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85화 (85/255)

리드빌딩 613호 사무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존)안서은 대표님(예]

구세주 실장은 휴대폰에 찍힌 저장된 번호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해수와 함께 있을 때 명함을 받고 저장은 했지만, 이 사람이 자신에게 직접 전화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받았습니다! 구세주 실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안서은입니다.

“안서은 대표이사님께서 직접 제게 전화를 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구세주 실장님께서 이렇게 반겨주시니 가문의 영광이네요. 다름이 아니라...

안서은은 그렇게 구실장의 도움을 받아 제작자와 미팅을 잡았다.

나랏돈으로 나라 치안을 위한 장비 제작, 소재의 특수성과 희소성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제조방식도 새롭게 창조해야 하니 인기가 있는 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랏돈이야말로 의원과 짜고 빨아먹기 좋은 여건, 똥파리가 끼어들지 못하게 제작 안을 추진한 청장과 오성주 의원에게 의견을 피력하고 제작권을 단독으로 따내야 한다.

서은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직접 그녀가 연락했다.

-...관심을 가져주니 좋은 소식이지만, 나는 원래 기업인과는 옷자락도 스치지 않으려는 사람이요. 기업인은 곧 돈인데 돈과 경찰이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거든, 이해하길 바랍니다.

-...요즘같이 예민한 때, 그것도 방검복을 제작하려는 기업 대표를 만난다고? 청장과 의원과 기업인이 나랏돈 빼먹으려고 작당한다는 말이 백 프로 나오지요. 나는 대성에서 왜 갑자기 이 건에 관심을 두는지 의심이 드는구려, 수고하시오.

전화가 끊겼다. 서은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역시... 이러다 똥파리 꼬이는데.’

두 사람은 워낙 청렴하기로 유명하기에 기업 쪽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고위공무원의 아싸 대표와 국회의원 아싸 대표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이메일로라도 설명하려 했지만 읽어보지도 않는다.

서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사무실에서 나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출입대에 끼어있는 덩치 큰 사람을 발견했다.

“해수씨?”

출입증 없이 옆으로 은근슬쩍 지나가려다가 끼인 것이다. 해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몸을 뒤로 뺐다. 출입대가 부서질 듯이 흔들린다.

“안녕하십니까.”

“네, 네,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생각지도 못한 만남은 반가움이 배가 된다. 서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고 컸다.

“아, 근처 지나는 길에 하루도 끝날 시간이 돼서, 같이 가려고 왔습니다.”

“아... 저도 거기서 같이 살고 싶네요.”

“예?”

“그냥, 그렇다고요. 아 그런데 일이 쉽지가 않아요. 그 간이 방검복.”

“어떤 부분이 막힙니까?”

“음, 그러니까... 청장님과 오성주 의원님의 뜻이 가장 중요한데, 그분들이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어요.”

해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아무래도 기업인이시니,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아, 같은 경찰이시니까 해수씨 말은 듣겠죠? 그런데 사실 오성주 의원님의 뜻이 더...”

“그 분도 경찰학교 특별교관 때 안면이 있습니다. 한 번 만나뵙겠습니다.”

“아 정말요? 어쩜... 해수씨는 참 신기한 사람이네요.”

“칭찬입니까?”

“모르겠어요.”

서은의 묘한 대답에 해수는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서은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서 나왔다.

하루의 시선은 전방에 고정되어 있는데 주변 남자들은 하루에게 시선이 꽂혀 있다.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하루에게 다가갔다.

“뭐,뭐야?”

“뭔데 앞을 가로막습니까?”

해수의 심상치 않은 피지컬에 경호원들은 매우 경계하며 자존심을 지키려 애를 썼다.

그때 하루가 총총걸음으로 해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집주인님!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집,집주인님?”

“집주인님...”

“남자친구도, 자기도, 오빠도 아닌...”

집주인님은 여러 의미로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지는 호칭이었다.

“퇴근하고 근처 들를 곳이 있어서, 온 김에 데리러 왔다.”

데리러 왔다는 말은 남자들이 작게나마 기대했던 집을 전월세로 주는 집주인이 아니라, 정말로 같이 사는 집주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 말에 떨거지들은 자연스레 빠졌고 해수는 하루와 함께 퇴근했다.

*

그날 밤, 안서은은 불 꺼진 방에서 창문 밖 정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연이 있다고 해도 그저 실적 좋은 형사일 뿐, 청장과 의원을 움직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역시 다른 플랜을 준비해두는 게 좋겠지.’

그때, 서은의 전화가 울렸다. 오성주 의원이었다. 서은은 재빨리 그의 전화를 받았다.

“예, 안서은입니다.”

-내가 신형사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안서은 대표가 신형사를 움직일 수 있을 줄 몰랐네, 신형사와 무슨 관계지? 약혼녀인가?

“아닙니다. 저와 신해수씨는...”

서은은 대부분 솔직하게 말을 해주었다. 뒷공작도 아니고, 적이 아니라면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중에 방어막이 두터워진다.

서은은 기업의 이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화를 위해 신형사가 가는 길에 힘을 보태려는 파트너라고 진심을 가득 담아 설명했다.

-...기업인 중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가진 분이 있을 줄 몰랐군요. 어차피 신형사가 맡기라고 한 순간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아무튼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업인을 알게 되어 나도 좋구려.

“감사합니다. 저희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면 가장 중요한 안전성이 결여될 수 있어서 그것이 걱정되어 이득이 적음에도 기를 쓰고 제가 직접 맡으려는 겁니다.”

-맞는 말이에요. 가장 걱정했던 부분인데 해결이 되니 오히려 내가 감사해요.

“같은 뜻을 가진 의원님을 알게 되어 저도 영광입니다.”

의원과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청장에게도 전화가 왔고, 제작 안이 통과되는 대로 서은이 맡기로 사전에 결정이 되었다.

방검복은 해수와 강진서 형사들이 입은 전신 방검복과는 달리, 조끼 모양으로 보급형 간이 방검복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

신해수의 집, 하루는 거실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휴대폰을 들고 있다. 늦여름이기에 돌핀 팬츠를 입어 길쭉한 다리를 훤히 내놓고 있었다.

휴대폰을 두드리는 하루의 표정은 세상 행복해 보였다.

“자기가 먼저 치고 역관광! 킹받쥬? 개열받쥬? 복수하고 싶은데 아무고토 못하쥬?”

삑-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하루는 휴대폰을 쇼파 구석에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현관 앞에 섰다.

“오셨습니까? 요플레 사오셨습니까?”

해수는 고작 편의점을 다녀왔는데 배꼽 손을 하고 맞이하는 하루를 보며 왼손에 든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사왔다. 복숭아맛으로”

비닐 안에 복숭아맛 요플레를 본 하루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루는 요즘 대성 가드에서 우연히 맛본 요플레에 꽂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해수는 하루가 좋아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해수는 요플레의 맛이 어떤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맛있나?’

궁금하여 하나를 꺼내어 먹으려는데, 뚜껑에 요플레가 매우 많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수는 그것을 보고는 한참을 고민했다.

슥 삭 슥

그때, 하루가 마치 고양이처럼 요플레 뚜껑을 깔끔하게 핥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수는 하루를 보며 결단을 내리고 천천히 뚜껑을 입에 가져갔다.

그때, 하루의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포착하고 재빨리 내려놓고 요플레를 수저로 퍼먹었다.

그러자 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이게 제일 맛있는데 왜 안 드십니까? 제가 먹어도 됩니까?”

“어, 그래.”

“감사합니다.”

하루는 해수의 요플레 뚜껑도 깔끔하게 핥아 먹었다.

“교육은 잘 받고 있나?”

“사고 안 치고 잘 받고 있습니다. 몇 명만 빼고 다들 친절합니다.”

“그 몇 명이 혹시 여자?”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집주인님은 가만히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십니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원래 그런 사람들한테 더 잘해야 하는 법이야, 진심을 다하여.”

“알겠습니다. 진심을 다하여.”

하루는 입술에 요플레가 뭍은 것도 모르고 진지한 표정으로 작은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

다음날, 대성 가드 체력단련실.

“서아린 동기, 저와 대련하시겠습니까?”

“어,어? 나? 나요? 갑자기?”

“네.”

하루에게 잘해주는 것은 강해지게 돕는 것이다. 하루는 그녀를 진심을 다하여 상대했다.

쿵 쿵 쿠웅!

평소에 뒤에서 은근히 하루에 대한 안 좋은 유언비어를 퍼트리던 서아린은 연이은 업어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안쓰럽게 쳐다보았지만, 하루의 기세가 무서워 차마 말리지는 못했다.

‘그동안 쌓인 걸 저렇게 푸는구나.’

‘곰탱인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었어.’

‘무,무섭다. 건들지 말아야지...’

방법이야 어찌 됐건, 하루는 여자 동기 혹은 선배들과도 표면적으로는 잘 지내게 되었다.

*

합숙까지 합하여 3개월의 교육기간이 종료되고, 실전에 현역 선배들과 함께 배치받는 차례가 되었다.

하루는 가장 마지막에 불리게 되었다.

“...서아린은 대성 엔터 배우팀으로, 하루는... 응?”

명단을 부르는 선배 경호원이 멈칫하자, 팀장이 다가왔다.

“왜? 뭔데, 엉? 대표이사님?”

팀장이 의문 가득한 눈으로 하루를 보며 물었다.

“하루, 안서은 대표이사님과 아는 사이인가?”

하루는 이미 합격하고 훈련까지 마쳤으니 굳이 관계를 숨길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어떤 사이냐고 물어보니 쉽게 단정 짓기가 힘들었다.

“친구?”

“대박”

“왜 그걸 이제 말해?”

“안 물어봐서?”

“헐...”

선배 경호원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고, 그녀를 뒤에서 은근히 욕하던 이들은 뒷목을 잡았다.

*

대성 가드 유니폼은 하얀 셔츠에 검정 넥타이, 검정 수트에 검정 구두다.

대성 유니폼을 입고 앞머리는 한 올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뒤로 묶은 하루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서은이 입을 쩍 벌렸다.

하루 특유의 건조한 얼굴과 차가운 눈빛은 웬만한 남자들도 위축되게 만드는 포스를 풍겼다.

“와, 다른 사람 같아요. 진짜 엘리트 경호원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요?”

“교육 성적은 엘리트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하, 그런 건 내가 말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런데 하루씨는 우선 제 옆에서는 위장 경호원이에요. 오늘은 친구 컨셉.”

하루가 살짝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친구? 친군데 왜 친구 컨셉입니까?”

서은이 한 번도 제대로 둘의 관계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하루가 이미 친구 사이라고 말하는 것이 꽤 듣기 좋았다.

“그렇죠, 그런데 근무 중에는 경호원이니까 친구 컨셉 경호원으로, 옷이 없으실 테니 제 옷 빌려 드릴게요.”

“이해했습니다.”

서은의 대표이사실 안쪽에는 작은 휴게방이 따로 있었고, 그곳에 여벌의 옷이 있었다.

하루는 서은이 골라준 분홍색 라운드티에 하얀색 테니스치마를 입고 나왔다.

그러나 그녀가 서은보다 키가 5센티 이상 크니 치마가 많이 짧아 보였다.

“아, 좀 작네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짧으면 다리가 돋보입니다.”

서은이 알려준 여자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다. 서은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하루에게 팔짱을 끼웠다.

“가요. 오늘은 백화점 탐방이에요.”

*

서은과 하루가 대성백화점을 거니는 중,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깃 확인, 경호 하나, 일반인 하나.”

< #85. 첫 경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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