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던 체포 영장에 비서실장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신해수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뒤로 말고 옆으로 비키셔야지.”
해수가 그를 옆으로 치우자, 팀장이 사장실 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혔다.
쾅-
“경찰을 두 번이나 나락으로 보내려고 한 사장님, 계십니까?!”
안에는 짐짓 여유로운 척하며 앉아있는 장강천이 있었다. 그는 턱을 들어 강수대 형사들을 보며 물었다.
“남의 회사에서 이게 뭔 난리인가? 요즘 경찰들은 겁도 없네.”
“하, 하하.”
팀장은 새파랗게 젊은 놈이 반말을 찍찍하며 경찰을 모욕하자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때 해수가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까, 겁도 없네, 경찰한테.”
쾅!
해수는 두 손으로 그의 책상을 내리치고는 얼굴을 더욱 가까이했다.
“얌전히 따라올래, 니네 회사원들 보는 앞에서 개처럼 처맞고 따라올래?”
장강천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활짝 열린 사장실 문밖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인다.
해수의 탈인간적인 실력을 직관한 그였지만, 뼛속 깊이 새겨진 귀족의 자존심은 주먹의 두려움을 눌렀다.
그는 벌떡 일어나 해수를 노려보며 외쳤다.
“니가 진짜 미쳤구나, 나 장강천이야! 건영물산 사장 장강천! 건영그룹 장남 장강천! 주먹 좀 쓴다고 보이는 게 없나 본데, 너 같은 새끼, 네 주변 새끼들, 지금 내 눈에 거슬리는 이 형사 새끼들 싹 다 인생 나락으로 가게 하는 거 일도 아니야, 알아?!”
“몰라”
해수는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내어 그의 손목에 채우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날카롭게 손을 뿌리치고는 수갑을 빼앗아 그것으로 해수의 얼굴을 후려쳤다.
차악-!
“돌격아!”
“해수야!”
당연히 피하거나 막을 줄 알았건만, 해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그래서 볼과 코에 생채기가 나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비서실장은 물론 장강천도 얼어붙었다.
그때, 이때다 싶어 형사들이 소리쳤다.
“여기회사 사장이 경찰 때린다!”
“공무집행 하러 온 형사를 때리네!”
해수는 스윽 고개를 반쯤 돌려 물었다.
“막내야, 찍었냐?”
“네, 선배님, 장강천 사장 얼굴 자알 나오게 찍었습니다.”
장강천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이제 꺼, 찍히면 안 되니까.”
막내가 휴대폰을 내리자마자 해수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뻐억-!
***
전경이 좋은 사무실.
춉 춉
청장이 바나나 우유를 빨대로 들이키며 통화를 하고 있다.
“나 국회의원 안 할 건데? 지금까지 달리느라 수고했는데 늙어서 뭔 더러운 꼴 보려고 정치판을 기어들어가? 쉬어야지.”
청장은 고개를 기울여 어깨와 귀 사이에 휴대폰을 끼운 채 바나나 우유 뚜껑을 제거했다.
“반말? 너도 은근슬쩍 하고 있잖아, 돈 좀 많다고 어딜 얼굴도 안 본 아재가 대한민국 경찰청장한테 하대를 하고 있어?”
청장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휴대폰을 귀에서 떨어트렸다가 마이크 부분만 가까이 했다.
“전화 들어온다. 끊습니다.”
그는 종료 버튼을 누르고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참 재밌네 재밌어,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높으신 분들이 요즘은 왜 이렇게 날 찾는지 모르겠다. 형사 한 명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쯧.”
그가 일어나 창문에 기대어 섰을 때, 정말로 전화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부속실장이다.
“어, 뭐? 신경사가, 건영물산 사장을 줘패? 왜 그랬대? 살인청부? 경찰을? 미친 새끼네 그거! 더 패라 그래!”
청장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불도저야 진짜, 재밌어, 나 정년 퇴임할 수 있을까...”
고개를 들어 푸르른 창문 밖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장강천을 성폭행 누명 사주 건으로 잡아왔지만, 살인청부는 심증만 있을 뿐 증거가 없었다.
비서실장은 당연하게도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계획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파티장에서 사장님께 모욕을 준 것 때문에 앙심을 품고 계획했습니다.”
“그러니까 혼자서, 그치?”
“네.”
“1억 현금도 턱 내놓고? 돈 많네, 비서 월급이 많나 봐?”
“연봉이 그 돈보다는 많습니다.”
비서실장을 취조하던 오갱이 노트북을 덮으며 미간을 확 찌푸렸다.
“이런 시팔! 아 열받아, 박탈감 미치것네, 이런 놈 한 명이 우리 팀원 전체보다 많이 받는 거야? 하 진짜”
똑똑
그때 해수가 들어왔다. 오갱은 그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가 해, 니가 생각했잖아.”
“그럼.”
해수와 오갱이 교대했다. 비서실장은 등을 의자에 기댄 채 자신의 생각은 완고하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성폭행 사주는 뺄 수 없으니까 장강천이 고스란히 받고, 살인청부는 니가 전부 뒤집어쓴다?”
“제가 사촌에게 시킨 겁니다. 언제까지 같은 말만 반복하게 할 겁니까?”
“니가 살인 청부한 사람 지금 눈앞에 있어, 어디서 그딴 태도야, 확 눈알을 뽑아버릴까 보다.”
해수가 두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시늉을 하자 그가 움찔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해수는 손을 내리고 노트북을 보며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열 명한테 현직 형사를 살인 청부했어, 근데 그놈들이 현장에 나타난 일반인도 죽이려고 했어, 그러면 주변에 누가 보면 죽이라고도 시켰다는 게 성사되는 거지, 그러면 너는 최소 20년, 아니 무기징역이 거의 확정이야.”
해수의 설명을 듣는 비서실장의 눈동자에 점점 착잡함이 드러났다. 그러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장을 대신해서 무기징역? 그것도 저렇게 성질 더러운 새끼한테 충성을 바친다? 아니지, 돈이 엮였겠지, 그런데 넌 어차피 거기서 늙어 뒤질 거라 거래가 성사가 안 돼, 그러면 가족밖에 없지.”
해수의 기본적인 욕망 추적에 비서실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 더러운 역할도 마다치 않는 놈이 가족을 끔찍하게 위하는 게 참 기분 더러운데, 잘 생각해봐, 니가 그 새끼 대신 빵에서 평생 사는 조건으로 가족이 많은 돈을 받으면 행복할까? 아니면 니가 옆에 있고 가난한 게 행복할까?”
비서실장은 점점 고개를 숙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가족은, 내가 없을 때 더 행복합니다.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겁니다.”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은 그의 말은 반쯤 자백과 같았다.
그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니, 그건 네 가족 의견도 들어봐야지.”
해수가 취조실 창문에 손을 휘휘 젓자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머리가 무성한 중년 여인과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비서실장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이 흔들렸다.
“어,어머니, 강훈아...”
중년여인, 비서실장의 어머니는 들어올 때부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비서실장과 눈을 마주하고는 결국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그를 나무랐다.
“이 못난 놈아, 못난 놈아! 못난 놈아...”
“...”
비서실장은 죄송하다는 말도,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실려있다.
마음은 아프지만 잘한 선택이다. 돌이킬 수 없다. 지금만 넘기면 가족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는 어려서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의 폭력 밑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마어마하게 고생하며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보며 이를 아득바득 갈며 자랐다.
그리고 대기업에 입사하여 결혼까지 했지만, 아내가 바람이 나서 자신을 똑 닮은 아들만 남겨놓고 도망갔다.
불행한 삶이었지만, 아들에게만은 그 불행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 불행하지 않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다짐을 되새기는 순간, 멍한 아들의 눈과 마주쳤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아들의 입이 열렸다.
“...아빠.”
“...어, 아들.”
“가지마.”
비서실장은 아들의 건조한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눈이 붉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완고했던 다짐은 아들의 말 한마디에 둑에 구멍이 뚫린 듯이 금세 무너져내렸다.
비서실장은 아들을 생전 처음으로 끌어안고는 중얼거렸다.
“아빠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해.”
한참 후에 어머니와 아들을 취조실 밖으로 돌려보내고, 감정을 갈무리한 비서실장이 한층 힘이 풀린 눈으로 해수를 보았다.
“감사합니다.”
“...”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 소화전 안쪽에 검은 봉지가 하나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곳에 제가 봐왔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비서실장이 가지고 있는 증거물은 장강천이 살인을 청부한 증거 외에도 수많은 더러운 짓들이 있었다.
장강천은 바로 살인교사 및 사기, 횡령 등 수많은 혐의로 기소되었고,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났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의 가장 유력한 후보자이자 장남인 그가 기소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국민은 이제 경찰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잡아들인다는 인식이 조금씩 자라나게 되었다.
[대기업 장남 장xx, 형사를 청부살인 의뢰]
[건x물산 사장 장xx, 무기징역 선고!]
┗미쳤다
┗찢었다
┗요즘 경찰들 미친 거 아니야? 지네가 원빈이야? 내일이 없어?
┗존나 통쾌하다 다 쓸어버려!
┗대기업 장남이 살인청부 실화냐?
┗역시 언제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하다
┗근데 대체 그 형사가 뭘 했길래 살인을 청부했을까? 그 이유 좀 자세히 수사해봐라, 그 형사도 수상하다
┗응 니 얼굴이 수상해
┗강수대? 강수대가 어디냐?
┗대한민국최고의경찰신형사님이계신강수대를모르다니너는간첩이냐지금당장신형사검색해서모든기사섭렵하고얼마나훌륭한분인지알고와라너도곧그분을찬양할것이다신멘!
┗뭐야 이건? 새로 생긴 사이비임?
┗강수대 잘했다!! 앞으로도 대기업들 좀 쓸자!
누군가의 댓글대로, 강수대가 건영그룹에 크게 한 방을 먹이는 타이밍에 맞춰 다른 기업들이 검찰에 줄줄이 출석하게 되었다.
황시목이라는 별명을 지닌 강지태 검사가 때를 노리다가 지금 칼을 빼 든 것이다.
***
한차례 기업을 향한 검경계의 칼바람이 재계를 휩쓸었고, 기업들은 목을 바짝 움츠리고 검경계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한동안 몸을 사렸다.
빌딩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고급스러운 원형 테이블에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들의 뒤에는 수행원이 한 명 또는 두 명씩 기립해 있었다.
“이번에 좀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고요.”
“검경이 손을 잡는 보기 드문 일이 있었죠,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건영그룹에 장남으로 인해 일이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원탁에 팔꿈치를 올린 채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중년인이 혀를 끌끌 찼다.
“쯧, 아들 간수 하나 못하고... 어쨌든 지금 어지러운 사태를 바로잡으려면, 싹을 잘라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겠지요.”
“동의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결정났네요. 언제나처럼 우리나라를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힘써주세요.”
“우리 나라를 위하여”
“위하여.”
회의 내용이 결정되고, 모두 일어나 자리를 뜨려 할 때, 중년인이 다시 돌아섰다. 그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도 멈추어 섰다.
“아, 이번 일도 그... 레드문 건을 맡았던 형사가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하하, 참 대단한 형사예요. 궁금해지네요.”
그의 말에 뒤에 있던 덩치 큰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재미있잖아, 지켜봐요. 우리.”
중년인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빌딩 숲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
강진 경찰서 맞은편, 포장마차.
강수대 팀원들은 퇴근길에 다 같이 어묵을 먹고 있었다.
우물우물 쩝쩝
“아 맞다. 돌격아, 내일이지?”
“뭐가 말입니까?”
“너 설마 까먹었어? 이걸 왜 내가 기억하고 있지? 경찰학교 특별교관으로 가기로 했잖아.”
“아...”
며칠 전에 문자가 와서 봤는데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해수가 아차한 얼굴을 하고 있자 오갱이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너만 믿는다. 형사가 얼마나 멋있고 의리 있고 보람있는 일인지 포장 잘해서 잘 알려주고 와, 알았지?”
해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 #71. 칼바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