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
순간 장내가 적막해졌다.
교육생들은 물론 현역 경호원들도 놀라서 말을 잊었다. 지금까지 가장 몸이 좋은 교육생도 선배를 이기기는커녕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한 사람도 없었다.
“컥, 컥”
그때, 팀장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괴로워하고 있는 경호원을 챙겼다.
“괜찮냐?”
“커헉, 헉...”
그는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앉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픈 것보다 쪽팔린 것이 더 커서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말라는 뜻이다.
그 사이 심판이 두 팔을 들어 교차시켜 엑스자를 그리며 다가왔다.
하루가 다음 상대인 줄 알고 자세를 잡자 그가 멈칫하며 말했다.
“경고, 팔꿈치는 안 됩니다. 어떻게 말하자마자 바로 쓸 수가 있지?”
하루는 고운 미간을 좁히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 손을 앞으로 내리고 심판이 대련 전에 했던 자세를 그대로 취했다.
“자, 눈 찌르기, 둔부 차는 건 안 되고, 팔꿈치 안 됩니다. 나머지는 자유, 준비됐습니까? 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루는 말의 속도, 감정, 억양까지 완벽하게 기억하고 따라 했다. 그녀의 또 다른 재주에 사람들은 피식 웃음을 흘리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아 그건, 당연히 팔꿈치로 공격하지 말라는 거지...”
“눈 찌르지 말기, 둔부 차지 않기, 팔꿈치 때리지 않기, 로 이해했습니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이해할 수 있나 싶지만, 문자 그대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경호원이 심판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니가 잘못했네.”
“얘가 잘못했네! 설명을 제대로 해야지!”
“그러니까, 우리 후배님이 헷갈리지 않게 말을 잘했어야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심판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아무튼 팔꿈치로 공격하는 거 안 됩니다. 이번 대련은 무효.”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하루는 그렇게 숨을 헐떡이는 선배에게 다가갔고, 그는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다른 선배들이 그녀를 다급히 말렸다.
“다른, 다른 선배랑, 부상자잖아요.”
“예.”
하루를 상대한 선배가 바닥을 기고 있지만, 다음 대련 상대로도 한 명이 냉큼 튀어나왔다. 아직 정식 입사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인기가 넘쳤다.
그는 처음부터 가드를 올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하루를 살폈다.
‘속도는 빠르다만... 나는 방심 따위는 안 한다.’
대련이 시작되었지만 하루는 또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얼굴에 긴장한 모습이 비친다. 양쪽 눈썹도 살짝 쳐진 것이 반칙을 했다는 생각에 기가 죽은 것처럼 보였다.
‘음...’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멘탈이 약하면 탈락감이다. 그는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잽을 날렸다.
훅-
거의 동시에 그녀가 몸을 낮추며 자신에게 안겼다.
‘응?’
훅 들어오는 산뜻한 향기, 그가 기분 좋음을 만끽하려던 찰나.
뻐걱-
“커헉!”
안기는 것이 아니라 파고들어 와 니킥으로 빈 옆구리를 가격한 것이다.
선배는 그대로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 우득 소리가 난 것이 갈비뼈가 나간 것만 같았다.
하루는 건조한 눈으로 선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음”
“야, 다음은 무슨 다음이야! 용석아! 괜찮아?”
“갈비, 갈비뼈 나간 것 같... 끄억!”
“일일구, 일일구 불러!!”
“아, 네,넵!”
뼈가 부러졌을 때 자칫 잘못하면 뼛조각이 2차 위험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하고, 선배가 들것에 실려갔다.
하루는 그가 실려가는 모습을 보며 다음을 다시 외쳤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
대성 가드가 있는 대성 엔터 건물 꼭대기 층.
안서은이 다리를 꼬고 문서를 살피고 있다.
똑똑
“들어와요.”
강비서실장이 오자 서은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하루씨가 합격 보류 상태로 체력 테스트를 받았는데, 대련에서 만 점을 받고 최종 A등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잘 됐네요. 면접 떨어트리면 빽 쓰려고 했는데... 양팀장이라는 분은 사람 볼 줄 모르네요. 외모 때문에 탈락시키려고 했다니, 이렇게 보낸 인재가 얼마나 될까요?”
강실장은 서은의 질문에 숨은 뜻을 알아내고 대답했다.
“다음부터 양팀장은 면접관으로 넣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뭐 강등도 아니고, 그렇게 하세요. 그럼 하루씨는 언제 제 경호원이 되나요?”
“이제 정식 교육 들어갔습니다. 3개월 후에 실전 배치입니다만, 원하시면 바로 배치 가능합니다.”
“아니에요. 최대한 말 나오게 하지 말아야죠, 김실장님도 가서 하루씨 얘기하지 마요. 알았죠?”
구석에 가만히 서 있던 경호원 김실장이 움찔했다. 일만 끝나면 내려가서 하루 조심하라고 말하려던 차였다.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
아침, 신해수가 출근 준비를 하는 중인데 하루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앞에서 얼쩡거렸다.
“왜.”
하루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해수에게 보여주었다.
“최종 합격했습니다.”
해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찾아 정수기에서 물을 담았다.
“잘 됐네.”
해수의 건조한 반응에 하루의 눈빛에 서운함이 담겼다.
“체력 테스트 A등급 받았습니다. F등급보다 초봉이 천만 원이 더 많다고 합니다.”
“잘했어, 그럼 이제부터 월세를 내면 되겠군.”
“일주일 뒤부터 세 달간 교육에 들어갑니다. 두 달은 출근, 마지막 한 달은 합숙이라고 합니다.”
물을 마시던 해수의 손짓이 멈췄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하루에게 눈을 마주했다.
“합숙?”
“네.”
해수의 미간이 좁혀진다.
“걱정이군.”
해수의 말에 하루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집주인님은 제가 걱정됩니까?”
“아니, 다른 경호원들.”
하루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경호원은 남초 직업이다. 여자들이 넘쳐나는 곳에서도 눈에 띄는 하루가 그 시커먼 남자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그것도 합숙까지 하면서 밤낮으로 보면 들이대는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순진한 하루가 이상한 놈들에게 꼬드김당할 까 걱정되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상대가 걱정되었다.
*
강진 경찰서 강수대 본부.
팀장은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고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야, 이게 얼마 만에 여유냐, 살인사건 실종사건 안 터지니까 이렇게 여유도 부린... 읍 읍!”
팀장의 말에 오갱이 다급히 달려와 팀장의 입을 막았다.
“아니 알 만큼 아는 양반이 왜 그런 말을 이 주둥이 밖으로 내보내는 겨? 형님은 어차피 본부에 있다 이거...”
지이잉 지이잉
그때, 해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본부 내에 순간 지독한 적막이 찾아왔다. 막내도 덤벨을 들어 올린 상태로 동상이 된 것처럼 굳었다.
지이잉 지이잉
해수는 침을 꼴깍 삼키고 휴대폰을 꺼내었다. 그리고 휴대폰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는 긴장을 풀었다.
“예 구실장님”
“아 뭐야 아니잖아! 놔 놔 아우 손에서 뭔 똥냄새가 나.”
“휴...”
“흡, 후, 흡, 후, 다행입니다. 사건이 안 일어난다는 건, 세상에 불행이 덜하다는 거 아닙니까.”
“막내는 가끔 도사 같은 경향이 있어.”
해수는 구실장이 뭐라고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아 구석으로 가서 다시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특수 방검복 도착했다고요! 지금 갖다 드릴까요?”
“아... 네, 갖다 주십시오.”
해수는 주먹을 꽉 쥐며 기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돌격아 왜? 뭔데 그렇게 보기 드물게 웃고 있어? 징그럽게”
“특수 방검복 제작이 완료되었답니다.”
“특수 방검복? 아 그 저번에 막 재단사 와서 사이즈 엄청 자세히 재고 그랬던 거?”
“맞습니다.”
팀장이 볼록 튀어나온 배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나 그때보다 3킬로 쪘는데 괜찮으려나.”
그 말에 해수가 다가가 팀장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살 빼서 입으셔야 합니다. 스쿼트 먼저 시작합니다.”
“무,무서웠어 방금.”
해수가 팀장을 강제로 운동을 시키는 동안, 구실장이 30분도 되지 않아 찾아왔다.
특수 방검복은 총 열여섯 벌로 강수대 팀원들과 강력 1,2,3팀 팀원들까지, 현장을 뛰는 형사들에게 모두 나눠줄 수 있는 수량이었다.
끼익
“뭐가 왔는데 이렇게 사람을 오라 가라야?”
“선물 뭔데?”
“그거 저번에 사이즈 재간 거 온 거 아닙니까?”
형사들이 강수대 본부로 우르르 들어왔다. 평소에는 바쁘다고 서류 하나 갖다 주는 것도 그렇게 안 오다가, 선물을 준다고 하니 5분도 안 되어 본부가 꽉 찼다.
해수는 구실장과 함께 이름을 각각 확인하며 형사들에게 특수 방검복을 나누어 주었다.
알류미늄으로 된 검은색 특수 방검복 보관 박스를 주자 형사들이 정말 선물을 받는 느낌에 좋아했다.
안에는 검은색 망사 운동복 같은 옷이 들어 있었다.
“이게 방검복이라고? 그냥 기능성 운동복같은데? 칼 막을 수 있어?”
한 형사가 커터칼로 그것을 자르려고 하자 구실장이 기겁하며 말렸다.
“어어! 이거 비싼 겁니다! 어쩔 수 없을 때 빼고는 아껴주세요.”
“얼만데요?”
형사의 질문에 구실장이 고개를 돌려 해수를 보며 허락을 구했다. 해수는 이왕 힘들게 맞춘 거 막 쓰다가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버려지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가격을 알려주기로 했다.
해수가 대신 대답했다.
“한 벌당 오천.”
“엉? 오천? 오천 원? 뭐야 엄청 싸네.”
구실장이 미간을 좁히며 설명을 이었다.
“주문제작 값만 오천만 원입니다. 시중에 나오면 1억은 될 거에요. 신사장님께서 사비로 8억 들여서 제작한 겁니다.”
약간 감정이 섞인 구실장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말에 본부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그렇게 1초, 2초...
“에?”
“얼마?”
“억?”
형사들이 특수 방검복을 들고 있는 폼이 바뀌었다.
해수는 피식 웃고는 설명을 이었다.
“저는 겨울에는 운동복을 받쳐입고, 여름에는 출동 때만 입었습니다. 기능은 제가 보장하니 위험한 출동은 무조건 입고 가십시오.”
“이,이거 어떡해? 나는 신형사한테 뭐 도와줄 게 없는데...”
“우리서 복덩이야 복덩이, 진짜 고마워, 고이 모셔둘게.”
“모셔두지 말고 항상 입으십시오.”
해수의 진지한 눈빛에 형사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지나가고, 형사들도 가고 구실장도 갔는데 박스가 하나 남아있었다.
“이야, 이거 방검복 주제에 감촉이 왜 이렇게 좋냐?”
오갱은 방검복만 입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하나 남은 박스를 발견했다.
“이건 누가 안 가져갔지? 이름도 없는데?”
해수가 팀장이 입는 것을 도와주는 중에 오갱이 그것을 꺼내었다. 그러자 몸매가 훤히 추측되는 조그마한 방검복이 드러났다.
“뭐,뭐야 이건...”
“뭐지! 이 완벽한 라인은! 돌격이 저거 뭐야!”
“아...”
그때, 오갱이 그것을 다시 고이 접어서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 분 거구나, 허헛 참, 미안하네.”
오갱은 하루가 입을 방검복에 손을 댔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
오갱의 우려와는 달리 그날 하루는 순탄하게 주폭 건만 맡으며 지나갔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되었다. 해수는 안장을 열어 하루의 특수 방검복을 챙기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달달 달달
규정속도를 지키며 천천히 가던 중, 오른쪽에서 봉고차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부르르릉-
딱 봐도 거칠게 운전하는 봉고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한다. 그 뒤로 줄줄이 두 대가 더 지나갔다.
빵 빵-!!
다른 차들이 빵빵 거리자 가장 뒤에 있던 봉고차의 창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손도끼를 흔들었다.
“아가리 닥쳐! 뒤지기 싫으면!!”
그의 무서운 기세에 차들의 경적 소리가 금세 사라졌다.
해수는 그 찰나에 놈의 얼굴을 보았다. 엊그제 시내 한복판에서 칼부림하다가 도망친 놈들 중의 한 명이다.
저들이 가는 방향, 흉기,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해수는 바로 오토바이를 돌렸다.
*
강진서 동부지구대.
끼이이익-!
봉고차 세 대가 지구대 본관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사내가 소리쳤다.
“다 죽여버려!!”
“와아아아!!”
쇠파이프, 손도끼, 야구방망이, 회칼을 든 사내 수십 명이 봉고차에서 내리자마자 지구대 본관으로 달려나가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다.
콰창장!!
유리문이 깨지고 놀란 경찰관들은 방어도 제대로 못 하고 공격을 당했다.
그렇게 아수라장이 시작된 지 30초도 되지 않았을 때, 한 사내가 너덜거리는 본관 문을 부수며 굴러떨어졌다.
쿠당탕탕!
밖에서 망을 보던 조직원이 던져진 것이다. 그 뒤로 강철같은 근육을 지닌 신해수가 들어왔다.
해수는 어느 때보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시민에게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인식되어 있는 지구대를 습격한 것은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으득
해수는 수갑을 꺼내어 두 개의 링을 하나로 겹치고, 오른손에 너클처럼 끼웠다.
“니들은... 오늘만 사는구나, 그래, 오늘만 살게 해줄게.”
< #79. 오늘만 살게 해줄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