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의 비범한 기세에 사내들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서슬퍼런 회칼을 든 사내 열 명 대 맨손 한 명이다.
게다가 사내들은 칼밭에서 사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금세 살기 어린 눈으로 다가왔다.
스슥
해수는 뒷걸음질쳐서 주차된 차 사이로 들어갔다.
몇 명은 해수를 그대로 따라가고, 몇 명은 서슴없이 차 위로 올라가 해수에게 덤벼들었다. 한쪽은 SUV가 세워져 있기에 사내들이 올라가지 않았다.
“어딜 튀어!”
“죽어!”
해수가 앞에 사내와 대치하고 있는 동안, 옆에서 다른 사내가 덤벼들었다. 해수는 뒤로 상체를 물려 칼을 피하며 사내의 팔과 뒤통수를 잡고 SUV 차량 창문에 얼굴을 꽂았다.
콰장창!!
그 사이 대치하고 있던 놈이 몸을 숙이며 가까이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해수는 칼을 무시하고 무릎을 들어 올렸다.
퍼억!
사내는 칼로 다리를 베지도 못하고 해수의 니킥에 얼굴이 박살 났다. 방검복을 입었기에 할 수 있는 과감한 공격이었다.
“이야아!”
그 사이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또 달려든다.
해수는 뒤에서 달려드는 사내의 팔을 잡아 꺾으며 앞에 놈에게 밀었다.
‘윽’
해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훼이크는 사실 훼이크였다. 왼쪽 손목은 아까 행동으로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움직일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놈들은 눈빛부터 보통 조폭들과는 달랐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 앞에서 사냥꾼의 눈빛을 한다. 두려움이 없다.
사람을 많이 썰어본 모창귀의 부하들과 다르다. 썰고 썰리는 칼밭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악독함이 보인다.
차 창문에 얼굴 가죽이 찢기고, 주먹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팔이 꺾여도 포기하지 않고 덤벼드는 악착스러움이 있다.
“왼쪽! 왼쪽 정상 아니야! 훼이크 아니야 저 개새끼! 왼쪽으로 들어가!”
두 놈 빼고 나머지가 우르르 왼쪽으로 이동한다. 목숨을 건 전투 중에 귀가 열려있다.
해수가 파티장에서 선수급들 열댓 명을 쓰러트린 실력을 보았으니, 선별된 전문가들을 보낸 것이다.
쾅!
해수의 주먹이 한 사내의 얼굴에 꽂혔다. 사내는 눈알이 뒤집히며 날아가 차 창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졌다.
해수는 오른손을 털며 늑대처럼 노려보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네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지만, 기세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러므로.
“적당히 하면 안 되겠네.”
허세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에 사내들이 잠깐 경직되었을 때였다.
딩 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들이 전투 시작 전에 엘리베이터 문에 각목을 끼워뒀던 것이 전투 중에 치워진 것이다.
사내들은 물론 해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곳을 보았다.
일반인이 이 현장에 끼면 위험해진다.
-지하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스르륵-
찰나의 소강상태, 문이 열리며 여리여리한 체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색 후드티, 푹 눌러쓴 후드,레깅스에 런닝화, 하루다.
그녀는 살짝 커진 눈으로 해수를 보았다가 주변에 마스크를 쓴 다른 사내들을 둘러보며 단계적으로 눈에 살기가 스며들었다.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에서 달려나와 바닥에 있는 칼을 낚아채고 한 사내에게 덤벼들었다.
하루의 행동에 사내들은 잠시 뇌가 고장 났다.
하루는 사내의 칼을 피해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등 뒤에 달라붙어 겨드랑이를 베고, 내려와서 오금을 베었다.
슥 석-
“끄아악!”
사내가 겨드랑이와 다리에서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며 비명을 지르는 사이, 하루는 앞구르기로 다른 사내에게 다가가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아악!”
칼잡이들이 천적을 제대로 만났다.
전장에 하루가 난입하자 사내들은 혼란에 빠졌다.
“으으...”
쾅!
해수는 기절했다가 방금 깨어난 사내를 다시 기절시켰다. 이제 남은 놈은 넷, 그들은 계산에 없던 하루의 등장으로 처음으로 공격의지를 잃은 듯 보였다.
저벅 저벅
두 명이 네 명을 포위한 꼴, 해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동시에 하루도 피 묻은 칼을 역수로 쥐며 달려나갔다.
*
피가 낭자한 지하주차장, 파손된 차만 해도 네 대에 바닥에는 괴한 열두 명이 신음을 흘리고 있다.
해수는 안주머니에서 케이블타이를 꺼내어 하루에게 건네며 전화를 걸었다.
“예, 강수대 신해수 경사입니다. 리드빌딩 지하주차장 순마 세 대 지원 바랍니다. 칼 든 괴한들이 습격했습니다. 열 명 이상입니다. 제압은 해놓았으니 천천히 보내주십시오.”
해수는 사내들을 예쁘게 일렬로 무릎을 꿇고 앉혀놓고 순찰차 지원을 기다리던 중,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사내 한 명의 케이블타이를 끊어주었다.
“겉옷 벗고, 그걸로 피 좀 닦아라.”
“예...”
“빠르게.”
“옙!”
사내는 군대 이등병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차에 튄 피를 닦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해수가 다른 사내들을 보며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여기 대장 누구야.”
아무도 말은 안 하지만 눈알 돌아가는 방향으로 누가 대장인지 알 수 있었다. 해수는 그의 케이블타이도 풀어주었다.
“가.”
“예?”
“가, 가서 니네 보낸 놈한테 니네가 어떻게 됐는지 말해, 그러면 또 안 보내겠지.”
그는 부하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누가 보냈는지... 안 묻습니까?”
“한둘도 아니고, 빨리 꺼져, 셋 센다. 하나, 둘...”
“감사합니다!!”
그는 허리를 확 숙이고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하루가 말했다.
"따라갈까요?"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
하루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사내의 뒤를 쫓았다.
*
사내는 뒤를 계속 힐끔거리며 도망치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그곳에서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실패했습니다."
-뭐요? 존나게 자신만만해하더니
"놈은 인간이 아닙니다. 또 중간에 어떤 이상한 여자도 튀어나와서..."
-씨발 이래서 소문은 믿을만한 게 안 된다니까, 닥치고 어떻게든 완수해, 안 그럼 니가 뒤질 거야.
"말조심하세요. 당신 얼굴 알아."
-지랄하지 말고 일 무조건 끝내, 아님 뒤지던지.
사내는 조용히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통화하는 거 처음 봅니까?"
"아, 아닙니다."
사내는 택시에서 내려 3층짜리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로 들어갔다가 30분 만에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커다란 가방에 모자까지 푹 눌러썼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가 지나간 자리에 한 여자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짐을 싸고 이동합니다. 도망치려는 것 같습니다. 잡을까요?"
-잡아, 금방 갈게.
"네"
타다다닥-
사내는 급격히 가까워지는 가벼운 발소리에 급히 뒤돌아섰다. 찰나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동공이 확 커졌다. 그러나 그녀의 손을 확인하고는 이내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칼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상대할 만하다 생각한 것이다.
그는 상체를 틀어 하루의 조그마한 손을 피하며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었다. 아니, 꺼내려고 했다.
타닥 탁 우득-
그러나 하루가 그의 손을 발로 차 칼을 떨어트리고, 교묘하게 등에 올라타 팔을 교차시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끄으으!"
경동맥을 제대로 압박하면 기절하기까지 10초를 넘지 않는다.
그는 바동거리며 등을 벽에 부딪히다가 스르르 쓰려졌다.
*
마지막 사내까지 모두 열 두 명이 강진서에 잡혀 왔다.
사내가 마지막에 전화한 번호는 대포폰이었다. 현재는 전원이 꺼져있어 마지막에 켜진 위치만 확인했다. 번화가 정중앙이었기에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해수는 다시 왼팔에 깁스를 한 채로 취조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보내주었던 대장 사내가 있었다.
해수는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해수가 주먹을 쥘 때마다 사내는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숨막히는 적막이 흐르고,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다가 제풀에 지쳐 입을 열었다.
"우리가 칼 좀 쓴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입니다. 살인청부이니만큼 의뢰자 신상은 전혀 모릅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만 압니다."
해수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계속해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껄렁한 양아치 느낌이고, 선금 1억을 주고는 완수금은 두 배를 준다고 했습니다. 회사 차 블랙박스에 그 사람 얼굴이 찍혔을 수도 있습니다."
해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일어나.”
해수는 사내를 데리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주변 시시티비와 블랙박스를 수거했다.
사내는 모자를 쓰고 껄렁거리는 걸음걸이를 지닌 사람을 가리켰다.
“이 사람입니다.”
얼굴이 제대로 나온 각도로 보니 목에 뱀 문신이 턱까지 올라와 있는 사내였다. 처음 보는 사내다. 이번에는 살인청부이니만큼 심혈을 기울인 듯하다.
그러나 누가 사주했는지 특정할 수 있기에 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
강수대는 건영물산의 사무실 앞과 장강천의 자택, 두 군데에서 잠복했다.
“여기서 그 뱀문신 사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걔가 나올 수도 있고, 얘네가 나갈 수도 있고, 어찌 됐건 접촉하길 바라야지.”
살인청부업자와 통화를 했던 대포폰 번호는 정보과에서 실시간으로 확인 중이다.
몇 시간 후.
꾸르륵
막내는 배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왜”
“아닙니다.”
꾸륵 꾸륵 꾸득
소리가 해수에게도 들릴 정도다. 이건 괄약근을 틀어막아도 비집고 나오는 종류의 것이다.
“다녀와.”
“죄송합니다!”
막내는 재빨리 봉고차 문을 열고 근처 공중화장실로 향했다.
철컹
그러나 화장실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막내는 문 손잡이를 강하게 붙잡고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런 젠장...”
막내는 진지하게 문을 부술까 하다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끼긱, 끼익-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머리와 정장 옷이 흐트러진 남자가 나왔다.
새하얀 얼굴에 쭉 째진 눈, 금테 안경,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누구였지.’
막내는 일단 화장실로 들어가 급한 용무를 해결했다. 안에 있는 것들을 털어내자 그제야 여유가 생기며 조금 전 남자가 누군지 생각났다.
‘비서실장!’
사진으로 보았던 건영물산 비서실장이다. 그가 건영물산 사무실이 코앞인데도 공중화장실에서 문까지 잠그고 쓴다? 그것도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흐트러진 모습으로? 누가 봐도 이상하다.
막내가 휴대폰을 들어 해수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흐으으...”
옆에서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막내는 빠르게 뒤처리를 하고 옆칸을 열었다.
안에는 묵사발이 된 남자가 있었다. 목에는 뱀 문신이 있었다. 막내는 휴대폰을 들었다.
“선배님, 그 남자 찾았습니다.”
*
남자의 신상을 캐보니 건영물산 비서실장의 사촌으로, 감빵을 몇 번 왔다갔다 한 폭력 전과자였다.
이제 대충 각이 나온다.
*
건영물산 사무실, 배가 살짝 나온 팀장을 필두로 몸 좋은 사내 세 명이 든든하게 붙어서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몇 명이 다급히 그들의 길을 가로막았다.
“여,여기 막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지금 사장님 안 계십니다!”
그때, 비서실장이 사장실에서 나와 문을 닫으며 턱을 들었다.
“고작 경찰이 영장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닥치다니, 뒷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슥
말하기가 무섭게 그의 코앞에 종이 한 장이 들이밀어 졌다. 체포 영장이다.
해수가 종이 옆에 얼굴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영장 프리패스권이 있어서, 고작 범죄자 따위가 길 막지 말고, 비켜.”
< #70. 프리패스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