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72화 (72/255)

건영 물산 사무실, 장강천이 교도소에 들어가고 부사장이 대신하여 책임자리에 앉아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예? 갑자기 거래를 끊는다니요? 당장 생산해야 하는데 자재가 없으면 어떡합니까?”

-계약기간까지는 공급할 거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나? 그러게 사장을 잘 앉혀야지...

“아니...”

처음 일이 터졌을 때는 주가만 내려갈 뿐, 별말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이 거래처가 끊기고 자재 지원이 끊겼다.

건영물산의 사장이 모든 기업에 칼바람을 일으키게 한 주범이라는 이유다.

건영 그룹의 오른팔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산의 폭락은 타격이 매우 크다.

건영그룹 회장은 물산의 부사장에게 보고를 받고는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콰직!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회,회장님...”

회장은 씩씩대며 이를 갈았다.

비도덕적이니 기업의 이미지니 이딴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주가가 잠시 폭락할 수는 있지만 금세 돌아간다.

기업은 모두 돈만 보는 놈들이다. 모종의 무언가가 있다.

회장은 문득 한 젊은 회장의 얼굴이 스쳤다. 뱀처럼 간교한 사내였다. 그리고 은연중 들려오는 소문들...

소문이 사실이라면 자신이라도 감당할 수 없다. 회장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오비서, 물산은 포기한다. 매각 준비해.”

“...예?”

“휴짓조각 되기 전에 챙기자는 거야, 진행해!”

“예, 알겠습니다.”

***

-건영그룹, 건영물산 포기?

-건영물산 연이은 폭락, 일주일 만에 주가 반절

-기업의 위기, 이대로 괜찮은가?

┗진짜 내가 알고 있는 기업이란 기업은 싹 다 쓰레기였네?

┗헬조선 진짜 창피하다

┗헬헬거리면서 딴 나라는 안 가냐?

┗헬조선이 치안은 최고라...

┗마즘 딴 나라 가서 헬거리다가 총맞음

┗그와중에 대성그룹은 홀로 빠졌다. 갓성의 선행모음(링크)

┗이와중에 대성은 마케팅하고있네

┗진짜 갓성이 빛이다. 1위로 올라서자!

┗갓성갓성!!

┗나라가 어지러울 때 영웅이 나타난다 갓성!

안서은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몰래 댓글을 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성이 아니라 안서은이야...”

대성을 싸잡아 찬양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안서은은 해수와 계약하기 전부터 기업도 이미지가 힘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하고 천천히 이미지를 쌓았다.

거기에 해수라는 조커가 등장하여 이제는 대성의 이미지가 정의로운 기업, 투명한 기업, 깨끗한 기업, 착한 기업, 개념 있는 기업으로 은연중에 국민의 의식에 자리 잡게 되었다.

자신과 해수가 이뤄놓은 결과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강실장이 들어왔다.

“대표님”

“왜요. 왜 방해해요.”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회장이라는 말에 고운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는 인터넷 창을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죠.”

안씨 본가.

거실 1인 쇼파에 회장 안기원이 앉아있다. 서은이 옆에 앉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너, 경찰 놀이 그만 해라.”

서은은 궁둥이를 붙이려다가 멈칫하고는 다시 일어섰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왜요?”

“몰라서 묻냐, 반항이냐?”

“주가 올릴 때는 아무 말 안 하시다가, 눈초리가 안 좋아지니까 바로 발을 빼시려는 거잖아요. 줏대 없이.”

서은의 도발적인 언어선택에 안기원이 미간이 확 좁혀졌다.

“다른 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네가 그 형사 돕고 있다는 건 금세 알아챌 거다. 그들의 미움만 받는다고 끝이 아니야, 그만두라면 그만둬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싫어요. 그리고 놀이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전 절대 멈출 일 없을 겁니다.”

서은은 말을 마치고는 뒤돌아서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안기원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 예쁘다고 너무 오냐오냐하며 자랐어... 김실장”

“예, 회장님.”

“서은이 경호 두 배로 늘려, 24시간.”

“알겠습니다.”

*

똭 똭 똭 똭!

대성 E&M 사무실 복도, 하이힐이 바닥을 찍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려 퍼진다.

서은은 쌍심지가 올라간 얼굴로 발을 성큼성큼 옮기고 있었다.

하이힐 소리만 듣고도 그녀의 기분을 예견한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파티션 뒤로 숨었다.

서은은 대표실에 철퍼덕 앉아 씩씩거리다가 손을 휘적거렸다.

“저 물 좀 줘요 물, 얼음 가득!”

“옙, 대표님.”

강실장은 빠르게 나갔다가 얼음물 가득한 냉수를 가져왔다.

꿀꺽 꿀꺽

서은은 냉수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얼음 하나를 꽈득 씹어먹으며 중얼거렸다.

“경찰 놀이? 놀이? 참 내 진짜, 웃기지도 않아, 그깟 더러운 기업들이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자극적인 얼음의 냉기를 느끼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자 해수가 떠올랐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지만 사람이다. 이번에도 열 명이 넘는 전문가가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

-신해수입니다.

한결같은 그의 고저 없는 목소리, 빠른 전화받기, 서은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며 미소가 지어졌다.

“저에요. 안서은”

-압니다.

“치,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입니까? 경찰은 불렀습니까?

“아뇨, 경찰 부를 일은 아니에요. 그리고 부를 일이면 해수씨를 불렀죠.”

-저는 곤란합니다.

해수의 칼 같은 대답에 서은은 급 시무룩해졌다.

“...왜요?”

-회사 차 타고 충주 가는 길입니다. 경찰학교 특별교관으로 2주간 머물 예정입니다.

“아... 특별 교관... 그렇구나.”

해수의 사정을 듣자 서은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풀어졌다.

-그래서 운전 중입니다. 집중력이 저하되니 급한 용건이 아니면 끊겠습니다.

“예? 아, 네, 그,그래요. 다음에 전화할게요.”

-예, 그럼 이만.

해수가 먼저 전화를 끊자 서은은 멍하니 있다가 책상 구석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자신의 표정이 금세 또 시무룩해졌다.

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참 이상한 경험이었다.

해수를 생각하니 자연스레 한 여인이 떠올랐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 순간 들리는 벨소리에 서은은 화들짝 놀랐다. 휴대폰을 보니 방금 떠올린 그 이름이 찍혀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서은은 이상하게 찔리는 마음을 숨기고 조심스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하루씨.”

-집주인님이 저를 두고 2주간 떠났습니다.

“하하...”

-제가 아는 성인은 안서은님뿐입니다.

“아 네, 영광입니다.”

-저는 술이라는 것을 마셔보고 싶습니다.

“...네?”

-집주인님은 술을 매우 싫어합니다. 이것은 기회입니다.

“풉, 아, 죄송해요. 그러니까... 나랑 같이 술 마시고 싶다고요?”

-혼자서 도전하기에는 너무 큰 일입니다.

서은은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웃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요. 오늘 괜찮아요?”

-가능.

“어,어 네, 가능, 그러면 제가 퇴근하고 이따가 7시쯤에 하루씨 빌딩 앞으로 찾아갈게요.”

-넵.

용건이 끝나자 바로 전화가 끊겼다. 서은은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특이해, 재밌는 여자야.”

*

안서은은 퇴근 후 리드 빌딩 앞에서 하루를 만났다.

하얀색 후드티에 레깅스, 운동화, 마치 퇴근 후에 런닝을 하러 가는 복장이다.

그에 반해 서은은 골반이 도드라지는 롱 원피스에 가죽재킷, 검은색 바탕에 바닥면은 빨간색인 하이힐을 신고 있다.

하루도 둘의 옷차림의 차이를 느꼈는지 서은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서은이 하루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 옷은 안 돼요. 우리 오늘 밤에 놀아야죠, 기회잖아요.”

“오늘 밤...”

하루는 서은의 말에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은은 그녀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옷을 보는데 서은이 사줬던 옷 외에는 죄다 운동복뿐이었다.

“안 되겠다. 일단 나가요. 나가서 하나 사죠 뭐, 내가 오늘 기념으로 사줄게요.”

“네.”

하루는 서은을 따라 가까운 옷가게로 가서 골반과 허벅지가 딱 붙는 검정색 짧은 치마에 하얀색 블라우스, 굽이 낮은 검정색 힐을 신었다.

그리고 틴트도 바르지 않는 하루의 입술에 서은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붉은색 립스틱까지 발라줬다.

여전히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전신 거울에 서서 자신을 보는 하루를 보며 서은이 감탄했다.

“와, 역시 하루씨는 태가... 모델이네요. 아무거나 걸쳐도 마네킹보다 옷이 더 잘 사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 이걸로 사죠, 가요.”

“네, 감사합니다.”

서은과 하루는 먼저 호프집에 가서 간단하게 술을 마시기로 했다.

비서인 강실장은 돌려보냈지만, 경호원인 김실장은 아무리 가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며 퇴근을 거부했다.

“그러면 멀리 떨어져서 따라와요. 우리 오늘은 좀 자유롭게 즐기고 싶단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김실장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김실장이 떨어지니 힐끗힐끗 보던 시선들이 이제는 대놓고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고작 주차장에서 호프집까지 50미터쯤 걸어가는데 남성들이 몇 번이나 말을 걸었다.

“어디 놀러 가세요? 저희도 거기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제가 이 말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아서, 너무 제 이상형이세요. 번호 좀...”

서은은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하루와 함께 호프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안에 있던 손님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두 여자에게 시선이 꽂혔다.

“와...”

“야, 왼쪽, 왼쪽.”

“뭐야, 연예인이야? 비주얼 미쳤네.”

“시팔 내가 오늘 목숨 걸고 저기랑 합석한다.”

핑크색 머리로 염색한 장발의 사내가 소주를 한 잔 털어마시고는 벌떡 일어나 하루의 테이블로 향했다.

스윽

그때, 중간에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그를 가로막았다. 호프집에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입고 있어 조폭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가.”

“네, 넵.”

핑크머리는 도전도 해보지 못하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갔다.

사내는 서은과 하루를 힐끗 보고는 세 테이블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게 소주고, 이게 맥주, 이게 양주에요. 종류가 많다는데 이름은 나도 몰라요.”

“빨리 마셔봐야겠습니다.”

“안주가 나오면, 어어 잠깐...”

하루는 눈을 빛내며 소주 한 잔을 휙 털어마셨다.

“크읍, 이건 왜 잔이 이렇게 작습니까? 느낌도 없... 음.”

“괜찮아요? 이거 먹어요.”

서은이 기본 안주인 동글이 과자를 내밀자 하루가 그것을 받아 하나만 먹고는 바로 맥주를 털어마셨다.

“이건 사이다와 비슷한 맛이군요. 그런데 조금 더 맛이 없습니다. 소변 냄새도 나고요. 이런 걸 왜 먹지.”

“이거 두 개를 섞어 마시면 맛있대요. 잠시만요. 제가 만들어볼게요. 인터넷에서 배웠거든요... 어어.”

그 사이 하루가 양주를 글라스에 따라서 털어 마셨다. 희석도 시키지 않은 채.

“끄으... 이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글로 보았던 그 이상하고 화끈한... 이게 바로 술이군요.”

“괜찮아요? 이거 이렇게 마시는 거 아니에요. 얼음에 희석해서...”

그녀들이 술맛을 보는 사이, 김실장은 여기저기서 추파를 날리는 사내들을 사전에 차단하느라고 열심이었다.

두 번째 목적지는 바로 클럽이었다.

클럽 대기줄에 서 있자 남자는 물론 여자들의 시선도 확 집중되었다. 줄을 선 남자들이 수군거린다.

“야 오늘 접고, 쟤네 잡자.”

“오케이 내가 왼쪽, 아니 오른쪽, 아니 왼쪽.”

“닥쳐 내가 둘 다.”

한 훈훈한 남자가 줄에서 이탈하며 발을 떼자, 눈치를 보던 다른 사내들도 우르르 발을 옮기며 서은과 하루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말을 걸려는 순간, 김실장이 나서기도 전에 클럽의 가드가 와서 그들을 막아섰다.

“물러납시다. 아가씨들, 따라오세요.”

가드는 서은과 하루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 모습에 다른 여자들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걔네만 특별대우에요?”

“짜증나네, 다 갈아엎은 것들이 뭐가 이쁘다고.”

“그러게 딱 봐도 성괴구만.”

가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여자들을 보았다.

“니네가 가는 건 아무 상관 없는데, 얘네가 가면 여기 남자들 다 간다. 알아?”

“하 참, 뭐래 진짜...”

김실장은 가드에게 막혀 들어오지 못하고 남자 쪽에 줄을 서게 되었다.

가드의 도움으로 순탄하게 클럽에 입장한 서은과 하루는 서로 팔짱을 낀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음...”

하루는 물론 서은도 사실 클럽이 처음이었다. 굳이 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같이 올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불빛, 후끈한 열기, 스멀스멀 움직이는 단체, 좁은 길 많은 사람.

하루는 클럽을 보며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동물의 왕국같아...’

중간에 옷 한 장만 있지 아주 성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하루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을 상관하지 않고 노래에 심취하여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고는 또 다른 새로운 감정이 솟아났다.

“우리도 저기로 가봐요.”

서은이 하루의 손목을 붙잡고 스테이지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하루와 마주 보고 다른 여자들을 따라 몸을 두둠칫 흔들었다.

“풉, 하루씨 춤 되게 못 춰요.”

하루가 큰 음악 소리에 서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귀를 기울였다.

“네?!”

“춤 되게 못 춘다고요!”

“고마워요! 안서은님도요!”

“네?”

그때, 호프집에서 그녀들을 보았던 핑크색 머리의 사내가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안녕?”

서은이 굳은 얼굴로 그를 피해 옆으로 걸음을 옮겨 다시 하루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사내가 서은의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뭘 그렇게 비싸게 굴어, 그쪽도 오늘 놀고 싶잖아, 같이 놀자고, 오빠 돈 많아.”

서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돈?”

< #72. 오늘이 기회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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