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88화 (88/255)

이번에 11호라는 남자의 존재, 그리고 하루의 과거를 통해 알아낸 것이 몇 가지 있다.

실장급 존재들을 키워내는 훈련소가 있다. 그곳을 회사라고 부른다. 하루 역시 이곳 출신이다.

레드문은 회사와 관련이 있었으나, 꼬리자르기를 당했다.

즉, 회사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아버지는 실장급 존재에게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살로 위장살해 당했을 때, 단순한 죽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깊고 큰 무언가가 이어져 있을 줄은 몰랐다.

하루는 야외 테라스 의자에 두 무릎을 끌어모은 자세로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해수는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아 하루에게 내밀었다.

“경호는 며칠 쉬자.”

“네...”

하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11호가 말을 할 수 없다고 해도, 회사가 11호의 행동에 의문을 가져 그의 흔적을 찾아다닐 것이다.

마교관이 현장에 없다고 해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당분간 하루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했다.

해수는 오랜만에 유마담을 찾아갔다. 교도소장이 편의를 봐줘 접견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안에 생활이 순조로운지 여전히 마흔이 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왜, 시간 지나니까 내가 눈 앞에 아른아른해? 보고싶었어?”

그녀는 해수가 사다준 담배부터 꺼내어 입에 물고는 다리를 꼬았다.

해수는 건조한 눈으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투 하나, 손짓 하나에도 퇴폐적인 매력이 묻어나지만, 안서은과 하루를 가까이서 자주 보아서 그런지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레드문에서 외자로 불리던 실장들, 회사라는 곳에서 보낸 겁니까?”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유마담이 멈칫했다.

“뭐야, 갑자기.”

“11호로 불리던 남자를 잡았었습니다. 현재는 스스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1호라... 이름도 없는 거 보면 본사 소속이었나보네, 당신 말이 맞다면?”

유마담의 긍정에 해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내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응징하려 합니다.”

해수의 기세에 유마담은 잠시 움찔했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 그래 뭐,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지, 그래서, 어쩌라고.”

“당신은 이미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이제 세상의 시선이 유마담에게서 완전히 떨어졌기 때문에 회사에서 소리소문없이 그녀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다.

“나도 그걸 생각해봤는데, 이제 나를 죽일 필요가 없다는 거지, 내가 아는 게 모두 쓸모가 없어진 거야.”

“상관없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말해주십시오.”

“내가 말해주면 무슨 이득을 본다고?”

유마담 말대로 해수는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녀가 어찌됐건 목숨을 걸고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전혀 없다.

정공법을 펼칠 수 없으니 편법이다. 손익을 맞출 수 없으니 감정을 건드린다.

“하실장의 복수.”

해수의 말에 유마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담배연기를 들이마시다가 멈추었다.

역시, 세상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그녀에게도 하실장의 존재감이 컸던 것이다.

“자살을 택했지만, 결국 회사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죠.”

“억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감이군요.”

더 이상 내놓을 수 있는 패가 없다. 해수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마담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재털이에 꽁초를 비벼서 껐다.

“누가 일어나래?”

해수는 발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마담,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 것이다.

*

유마담이 알려준 정보는 정말로 뜬구름을 잡는 듯했다. 유마담의 인생을 듣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텐프로로 활동하던 어느날 높은 사람에게 마담 제의를 받았고, 돈과 권력을 쥐여주었다.

대신 평범한 유흥업소가 아닌, 고위직들의 목줄을 쥐는 일을 시켰다.

돈도 많이 벌고 수많은 아랫사람들을 부리는 위치이지만, 결국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약점이 잡힌 사람들은 거칠게 행동했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나중에 실장급 몇 명이 투입되었다.

그들에 관해서는 유마담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녀가 하실장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폭력적이었고,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었고,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했다.

그녀를 마담 자리에 앉힌 인물은 이미 뒤가 탈탈 털리고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병사한 사람이었다.

결과적으로 유마담이 예견했듯이 실물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몸집이 얼만 큰 지 뭉퉁그려 짐작할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기업인, 정치인... 거물급 두 명 이상이 깊게 연류되어 있어, 이 정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열 명? 한 명 한 명씩 걸러보는 거야.’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해수의 머릿속에 포기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하나씩, 모두 부숴주겠다.’

***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는 한 가정집의 거실, 젊은 남녀 네 명이 소파에 앉아있다.

1인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 조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11호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신형사가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합니다. 그를 잡아서 캐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그놈은 우리를 피해 도망친 거야, 효성 교도소라... 까다롭네.”

효성 교도소는 악질적인 범죄자만 수용하는 곳이기에 최소 3년 이상 징역을 받는 죄를 지어야 한다.

그만한 형량을 받으면서 그를 만나서 심문하고 처리하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 안에서 사람을 구하기에는, 그의 상대가 될만한 자가 없을 것이다.

“의뢰는 어떻게 할까요? 신형사가 눈치 챈 것 아닙니까?”

“아니, 아니야, 그러면 그 이후부터 경호가 더 붙었을 건데, 그대로야.”

조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경호가 추가되었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VIP 라인에서 내려온 임무는 목숨을 걸고 완수한다. 11호와 신형사 일은 뒤로 미룬다.”

“예 알겠습니다.”

*

대성병원, 국회의원이 본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고 하여 안서은이 직접 들렀다.

그녀는 빈 VIP실에서 국회의원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미간이 풀어질 줄을 모른다.

[귀욤하루: 사정이 있어 쉬겠습니다.]

하루의 문자에 이어서 해수의 전화까지 받았다. 하루가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쉬겠다며, 아픈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다.

아픈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갑작스레 쉬고, 자신에게는 비밀로 붙이니 걱정스러우면서도 서운했다.

‘문제가 뭐든 내가 도와줄 자신 있는데...’

서은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 되겠어.”

동시에 병실 문이 열리며 강실장이 들어왔다.

“의원님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요. 가보죠.”

의원에게 얼굴을 비추고, 서은은 하루에게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퇴근 시간이 지났으니 그곳에 가면 해수도 있을 것이다.

“저 잠시 화장실 좀요.”

“네, 대표님.”

서은은 보통 강 비서실장과 김 경호실장을 수행원으로 둔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 회장이 경호를 강화하여 간접경호 두 명이 더 붙어있다.

서은은 병원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화장실 입구에는 김실장이 떡하니 서 있다가, 지나가는 여성들의 시선을 느끼고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그때, 청소부가 커다란 청소 카트를 끌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김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장실 청소도 저렇게 큰 카트가 필요한가?”

“글쎄요. 가끔 들어가는 거 보긴 했는데.”

드르륵 드르륵

두 실장은 청소부가 금세 카트를 끌고 나오자 입을 급히 다물었다.

그렇게 1분, 2분, 3분, 김실장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안이 지독하게 조용하다.

“대표님.”

대답이 없다. 작지만 낮은 음으로, 적막한 지금 안에 있다면 무조건 들었을 목소리다.

“대표님.”

한 번 더 부른 후에 김실장은 확신하며 문도 열어보지 않고 방금 청소부가 향한 방향으로 가며 소리쳤다.

“강실장! 안에 확인해봐요!”

“네, 네!”

김실장은 뛰어가며 송수신기를 눌렀다.

“안대표님 납치! 납치범 청소부로 위장! 40대 중반 여성! 5층에서 화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접수

-접수!

*

띠링 띠링 띠링-

가만히 밖을 바라보며 불안감을 떨치고 있는 하루는, 돌연 휴대폰이 불같이 울리자 힘없이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코드제로] 안서은 대표님 납치/ 위치: 대성병원 5층

-용의자 청소부, 40대 중반 여성, 공범 2인 이상으로 추정

-김호중 가드 복부 2회 쇄골 1회 자상.

-강연국 비서 혼절, 복부와 머리에 부상.

-용의자 행방 X, 대성병원 포위 중.

-대성병원 지하주차장, 주차장 봉쇄.

-강진서 다이렉트망으로 연락, 경찰 출동 요청.

경호원 정보망에 난리가 났다. 내용을 확인하고는 하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서은님!”

하루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납치? 납치범들은 누구지? 회사? 회사라면 왜?

이미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주변인을 납치하여 불러들이려는 것? 아니면 타깃이 안서은이었던 것?

그것이 가능성이 크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과 불안이 너무 커서 놓치고 있었다. 그들이, 11호가 자신의 근처에 나타난 이유를.

그저 우연히 마주쳤다고만 생각했다. 멍청하게도.

어떤 이유든간에 자신의 탓이다. 몸을 사린다고 옆에 지켜서지 않은 탓이고, 타깃이 안서은일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탓이다.

하루는 주먹을 꽉 쥐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해수가 선물로 준 특수 방검복을 입고, 검은 레깅스에 후드티, 검은 모자에 런닝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

10년이 지났어도 방식은 비슷할 것이다. 납치 임무를 맡은 적은 없지만 배운 적은 있다.

하루가 대성병원 상황실에 얼굴을 드러내자 경호원들이 알아보고 놀랐다.

“어, 너?”

“시시티비부터 봅니다.”

하루는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싸늘한 어투로 말하고는 시시티비를 확인했다.

“여기.”

하루가 멈춘 장면은 도우미 복장을 한 남자가 휠체어를 끌고 있는 장면이었다. 휠체어에는 노년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이게 왜?”

하루는 말없이 화면을 확대해서 손목을 확인했다.

“안서은님 손목입니다.”

“뭐?”

납치를 배울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변장, 자신은 물론 납치 대상자도 변장을 시켜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루는 시시티비를 추적하여 그들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확인했다.

주차장이 아닌 그대로 휠체어를 끌고 정문으로 유유히 나갔다.

하루의 눈동자가 빠르게 시시티비를 스캔한다. 판단이 섰는지 그녀는 벌떡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뭘 알아냈는지 말을 해줘야지!”

하루는 모자 위에 후드를 눌러쓰며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정말 모른다. 일단 현장에 가봐야 알 것 같다.

하루는 상황실에서 나오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

병원에서 100미터 가량 떨어진 인적이 드문 외곽, 낡은 9인용 차량 뒤에 ‘휠체어 탑승 차량’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뒤에 트렁크부분이 열리고, 한 남자가 노인을 실은 휠체어를 그대로 태운다. 안에는 젊은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조장이 액셀을 밟으며 물었다.

“추적은 없었지?”

“경호원이랑 비서가 눈치가 좀 빨라서, 처리했습니다.”

“죽였어?”

“모르겠습니다.”

“다음부터 웬만하면 죽여, 그래야 경고가 잘 먹히지.”

“알겠습니-”

그때, 여자 옆 창문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콰장창!!

창문이 안쪽으로 뜯기며 한 가녀린 여자가 차 안으로 들이닥쳤다.

< #88. 납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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