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보육원 출신이었다. 다섯 살 때 의문의 남자에게 입양되었고, 그곳은 지옥이었다.
하루는 보육원 출신이었다. 다섯 살 때 의문의 남자에게 입양되었고, 그곳은 지옥이었다.
-살아남아라, 살아남는다면 너희에게 부와 명예가 따라올 것이다.
-살아남아라, 살아남는다면 너희에게 부와 명예가 따라올 것이다.
-엄마는요?
-엄마는요?
-내가 니 애미다.
-내가 니 애미다.
무력 양성 집단에서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사들였고,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다섯 살 때부터 훈련을 받았다.
무력 양성 집단에서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사들였고,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다섯 살 때부터 훈련을 받았다.
어렸을 때만 할 수 있는 임무가 많다는 이유였다.
어렸을 때만 할 수 있는 임무가 많다는 이유였다.
-예전 이름은 잊어라, 왼쪽 가슴에 붙어있는 번호가 바로 너희 이름이다.
-예전 이름은 잊어라, 왼쪽 가슴에 붙어있는 번호가 바로 너희 이름이다.
-이걸 뭐라고 해?
-이걸 뭐라고 해?
-11호, 그리고 존댓말 해라 꼬맹아.
-11호, 그리고 존댓말 해라 꼬맹아.
하루는 비슷한 또래 스무 명과 함께 훈련을 받았고, 훈련이 끝나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는 그중에 여섯 명만이 살아있었다.
하루는 비슷한 또래 스무 명과 함께 훈련을 받았고, 훈련이 끝나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는 그중에 여섯 명만이 살아있었다.
-엄마는요?
-내가 니 애미다.
무력 양성 집단에서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사들였고,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다섯 살 때부터 훈련을 받았다.
어렸을 때만 할 수 있는 임무가 많다는 이유였다.
-예전 이름은 잊어라, 왼쪽 가슴에 붙어있는 번호가 바로 너희 이름이다.
-이걸 뭐라고 해?
-11호, 그리고 존댓말 해라 꼬맹아.
하루는 비슷한 또래 스무 명과 함께 훈련을 받았고, 훈련이 끝나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는 그중에 여섯 명만이 살아있었다.
열두 살 때부터 개인 임무를 받았고, 1년이 지나지 않아 동기 네 명이 죽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 안 그러면 죽어.
-도망가도 죽어.
-도망가다 죽는 게 낫지, 여기서 죽는 것보다, 넌 여기서 죽어, 난 도망치다 죽을게.
-가지마, 나 혼자 있기 싫어...
-난 죽기 싫어, 따라오던가.
-나도 죽기 싫어, 안 갈래.
-겁쟁이.
하루는 11번을 놔두고 홀로 도망치다가 교관에게 잡혔다.
-17번, 넌 뛰어나다. 이대로 돌아가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
스걱-
-윽!
하루는 교관이 방심한 틈에 눈에 치명상을 입히고 도망쳤다. 그러나 하루도 큰 부상을 당했기에 도망치다가 쓰러졌고, 다른 조직의 두목이 발견했다.
-어린 것이 눈에 살기가 있네, 데려가.
그렇게 지하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열세 살부터 10년 동안 그곳에서 투견으로 살아오다가 해수를 만나게 되었다.
*
“보육원에서도, 훈련소에서도, 지하에서도 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23년 평생보다, 지금 1년이 가장 가치 있습니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하루를 보며 신해수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지하세계에서의 10년만 지옥이 아니었다.
그 전에 훈련소에서의 8년은 더했고, 태어났을 때부터 있던 보육원에서도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고 노동을 시키며 구타도 일상이었다고 한다.
신은 참 고르지도 않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해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해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는 불안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이 저의 존재를 알면 살려두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물론 제 주변까지 소멸시킬 것입니다. 그들은 그럴 힘이 있습니다. 저는 집주인님과 안서은님을 위험하게 만들었습니...”
스윽
해수는 하루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고, 등을 한 번 토닥여주었다.
“고생 많았다.”
“흡...”
하루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지금 이 급박한 상황도, 부끄러운 과거도, 지키고 싶은 현재도 모두 잊고 해수에게 의지하여 눈물을 흘렸다.
처음 빛을 보게 해준 사람,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게 해준 사람,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 이제 그 달콤했던 꿈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저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떠나야 합니다.”
해수는 그녀를 떨어트리고 단호한 눈빛으로 마주했다.
“네가 왜 떠나.”
하루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는 해수의 눈빛에서 지독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걔네가 떠나야지, 이 세상에서.”
하루는 해수가 직접 실전 전투를 하는 것은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지만, 오랫동안 아침 훈련을 통하여 그의 실력을 꽤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하루는 고개를 숙이고 미세하게 저었다.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개인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누가 개인이래,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어.”
“...”
하루를 감정적으로 다독이는 것은 여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저 남자가 경찰서에 없다는 것을 알면 그들이 그를 찾을 것이고, 첫 번째 탐색은 해수의 주변이 된다.
그 전에 어떤 식으로든 남자를 노출시켜야 한다.
“그러면 네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저 남자와 교관 둘뿐이라는 거지?”
“네, 다른 훈련생들과는 3년 차이가 나서 훈련도 숙소도 따로 씁니다. 가끔 지나갈 때 스치듯 보기만 해서 지금의 저를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들이 크기가 얼마가 되든 내가 잡을 거야, 그때까지는 적들이 네 존재를 알지 못하게 감춰야겠지, 열쇠는 저놈의 후처리인데...”
해수가 고민하자 하루가 그의 손목을 잡으며 진중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회유해보겠습니다.”
“네가 직접 나선다고?”
“예, 그는 긴가민가하지 않았습니다. 확신했습니다. 저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일단... 가보자.”
해수는 하루와 함께 남자를 감금시킨 창고로 향했다. 해수가 하루와 함께 나타나자 남자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재갈을 풀어주니 그가 눈을 부릅뜨고 하루를 보며 말했다.
“역시, 역시, 17호가 맞았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니...”
하루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해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둘만 있게 해주십시오.”
“알았다.”
해수가 나가고, 하루와 남자가 단둘이만 있게 되었다. 하루는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오랜만이야, 아직 살아있었네.”
“그러게, 네가 살아있는 걸 알면 마교관 눈깔이 뒤집히겠는데”
마교관은 하루와 11호를 훈련했던 교관이다. 하루가 탈출하면서 오른쪽 눈에 치명상을 입혔던 자다.
“그 사람은 알아, 내가 살아있는 거, 살려줬거든.”
“...뭐?”
“그 사람이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 한들, 열 세 살 애를 상대로 실수할 것 같아?”
이건 하루의 말이 맞다. 아무리 하루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건 마교관도 마찬가지다. 고작 열 세살 아이를 상대로 실수할 사람이 아니다.
“풀어준 거야.”
왜 그런 단순한 진리를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그럴 리가 없는데, 차기 교관으로 유력했던 너를...”
탈출은 처형으로 다스렸던 그곳에서 왜 뛰어난 인재를 풀어줬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이해가 되지 않으니 그때는 놓쳤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치명상을 입었으니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라는 말도.
“나도 몰라, 그 뒤에 또 다른 지옥을 겪었으니까, 이것도 탈출의 대가인 줄 알았지.”
하루는 혼란스러워하는 11호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거기서 나오자, 내가 도와줄게.”
11호는 하루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끝이 떨린다. 11호가 피식 냉소를 흘렸다.
“이제 와서? 날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내가 혼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 알아?”
하루의 고운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여전히 겁쟁이구나.”
“뭐!!”
하루의 말에 그가 발끈했다. 겁쟁이라는 말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가만히 놔둘 하루가 아니었다. 그녀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그의 입에 칼을 집어넣었다.
11호는 혓바닥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고 나서야 깨달았다.
칼끝이 혓바닥에 닿았고, 칼날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밀고 있다.
즈-
입꼬리가 조금 찢어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하루가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넌, 내가 안 무서워?”
“...”
11호는 말없이 그녀의 눈을 피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살기 어린 눈을 마주하자 잊고 지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녀는 함께 훈련을 헤쳐나가는 끈끈한 전우애가 있는 동기가 아닌, 모두가 무서워하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루는 천천히 그의 입에서 칼을 뺐다. 그러고는 엄지로 그의 입꼬리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주었다. 덕분에 입이 모두 빨갛게 물들었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됐네, 마교관은 어디있지?”
“마교관은... 몰라, VIP를 지척에서 보좌한다는 소문만 들었어.”
“현장을 뛰지는 않는다는 거네, 너만 입 다물면 나는 괜찮다는 거구나.”
해수가 얘기했을 때와 하루가 협박했을 때는 차원이 다르다. 11호는 벌써 자신의 시체가 어떻게 처리가 될지 상상이 되었다.
“날 죽이면 회사는 저 형사를 의심하고 주변을 뒤지겠지, 네가 들키는 건 어차피 매한가지야.”
“살려고 애쓰네.”
“내가 풀려나고 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
하루가 다시 칼을 들자, 11호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잠깐, 잠깐! 살려-”
사각-
11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이상한 느낌에 다시 눈을 떴다.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서걱-
하루는 그의 발목을 옥죄고 있는 줄도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칼을 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풀어줄게, 잘 살아봐.”
“...뭐?”
하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칼을 든 적을 두고 등을 보이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11호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끼이익-
하루가 문을 활짝 열어두어 해수도 창고 안쪽을 볼 수 있었다. 남자를 풀어주고 칼까지 쥐여주었다.
해수는 하루가 다 생각이 있으리라 판단하고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지하주차장에 지독한 적막이 흘렀다.
스슥
11호는 한 시간을 소리 없이 가만히 있다가 문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함정일 수 있다.
그는 지극히 조심하며 한발 한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리드빌딩에서 1키로 넘게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진짜로 풀려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자 공포로 굳었던 그의 머리가 그제야 홱홱 돌아갔다.
‘신형사한테 잡혔다가 경찰서도 아니고 외딴 창고에 갇혀있다가 풀려났어, 회사는 경찰한테 잡혀가는 줄 알고 나를 버렸고, 다시 돌아가서 17호가 살아있다고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는 현실을 깨닫고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17호를 제대로 알고 있는 마교관 외에는 헛소리로 치부하겠지, 그들에게는 다른 경찰도 아니고 요즘 회사가 관찰하는 신형사에게 잡혔다가 몇 시간 만에 풀려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회사는 날 고문하며 뭘 불었는지 알아낼 거고, 결백이 증명되더라도... 증명될 수가 없잖아.’
이제야 왜 하루가 자신을 순순히 풀어줬는지 깨달았다. 회사는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말벌을 키웠어도, 규칙에 냉혹한 곳이다.
말벌은 말 그대로 침을 쏘고 나면 버려지는 처지, 언제든지 조금만 흠이 나면 쉽게 버릴 것이다.
누군가에게 잠깐 잡혔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할 수 있는 처지, 11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득바득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그렇다고 하루에게 다시 갈 수는 없다. 신형사는 언젠가 제거될 거고, 그때 하루와 함께 있다면 자신도 결국 제거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가장 베스트는...
타다다다닥 쾅!!
11호는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문을 부술 듯이 발로 찼다.
“꺄악!!”
그러고는 칼을 편의점 직원에게 뻗으며 소리쳤다.
“돈 내놔!! 돈!”
*
얼마 뒤, 강수대 본부.
팀장이 다가와 해수의 어깨를 툭 쳤다.
“돌격아, 그 저번에 알아봐 달라는 놈 말이야, 자수한 편의점 털이”
“예.”
“어, 이번에 거기 어디냐 효성 교도소 들어갔다더라, 근데 이게 뭔 우연인지... 모창귀 있는 방에 들어갔다는데?”
“그렇습니까?”
해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따로 방을 옮겨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어졌다.
< #87. 11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