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운동장.
운동을 하던 교육생들이 하나 둘씩 철봉 쪽으로 모여든다.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철봉을 두고 빙 둘러섰다. 그 모습에 궁금해서 사람들이 더 모여들었다.
“스물 둘”
철봉 동아리장은 턱걸이 도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지금까지 경찰학교에서 자신의 절반도 따라오는 이를 본 적이 없었다.
“스물 셋...”
그러나, 나이도 훨씬 많아보이는 교관이 처음과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자세로 턱걸이를 하고 있다.
동아리장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팔뚝이 떨린다.
“와...”
이미 같이 턱걸이를 하던 동아리원들은 모두 떨어져 나갔다. 교육생들은 입을 반쯤 벌리고 둘의 기행을 보고 있었다.
“스물 넷!”
신해수는 오랜만에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운동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스물 다서엇...”
동아리장의 말 끝이 늘어진다. 해수와 동아리장의 눈이 마주쳤다. 해수는 그의 손끝이 풀어지는 것을 보고는 거의 같은 타이밍에 손을 놓았다.
터덕-
“와!”
“교관님 대단합니다!”
“우리 장 멋있다!!”
“백 스물 다섯 개! 백 개 넘기는 거 두 눈으로 처음 본다 진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구나.”
해수가 내려와서 동아리장에게 손을 내밀었고, 장은 그 손을 맞잡으면서 깨달았다. 아직도 손에 악력이 넘친다. 자신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같은 타이밍에 내려온 것이다.
구경꾼 라인에서 턱걸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김웅민은 동아리장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에 반해 해수는 차분했다.
그 모습에 웅민은 가슴에 찌릿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너무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렇게 되고싶다.’
웅민의 어리석은 질투심은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해수는 하고싶은 만큼 운동만 했을 뿐인데 본의아니게 각자 교육생들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해수는 운동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중앙 운동장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크게 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구나!’
*
다음날, 중강당.
처음 소개 때를 제외하고 실기 수업은 2개 소대 단위로 한다.
해수는 육십명 남짓한 교육생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제 밤에 교육생 여러분들의 열정을 잘 보았습니다. 그래서! 열정에 걸맞는 훈련 일정을 짜보았습니다. 걱정은 마십시오. 최고의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해수는 자랑스럽게 강당 끝에 대기 중인 의료진들을 가리켰다. 교육생들은 시작 전부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질 수 있습니다. 자, 왼쪽 팔부터...”
잠시 후.
“읍, 우우웩!”
“커헉!”
교육생들 몇 명이 토를 하며 쓰러지고, 몇 명은 들 것에 실려가고 있다.
해수는 그들을 독려하며 훈련을 이어갔다. 그때, 한 교관이 다급히 다가와 말했다.
“신해수 교관님, 오성주 국회의원님께서 갑자기 방문하셨다고, 교육생들 강당 청소 시키고 복장 단정히 하고 대기시키시라고 하십니다.”
해수는 미간을 확 좁혔다. 오성주는 삼선 국회의원으로 그 위치가 매우 높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교관님은 국회의원 온다고 하면 출동하다말고 경찰서 들어가서 계단 닦을 겁니까?”
“...네?”
“삼선이든 대통령이든 정식 행사가 아니면 일정은 그대로 진행합니다.”
“교,교관님, 그러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해수와 교관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교육생들이 소곤거렸다.
“우리 기수에 오성주 국회의원 자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봐”
“국회의원 자녀가 왜 경찰을 해?”
“하고싶은가보지”
그때, 가만히 듣던 미연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왜? 하면 어때서?”
“뭐야, 오미연, 어 같은 오씨인데? 수상한데?”
미연은 얼굴을 굳히면서 말을 이었다.
“아니, 국회의원 자녀면 경찰 하면 안 돼?”
“안될 건 없지, 너무 정색하지 마, 우리 생글미연이가 정색하니까 무섭네.”
“그랬어? 미안.”
미연은 금세 미소를 보이며 동기들에게 사과했다. 때마침 해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훈련 재개하겠습니다! 모두 강당 끝으로 붙어!”
“예스!!”
다시 신해수표 훈련이 재개되고, 한창 열이 오르고 있을 때 오성주 국회의원이 들어섰다.
그는 다른 교육생이 오미연의 발을 잡고, 미연은 두 손으로 바닥을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쩌억 벌렸다.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이 떨어지고 있고, 교관인 해수는 강당 바닥에 땀을 실시간으로 닦아내며 그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내,내...”
오성주는 뒷목을 잡으며 뒷걸음질을 쳤고, 비서는 그를 부축하며 그대로 강당 밖으로 퇴장했다.
해수는 그쪽을 힐끔 보고는 금세 시선을 돌렸다.
*
강당 밖, 비서가 오성주에게 물었다.
“잠시 중단시킬까요?”
“어허, 방해되지 말아야지, 내 딸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각오가 느껴져서 더 좋네, 저 교관은 이름이 뭔가?”
“신해수 경사입니다. 충남 강수대 형사인데 2주간 특별교관으로 초청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구만, 실적이 좋았나 봐?”
“전국 검거율 1위입니다.”
“오호...”
오성주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로 향했다.
*
그로부터 얼마 뒤, 훈련 중에 교관이 다시 달려 들어왔다. 그는 해수를 한 번 보고는 전달도 하지 않고 급히 소리쳤다.
“오미연 교육생!”
“네!”
오미연은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달려나갔다. 교관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자 미연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교관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이 찾으신다.”
미연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절대 비밀로 해달랬는데 이렇게 교육생들이 다 알게 대놓고 찾을 이유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네?”
“댁으로 돌아가시는 중에, 사고를... 당하셨다.”
“네?!”
미연의 동그란 눈이 더 커졌다. 어느새 다가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해수가 물었다.
“어딥니까”
“이 근처 해동병원입니다.”
“갑시다.”
해수는 그 교관에게 교육을 맡기고 오미연을 데리고 자신의 차로 해동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차 안은 지독한 적막만이 흘렀다.
미연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복잡미묘한 얼굴로 창문 밖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여기 피 좀 더 갖다주세요!”
“아이고 아파! 나부터, 나부터 치료해줘! 의사 선상!”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한 발자국 들어선 것만으로도 현장의 열기가 확 느껴지는 응급실, 해수와 미연은 길게 찾을 필요 없이 한쪽 구석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벅 저벅 저벅
오성주에게 다가가는 미연의 발걸음이 매우 느렸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오성주 국회의원의 옆에는 하얀 천이 덮여있었다. 운전자였던 비서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오성주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데, 하체와 복부에 피가 가득하다.
“흐읍!”
오미연은 그제야 눈물을 왈칵 흘렸다.
오성주의 손가락이 까딱 움직인다. 미연은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손을 잡았다. 누워있는 오성주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해수는 옆에 아직 떠나지 않은 구급대원에게 다가갔다.
“사고 시간이 언젭니까.”
“이곳으로 이동된 지 20분 지났습니다.”
해수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빠르게 계산했다.
“어떻게 된 건지, 사고 상황을 아는것을 말해주십시오. 먼저 위치부터”
“아... 방상 삼거리에서 덤프트럭이 덮쳤답니다. 음주 운전... 블랙박스 영상 있습니다.”
“덤프트럭 운전자는요.”
“멀쩡합니다. 경찰서로 먼저 갔어요.”
해수는 바로 구급대원이 건넨 블랙박스를 병원 컴퓨터에서 틀어 정확한 시간과 위치를 외웠다.
그러고는 숨을 헐떡이는 오성주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내 탓이야...’
훈련을 강행하지 않았더라면, 놀라서 바로 가지만 않았더라면, 두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는데...
리셋이 발현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만한 현장이 없었던 것이다. 불안하지만 마음 속 가득 간절함을 안고 속으로 속삭였다.
‘리셋’
*
“읍, 우우웩!”
“커헉!”
토하는 교육생, 쓰러지는 교육생들이 보인다. 한 시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침 교관이 헐레벌떡 들어와 해수에게 다가왔다.
“신해수 교관님, 오성주 국-”
“훈련 좀 맡아주십시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네? 네, 네.”
해수는 차키를 찾기 위해 숙소로 가는 길에 오성주 국회의원과 마주쳤다.
“신해수 교관입니다. 훈련 참관은 끝까지 봐주십시오. 그럼.”
“아... 예, 그래요. 수고하세요.”
해수는 자신의 차를 끌고 바로 방상 삼거리로 향했다. 그러고는 블랙박스에서 보았던 위치와 같은 차선에서 대기를 하며 시간을 체크했다.
‘16시 33분 15초... 사건 시간으로부터 30초 남았다.’
20초쯤 되자 9시 방향에 블랙박스에서 보았던 덤프트럭이 보였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드득, 드륵-
해수는 초록불이 되자마자 오토에서 기어를 1단으로 바꿔놓고 차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같은 차선에 다른 차들을 두 손을 펼쳐 막아섰다.
빵 빠아앙- 콰아아아앙!!!
우뢰와 같은 경적소리가 울리자마자 해수의 차와 덤프트럭이 충돌했다. 덤프트럭은 해수의 차를 30미터 가량 밀고 가다가 멈추어 섰다.
“뭐,뭔 일이야 이게.”
“헐...”
해수가 길을 막았던 차선에서 사람들이 내려 사고현장을 보았다.
똑똑-
해수는 덤프트럭으로 다가가 발받이를 밟고 문을 두드렸다. 안에는 헤롱거리고 있는 운전자가 보였다.
해수는 고민없이 팔꿈치로 창문을 찍었다.
쾅 쾅 콰장창!!
“에헤엑! 뭐,뭐야!!”
창문을 깨부수고,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운전자가 코가 벌개져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내려.”
“에?”
쾅!!
해수는 그의 멱살을 잡고 바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
덤프트럭 운전자는 근처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까지 냈지만, 해수 덕분에 살인을 면했다. 그래도 죄를 무겁게 하기 위해 해수는 자신의 차를 던졌다.
“그런데, 신해수 경사님은 어떻게 알고 먼저 내려서 다른 차들까지 막으셨습니까?”
해수는 경찰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제가 눈이 좋습니다.”
“아, 아하...”
해수는 얼굴이 아스팔트에 갈려 피투성이인 운전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 형량 최대로 받게 부탁합니다.”
“아유 그럼요. 잘못했으면 살인자가 될 뻔 했는데, 당연합니다.”
“예, 당연한 일입니다.”
조서를 쓰고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
경찰서 입구에서 번쩍거리는 세단이 한 대 서있다. 차 문이 열리며 오성주 국회의원이 내렸다.
해수는 그가 어떻게 알고라기보다는,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그냥 경찰서를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오성주는 해수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 대체 뭔가?”
해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 #75. 국회의원 방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