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는 강력범죄다. 그러므로 신고 시 지구대와 강진서 강력팀이 동시에 출동한다.
그날 당직인 강력1팀, 전 강력 2팀 형사들이 현장에 출동했다가 신해수를 발견하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시,신형사...”
“이 사람이 성폭행범이에요! 빨리 잡아가세요!!”
혜정은 해수가 형사라고 불리는데도 놀라지도 않고 빨리 잡아가라며 발악을 했다.
*
강진서 강력팀 사무실.
이 정겨운 곳에 해수는 처음으로 현행범 신분이 되어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이 문을 두드려서 와달라고 한 건 맞는데 오자마자 덮쳤다?”
“그렇다니까요! 왜 똑같은 얘기 계속하게 만들어요? 피곤해 죽겠는데...”
형사가 해수와 혜정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신형사, 아니, 신해수씨가 리드빌딩 쪽에서 뛰어가는 거 길가에 있는 차 블랙박스에 찍힌 시간이 12시 7분이에요. 주민이 신고한 시간이 12시 13분이고, 블랙박스에서 찍힌 곳에서 거기까지 도착하려면 최소 3분, 3분 만에 성폭행했다는 거죠?”
혜정은 움찔하더니 신고한 중년 남성을 한 번 째려보고는 다시 형사를 보며 소리쳤다.
“성폭행에 시간이 무슨 상관이에요?! 지금 절 사기꾼으로 몰아세우는 거에요? 보여줘요? 증거 보여줘?”
혜정이 벌떡 일어나 치마를 뒤집어깠다. 형사는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아니요. 아닙니다. 정황이 부족하면 피해자분이 불리할 수 있어서 확인하는 겁니다.”
“제 눈물이 증거에요! 더 이상 뭐가 필요한가요? 아하, 같은 경찰이라고 편드는 거지? 나 다른 경찰서에 신고할 거에요!”
형사가 난감해했다. 그녀의 말대로 신해수를 백 퍼센트 믿고 있기 때문에 무고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방향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해수가 고개를 숙이고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부주의한 탓입니다.”
해수의 반응에 혜정이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해수의 사인을 읽은 형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 신해수씨,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목격자까지 있으니 이 사건은 입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수는 손을 휘휘 젓자, 형사가 혜정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정식으로 사건 입건하겠습니다.”
“저 신변보호 같은 건 안 해주나요?”
“가해자가 여기 유치장에 있을 거라서, 원하시면 신변보호 조치하겠습니다..”
“아니요. 됐어요.”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막내야.”
다른 형사가 혜정을 집으로 데려다 주러 나간 사이, 담당 형사가 해수에게 다가가 긴히 물었다.
“이거 딱 봐도 각 나오잖아, 리드 빌딩에서 마주쳤다며, 거기 사는 것도 물어보고, 너한테 돈 뽑아먹으려는 꽃뱀이 확실한데 왜 이렇게 고분고분해? 안 그래도 목격자가 적극적이어서 골치 아픈 마당에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저만 당당하면... 잘 되겠죠.”
“아이고, 성범죄가 남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놈이, 아무튼...”
콰아앙!!
그때, 사무실 문이 부서질 듯이 세게 열렸다.
“우리 돌격이 어딨어!!”
“해수야!!”
팀장과 오갱이다. 언제 소식을 들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는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러다 피의자석에 앉아있는 해수를 발견하고는 죄 없는 맞은편 담당 형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야이 새끼야!! 감히 누굴 여기에 앉혀!”
“아이고 해수야! 니가 왜 여기 있냐! 나가자 나가!”
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른 형사들이 일제히 달라붙어 그들을 간신히 진정시킬 때쯤, 다시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덩치 큰 곰 한 마리가 들어왔다.
“선배니이임!!!”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다.”
“저게 사람 목소리냐, 야수지 야수”
막내가 달려와 해수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고, 살기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굽니까! 누가 선배님께 더러운 누명을 뒤집어씌웠습니까!”
“일단 목소리부터 낮춰, 귀 아프다.”
그래도 팀원은 팀원인가 보다. 이들이 난리를 치는 모습이 다른 강력팀 형사들에게는 민폐일지언정, 가족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나, 아무리 모두가 누명이라고 확신해도, 아무리 가족 같았던 사이라도 절차대로 진행해야 한다.
해수가 유치장에 들어갈 때는 입구에서 덩치 큰 강수대 팀원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눈물 콧물을 쥐어짰다.
팀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해수는 휴대폰을 맡기기 전에 형사에게 말했다.
“통화 한 번만 쓸 수 있습니까?”
“그래, 뭐든 좀 해라, 이러다 방심하면 진짜 훅 간다니까? 우리나라 성범죄 처리가 얼마나 쉬운지 알잖아?”
“감사합니다.”
해수는 말없이 살짝 미소를 짓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형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유치장 문을 닫았다.
해수는 형사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정영수에게 전화했다.
-예 신형님.
“언제나 전화를 빨리 받네.”
-형님 전화면 빨리 받아야죠, 일 초가 급할 수 있잖아요.
“그래, 자세 좋네, 휴대폰 번호 불러주면 거기 휴대폰에 저장된 녹음파일 들을 수 있나?”
-음, 남의 휴대폰 해킹이라... 이건 주인이 문자나 깨톡 메시지를 클릭해야 가능한데.
“불가능한 건가?”
-원래 요즘은 워낙 의심이 많아서 힘든데, 제가 또 이런 거 전문이라, 걱정 마세요.
“그런거 전문이면 안 되는데... 번호 부를게, 공일공...”
해수는 영수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반납하려다가 멈추었다. 꼭 전화해야 할 한 명이 더 있다.
-어디십니까.
하루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녀는 해수가 전화를 받고 다급히 뛰쳐나가는 모습을 봤었다. 뒤쫓아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뒤쫓아왔나?
“지금 유치장이야.”
-거긴 잘못한 사람만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왜 집주인님이 거기 계십니까?
이상하게 다 알고 말하는 것 같은 말투다.
“그 여자가 도와달래서 갔다가, 성폭행범으로 몰려서 현장 체포당했어.”
-...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야,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 여자 죽이지도 말고, 미행도 하지 마.”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착하다.”
*
며칠 뒤, 혜정의 집 앞.
강수대의 오갱과 막내가 봉고차 안에서 잠복하고 있다.
유치장 앞에서 어깨동무하고 눈물을 쥐어짤 때, 해수가 팀원들에게만 긴히 말했다.
-이거 단순한 꽃뱀 사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여자 태도가 강경합니다. 조용히 수사 부탁합니다. 그 여자가 내게 누명을 씌우는 사주를 받았다면 어떤 루트로든 돈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다가 아니면?
-아닐 경우에 제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모두 확보하고 있습니다. 착수금은 이미 받아서 어디 빼놨을 가능성이 크고, 일이 끝났으니 잔금을 받을 겁니다. 추적 부탁합니다.
-알았어, 우리가 강수대 이름 걸고 꼭 잡아낸다. 기다려.
강수대는 혜정의 계좌를 뒤져보았지만 깨끗했다. 둘 중 하나다. 현금을 직접 건네받았거나, 현금이 든 대포통장을 받았거나.
“오갱 형님, 형님 나왔습니다.”
“어 진짜네, 저 복장으로...”
혜정은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야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검은 가방을 메고 나왔다. 그러고는 동네 구석진 곳에 현금 인출기에 가서 돈을 몇 차례 뽑았다.
그 장면은 실시간으로 동영상에 찍히고 있었다.
찌직 찌직
그녀는 돈을 가방에 담고는 카드를 영수증 분쇄기에 넣었다.
“일거리 늘었네.”
“그러게 말입니다.”
“힘내라.”
“네?”
혜정이 나가고, 막내는 바로 은행 경비를 호출하여 분쇄기에서 잘려나간 카드를 확보했고, 오갱은 혜정의 추적을 이어갔다.
혜정은 집에 들렀다가 그 새벽에 차를 타고 다른 지역에 원룸으로 갔다가, 하룻밤 자고 나서 다시 나와 햇님맨션으로 돌아왔다.
*
며칠 뒤, 강진서는 혜정에게 진술조서 작성 관련해서 출석을 요구했고, 혜정은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를 대동하고 경찰서로 왔다.
“이 분은 누구신지”
“안녕하십니까, 로펌 SM 소속 김무고 변호사입니다.”
“아이고, 벌써 변호사까지 고용하셨구나, 돈이 많으신가 보네.”
형사의 말에 혜정이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투가 참 기분 나쁘네요? 그게 형사가 성범죄 피해자한테 보일 태도인가요?”
그때,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무고죄 범죄자한테 보일 태도지, 변호사님 이름 참 좋으시네.”
팀장과 오갱, 막내가 기세등등하게 다가와 그녀를 둘러쌌다. 그들의 기운에 김변호사는 절로 몸을 움츠렸다.
오갱이 수갑을 혜정의 손목에 채우며 말했다.
“이혜정씨, 당신을 무고 및 사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여기가 서지만 기분 나쁘니까 차고 있어.”
“이,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뭐하는 짓이야?!”
혜정은 물론 김변호사도 당황해 하는 사이, 팀장이 그들 앞에 노트북을 가져다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검찰에 송치 전에 일 처리 하느라 힘들었네, 그러게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감히 형사를 상대로 누명을 씌우려고 해?”
검찰에 송치하게 되면 막을 수 없는 기자들이 몰려들 테고, 나중에 무고죄가 밝혀져도 해수의 이미지는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팀장이 보여준 노트북 화면에는 혜정이 착수금을 받았을 때 돈을 뽑는 영상, 완수금을 받았을 때 막내가 직접 찍은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그 영상에 혜정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검지로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저게 뭔데? 그냥 돈 뽑은 건데 왜?! 저게 무슨 증거야, 이 미친놈들아!!”
“이혜정씨 말조심하세요. 어디 경찰서에서 형사들한테 욕을 해 욕을, 확 명예훼손죄 추가해버릴라.”
“그걸 왜 참아? 추가해, 당장, 시시티비도 있겠다.”
말을 하는 사이, 동영상이 넘어가고 녹취록이 틀어졌다.
-아니, 갑자기 와서는 돈 줄 테니까 이 방 한 달만 빌린다고... 누구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저는 정말 범죄랑 관련된 줄은 몰랐어요! 진짜예요!
-얼굴도 반반하고... 그런 여자가 돈까지 주면서 스토커 오면 비명 지를 테니 현장 덮쳐달라는데, 당연히... 했죠.
본래 혜정의 집에서 살던 집주인의 증언, 그리고 목격자 역할을 했던 주민들의 위증 실토 내용이다.
혜정은 본래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이 아니었다. 작업을 위해 장소까지 빌린 것이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해수가 본인의 집에서 나갈 때부터 혜정의 집에 들어가기까지,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비명이 들리는 부분까지 촬영된 영상이 재생되었다.
하루가 직접 그의 뒤를 몰래 따라가며 찍은 것이다. 이것으로 해수가 현장을 녹음한 파일은 제출할 필요도 없어졌다.
혜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아니 그러니까, 그 남자가 부딪힌 게 기분 나빠서, 어 그 눈빛이, 어...”
저벅 저벅 저벅
일정한 보폭, 무게감 있는 발소리, 형사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그들을 따라 혜정이 고개를 돌리자 바로 앞에 신해수가 서 있었다.
해수는 그녀를 무미건조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혜정은 해수와 눈을 마주하자마자 깨달았다. 이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해수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깨진 휴대폰을 떨어트릴 때부터.”
전투에 특화된 해수의 피지컬은 힘에 관련된 것뿐만이 아니다. 동체시력도 천성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날뿐더러 단련까지 되었다.
그는 혜정이 해수에게 달려와 부딪히며 휴대폰을 떨어트릴 때, 휴대폰이 이미 깨져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부터 깨지고 켜지지 않은 휴대폰을 준비했던 것이다.
“지금부터 당신의 형량을 낮출 방법을 알려주겠습니다. 협조만 잘 해주면 무고죄는 취하할 것입니다.”
“저,정말인가요?”
“정말입니다. 휴대폰부터 보여주시죠.”
물론 거짓말이다.
< #68. 깨진 휴대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