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가 출근하자, 강수대대원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섰다.
해수는 손가락뿐만 아니라 손목도 욱신거려 가보니 인대가 늘어났다 하여 이참에 아예 손목까지 붕대를 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어! 잘못 본 거야!”
“이,이럴수가”
“덤프트럭으로 교통사고라도 당한 건가?”
팀장은 헛것을 본 듯이 눈을 비비고, 막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쇼킹해했다.
그나마 차분한 오갱이 다가와 손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역시 오갱이 여기서 가장 정상이다.
“괜찮습니다.”
“아니, 너 이렇게 만든 애들 괜찮냐고”
역시 강수대는 팀워크가 좋다.
“아직 못 깨어났을 겁니다.”
“살벌한 놈.”
해수는 팀원들에게 계단에서 굴렀다고 대충 둘러댔다. 63빌딩 꼭대기에서부터 1층까지 구르지 않는 이상 이 정도 상처가 나지는 않겠지만, 팀원들은 해수의 마음을 헤아리며 넘어갔다.
하지만 궁금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아 팀원들은 중간중간 해수를 힐끗 보았다.
점심시간, 본관에서 식사 후 옥상.
해수는 가슴이 답답하여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끼익
팀장이 해수가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따라 올라왔다. 팀장은 슬그머니 해수 옆 난간에 기대어 서서 물었다.
“무슨 일인데? 니가 그냥 넘어가고 싶어서 말은 안 해도, 네 얼굴이랑 손가락 그렇게 만든 놈이 누구인지 다들 궁금해 죽으려고 한다. 사람은 맞나, 어디 격투기 챔피언 출신인가...”
해수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잡고 싶은 놈들이 있는데... 어떻게 잡아야 할지 엄두가 안 나서 괴롭습니다.”
“천하에 돌격이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다 있네, 어떤 놈들인데, 말해봐, 내가 다 잡아 쳐넣어 줄게.”
“불법도박 혐의 따위로는 건드리지도 못하는 놈들입니다.”
“아이, 그러니까 말해봐, 나 대장이다? 강수대 대장?”
“JL그룹 막내딸”
“음...”
“혜성그룹 차남”
“오우, 설마 또 있어?”
“건영그룹 장남”
“유후~”
팀장의 재미있는 반응에 해수는 다시 시선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팀장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우리 돌격이가 고생 많았네, 잘 참았어.”
무슨 일인지 자세히 듣지도 않고 본질을 관통하는 위로를 한다. 해수는 이게 연륜인가 싶었다.
“팀장님...”
해수는 파티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팀장에게 털어놓았다. 답답한 마음이 그나마 가실까 싶어서다.
팀장의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음,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이해해, 그런데, 그런 놈들 들쑤시고 잡아내는 건 검사가 하는 일이고, 우리는 지금 당장 시민 눈앞에 닥친 위험을 막아줘야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괴롭습니다.”
“아아,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게 아니지, 내가 그런 놈들 잘 알거든? 니가 직접 혼내주지는 않았지만, 그놈들은 이미 너한테 싸다기 스무 대 맞은 느낌일 거란 말이야.”
팀장은 검지로 해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움직여, 널 짓밟으려고, 높으신 분들은 돈보다 목숨보다도 자존심이잖아, 너는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그때 잡아, 그땐 우리가 잡아도 돼, 잡아서 패, 존나 패.”
“...감사합니다.”
반응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희망이 생긴 느낌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때마침 팀장의 전화가 울린다.
“어 왜?”
-형님 어디야! 출동! 빨리 와!
“간다!”
팀장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옥상 문을 열고 뛰어 내려갔다. 해수가 바로 따라붙자 그가 달려가며 소리쳤다.
“넌 사무실에서 상황 보고해!”
“괜찮습니다!”
팀장 말대로 형사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 이곳저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일들이 터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흉기 주폭이었다. 주취자가 칼을 들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다 죽이겠다고 음식점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눈은 반쯤 감겨있고, 얼굴을 이쑤시개로 톡 찌르면 핏줄기가 찍 나올 것처럼 빨갛다.
그는 테이블에 앉아 한 손에는 부엌칼을 들고,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계란찜을 먹고 있었다.
밖에는 앞치마를 두른 음식점 주인이 팔뚝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말리다가 베인 것이다.
음식점 밖에는 사람들이 그를 찍고 있다. 저러다가 피해자로 바뀌는 건 순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강수대가 도착하자 주취자가 졸린 눈을 들어 중얼거렸다.
“뭐야, 요즘 경찰은 환자도 써먹냐?”
해수의 팔에 깁스를 보고 하는 말이다. 해수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건 깁스가 아니라 진압 장갑이야.”
해수는 망설임 없이 주취자의 칼을 쥔 손을 깁스로 내리찍었다.
쾅!!
“아악!!”
주취자의 손이 뭉개지며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막내가 달려들어 그의 손목을 뒤로 확 꺾었다.
“당신을 특수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경찰 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술 혐오가 강해진다.
우리나라의 술자리 문화가 미화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이가 갈린다.
***
퇴근 후, 리드 빌딩 로비.
삼남매에게 사줄 과자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한가득 구매하고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와 부딪혔다.
“꺄악!”
당연하게도 해수는 그 자리에 멀쩡히 서 있고, 여자는 자기가 달려와 부딪히고 반대로 날아갔다.
촤르륵
그녀의 핸드백과 휴대폰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졌다.
해수는 갑자기 들이닥친 봉변에 어이가 없어 몇 초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으윽...”
그녀의 신음을 듣고서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아... 괘,괜찮아요.”
해수는 그녀의 소지품을 주워 핸드백에 담아 건넸다.
“그래도 병원 가서 진찰을 한 번 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 진짜 괜찮아요. 저는 이만... 어머!”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휴대폰이 액정이 제대로 박살 나 있는 것이었다.
해수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저, 수리 맡기시면 비용은 제가 부담해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울먹이다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제 탓인데요. 괜찮아요. 히잉...”
그녀는 휴대폰을 몇 번 누르다가 곤란한 표정으로 해수를 힐끔거렸다.
“아, 그런데... 휴대폰이 아예 전원이 안 켜져서, 죄송하지만 휴대폰 한 번만 빌려주실 수 있어요?”
“예, 쓰십시오.”
해수는 잠금화면을 풀고 선뜻 그녀에게 휴대폰을 빌려주었다.
그녀는 안심시키듯이 눈앞에서 번호를 찍어 통화버튼을 누르고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어, 나야 혜정이, 아 휴대폰 떨어트렸는데 맛갔어, 어디야? 그래 내꺼두, 아니 1인분만, 혼자 사는데 2인분 포장해서 뭐해, 응, 금방 갈게.”
그녀는 통화를 마치고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해수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아닙니다. 제가 죄송하죠.”
“하긴, 누가 봐도 저만 다치기는 했죠.”
그녀가 입을 가리고 깔깔 웃었고, 해수도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몸이 되게 좋으시네요? 뭐하시는 분이세요?”
“예, 저는...”
“아, 제가 맞춰볼게요. 여기 3층 헬스장 트레이너!”
해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이 오해들 합니다. 공무원입니다.”
그의 말에 그녀가 손뼉을 치며 놀랐다.
“아하! 공무원이시구나! 죄송해요! 헤헤”
하루에게는 본 적도 없고 상상도 안 되고, 안서은은 아주 가끔 눈웃음을 짓기는 하지만, 이 여자는 거의 자동반사다.
애교가 천성적으로 타고난 듯했다.
“정말 병원 안 가보셔도 될까요?”
“에이, 정말 괜찮아요. 이것 봐요.”
그녀는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가느다란 팔뚝을 보여주며 이두가 튀어나오는 자세를 취했다.
당연히 가녀린 팔뚝만 돋보였다.
“예, 하하.”
“근데, 그러면 트레이너 아니시면... 여기 사시나 봐요?”
“아, 예.”
“그렇구나... 여기 집 좋던데, 좋겠다. 나중에 초대해줘요.”
“...예?”
“농담이에요 농담, 아무튼 미안했어요. 그럼 가볼게요.”
“예,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치료비 드리겠습니다.”
해수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연락은 어떻게 하죠?”
“아까 친구분에게 전화한 번호로...”
“에이, 그래도 직접 번호를 주셔야 성의가 있죠.”
“음, 어떻게 드리죠?”
“제 번호 불러 드릴게요. 문자 남겨주세요. 이름으로.”
“...예, 그러죠.”
그렇게 그녀에게 문자까지 보내고, 그제야 그녀가 떠나갔다.
“가볼게요. 나중에 또 봬요~”
“가십시오.”
이상한 사람이다. 해수는 그녀가 조금 다리를 저는 것 같아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아잇 깜...짝이야.”
바로 앞에는 하루가 무미건조한 눈을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언제부터 내려와 있었어? 어디 나가려고?”
하루는 대답 없이 고개를 살짝 돌려 여자의 뒷모습을 검지로 가리켰다.
“저 여자 뒷태가 예쁩니까? 오래 보고 있던데.”
“다리 저는 것 같아서 본 거야.”
“다리가 예쁩니까? 예쁘군요.”
“아니라니까.”
엘리베이터에 타자 하루가 따라서 타고는 정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여자 수상합니다.”
“뭐가”
“제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지금 하는 행동은 여우 짓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마음에 들어서 꼬시려고 꼬리를 치는 짓.”
“그게 왜 수상해.”
하루는 확신 어린 눈동자로 대답했다.
“저렇게 예쁘고 애교 넘치는 여자가 우락부락하고 험악하고 무섭게 생긴 집주인님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습니다. 다른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내리자.”
해수와 하루는 10층이 아닌 9층에서 내렸다. 삼남매의 집은 904호다.
딩동
“와아아!!”
“삼촌!! 누나아!”
“언니!”
야외 욕탕에서 제대로 당한 막내를 제외하고, 둘째와 첫째 지안이도 하루에게 달라붙어 안았다.
하루가 그렇게 자상한 스타일이 아닌데, 어떻게 저리 아이들이 잘 따르는지 의문이다.
*
그날 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한 통 왔다.
-저에요. 혜정이
해수는 낯선 여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까 부딪혔던 여자가 통화할 때 이 이름을 썼던 것이 떠올랐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 아프십니까?
-엇, 제 이름 어떻게 아셨어요? 귀담아들었구나?
┗기억력이 좋은 편입니다.
-그러쿠나~ 그냥 번호 확인이요. 좋은밤 되세요~^^
해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여자에게서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기에 어색했다.
그는 혜정의 번호를 저장했다.
[충돌 피해자]
*
다음날, 밤 열 두 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잠을 청하는 중에 전화가 울렸다.
[충돌 피해자]
이 여자가 왜 이 시간에 전화할까? 해수는 그녀가 혼자 산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혼자 사는 여자가 늦은 밤에 전화하는 이유가 수만 가지 떠올랐다. 모두 범죄 관련된 일이다.
해수는 바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예.”
-저,저에요 혜정이.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떨리고 두려움이 가득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 친구랑 같이 술 한 잔 마시고 집에 왔는데, 제집 앞에 이상한 남자가 계속 문을 두드려요. 저 무서워 죽겠어요. 어떡해요?
“112에 전화하시면 가장 가까운 파출소에서 경찰이 출동하여 혜정씨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겁니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일 있을 때 경찰한테 전화했었는데 그 사람 내쫓기만 하고 그냥 갔단 말이에요. 저 경찰 못 믿어요... 정말 죄송한데, 그쪽이 와주시면 안 되요?
“알겠습니다. 주소 알려주세요.”
-네 여기가 거기랑 가까워요. 길 건너 햇님맨션 301호... 어머어머어머, 꺄아악!
“혜정씨, 혜정씨!! 무슨 일입니까?!”
혜정의 비명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해수는 재빨리 바지만 입고 방을 박차고 나갔다.
햇님맨션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게 더 늦다. 해수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어 문이 열리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조금 낡은 햇님맨션 301호, 이 밤에 문이 반쯤 열려있다. 해수는 문을 벌컥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침대 위에 혜정이 속옷만 입고 이불을 끌어안고 있었고, 집은 엉망인데다가 원래 입고 있었을 옷이 찢겨 있었다.
해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혜정씨, 괜찮으십니까?”
그때, 해수는 혜정과 눈을 마주하고 순간 경직되었다. 혜정의 눈동자에서 공포와 경멸이 비쳤다.
그녀는 한 번 숨을 들이켜더니 입을 쩍 벌렸다.
“꺄아아악-!!”
그녀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양쪽 호실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이 사람이 저를, 저를 막! 흐윽!”
그녀의 검지 끝에는 해수가 있었다.
< #67. 작업 > 끝