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해수의 담백한 인사에 강당에 적막이 가득해졌다. 해수는 교육생들이 첫 만남이기에 어색해서 그런다 생각하고, 여기까지 오면서 연습했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무서워.”
“쉿, 들려.”
그러나 그의 미소는 ‘니네 곧 죽을 테니 각오해라.’ 라는 뜻으로 비춰졌다.
해수는 적막이 이어지자 살짝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특별교관이 오면 환호를 한다던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육생들이 생존본능으로 소리쳤다.
“우와아아아!!”
“환영합니다!”
“신해수! 선배님! 신해수! 선배님!”
“기다렸습니다!!”
그제야 열렬한 환호가 터져나왔다. 해수는 그제야 만족하며 브리핑을 이었다.
“...8년 간의 노하우를 접목시켜 현장 수사법과 제압술을 가르칠 예정입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나니 교육생들도 긴장이 조금 풀려 해수를 보며 수군수군거렸다.
“팔뚝 사진 봤던 것보다 더 큰 것 같은데?”
“그러게, 살벌하다...”
“지구대에 계실 때도 검거율 1위였다고 하시던데”
“진짜 살아있는 전설을 영접하고 있는 것인가...”
“머,멋있어...”
교육생 대표 김웅민은 해수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는데 찬양을 하는 분위기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찰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과장된 기사로 인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경찰 교육생은 현실을 직시해야할 의무가 있다.
웅민은 대표로써 용기를 내어 동기들의 환상을 깨트리기로 했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하십시오.”
“최근에 자택에서 살인청부업자 여덟 명의 습격을 받았지만, 모두 제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웅민의 사실규명을 하라는 뉘앙스의 질문에 강당이 순간 싸늘해졌다.
해수가 살짝 미간을 좁히자 웅민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니, 여덟 명이 아닙니다.”
“아...”
“역시...”
해수의 대답에 몇 명이 실망을 금치 못했고, 몇 명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웅민의 옆자리 미연은 그를 보며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입을 모았다. 웅민의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그때 해수의 답변이 이어졌다.
“현장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기자가 추측성 기사를 낸 것입니다. 정확히는 열 두 명입니다. 대장은 의뢰인 추적을 위해 풀어줬고, 나머지는 부상이 심하여 현장에서 즉시 중환자실로 보내졌습니다.”
해수의 말에 교육생들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웅민은 ‘이게 아닌데’라는 표정으로 변하였다.
해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상대가 칼을 들고 덤빈다면 법이나 상대의 신변을 신경쓰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제압해야 합니다. 자기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와...”
해수의 열변에 교육생들이 입을 반쯤 벌리고 그를 보았다. 당연한 말을 하는 것도, 실제로 그런 경험을 겪은 사람이 하면 힘이 실린다.
교육생들은 잠시나마 해수가 회칼을 든 사내들을 상대할 때의 심정이 상상이 되었다.
그때 웅민이 다시 손을 들었다.
“교관님! 칼을 든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을 조금만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여기서?”
해수의 물음에 몇 명의 교육생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네!”
해수는 잠시 고민했다. 경찰 학교를 오는 길에 다짐했던 것이 있다. 하루는 특별한 경우니 제외하고,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쳐본 적이 없으니, 피드백이라도 잘 해주기로 결심했었다.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를 걷었다.
“우오...”
“아...”
흉기를 든 자를 상대하면 가장 많이 다치는 곳이 바로 손과 팔이다. 해수의 팔뚝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흉터가 교육생들의 마음 속 무언가를 찌릿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두렵게 느껴졌고, 누군가는 가슴이 끓어올랐다.
해수는 두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교관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제압합니다. 하나는 타격 제압, 두 번째는 관절 제압입니다. 타격은 상대를 한 번에 확실하게 무력화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에 다수를 상대할 때 적절합니다.”
“그때는 타격으로 제압하셨습니까?”
“두 가지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수가 많고 왼손이 부상당한 상태였기에 타격으로 많이 제압을 했지만, 교육생을 상대로는 펼칠 수 없으니 관절 제압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때 웅민이 다시 손을 들었다.
“교관님 가능합니다! 여기 글러브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웅민이 가리킨 것은 오픈핑거 글러브에 주먹 부분만 조금 더 두껍게 덧대여 있는 것이었다.
해수는 고민했다. 자신이 힘조절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
“직접 보여주시면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해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웅민이 달려가 글러브를 가져다주었다. 해수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어 그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이게 칼이라고 생각하고, 목을 찌르며 들어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턱
웅민이 대답과 동시에 볼펜을 뻗었고, 무서운 속도로 해수의 손에 그의 손목이 잡혔다.
해수는 처음으로 제대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지하게 임합니다. 실전처럼, 나의 경동맥을 찔러 죽이겠다는 심정으로.”
“죄,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웅민은 해수의 엄격한 기운에 심장이 쪼그라들면서도 겁먹은 모습을 다른 교육생들이 봤다는 생각에 수치심이 들었다.
그것은 이내 복수심으로 변하여 해수가 말한대로 실전처럼 볼펜을 뻗었다.
팡
동시에 웅민은 세상이 검게 변했다.
척
해수는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가는 웅민을 재빨리 잡아주어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미리 대기 중인 의료진이 바로 달려와 들것에 실어 데려갔다.
해수는 그들의 뒷모습을 흡족한 얼굴로 보며 교육생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때를 대비하며 본교관이 의료진을 미리 대기시켰습니다. 교육생들은 마음 편히 교육에 임하면 됩니다.”
“펴,편하지 않아...”
“무서워...”
*
강렬한 첫 인사가 끝나고, 경찰학교에서 교육생들의 일과 역시 끝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경찰학교 꼭대기에 있는 식당은 적당히 구보를 뛰기 좋은 위치였다.
“음, 경찰서보다 맛있군.”
밥도 고슬고슬하고 반찬도 잘 나오는 편이다. 해수는 고봉밥을 쌓아놓고 맛깔나게 밥을 먹었다.
자리가 거의 꽉 찼음에도 불구하고 해수를 기준으로 두 칸씩 자리가 비워져 있다.
그 모습 본 산뜻한 단발머리의 미연이 씨익 웃으며 해수의 옆자리를 검지로 가리켰다.
“우리 저기 앉을까?”
“어? 아,아니”
“가자, 가자.”
“미,미쳤어”
미연은 동기를 데리고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해수에게 다가왔다.
“교관님, 여기 앉아도 됩니까?”
“그럼, 어서 앉아서 많이 드세요. 체력이 국력입니다.”
“넵, 체력이 국력.”
미연은 귀엽게 주먹을 쥐어보이며 해수의 말을 복창하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교관님, 질문해도 됩니까?”
해수는 씹던 음식을 삼키고는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하세요.”
“현장에서 일하실 때, 어떤 사건이 가장 까다롭습니까?”
“당연히 가장 많고 가장 자주 일어나는 주폭 건입니다. 술이 원수가 아니라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는 사람이 문제지만, 경찰 일을 하다보면 술을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저는 원래부터 술을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좋은 습관입니다.”
“그러면, 맡으신 사건 중에서 가장...”
미연은 현장에 관하여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을 물었고, 해수는 열정적으로 대답해주었다.
해수는 일과시간이 끝나도 이렇게 현장과 경찰의 의무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교육생들을 보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덕분에 긴 식사시간이 끝나고, 해수는 교육생들이 운동복을 입고 삼삼오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을 따라가보니 중앙 운동장이 나왔다. 각기 따로따로 운동하는 교육생들로 운동장이 꽉 차 있었다. 그 넓은 곳에 젊은 경찰관들의 열기가 후끈했다.
각기 취향 또는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모이는 동아리 활동 모습이다.
해수는 관중석에 서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열정적이던 교육생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주구장창 토할 때까지 뛰고 토하면 다시 뛰고 했던 듯하다.
“좋구나!”
그때, 김웅민이 운동장 관중석에 앉아있는 해수를 발견했다. 웅민은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자신의 턱을 만졌다.
웅민은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동기들을 다시 마주할 때의 그 창피함을 잊지 못했다.
근육질들의 특징은 근력운동만 해서 지구력이 딸리다. 하체도 근육량만 많을 뿐이다. 웅민은 시민 마라톤 대회 준우승 출신으로 달리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교관님”
“어 그래요. 괜찮습니까?”
“예, 운동하러 나오셨습니까?”
“뭐 그렇다기보다는, 보러 나왔죠.”
“제가 구보 동아리입니다. 가볍게 몸 푼다고 생각하시고 저희를 이끌어주시겠습니까?”
해수는 마침 저 열기 넘치는 교육생들 사이로 끼어들 명분이 필요했다.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흔쾌히 수락했다.
“좋습니다!”
해수는 웅민을 따라서 천천히 몸을 풀고 있는 교육생들 무리로 향했다. 그러고는 그들의 바깥쪽에서 함께 달렸다.
“오옷 교관님”
“안녕하십니까, 같이 가볍게 몸 풀어도 되겠습니까”
“영광입니다!”
“달립시다.”
마라톤처럼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을 때는 지구력을 늘리기 위해 반 바퀴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반 바퀴는 적당히 달리면서 페이스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달린다.
그렇게 수십 바퀴를 돌 때쯤...
“헉, 헉, 헉”
절반이 낙오되고, 웅민은 오랜만에 입 안에 단내를 느끼며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잘 달리지? 저 근육이 다 달려서 만들어진 거야?’
웅민의 눈이 거의 풀리는 것을 본 해수가 그에게 물었다.
“몇 바퀴를 달리는지 정해진 건 없습니까?”
웅민은 눈을 부릅떴다. 해수의 목소리가 매우 차분했기 때문이다.
“어,없습니다.”
“그러면 이만 달리죠, 심력을 끌어쓰는 건 좋지 않습니다.”
“헤에엑”
“끄으으억 허억 허억”
해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육생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웅민 역시 허리를 깊이 숙이고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해수는 제자리뛰기를 하며 구보 동아리 교육생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마라톤 기록을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무릎연골은 소모품이기 때문에 아껴야 합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지구력을 기르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좋은 신발과 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보폭은 크지 않게, 발바닥과 지면은 최대한 떨어지지 않게 달리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물론 오늘 보니 대한민국 경찰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해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다. 웅민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달리기에 특화된 것이라 확신했다.
‘대단하긴 하다... 그렇게 뛰고도...’
구보로 몸풀기를 끝낸 해수가 혼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철봉에 다가갔다. 철봉 동아리장이 그를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교관님, 철봉 좋아하십니까?”
“그럼요. 철봉은 전신운동이 되니까, 헬스장에서 무게가 많이 나가는 기구를 드는 것보다 맨몸 운동이 밸런스가 잘 맞기에 즐겨합니다. 구보와 철봉이 가장 좋은 운동입니다.”
“역시, 같이 가볍게 운동하시겠습니까?”
해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 #74. 중앙경찰학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