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의 주먹이 사내의 얼굴 바로 옆에 중문 나무판에 꽂혔다. 해수는 그 상태로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 잠시 나가 계세요. 곧 경찰들 올 겁니다.”
“네, 네...”
“나,나가지 마!!”
사내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애원했지만, 아주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해수는 현관문에서 보이지 않고 사내를 안쪽으로 끌고 와서는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맞는 게 무서워?”
“네,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
해수가 피식 냉소를 흘렸다. 사내는 그 냉소의 의미를 알아채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눈동자에 해수의 커다란 주먹이 비쳤다.
“의사”
퍽!
“선생님”
뻑!
“미안”
퍼석!
“합니다!”
쾅!
사내는 ‘꽥’ 소리를 내며 철퍼덕 뻗었다.
사내는 코가 아예 안으로 파고 들어가 얼굴이 평평해졌고, 턱이 으스러져 치아가 뒤틀렸다.
사내의 얼굴은 처음 아주머니를 보았을 때보다 더 뭉개져 있었다.
“끄으으...”
사내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신음을 흘렸다. 해수는 그의 머리칼을 잡아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밖에는 타이밍 맞춰 경찰들이 도착하여 아주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
해수를 알아보지 못한 경찰관들이 화들짝 놀라며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해수는 그들에게 얼굴이 곤죽이 된 사내를 내밀며 말했다.
“수갑 있으면 좀 채우십시오. 살인미수 현행범입니다.”
“아, 혀,형사이십니까?”
“강수대 신해수 경사입니다.”
강수대 신해수라는 말에 경찰관이 빠릿빠릿하게 각을 잡고 경례를 했다.
“충! 실례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해수는 마주 경례를 했다.
“예, 늦은 밤에 수고 많으십니다. 아주머니, 이제 괜찮아요.”
“예... 감사합니다. 형사 선생님.”
해수의 손을 잡는 아주머니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다치지 않았다고 해도 조금 전에 살해 위협을 받은 사람이다. 생에 최고로 놀랐을 것이다.
사내는 응급실로 직행했고, 아주머니는 경찰서에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해수는 아주머니를 집에 데려다 주고 그제야 퇴근길에 올랐다. 시침이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밤을 꼴딱 샜지만 내일은 비번이라서 다행이다.
삑- 철컥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섰는데,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인과 마주쳤다.
“헙”
해수는 비명을 간신히 삼키고 손을 뻗어 머리칼을 치웠다. 반쯤 감긴 하루의 눈이 드러났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엘리베이터 소리 들었습니다.”
하루가 눈을 한 번 비비고는 하품을 하다가 다급히 입을 가렸다.
“기다렸어?”
“귀가 밝습니다.”
“그래, 이제 얼른 자.”
“네.”
하루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방음도 잘 되는 집에서 한창 잘 때 엘리베이터 소리를 듣고 마중을 나온다. 신기하고도 기분이 썩 괜찮았다.
*
다음날, 해수는 8시에 일어나 사과를 먹고 운동방으로 향했다.
피곤하다고 오래 자면 다음날 리듬이 깨져 더 피곤해진다. 피곤을 참고 일찍 일어나서 생활하는 것이 빠르게 컨디션을 되찾는 방법이다.
퉁 퉁 퉁 퉁
운동방으로 들어가니 하루가 벌써 일어나 먼저 뛰고 있었다. 경호원 체력 테스트를 준비한다고 요즘 운동에 열심이다.
하루는 스포츠 브라에 레깅스를 입고 있어 몸매가 민망할 정도로 훤히 드러났다.
전보다 살도 많이 붙고 몸이 탄탄해졌다.
해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그녀 옆으로 가서 러닝머신을 켰다.
“일어나셨습니까?”
“빈속에 뛰면 안 좋아.”
“건강 쥬스, 마셨습니다. 집주인님꺼,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뛰면서 대답하느라 말을 끊어서 했다.
“그래? 못 봤네, 면접은 언제지?”
“오늘입니다.”
해수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이 알기로 하루는 면접 때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다.
운동을 끝내고, 씻고 나서 아침까지 먹고 하루를 불렀다.
“뭐 입고 가려고?”
“이거 입으려고 합니다.”
하루는 딱 붙는 하늘색 스커트에 하얀색 반팔 라운드티를 입고 있었다. 대학생 같은 패션이다.
“그걸?”
“안서은님이 저는 다리가 예뻐서 짧은 게 잘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이상합니까?”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키가 커서인지 다리가 길어서인지 눈에 확 띈다.
해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면접이 몇 시지?”
“11시입니다.”
“나가자.”
하루는 그 복장 그대로 해수와 함께 옷가게로 향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은 복장 때문인지 하루를 향한 시선이 유독 많이 느껴졌다.
그러나 정해진 수순처럼 남자들의 시선은 하루를 향했다가 해수에게 갔고, 금세 눈을 내리깔았다.
“이게 무난하네, 어때.”
“멋있습니다.”
해수가 고른 옷은 하얀 셔츠에 검은색 정장이었다. 하루가 탈의실에 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다.
점원이 하루의 모습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와! 정말 멋지세요! 진짜 모델 같아요.”
“음...”
점원의 칭찬에 하루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정장 바지도 맞춤처럼 딱 맞고 머리도 뒤로 깔끔하게 묶으니 벌써 경호원과 같은 포스를 풍겼다.
“이걸로 주십시오.”
한 줌도 되지 않는 하루의 원래 옷은 해수가 챙겼다.
*
대성 가드는 경호원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 대성 엔터 건물을 사용한다.
대성 엔터 앞, 해수와 하루가 마주 보고 있다.
“무슨 질문을 하든 어깨 펴고 당당하게, 뭐든 당당하게만 대답하면 돼.”
“알겠습니다.”
하루는 해수를 보며 작은 손을 꽈악 쥐어 보이고, 뒤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는 모습은 옷가게 점원 말대로 모델이 따로 없다.
하루가 대성가드가 있는 3층에 들어서자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면접자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그들은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어 이마가 훤히 드러난 하루의 얼굴을 보고 한 번 놀라고,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에 또 놀랐다.
‘선배님인가.’
‘겁나 예쁘네.’
‘뭐야, 인사해야 되나?’
‘와씨 꼭 붙어야겠다.’
하루가 면접 도우미에게 이름표 스티커를 받아 왼쪽 가슴에 붙이자, 그제야 면접자 중의 한 명임을 알게 된 남자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면접 보시는 거예요? 저돈데”
“면접 끝나고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어디 사세요? 끝나고 제가 데려다줄게요..”
몇 명 없는 여자들은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루는 보기와는 달리 긴장하여 그들에게 일일이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이나 얼굴에서 풍기는 기운이 차갑게 보여 그들은 알아서 물러났다.
“21번 면접자분, 들어오세요.”
“예.”
면접관은 총 세 명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빨간색 뿔테 안경을 쓰고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여성이었고, 양쪽에는 근육질 남성들이었다.
뿔테 여성이 안경을 매만지며 물었다.
“흠, 이력이 특이한데, 각종 무술을 섭렵했지만, 단을 따지 못하여 이력을 추가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이력서는 안서은 측에서 알아서 만들어서 넣었다. 하루에게도 공유를 해주었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하루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크게 대답했다.
“나쁜놈 패는 건 잘한다는 뜻입니다!”
“풉”
“컥”
“아...”
하루의 면접 방법은 거짓말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당당하게 말하기다.
면접관들의 반응이 제각기 다르다. 재미있어하거나, 당황하거나, 어이없어한다.
재밌다는 듯이 표정을 짓는 근육남 면접관이 말했다.
“체형은 호리호리한데 패기는 좋네요. 그건 나중에 두고 보면 알겠죠.”
“여성 경호원은 얼굴로 뽑는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거 잘못된 생각입니다. 경호원은 고용주를 안전하게 경호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알겠어요?”
여성 면접관의 날카로운 눈빛에 하루는 주눅들지 않고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그래... 만약 고용주가 차에서 먹을 것 좀 사다 달라고 하는데, 현재 경호원이 면접자 한 명뿐이에요. 그럴 땐 어떻게 하겠어요?”
하루는 이번에는 알고 있는 답이 나왔다는 듯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니가 알아서 사 먹으라고 합니다!”
“허, 허허”
*
하루를 보내고, 면접관들이 허허 웃음을 흘리며 그녀에 관해 토론했다.
“무조건 탈락, 뭣도 없는 애가 얼굴만 믿고 들이미는 겁니다.”
“에이, 양팀장님은 좀만 이쁘면 꼭 그러더라, 패기 넘치고 자신감도 넘치고 괜찮더만.”
“저도 요즘 청년들과는 달리 순수해 보였습니다. 나쁜놈 패는 건 잘한다는데, 한번 보고 결정하죠.”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러면 체력 테스트까지만 보류하죠.”
“그럽시다.”
탕-
하루의 이력서에는 보류 도장이 찍혔다.
*
체력 테스트 날이 다가왔다.
서류에 면접까지 붙으면 보통 사실상 합격이다. 정말 심각하지 않은 이상 체력은 노력으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성 가드 체력단련실.
신입 열 명과 기존 다섯 명이 마주보고 있다. 기존 경호원 중에 팀장이 신입들을 보며 설명을 이었다.
“...이 기준 이상이면 최종 합격입니다. 질문 있습니까?”
그의 말에 근육이 꽤 도드라진 사내가 손을 들었다.
“체력이 중요한 경호원인데 기준이 너무 낮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최소한의 합격을 의미하고, 테스트로 등급이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등급에 따라서 연봉이 단계별로 적용됩니다. F등급과 A등급의 연봉은 천 만 원 차이입니다.”
“허억”
“헐... 천 만 원...”
경호원 팀장은 신입들이 놀라는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짓고는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입 다물고, 최선을 다하여 테스트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신입 열 명 중에 여자는 두 명, 그 중 한 명은 정말 운동을 잘하게 생겼고, 한 명은 하루였다.
같은 신입은 물론 경호원 선배들도 하루에게 이목이 쏠렸다.
“얼굴로 들이미는 줄 알았는데 악바리였네.”
“그러게 말입니다. 완벽합니다.”
“완벽은 무슨, 그래 봤자 중간, 아니 중상 정도다. B등급 맞으면 잘 맞는 거네.”
“아뇨, 제 여자친구로 완벽합니다.”
“미친놈, 신입 그만 건드려라, 안 그래도 여자 경호원 모자란데 너 때문에 퇴사하면 퇴사시켜준다.”
“팀장님도 경쟁자군요.”
“이게...”
하루의 현재까지 체력 테스트는 종합 B등급 턱걸이였다. 남자와 여자 모두 같은 기준이기에 B등급만 해도 매우 잘 나온 것이었다.
“자 다들 수고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가장 점수의 비중이 높은 스파링이 남았습니다.”
“스파링?”
“스파링...”
“랜덤으로 선배 중 한 명과 매칭이 되면, 1:1로 3분간 스파링을 하는 겁니다. 이건 여러분의 재량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입니다. 마음껏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신입들은 땀범벅이 된 채 크게 대답했다. 다들 이미 체력 테스트에 온 힘을 다 써서 진이 빠진 상태였다.
스파링 테스트 중, 근육질 신입이 선배 경호원을 죽일 듯이 주먹을 휘둘러댄다.
훙 훙 훙 탁 터덕- 우득-
선배 경호원은 여유롭게 주먹을 피하다가 쳐내고, 그의 팔을 확 꺾었다.
“끄아악! 그,그만 그만!”
“자, 수고했어요. 다음.”
다음은 이제 여자 둘만 남았다. 하루가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녀를 눈여겨보던 선배가 뺏길세라 빠르게 튀어나왔다.
“자, 눈 찌르기, 둔부 차는 건 안 되고, 팔꿈치 안 됩니다. 나머지는 자유, 준비됐습니까?”
하루와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팀장 경호원이 둘을 가로지르고 있던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좋아, 파이트!”
그의 손이 치워졌지만, 하루는 석상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선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떨리고 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긴장한 것이다.
‘긴장한 거 봐, 귀엽네, 귀엽게 다듬어줘야지.’
보통 선배는 방어만 하다가 적절한 때에 제압하지만, 그는 장난을 쳐줄 생각에 먼저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그때, 무언가가 번쩍였다.
푹-
어느새 주먹을 뻗은 팔의 겨드랑이에 그녀의 주먹이 꽂혔고.
팍-!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의 팔꿈치가 그의 목젖을 후려치고 있었다.
“커헉!”
쿠당탕!
선배 경호원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하루는 처음과 같은 건조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 #78. 경호원 면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