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한 사내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분명 사람이었다. 사람이 다가와 부딪혔는데, 왜 교통사고가 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지 모르겠다.
그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퍼벅 퍽 퍽 퍽!!
해수를 필두로 오갱과 막내가 어깨를 들이밀며 말 그대로 ‘돌격’하여 적진을 관통했다.
정면으로 그들을 맞이한 사내들은 여기저기로 튕겨나갔고, 셋은 순식간에 적진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그 모습에 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아니 나만 놔두고 거기 가면 어떡-”
뻑-!
팀장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의 옆구리를 진압봉으로 후려치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는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어휴 누가 돌격대 아니랄까 봐, 돌격만 할 줄 알어.”
퍽 퍽 콰직 꽈드득!
“끄아악!!”
“커헉!”
신해수는 떼폭 중에서 이렇게 흉기를 든 떼폭을 좋아한다.
지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위험도 덜하고, 손속을 두지 않고 마음껏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턱
해수가 한 사내의 팔을 붙잡자, 사내가 재빨리 망치를 내려놓고 맨 손을 들었다.
“자,잠깐 잠-”
우드득-
“끄아악!! 자,잠깐이라고 했잖 끄흐윽...”
해수는 그를 구석으로 던지며 말했다.
“그러게, 싸우질 말아야지.”
해수는 닥치는대로 팔꿈치든 발목이든 잡아서 꺾으며 이 모습을 교육생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현장에서의 제대로 된 제압술을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다른 방향에서 뒤늦게 도착한 다른 경찰관들이 테이저건을 들고 달려왔다.
그들은 강수대 형사들을 알아보고는 그들이 조폭들을 초토화시키는 모습에 기겁했다.
“어,어우, 저걸 꺾네.”
“조폭들이 불쌍해지네요.”
경찰관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도 못 내고 구경꾼 모드가 되었다.
“뭐해! 정신 차리고 얼른 검거해! 구석에 쓰러진 놈들부터!”
“예 알겠습니다!”
칼부림 떼폭은 금세 진압이 되었다. 그러나 꽤 많은 인원을 놓쳤다. 돌격대가 압도적으로 강하니 금세 상황을 읽고 도망친 것이다.
“아악, 아파요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다.”
“으흑”
무릎으로 등을 누르고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우는 중에 젊은 여성 경찰관이 다가왔다.
“여전하시네요.”
동부지구대 소속 임시아 경장이다. 그녀의 눈을 보니 전보다 훨씬 속이 단단해진 느낌이다.
“임경장, 오랜만입니다.”
“신형사님 소식은 가끔 듣습니다. 인터넷에서”
“하하”
“도망친 애들이 많은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예, 수고하십시오.”
촤라락-
임경장은 삼단봉을 빼들고 뒤돌아서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골목길로 사라졌다.
지구대 경찰관들 절반은 도주한 이들을 찾기 위해 흩어졌고, 강수대는 검거한 이들만 데리고 경찰서로 돌아왔다.
*
“그러니까... 싸운 이유가 뭐라고”
팀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묻자, 귀가 반쯤 잘려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사내가 중얼거렸다.
“누가 쎄냐고 물어서...”
“허, 허허 참, 무슨 초등학교 애들 싸움도 아니고, 그러니까 거기 디스 술집 여종업원이 ‘강짜파가 그러는데 니네 한 물 갔다고 하던데? 누가 더 쎈 거야?’ 라고 물어서 싸우게 됐다고?”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대단한 이권 싸움도 아니고, 그저 술집 여종업원이 부추긴 기세 싸움으로 벌건 대낮에 칼부림까지 한 것이다.
한 쪽은 30대 중후반으로 이루어진 조폭들, 한 쪽은 이제 막 생겨나는 신흥 조폭들로 20대 초반이 많았다. 경험과 패기의 싸움.
결과는 상처 뿐이었다.
“웃기다 웃겨, 그걸로 목숨 걸고 지랄을 해 지랄을!”
오갱은 팀장의 말에 허허 웃음을 흘리다가 해수에게 물었다.
“해수야 부상자는?”
“아직 죽은 사람은 없지만, 손가락이 잘린 놈이 대여섯 명, 배에 칼이 찔린 놈이 두 명, 어깨에 손도끼가 찍힌 놈이 한 명 있습니다.”
“니가 팔 다리 부러트린 놈이 여덟 명인 건 왜 빼냐?”
“포함할까요?”
“아냐, 잘했어, 얼른 조서나 쓰자.”
“예.”
한창 조서를 작성 중에 강수대 본부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한 중년 여인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여기가... 강력반 맞아요?”
“아, 여기는 강력반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셔서...”
해수는 설명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가 말을 멈추었다. 해수는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올려 머리칼을 만지려다가 멈칫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녀가 고개를 더욱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허락했고, 해수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칼을 들어올렸다.
오른쪽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부어있고, 코가 뭉개져 있다. 얼굴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다.
“누가 그랬습니까.”
“어... 그게.”
망설이면 열에 아홉은 가폭이다. 가족 폭력, 나이를 보아하니 남편이나 아들 중에 하나다.
“신고하시면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오실 일 없었을 텐데”
“휴대폰이 부서져서... 그 사람이 던져서...”
해수의 심각한 말투에 강수대 팀원이 하나 둘씩 아주머니를 보았다.
오갱과 막내는 그녀에게 실례가 될까 다시 고개를 돌려 조폭들 조서 쓰는 데 집중했고, 팀장은 미간을 좁히며 다가왔다.
“아이고 많이 다치셨네, 강수대 팀장 곽수철입니다. 이 친구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웬만하면 신고하세요. 주먹질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점점 더 심해져요.”
“아...”
아주머니가 쉽게 말을 잇지 못하자 팀장이 해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멀리 떨어졌다.
해수는 아주머니를 돌려세우며 문을 열었다.
“일단 병원부터 가시죠.”
병원으로 가는 길, 해수는 차 안에서 아주머니에게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그 분과는 사실혼 관계이십니까?”
“아... 그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내다가 같이 살았는데, 지금은 따로 살아요... 술 먹고 새벽 네 시 다섯시 이럴 때 전화하는데 안 받으면 집에 찾아와서 이렇게 난장판을 피워서 정말 미치겠네요...”
그녀의 말에 해수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손가락 발가락 잘린 조폭들보다 이렇게 일반인인 사회적 약자가 다친 모습이 훨씬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진단서 제대로 떼고, 정식으로 신고하십시오. 제가 옆에서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그냥 신고는 안 할게요. 그냥... 무서워서 경찰서 찾아온 건데, 괜찮아요. 괜찮아졌어요.”
백미러로 본 그녀는 덜덜 떨고 있었다. 보복이 두려운 것이다.
해수는 한층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아주머니, 제 말 잘 들으세요. 팀장님 말씀대로 사람에게 쉽게 주먹질하는 사람은 안 멈춥니다. 여기서 멈추게 하지 않으면 큰 일 치러요.”
“큰 일...”
“그리고 그 큰 일의 대상이 아주머니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그놈 교도소 들어가면, 이름 바꾸고 이사 가시고, 번호도 바꾸시면 그놈이 절대 못 찾습니다. 그것 아니어도 보복 절대 못하게 제가 만들어놓겠습니다.”
“어떻게요...”
“그건 그 사람... 그 놈 하기 나름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대성병원에 도착했다. 아주머니는 코 뼈가 살짝 부러지고 눈도 자칫 잘못하면 실명이 될 뻔했다고 한다.
해수는 멍하니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 놈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바로 잡아서 집어넣을 수는 없지만, 경찰서에 출석 요청을 하고 조서를 작성합니다. 사실여부 확인은 해야하니까요. 그가 부인하면 아주머니께서 맞는 그 당시는 아니어도 그 놈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정황을 시시티비나 블랙박스로 확보할 겁니다. 확보가 되면 최대한 빨리 체포 영장을 받아서 잡아넣겠습니다.”
“네... 미리 준비를 해놨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그럴 일이 생기면 무조건 증거를 확보하셔야 합니다. 그것보다, 신변보호 요청을 하셔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호를 해드리겠습니다.”
“할게요. 신변 보호...”
그녀는 입원을 극구 거부하였고, 급한대로 의사가 코 뼈만 맞춰주고 보형으로 간접보호 조치를 취했다.
해수는 그녀를 데리고 다시 경찰서로 가서 조서를 작성하고,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주었다.
“이 버튼을 누르거나 흔들면 저희에게 위치가 전송되면서 긴급 연락이 갑니다. 저희는 바로 출동할 거고요. 그 외에도 근처 지구대에서 아주머니 댁을 집중 순찰할 겁니다.”
“네... 고생이 많으시네요.”
“웬만하면 지금 계시는 주소 말고 친척이나 친구 집에 계시기를 추천합니다.”
“됐어요. 괜찮아요.”
해수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어깨가 축 쳐진 채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계속 밟혔다.
*
퇴근길, 해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신호 대기에서 가만히 있다가, 바퀴를 확 돌렸다. 그는 다시 아주머니의 집으로 가서 그 근처 가장 가까운 모텔을 잡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가만히 누워있자니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말없이 집에 안 들어가면 은근히 삐져서 말투가 차가워진다.
해수는 전화기를 들었다.
-네.
“뭐하고 있어.”
-운동하고 있습니다. 경호원은 체력 면접도 본다고 합니다. 제 체력이 저질이라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저질이라는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묘하게 웃기다.
“그래, 잘하고 있어, 다 좋은데 체력은 보강해야 돼.”
-집주인님답지 않게 말씀이 많으십니다. 오늘 안 들어오십니까?
“...어, 현장 나왔어, 잠복 중이다.”
-알겠습니다. 이 주 동안 버려졌는데, 하루 버려지는 것쯤이야, 괜찮습니다.
“미,미안하다. 내일 짜장면 먹자.”
짜장면 얘기에 수화기너머로 침을 꼴깍 삼키는 것이 들려왔다.
-약속입니다.
“그래, 약속.”
하루와의 전화를 끊고, 해수도 일어나 맨바닥에서 침대에 다리를 올려놓고 팔굽혀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지잉 지잉 지잉
문자가 시끄럽게 울렸다. 긴급 신호다. 해수는 휴대폰을 낚아채고 다급히 튀어나갔다.
해수가 머물고 있는 모텔에서 아주머니의 집까지는 달려서 3분 거리, 해수는 전속력으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와장창 콰장창!
아직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낡은 맨션 3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수는 더욱 다리에 힘을 주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꺄악!”
우당탕!
철컥 철컥
현관문은 다행히 번호문이 아니기에 자동잠금이 되어있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니 미닫이형 중문 유리너머로 사내의 모습이 비쳤다.
오른손에 반짝거리는 쇠붙이를 들고 있다. 부엌칼로 추정된다.
덜컹 덜컹
중문은 잠겨있다.
“감히 날 신고해? 이 썅년아! 죽여버릴거야!!”
콰장창창!!
그 사내가 아주머니에게 덤벼들기 직전, 중문이 그대로 떨어져 나가며 사내를 덮쳤다.
한바탕 유리가 좁은 방 안에 쏟아져 내리고, 해수의 손에 사내의 목이 붙잡혀 있었다.
해수는 그의 가슴을 무릎으로 짓누른 채 오른주먹을 높이 추켜들고 말했다.
“안녕, 나는 과잉진압 형사야.”
뻐억!!
< #77. 가폭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