘이서 헬스기구를 박살 낼 때쯤,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제까지 근육 거기 있냐? 로비에서 얼굴 익힐 겸 모인다니까 대충 씻고 내려와!
“예,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샤워실까지도 바깥만 보이는 창문이 뚫려있어 감탄하면서 2분 만에 씻고 1층으로 내려갔다.
사복을 입었지만 딱 봐도 형사 같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해수와 막내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그들은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서로 눈인사를 했다.
안쪽에 호텔 중앙에 있는 수영장 쪽에 한눈에 보이는 복장을 한 형사 두 명을 발견했다. 해수와 막내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이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던 낯익은 중년인이 있다.
“청장님?”
강수대를 창설하고 해수에게 갈비를 두 번이나 사준 고마운 충남경찰청장이 편안한 차림으로 있었다. 그는 해수를 보며 반색했다.
“어 그래요 신경사, 마침 잘 됐네, 내가 만날 사람이 있어서 들렀지, 저기 내 딸 조아...”
청장이 몸을 돌리며 누군가를 가리킬 때, 고음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죽어 이 새끼야!!”
한 여인의 쭉 뻗은 돌려차기에 덩치 큰 사내, 아마도 형사로 보이는 자가 가슴팍을 정통으로 맞고 물에 빠진다.
퍽- 처얼썩!!
여인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내에게 과감하게 뛰어들어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물 안에 처박으며 소리쳤다.
“죽어, 죽어, 죽어!!”
“조,조팀장님!”
“팀장님 참으십시오!”
그 광기 어린 모습에 다른 팀원들이 다급히 말리러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다.
“청장님, 뭐라 하셨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네. 갈 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