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청장은 진짜로 재판에 참여했지만, 미리 언급하지 않았기에 정작 판사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화제성이 높은 사건이니만큼 재판도 금세 진행되고, 형량도 청장이 만족할 만큼 선고받았다.
그들은 담이 높기로 유명한 효성 교도소에 입소했다.
교도관은 그들을 한 명 한 명씩 따로 방에 들여보내며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지구대 습격해서 경찰 담근 놈이다. 스트레스 좀 풀어라, 죽이지만 않으면 터치 안 한다.”
끼익- 쾅
문이 닫히자, 지구대를 습격한 조폭들의 두목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방에 있는 재소자들에게 으르렁거렸다.
“한 번 건드려봐, 지옥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
텁-
그의 말에 구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책을 덮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방에 있는 다른 사내들이 헐레벌떡 일어나 줄을 섰다.
책을 덮은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젊은 두목에게 다가가 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괴물처럼 여기저기 짓이겨져 있고 손가락 끝 방향도 삐뚫빼뚫했다.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손이었다. 그런데 양쪽 손이 다 그렇다.
젊은 두목이 남자의 손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마주 잡지 않자,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모창귀라고 합니다.”
***
충남지방경찰청, 청장실.
실장이 청장에게 막 보고를 하는 중이다.
“...방검복을 알아보고 있는데, 강진서 형사들이 이상한 것을 입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상한 거?”
“다른 서 형사들이나 경찰관들에게 자랑을 많이 해서 소문이 퍼졌는데, 간이형 방검복같은 것이랍니다.”
“하필 또 강진서네? 워낙 위험한 곳이니 그런 걸 단체로 맞췄나?”
“듣기로는 신해수 경사가 무료로 나눠줬다고 합니다. 가격이 한 벌에 오천만 원이라고 했습니다만, 형사들이 자랑하려고 부풀린 것으로 예측됩니다.”
“신경사가? 돈은 어디서 나서?”
“정확한 건 아니지만, 신경사의 자산이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히 알아볼까요?”
청장은 손사래를 치며 감탄했다.
“아니야 아니야, 뒷조사는 좀 그래, 크...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어, 진정한 인재야, 인재, 신경사 좀 만나봐야겠어.”
“예, 준비하겠습니다.”
***
리드빌딩 펜트하우스.
신해수는 다음날이 돼서야 하루에게 특수 방검복 박스를 건네주었다.
하루는 눈을 반짝이며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것을 받았다.
“이게 뭡니까?”
“열어봐.”
그녀가 냉큼 열어보고는 순간 굳었다. 박스가 고급스러운 만큼 안에도 기대했는데 새까만 옷 상하의가 전부였다.
“이게 뭡니까?”
해수가 자신의 팔을 걷어 방검복을 보여주며 말했다.
“특수한 소재로 만든 방검복, 한 번 입어봐.”
“아...”
하루의 눈빛이 금세 감동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네!”
몇 분 뒤, 문이 열리며 하루가 수줍게 걸어 나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특수 방검복만 입고 나왔다. 촘촘해서 멀리서는 티가 안 나지만 전신 망사나 마찬가지이다.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아찔한 광경을 연출했다. 해수는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뭐라도 걸쳐야지.”
“이것만 입어도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감촉은 어때.”
하루는 자신의 팔을 문질문질 만지며 대답했다.
“부드럽습니다. 지금처럼 맨살에 입어도 될 것 같습니다.”
“오래 입어봐야 알아, 더 입어보고 불편하면 안에 얇은 옷을 입고 입어.”
“네, 그런데 이 부분은 조금 이상합니다.”
“어디”
해수는 어쩔 수 없이 하루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고민 없이 한쪽 팔을 번쩍 들어 겨드랑이를 검지로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거기하고 팔꿈치 안쪽, 그리고 오금은 다른 소재로 만들어져 있어, 접히는 부분이라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어, 감촉이 다른 게 당연해.”
“아... 그런데 조금 결립니다.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습니다. 고무 냄새인가...”
“냄새? 네 냄새가 아닐까?”
하루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맡아보십시오.”
“음...”
지이이잉 지이이잉
해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할 때, 진동이 울렸다. 해수는 재빨리 휴대폰을 들었다.
“신해수입니다.”
-신해수 경사님,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부속실장 이시원입니다.
“예, 기억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시간 되시면 만나뵙고자 합니다.
“청장님과 말씀이십니까?”
-예, 드릴 말씀도 있고...
“음, 오늘은 휴일이라서, 내일 출근해서 시간을 확인해보겠습니다.”
-네 내일 연락 주십시오. 약속 장소는 그때 만났던 장소 괜찮으십니까?
“그때 갔던 소갈비집 말씀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해수는 고개를 돌려 하루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가능합니다.”
-네? 아, 하하, 아 그래요? 일단 그러면 청장님께 말씀드려보고... 아, 지금 괜찮다고 하십니다. 그럼 거기서 뵙죠.
해수는 전화를 끊기 직전에 하루의 얼굴을 살폈다. 입에서 침이 떨어지기 직전이다.
“실장님, 한 명 더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예? 아 네, 괜찮다고 하십니다.
“예,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해수는 전화를 끊고 하루에게 물었다.
“같이 갈래?”
“네!”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하루에게는 그저 소갈비라는 단어만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그래, 일단 그건 벗고, 다른 옷 입고 와.”
“네? 네! 알겠습니다.”
하루는 냉큼 방검복을 벗고 기능성 운동복에 레깅스, 바람막이 점퍼를 걸치고 나왔다. 해수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하루가 입을 열었다.
“고기를 먹을 때는 냄새가 잘 배는 옷을 입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 잘 배웠네.”
해수가 걸음을 옮기자 하루가 그의 뒤를 쫄랑쫄랑 쫓아갔다.
*
강진시 외곽에 있는 고급 갈빗집.
청장과 그의 부속실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들은 할 말을 잊고 가만히 해수가 데려온 존재를 보았다.
한 명 더 데려온다는 것이 당연히 청장과 연을 맺고 싶어하는 형사 중 한 명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형사는커녕 새파랗게 젊은 처자가 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해수는 멍한 표정의 청장과 이실장을 보고는 하루에게 인사를 시키며 설명을 이었다.
“하루입니다. 소갈비 좋아합니다.”
“같이 주소를 공유하고 있는 관계입니다. 집이 넓어서, 다음 달부터 월세도 낼 예정입니다.”
해수의 설명에 청장이 그제야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알은 채 했다.
“그렇군요. 이게 그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웨하스? 그건가?”
청장의 말에 이실장이 작게 말했다.
“청장님, 쉐어하우스입니다.”
“그거나 그거나, 아이고, 이제야 이해가 되네, 이런 미인과 함께 사니 우리 딸은 볼 생각도 안 하고 소개를 안 받지, 그럴 수밖에 없겠어.”
청장은 딸에 한해서는 뒤끝이 긴 편이었다.
“아무튼... 하루씨 반가워요. 나는 조감찬이라고 해요.”
“네, 갈비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하하!! 재밌는 아가씨구만.”
하루의 인사는 담백하다 못해 싸늘한 지경이었다. 간단한 인사 후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하루는 아무 말 없이 경건한 표정으로 갈비가 익기를 기다렸다.
하루가 특이한 성격임을 금세 알아챈 청장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갈비를 구워주는 직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갈비 2인분, 아니 4인분 더 추가해주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통 큰 주문에 하루는 청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루는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갈비를 행복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먹었고, 청장은 그녀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다가 해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본론을 꺼내었다.
“활약 잘 보고 있어요. 내가 요즘 신경사 덕분에 아주 바빠.”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무슨, 내가 있는 동안이라도 쭉 지금처럼 해줘요. 내가 물러나도 신경사한테는 피해 없게 책임지고 만들어놓을 테니까.”
해수는 청장의 눈에서 열정과 진심을 읽었다. 탐욕은 있지만, 권력과 돈을 향한 더러운 눈빛이 아니다. 인재를 갈망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청장은 진짜다. 속에 꿍꿍이가 없으니 해수도 청장과 만나면 마음이 편안했다.
“감사합니다. 청장 임기가 짧은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하!! 신경사가 이런 아부성 발언도 할 줄 알았어? 나 엄청 아부 싫어하는데, 이상하게 듣기 좋네.”
“진심이라 그렇습니다. 권력은 마약과 같아서, 한 번 손에 쥐면 더 큰 것을 쥐기 전까지는 손목을 잘라도 못 놓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청장님 같은 분은 다시 만나기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긴 하지, 나 같은 놈이 또 없지, 그래서 말인데, 임기 끝나기 전에 나도 일 하나만 해보려고 하는데, 강진서 형사들이 간이형 방검복을 입고 다닌다고요?”
청장이 특수 방검복을 물었다? 해수는 매우 긍정적인 생각이 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겉옷을 벗었다.
그의 강철같은 근육에 딱 달라붙어 있는 특수 방검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수소재로 만든 방검복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주문제작을 했고, 이후에는 이것보다는 내구성이나 방어력이 떨어지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방검복을 주문 제작하여 강진서 형사들에게 배급했습니다.”
“오호... 말로만 들었을 때는 지금 방검복을 조금 간단하게 바꿨나 싶었는데, 전혀 다르네요. 이건 그냥 운동복 같은데?”
“만져보셔도 됩니다.”
청장은 해수의 적극적인 자세에 만져보고 포크로 찔러보고 가위로 잘라보려고도 했다. 가위질을 정말 강하게 해야 약간 흠집이 나는 것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않았다.
“이렇게 얇은데 상당히 질기네? 이 정도면 정말 베는 공격은 물론 찌르는 것도 웬만큼 막아주겠어.”
“제가 직접 겪어봤습니다. 상당히 만족합니다. 방어력은 일반 방검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휴대성과 착용감이 매우 뛰어나서 항상 착용합니다.”
“오, 좋아, 좋군, 좋아.”
청장은 해수의 방검복을 보며 연신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해수는 내심 하루의 방검복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청장과의 자리는 그렇게 방검복과 경찰의 안전에 관한 생각을 유감없이 밝히며 토론이 진행되었다.
*
해수와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청장은 상기된 얼굴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두서없이 말했다.
“머리가 맑아져, 가슴이 벅차, 열정이 솟아나.”
“예, 청장님.”
“신형사를 만나면 말이야.”
“맞습니다.”
“맞긴 뭘 맞아, 이실장이 나랑 똑같아?”
“예? 아, 아닙니다.”
“아니야? 그럼 이실장도 권력과 돈에 끊임없이 타협하는 무리 중 하나야?”
“아,아닙니다. 청장님 말씀이 무조건 맞습니다.”
청장은 허허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고생이 많네, 아무튼, 이거 진행해보자고, 전국에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들에게 모두 보급할 수 있도록.”
“예산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달라고 난리 쳐야지, 죽어도 안 준다고 하면 지방청 예산으로 우리만이라도 일단 어떻게든 만들어보자고.”
“필사적으로 받아내야겠군요.”
“좋은 자세야.”
***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신해수는 강수대 본부에서 열심히 주폭 조서를 작성 중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내선 전화는 상황실이다. 해수는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강수대 신해수 경사입니다. 예, 예, 확인하겠습니다.”
“뭐야, 뭔 사건이야?”
해수는 다가와 묻는 오갱에게 상황실에서 보낸 파일을 열어 보이며 설명했다.
“너튜브에 현재 실종자들의 소지품을 보여주는 영상을 올리며 자신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미친놈이네, 이거 열에 아홉은 헛소리잖아, 누가 신고했는데?”
해수는 인터넷 창을 내리고 신원조회를 하며 말했다.
“실종자 가족입니다. 그가 보여준 소지품이 실종자의 것이 맞다고 합니다.”
해수의 말에 보통 사건이 아님을 깨닫고 막내와 팀장도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왔다.
< #81. 간이 방검복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